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폭로 놓고 여야 진실공방 난타전…국조 요구·檢 고발 등 무차별 확전 양상

21일 최고위에서 한국당을 정치공세한다고 비판한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좌)와 지난 19일 김태우 리스트를 폭로한 의총에서의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우)의 모습. 사진 / 오훈 기자
21일 최고위에서 한국당을 정치공세한다고 비판한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좌)와 지난 19일 김태우 리스트를 폭로한 의총에서의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우)의 모습. 사진 / 오훈 기자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이었던 김태우 수사관의 폭로 사태로 당정이 직접 강경 대응에 나서는 등 유례없이 당황해 하는 모양새다.

상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문재인 정권과 김 수사관 양측이 연일 진실공방을 이어가는 가운데 문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추월하고 지지율 하락세도 계속되고 있어 궁지로 몰린 청와대가 미증유의 위기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인지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金 폭로에 끌려가는 대응으로 자충수 둔 靑

먼저 김 수사관 폭로 사태의 발단은 그가 지난달 2일 경찰청 특수수사과를 찾아가 지인인 최모씨가 연루된 뇌물 사건의 수사진행상황을 파악했었던 사실이 적발돼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로부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그때만 해도 민간인 사찰보다는 당시 몇몇 사건으로 주목 받기 시작한 청와대 기강 해이 문제 쪽에 관심의 초점이 맞춰졌으며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요구한 휴대전화 제출을 특감반원들이 거부하는 집단 항명 사태로까지 비화되자 정치권에서마저 ‘기강 해이 책임론’이 불거졌는데 당장 위기에 직면한 조국 민정수석의 즉각적인 건의로 지난달 말 특감반 전원이 원대 복귀 조치되면서 다시 상황은 어느 정도 진정 국면으로 전환되는 듯했다.

하지만 검찰로 복귀 조치된 김 수사관이 비위 혐의 조사로 압박을 받게 되자 지난 17일 자신이 특감반원으로 근무하면서 작성한 첩보보고서 목록을 일부 언론을 통해 공개하면서 야당 정치인과 언론사에 대한 동향 보고 등을 작성해 보고했다고 폭로했다.

특히 김 수사관은 우윤근 주러시아 대사가 국회 사무총장 재직 당시 금품 수수했다는 의혹, 이강래 한국도로공사 사장 관련 도로공사 휴게소 커피 납품 특혜 의혹 등 친여 성향 인사들의 첩보를 보고했다가 오히려 밉보여 자신이 이 같은 처지로 내몰린 거라 주장해 당청을 모두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여기에 김 수사관은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으로부터 노무현 정부 인사들의 가상화폐 소유 여부를 조사하라는 지시도 받았다면서 고건 전 국무총리의 아들 고진씨, 변양균 전 정책실장,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등을 거명했는데, 이들이 모두 민간인 신분인 만큼 실제로 지시가 있었다면 민간인 사찰을 한 셈이 된다.

이처럼 예상치 못한 사태로 사태가 전개되자 청와대에선 직접 대응에 나섰는데, 김의겸 대변인은 김 수사관의 보고는 내부의 3단계 검증 절차도 밟지 않은, 검증되지 않은 첩보이며 민간인 사찰 논란이 있는 민간은행장 관련 첩보 등도 특감반장에게 보고된 것일 뿐 조국 민정수석에게까지 보고되지는 않았다고 선을 그은 뒤 김 수사관이 자신의 비위를 덮기 위해 일방적 주장을 하고 있는 데 대해 언론이 여과 없이 보도하는 데 대해 유감을 표하고 김 수사관에 법적 조치를 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김 수사관도 ‘개인 일탈’ 차원으로 선을 그은 청와대 해명에 대해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코리아나 호텔 사장 배우자 자살 관련 동향 보고는 특감반 사무관이 자신에게 지시했고, 대학교수 동향 보고는 이인걸 특감반장에게 보고했다고 반박한 데 이어 윗선의 허락을 받고 쓰거나 먼저 텔레그램을 통해 지시를 해서 수집한 것이고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특감반원들도 첩보 범위에서 벗어난 동향 파악을 했다고 중앙일보와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맞불을 놨다.

물론 청와대도 앞서 지난 15일 윤영찬 홍보수석이 김 수사관을 겨냥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물을 온통 흐리고 있다”라거나 “불순물은 가라앉을 것”이라고 원색적인 표현으로 비난한 데 이어 19일 김의겸 대변인은 김 수사관의 폭로로 불거진 이강래 한국도로공사 사장 비위 의혹과 관련해 지난 10월 다른 매체가 이미 보도한 내용이라면서 “기자 여러분, 급에 안 맞는 일 하지 말라”고 언론에까지 감정적으로 나왔을 뿐 아니라 “청와대에는 민간인 사찰의 DNA가 없다”고 고압적 태도를 보이는 등 여론악화도 불사할 것처럼 거칠게 대응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 같은 모습은 도리어 사태를 악화일로로 치닫게 만들기만 했는데, 결국 청와대는 19일 김 대변인 브리핑에서 “앞으로 이 (김태우) 건에 대해선 저나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아니라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에게 개별적으로 취재해주기 바란다”며 한 발 물러섰고, 바톤은 이제 박 비서관에게로 넘어갔다.

◆ 金-靑 진실공방에 대리전 돌입한 여야…법적 대응까지 일파만파

‘청와대 특별감찰반 정권실세 사찰보고 묵살 및 불법사찰 의혹 진상조사단’ 단장인  김도읍 한국당 의원은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 등을 김태우 사태와 관련해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검찰 고발했다. ⓒ시사포커스DB
‘청와대 특별감찰반 정권실세 사찰보고 묵살 및 불법사찰 의혹 진상조사단’ 단장인 김도읍 한국당 의원은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 등을 김태우 사태와 관련해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검찰 고발했다. ⓒ시사포커스DB

이렇듯 청와대와 김 수사관 사이에 숨 가쁜 진실공방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치권에서도 의외의 파문을 호기로 삼은 야권이 한껏 공세수위를 높이면서 ‘2라운드’가 벌어졌는데 심지어 유치원3법이나 서울교통공사 특혜 의혹을 비롯한 사안들이 전부 ‘김태우 폭로’라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면서 정국은 진흙탕 싸움 양상으로 흘러갔다.

그동안 정국 반전을 엿보면서도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당내 계파 문제 등으로 인해 좀처럼 눈에 띄는 대여투쟁력을 보여주지 못해온 자유한국당은 나경원 신임 원내대표 취임 이후 처음 열린 19일 의원총회에서 민간인 사찰 논란이 일어날 11건을 포함한 5장 분량 총 104건의 ‘김태우 첩보리스트’를 전격 공개했다.

이날 공개 전 이미 김 수사관에 의해 폭로됐던 ‘여권 실세’ 우윤근 동향은 물론 대선 당시 문 대통령의 경쟁자였던 홍준표 전 한국당 대선후보, 최경환 전 기획재정부 장관과 같은 야권 인사부터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고삼석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등 정부여당 인사들도 포함되어 있었고 사감으로 대통령을 비판했다는 전성인 홍익대 교수 등 민간인들도 포함되어 있어 “사찰을 마구잡이로 했던 것으로 보인다”는 나 원내대표의 평이 나오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이번엔 청와대가 아니라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이 같은 날 약 3시간 뒤 브리핑을 열어 “특감반원은 어떤 지시 받고 첩보 수집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주제를 정해 자기 역량으로 첩보를 수집한다”며 ‘코리아나호텔 사장 배우자 자살 동향’, ‘한국자산관리공사 비상임이사 송창달, 홍준표 대선자금 모금 시도’, ‘조선일보, BH의 홍석현 회장의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 검토 여부’ 등 5건은 특감반장에게 보고됐지만 폐기했고 ‘전성인 교수, VIP 비난’ 문서나 ‘MB정부 방통위, 황금주파수 경매 관련 SK측에 8000억 특혜 제공’ 문서는 본 적 없다고 항변했다.

이 뿐 아니라 청와대는 같은 날 기존의 골프접대 수사와는 별개로 특감반 재직 당시 얻은 자료를 배포하고 허위사실을 언론에 유포했다면서 김 수사관을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는데, 이에 발맞춰 여당인 민주당에서도 홍영표 원내대표가 이날 “문 정부는 지금까지 국가권력에 의해 불법적인 정보수집이나 사찰해왔던 관행을 바로 잡아왔다. 이번 사건 실체는 이미 진행 중인 대검 감찰관과 관계기관의 실체를 밝히는 수사를 통해 명명백백히 드러날 것”이라고 청와대 지원사격에 나섰다.

그러면서 홍 원내대표는 “전직 청와대 특감반원의 부적절한 비위와 불법 의혹에 대해 한국당이 정치 공세를 시작하고 있다”고 한국당의 주장을 ‘정치공세’로 평가 절하했는데, 한국당도 밀리지 않겠다는 듯 20일 ‘청와대 특별감찰반 정권실세 사찰보고 묵살 및 불법사찰 의혹 진상조사단’ 단장인 김도읍 의원이 나서서 서울중앙지검에 임종석 비서실장을 직무유기 혐의, 조국 민정수석과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이인걸 특감반장을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 조치했다.

◆ 여야, ‘아전인수식’ 특검·국정조사 요구…정쟁 장기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도 조국 민정수석의 경질을 2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요구하며 대정부여당 압박 공세에 나섰다. 사진 / 오훈 기자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도 조국 민정수석의 경질을 2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요구하며 대정부여당 압박 공세에 나섰다. 사진 / 오훈 기자

이런 움직임에 민주당에선 박주민 최고위원이 “마치 의인인양 김 수사관 말 한마디에 춤추는 정치공세를 중단하라”고 촉구하는 한편 20일 한겨레신문을 통해 보도된 한국당의 김성태 전 원내대표 자녀 취업 특혜 의혹을 꼬집어 “그것도 전부 국정조사 대상”이라고 홍영표 원내대표가 날을 세우는 등 사안을 가리지 않고 역공을 퍼부었다.

이에 자녀 취업 특혜 의혹을 받은 김성태 전 한국당 원내대표도 “청와대 특감반의 민간인 사찰을 물타기 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분명히 있다. 치졸한 정치공작”이라며 민주당과 한겨레신문에 법적 대응을 예고한 데 이어 민주당의 국정조사 요구엔 20일 보도자료를 통해 “(내 자녀 취업 특혜 의혹 관련) 국정조사 요구를 전적으로 환영하고 즉각 수용한다. 문준용 (취업특혜) 의혹도 함께 국정 조사할 것을 제안한다”고 맞받아쳐 민주당을 물러서게 만들었다.

한 발 더 나아가 나경원 원내대표의 경우 2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전 정권에 대한) 다양한 내부고발자에 대해선 적폐청산의 과정이라며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용감한 행동이라고 치켜세우더니 이번 사건에 대해선 기밀누설에 범법자라고 한다. 내로남불”이라며 김 수사관을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고발한 청와대에 직격탄을 날린 데 이어 “1년 6개월째 공석인 청와대 특별감찰관을 빨리 임명해야 하고 특감반 국회추천권은 야당에 넘겨야 한다”고도 요구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한국당은 청와대 특감반 의혹 진상조사단장인 김도읍 의원이 같은 날 진상조사단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혼란스러운 상황을 마무리할 수 있게 적어도 민정수석이 (국회 운영위원회에) 나와 말씀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라며 “책임 있는 사람이 나와서 해명을 하든 변명을 하든 말해줘야 한다”고 조국 수석의 국회 출석까지 촉구하고 나섰다.

더구나 한국당 외에 선거제 개편 문제로 여당과 틀어져버린 야3당까지 돌아서서 대여 공세에 힘을 더하고 있는데, 바른미래당에선 같은 날 손학규 대표가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문 대통령은 이제 조국 민정수석과 같은 핵심 측근에 대한 읍참마속의 결단을 내려야 한다”며 경질을 주문했고 평화당과 정의당도 김 수사관의 폭로에 대해 한 점 의혹 없이 밝혀야 한다면서 기밀누설로 고발한 청와대의 태도에 일침을 가했다.

이렇게 김태우 폭로 사태를 계기로 문 정권 초반과 달리 정부여당이 점점 수세에 몰리는 국면이 장기화되어가는 가운데 문 대통령의 지지율도 계속해서 추락하고 있어 이번 ‘김태우 사태’가 박근혜 정권의 몰락 전조였던 박관천 수사관 사태처럼 레임덕을 가속화하는 발판으로 작용하는 것 아닌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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