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을 배우는 목적은 경제학자들에게 속지 않기 위해서다.”

영국 경제학자인 조앤 로빈슨의 설명이다.

로빈슨의 말을 살짝 바꾸면 이런 표현도 가능하다.

“경제학을 배운다고 경제가 잘 돌아가는 방법을 아는 게 아니다. 경제학을 배우는 진짜 목적은 어떻게 하면 경제가 망하는지 알기 위해서다. 경제가 잘 돌아가게 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없다. 그건 잘 모르니까 기업인 소상공인 자영업자 등 경제주체들에게 맡기면 된다.”

이 말을 염두에 두고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사를 살펴보자.

문재인 대통령은 새해 초부터 경제를 크게 강조하고 나섰다. 경제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마음가짐은 바람직해 보인다. 다만 말의 성찬만 화려하지 대안은 보이지 않고, 정치 이념을 경제에 적용하려는 표현마저 엿보여 크게 걱정스럽다. 정말 우리 경제가 잘 돼야 할 텐데.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일 신년회 장소를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로 정했다. 그러면서 “중소기업,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특히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았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중소기업, 소상공인, 자영업자 등이 그렇게나 반대하던 ‘최저임금 산정 기준에 법정 주휴시간을 포함’하는 최저임금 시행령이 불과 이틀 전인 2018년 마지막 날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소상공인들은 곧바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문재인 정부의 행보와 문재인 대통령의 마음이 전혀 딴 방향이다.

사실 최저임금은 용어가 왜곡돼있다. 최저임금은 최저생계비처럼 들리지만, 사실 2018년 최저생계비는 4인 가족 기준으로 135만원이며 최저임금(157만 원)보다 낮다. 더불어민주당과 좌파 성향 인사들은 자영업자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임대료이지 최저임금이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임대료는 사적 계약의 영역인 반면 최저임금은 법적 강제조항이다. 임대료 분쟁이 발생하면 개인 간에 해결하면 되지만, 최저임금을 못주면 범법자가 된다. 그래서 최저임금은 사실상 정치 성향이 들어간 ‘정치임금’의 성격이 강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저임금이 선량한 많은 국민을 범법자로 만든다’는 사실을 알기는 하는 걸까.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은 더 많이 함께할 때까지 인내하고 성숙한 문화로 세상을 바꿨다. 같은 방법으로 경제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촛불은 민주주의 수호와 법 앞의 평등을 촉구했던 국민들의 목소리를 담은 정치의 상징물이다. “법 앞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는 원칙의 적용이기도 했다. 경제는 이러한 정치 구호로 돌아가지 않는다. 전직 장관이 얘기했듯이 경제는 '철학과 이념, 가치, 정의감, 배려심‘ 등과 관련이 없으며 현실 그 자체다. 대통령은 그런데도 경제에 정치 구호를 적용하겠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업의 혁신과 함께 하겠다. 기업이 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에도 힘쓰겠다.”고 공언했다. 아주 듣기 좋은 표현인데 방안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기업이나 국가의 혁신은 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먹거리로 사업 구조나 경제 구조를 개편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위해 반드시 수반되는 게 ‘자원의 효율적인 이동’이다. 여기서 자원이란 물적 투자와 인적 투자를 동시에 아우른다. 인적 투자란 신규 고용은 물론 인력 재배치를 의미하며, 적절한 인재를 적절한 곳에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어야 ‘인적자원의 효율적인 이동’이 가능하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서 인적자원의 재배치를 의미하는 노동개혁은 실종됐다. 민노총과 시민단체 등을 넘어서야 창조적인 비즈니스 환경을 만들 수 있는데 그런 노력이 전혀 없다. 문재인 정부의 DNA에 시민단체나 민노총도 재벌과 마찬가지로 기득권 세력이라는 인식이 없어서일 것이다. 기득권을 털지 않고서는 한 걸음도 못나가는 데 ‘기득권 깨부수기’는 말하지 않고 투자 환경 개선을 얘기하니 왠지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 바꾸는 길, 반드시 가야 한다. 인내해 달라”고 주문했다. 온갖 평지풍파를 일으킨 정책의 틀을 바꾸겠다는 얘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는 숨이 넘어간다고 하는데, 대통령은 많은 사람이 잘못됐다고 하는 정책 수정은 하지 않고 인내하라고 하니 실망감이 클 수밖에 없다. ‘기업에 새로 생기는 부담은 핵폭탄급인데 규제 완화는 수류탄급이다’라는 기업인들의 표현이 훨씬 가슴에 와 닿는다.

문재인 정부는 ‘성장보다 분배’를 우선하지만, 사실 성장은 국민의 삶은 물론 정치 안정에 미치는 영향이 상상 이상으로 크다.

예컨대, 경제 성장이 잘 될 때는 대부분의 경제 주체가 승자가 될 수 있다. 분배 다툼은 막대한 성장 파이를 놓고 벌어진다. 잃은 사람은 거의 없으며 중요한 문제는 ‘누가 얼마나 많이 얻을 것인가’가 중요한 이슈가 된다. 갈등이 적다.

반면 경제 성장이 느릴 때는 경쟁이 혹독해진다. 자신의 몫을 유지하려면 상대방의 몫을 빼앗아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불평등 연구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앵거스 디턴은 “이러면 제로섬 게임이 된다. 1년에 2~3%의 성장밖에 없다면, 누군가의 황소를 죽이지 않고는 나눠가질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성장이 정체되면 불평등 문제가 더욱 강조되고 ‘남탓 현상와 희생양 정치’가 크게 늘어난다. 다민족 국가에서는 소수민족과 이민자가 표적이 되고, 좌파 성향 인사들은 부자와 가진 자의 탓을 하게 된다. 좌파이면서 부자인 사람들은 ‘약자 코스프레’를 통해 지탄에서 벗어나는데, 이런 상황에서 정치적 안정이 이뤄질 수 없다.

2018년 한 해를 돌아보면 우리 경제에 ‘멋진 레토릭(수사학)’이 참으로 많았다. 장하성 김수현 홍장표 김현철 김상조 등 여러 교수 출신 경제학자들이 정책을 주도했는데, 경제지표는 계속 내리막이었다.

2019년에는 레토릭보다 실천이 더욱 많았으면 좋겠는데,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사는 온통 미사여구 일색이었다. 경제를 기업인에게 맡기지 않고 경제에 철학과 이념을 입히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심지어 현 상황을 두고 “경제 실패 프레임이 워낙 강렬하게 작동하고 있어 성과가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점이 안타깝다”며 언론의 왜곡과 국민의 무지를 탓하기도 했다. 그걸 보면서 ‘경제가 매우 어려우니 2019년 국민 개개인이 알아서 살 길을 찾는 각자도생의 시대’라고 했던 전직 고위관료의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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