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투수 정세균의 고민 대해부

대의원 참석률 72.3%···정족수 넘기고 전대 무사개최
탈당파에 잇따른 날선 발언으로 통합신당의 축으로?
정동영계, 탈당 일보직전···신속한 대통합신당이 관건


▲ 2.14 전당대회
열린우리당호가 난파 직전의 위기를 모면했다. 최근 23명 의원들의 집단 탈당 등 31명이 당을 이탈해 당 공중분해의 위기까지 처했던 열린우리당. 그러나 대의원 72.3%가 전국대의원대회에 참석, 정족수를 거뜬히 넘기며 무사히 마친 것이다.

마지막 지도부라고 할 수 있는 정세균 당 의장 체제가 시작됐고 노선 등을 고려한 원혜영, 김영춘, 김성곤, 윤원호 의원이 최고위원으로 첫발을 내딛었다.

물론 갈 길을 멀다. 일단은 전당대회가 흥행함으로써 통합 주도권을 쥘 듯하지만, 향후 정계개편 과정에서 노 대통령과의 관계, 당내 대권주자들의 탈당 가능성, 민주당 등과의 통합은 그의 순탄치 않은 항해를 예고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중심의 통합. 과연 가능한지 짚어보자.


열린우리당은 창당이래 지도부가 9번이나 바뀌었다. 그러나 모든 계파에서도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그래도 정세균이 제일이다”가 그 말이다.

정세균 체제 출범
산자장관을 마치고 당에 복귀한 정 의장은 이제 열린우리당 간판의 마지막 당의장이 됐다. 통합신당창당이라는 시대적인 소명을 이끌어야 하는 자리에 올라선 것이다.

그에게 이번 전대는 감격이 남다르다. 우선 72.3%의 대의원 참석률은 차기 지도부에 힘을 실어준 격이 됐다. 김근태 전 의장은 “체육관이 텅텅 비는 꿈을 꾸다가 몇 번이나 잠에서 깨어난 바 있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와 김원기 전 국회의장도 “성공한 전대였다. 당원들에게 고맙다”며 감격하기도 했다. 어찌됐든 정 의장으로서는 한 숨 놓은 전대였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정 의장은 이날 “내 인생에서 가장 무거운 짐을 지었다”며 첫 마디를 꺼내 순탄치 않은 앞날을 예고했다.

우선 탈당파와의 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 그는 얼마 전 탈당파를 향해 “헤어지긴 쉬어도 다시 만나기는 어렵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에는 함축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여기서 헤어지지만 자신은 기필코 이길 테고 다시 받아 줄때는 책임을 묻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묻어있었다.

그의 이러한 탈당파에 대한 압박은 전대에서도 그대로 묻어났다. 정 의장은 이날 “대통합이라는 목표에 차이가 없는데도 탈당을 했다”며 몰아세운 뒤 “통합을 얘기하면서 분열하는 것에 대해 국민은 혼란만 가중시키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원혜영 의원은 “당에 희망이 없다고 떠난 분들은 더 이상 대통합의 주체가 아니다”라며 “남아서 집권 여당의 무한책임을 다하는 우리가 주인”이라고 강조했다. 장영달 원내대표도 “국민이 만든 제1당을 회복하기 위해 집으로 복귀할 것을 호소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탈당파는 이에 굴복하지 않는 듯하다. 중도개혁통합신당추진모임의 노웅래 의원은 전당대회와 관련해 “참가한 수를 제적 수에 맞췄기 때문에 뭐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라며 “그러나 억지로 맞춰서 할 바엔 새로운 모색을 할 수 있는 고민을 했었어야 한다. (전당대회는) 일종의 미봉책일 뿐 문제해결은 없었다”라고 일축했다.

정 의장은 이러한 탈당의원들을 의식한 듯 국회와 정치는 분리해 대응하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이날 “자신들이 정책을 만들고 추진해온 것에 대해 당적을 이탈했다고 입장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과의 관계도 정 의장으로서는 고민일 수밖에 없다. 이미 탈당파를 중심으로 한 일각에서는 “정 의장은 노 대통령이 보낸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잔류파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의원들도 노 대통령의 탈당 또는 정계개편 불개입 등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정 전 의장으로서는 곤혹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신당 추진력 있나?
지도부의 가장 큰 소명은 통합신당 창당이다. 정 의장은 수락연설을 통해 “지금 제 어깨는 마치 온 세상을 올려놓은 듯 무겁다”며 “지금 우리는 길이 보이지 않는 사막 한가운데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침반이며 그 나침반이 가리키는 목표점은 대통합신당을 통한 대선 승리”라고 말했다.

정 의장은 이어 “즉각 실질적인 대통합 작업을 시작해 평화개혁 미래 세력과 손을 맞잡을 것이며, 대통합신당을 추진함에 있어서 일체의 기득권을 버리고 어떠한 주도권도 주장하지 않으며 낮은 자세로 복무하겠다”며 “대통합신당이 민주화 평화세력, 양심적 산업화 지식정보화 세력, 시민사회 전문가 그룹 등 희망한국 건설에 기여할 수 있는 모든 개인과 집단을 포괄토록 할 것이며, 절차적 민주주의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실질적 민주주의를 달성할 수 있도록 헌신 봉사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당내에선 1달 이내에 성과가 보이지 않으면 탈당을 불사하겠다고 한다. 무엇보다 전대 후 탈당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정동영 전 의장 및 재선그룹은 당을 뛰쳐나가기 일보 직전이다.

특히 민주당 일부 의원과 열린우리당 재선 그룹 간에 논의되고 있는 ‘제3지대 통합신당’ 움직임도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김영춘 의원은 이날 “당적을 유지하면서 큰 그림을 그리고 대통합의 씨앗을 뿌리자는 것이 현재의 공유지점이다. 그 논의가 열린우리당의 대통합 추진과 맞물리면 진취적인 결론이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탈당을 감행한 노웅래 의원은 “열린우리당이 해체선언을 해야만 대통합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해체를 안 하면 어떻게 민주당과 합치겠는가. 당대당 통합을 하게 되면, 과거 민주당 분당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할 텐데,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잔류하고 있는 정 전 의장 측이나 몇몇 탈당을 염두에 둔 의원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즉 한달이라는 시간을 기다린 후, 가시적 성과가 보이지 않으면 탈당을 하겠다는 것이다.

문희상 의원은 전대 소회를 밝힌 글에서 ‘밸런타인데이(2월14일)에서 화이트데이(3월14일)까지’라는 표현을 썼다. 다음주말 워크숍을 통해 대통합추진기구를 띄우고 민주당, 국민중심당은 물론 시민사회 세력과의 통합 작업을 하루빨리 진척시켜야 한다는 의미다.

최소한 통합논의 테이블은 만들어야 당내 원심력을 제어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당과의 통합을 반대하는 신당반대파도 아울러야 한다. 정 의장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결국 정 의장은 대통합신당의 명분을 신속히 만들고 주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또한 외부세력을 규합해 당을 뭉치게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탈당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정 전 의장 및 재선그룹이 당에서 뛰쳐나가는 것은 막아야 하는 게 그의 몫이다.

시간은 없고 할일은 많다
정 의장은 난파 직전의 열린우리당호의 키를 잡게 됐다. 이 거대한 함선의 마지막 선장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난파한 주범으로 몰릴지, 그의 어깨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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