마틴 뎀프시는 미국 합참의장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2008년 12월 별 네 개를 부착하는 4성 장군이 되었다. 그에게 다른 4성 장군이 축하 인사를 건네기 위해 다가오더니 귀에 대고 속삭였다.

“지금 이 순간부터 아무도 자네에게 진실을 말하려 하지 않을 거야. 항상 그 사실을 꼭 명심해두게.”

권력이 집중될수록 아부와 아첨은 늘어난다. 반대로 진실과 사실은 줄어든다. 4성 장군에게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인 데 , 권력이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막강한 대통령은 오죽할까. ‘거짓의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린 대통령을 우리는 수없이 경험했다.

불행하게도 문재인 현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며 오히려 갈수록 ‘진실의 목소리’로부터 멀어지는 것 같다. 대통령의 민낯이 14일 이뤄진 ‘자영업·소상공인과의 대화’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날 대화에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최저임금이었다. 방기홍 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회장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다 죽게 생겼다. 내년 최저임금을 동결해달라”고 요청했다. 최저임금 부담으로 인해 자영업자들이 줄줄이 나가떨어진다는 호소였다. 통계청이 하루 전에 발표한 1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직원을 둔 자영업자 숫자가 총 161만4천명으로 1년 전보다 4만9천명이나 줄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의 반응은 엉뚱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의견을 반영하겠다”고 했다가 나중에 “여러 생각이 있을 수 있지만 길게 보면 결국은 인상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것”이라고 속내를 드러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장관은 “최저임금은 대통령과 정부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사용자위원 근로자위원 공익위원으로 구성돼있고, 결국 최종 결정은 정부 의사를 반영하는 공익위원의 손에 달려 있는데도 책임을 슬쩍 위원회로 떠넘긴 것이다.

최저임금에 대한 대통령과 장관의 발언을 볼 때 현 정부는 최저임금의 성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경제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법과 제도는 ‘경제활동 기준(standard)과 경제활동 규제(regulation)’로 구분된다.

기준으로 볼 수 있는 게 근로기준법의 15세 이하 아동노동의 금지라든지 자동차의 매연금지나 안전벨트 규정 등이 있다. 그 필요성이 널리 인정되므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있다. 반면에 규제는 경제 활동에 제한을 두기 때문에 경제주체들이 크게 부담을 갖게 되며 반발하는 사람도 많다. 사람에 비유하면 일정한 행동 범위를 설정하는 게 ‘기준’이라면 행동 자체가 불편하게 팔과 다리를 묶는 게 규제가 된다. (필자의 책 <이기적 국민 p 252 참조)

최저임금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힘들게 하므로 규제가 된다. (그런 측면에서 주52시간제도 비슷하다.) 최저임금이나 주52시간제 모두 지키지 않으면 범법자가 되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이러한 속성을 감안하지 않고 최저임금과 주52시간제를 밀어붙였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여러 가지 규제 완화를 한다고 하지만 사실 이런 것들은 수류탄급에 불과한 반면, 대못박기와 같은 최저임금과 주52시간제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핵폭탄급이다. 핵폭탄은 그대로 놔두고 다른 것을 아무리 없애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 속담에 ‘병 주고 약주고’가 있다. 그런데 지금 정부에서 하는 것을 보면 병을 주고 위로만 줄뿐 정작 필요한 약은 일체 없는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영업은 우리 경제의 매우 중요한 축이다. 현장에는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아는데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다”고 말했다. 또 “저는 연탄 리어카를 끌거나 배달을 한 골목상인의 아들이다. 올해는 자영업자의 형편이 나아지는 원년이 됐으면 한다”라고 얘기했다. 이런 발언이 당장 빚더미에 눌려 파산을 하고 길거리로 나앉게 된 사람에게 무슨 보탬이 될까.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들에게는 올해 1월 실업자가 122만 4천명으로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1월 이후 최대이고 고용지원센터마다 실업급여 신청자들이 줄을 선다는 뉴스가 아예 보고도 되지 않는 것일까.

14일 청와대 오찬에는 디저트 메뉴로 '그릭 요거트'가 나왔다. 그릭 요거트는 5일에서 7일 정도의 숙성 시간이 필요한 슬로푸드인데 여기엔 기다림의 미학이 담겼다는 게 청와대측 설명이다. 당장 산소호흡기를 달고 사는 사람들에게 기약도 없이 얼마나 기다리라고 하는 것인지.

많은 정치지도자나 최고경영자들이 흔히 강조하는 단어가 경청(傾聽)이다. 경청의 진짜 의미는 귀를 기울여 여러 가지 목소리를 듣고 자신의 잘못된 생각이나 신념을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듣기는 하되 자기 소신은 절대 바꾸지 않는 사람은 경청하는 사람이 아니며 이는 가짜 경청이자 사이비경청일 뿐이다. 귀는 열려 있되 제대로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을 벽창호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통령과 장관의 직책은 공감하고 위로를 보내면 되는 자리가 아니다. 그런 일은 마음 좋은 큰스님이나 신부님들이 훨씬 잘한다. 국정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제대로 실천하고 성과를 내야 하는 책임이 있다. (기업에서는 성과를 내지 못하면 잘린다).

14일 있었던 ‘자영업·소상공인과의 대화’는 현 정부 내에 진실을 말하거나 진실을 알아듣고 이를 실천하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느낌이 들게 만드는 한순간의 ‘쇼(show)’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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