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4, 행정은 3, 기업은 2

24년 전인 1995413, 이건희 당시 삼성그룹 회장의 유명한 발언이다. 그의 발언은 정치권을 매도하고 정부를 비판했다는 오해를 낳으며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회장은 국가 경쟁력을 높이려면 국민 정부 기업이 삼위일체가 되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기업이 1, 행정이 2, 정치가 3류라는 말이 나온 지 오래됐는데...”라며 국내에서 일어난 반응에 씁쓸해했다.

이 회장의 발언을 듣고 당시에는 나름 일리가 있네정도의 느낌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회장의 발언이 세상의 진실을 정확하게 설명한 명언으로 느껴진다. 사람은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는 데, 가장 험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존재가 바로 기업인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쓰기 좋아하는 DNA로 구분할 때 세상 흐름에 가장 민감한 게 기업인이라면 가장 둔감한 게 관료와 정치인이다.

예컨대, 기업인은 이익을 내지 못하면 망하므로 하루하루가 생존 투쟁이다. 패배하면 사라지게 되므로 살아남은 기업인은 곧 강자라고 할 수 있다. 행정을 담당하는 관료는 복지부동을 해도 매달 월급이 나온다. 굳이 애쓸 필요가 없으니 경쟁력이 높아지기 어렵다. 정치인은 어제와 오늘의 말이 다르고 행동도 다르다. 그래도 표만 얻으면 살아남을 수 있다.

기업인 관료 정치인의 경쟁력 차이는 시야와 행동 경계선의 차이에서 잘 드러난다. 기업인의 시선은 전 세계로 향한다. 삼성전자의 매출에서 해외비중은 87%에 이른다. 관료의 시선은 국내에 머물며 평생 지위를 보전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쏠려있다. 반면 정치인은 국회의원의 경우 본인 지역구에 머물러 있으며 다음 선거에만 관심이 있을 만큼 시야가 좁다.

기업인 관료 정치인이 서로 합심하면 좋겠지만,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모두 나름 이익을 추구하는데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기업인은 경제적 이익을 좇는 반면 관료는 조직 내 직위, 정치인은 권력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세상에 둔감한 3류 행정과 4류 정치가 2류인 기업을 옥죄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특히 정치가 이념에 사로잡히면 더욱 그러한 현상이 발생한다.

정치를 대표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언어를 보면 비일관성의 극치를 보여준다. 기업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경제정책이 오락가락 하는 것인데 장소와 시간에 따라 말이 달라진다. 사실왜곡도 서슴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말 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며 최저임금 인상 같은 새로운 경제정책은 국민의 공감 속에서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래놓고 연말에 주휴수당을 최저임금에 포함시키는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세금으로 일자리를 만든다는 비판에 정부가 최대 고용주라고 했다가 기업에 가서는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결국 기업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3일 공정경제추진 전략회의에서 정부는 대기업 대주주의 중대한 탈법과 위법에 대해선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행사해 국민이 맡긴 주주의 소임을 충실하게 이행하겠다며 대기업에 경고하고 나섰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돈이라 수익을 내는 게 최고 의무인데, 그걸로 주주권 행사를 하다가 수익이 나빠지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언급은 없다. (참고로 박근혜 정부의 문형표 국민연금 이사장은 삼성을 공격한 엘리엇 펀드에 맞서 국민연금을 동원했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갔다) 문재인 대통령은 바로 다음날인 24일에는 갑자기 정부는 간섭도 규제도 하지 않을 것이며 새로움에 도전하는 과학기술 연구자를 응원하고 혁신하는 기업을 도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는 우리는 경제 불평등이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나라라고 말했다. 실상은 선진국들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가운데 2014년 기준 빈부격차 순위가 대한민국이 24위다. 미국 영국은 물론 호주 일본 스위스 프랑스보다 빈부격차가 덜할 정도로 경제적 평등이 잘 이뤄져 있다. 4년 동안 경제불평등이 최악으로 나빠질 리도 없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엄청난 거짓말, 즉 대형 가짜뉴스를 날린 셈인데 아직도 내용 수정이 없다.

문재인 정부 구성원들의 경제 왜곡과 잘못된 진단도 만만치 않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3일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지난해 한국 경제성장률이 2.7%를 기록한 것에 대해 "아주 좋은 것은 아니지만, 아주 최악의 상황도 아닌 듯하다"고 밝혔다. 그는 "긍정적으로 볼 것은 작년 4분기 민간수요, 소비 부분이 늘어나고 있다는 지표가 나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하기야 최악의 상황은 아닌 듯하다는 말은 진실임이 분명하다. 경제가 망가지는 추세에서 오늘보다는 내일, 이달보다는 다음달, 상반기보다 하반기, 올해보다 내년이 훨씬 최악이 될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엉터리 소득주도성장의 아이콘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22오늘 국제통화기금(IMF)가 세계 경제 성장률을 하향 조정하는 등 글로벌 경제 하방 신호가 나타나고 있지만 우리는 경제활력을 최우선에 둔 국정운영으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왔는지. 하기야 문재인 대통령도 근자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답변을 회피한 적이 있다.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는 이에 대해 “(현 정부는) 의지와 힘만 있으면 경제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경제정책은 절대 바꿀 수 없다고 버티는 것이 그런 착각에서 비롯되는 것이다.”라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최저임금과 관련해 생각해보자. 경제는 늘 동전의 양면과 같다. 임금은 근로자에게 소득이지만 사용자(기업인)에게는 비용이다. 임금도 가격인데 최저임금을 억지로 올리면 일부 근로자는 소득이 오르겠지만 중소기업 소상공인 자영업자는 비용을 줄이려고 채용을 덜 하게 된다. 일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실업자가 늘어나면서 사회 전체적으로 생산활동이 나빠진다. 국내총생산(GDP)이 줄어들면서 서로 못살게 되는 것이다.

언론에서 별로 다루지 않았지만 최태원 SK회장이 지난 15‘2019 기업인과의 대화에서 했던 얘기도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그런데 정부 관계자들은 그 의미를 거의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은 혁신성장과 관련해 크게 3가지를 얘기했다. 첫째, ‘혁신은 실패를 먹고 자란다며 혁신성장의 기본전제는 실패에 대한 용납이라고 말한 부분이다. 이는 기업 경영에 대해 간섭을 하지 말고,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기업인 배임죄 등을 적용하지 말라는 뜻으로 보인다. 둘째, 혁신성장이 산업화되려면 코스트(비용) 문제가 있다는 얘기였다. 이는 기업의 세금부담을 낮추고 최저임금의 과도한 인상이나 주52시간제의 무차별 적용으로 기업의 경영 비용을 높여서는 안된다는 주문으로 여겨진다. 셋째, 혁신성장을 위해서는 최고의 인력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 대목이다. 이는 노동개혁을 통해 기업이 필요한 인력을 쉽게 뽑고 실패할 경우 쉽게 내보낼 수 있거나 재배치가 가능하도록 노동유연성을 높이라는 뜻이었던 것 같다. 운동권이나 시민단체 출신의 문재인 정부 참모들이 최 회장의 속뜻을 알아차릴 실력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두 현인들의 말을 들어보자. 자기계발학의 태두인 데일 카네기는 성공한 사람들은 실패를 통해 배운다. 그리고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다시 도전한다.”고 설명했다.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은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은, 매일 어제와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어느 날 갑자기 전과 다른 결과가 나타나길 기대하는 것이다.”라고 얘기했다.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가 한 언론 인터뷰에서 “5년 임기 정권은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는 과정과 마찬가지다. 1년 지나면 제 발로 딛고 일어나야 한다. 1년 반 동안 잘못 됐다고 하는데도 똑같은 방식을 고집하니 (경제가) 나아질리 있느냐고 짚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는 경제를 위해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심각도 못 느끼고 느끼더라도 실행할 능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흔히 연애는 눈에 콩깍지가 씌어야 이뤄진다고 말한다. 결혼이 성공작이 되려면 콩깍지가 벗겨지고 제대로 된 현실 인식이 이뤄져야 한다. 문재인 정부를 이끌어가는 핵심 인사들이나 문재인 정부 지지자들이 이젠 콩깍지가 벗겨질 만도 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특히 국정 운영을 담당하는 정치는 4류 수준도 지키지 못하고 더 나빠지는 것 같다. 여기에 행정(관료)이 자기 목숨 부지를 위해 4류 이하의 정치에 아부하고 닮아가면서 중심을 잡지 못하는 것 같아 더욱 걱정이다. 엄혹한 시절을 향한 시계는 째깍째깍 돌아가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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