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의 악마는 살아있다…딴 소리 하는 민주·한국당 VS 딴 소리 차단하는 野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 민주평화당 장병완 원내대표,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가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선거제도 개혁 관련 합의 내용을 발표하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 민주평화당 장병완 원내대표,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가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선거제도 개혁 관련 합의 내용을 발표하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시사포커스 / 박고은 기자]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하며 열흘 간 이어진 단식농성이 지난 15일 여야 합의로 중단되면서 ‘급한 불’은 꺼졌다. 하지만 여야가 세부 사항에 대해 이견차를 보이며 각기 딴소리를 하면서 국회 정상화도 바람 앞의 등불인 상황이다. 여야가 내년 1월 1월까지로 못 박은 시한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선거제 개편 문제는 다시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앞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지역구 선거구제 문제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했던 만큼 협상 성공 여부를 섣부르게 판단하기는 이르다.

◆디테일의 악마는 살아있다

임종석(왼쪽 두번째) 대통령 비서실장이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바른미래당 손학규(왼쪽 첫번째) 대표, 정의당 이정미(왼쪽 세번째) 대표,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날 임 비서실장은 선거제 개혁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 의사를 전달하고 단식 중단을 요청했다. 2018.12.15.
임종석(왼쪽 두번째)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15일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바른미래당 손학규(왼쪽 첫번째) 대표, 정의당 이정미(왼쪽 세번째) 대표,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뉴시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 15일 10일째 단식농성 중인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를 찾아 선거제 개혁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 의사를 전달하고, 단식 중단을 요청한 바 있다.

임 실장은 이날 오전 단식 농성장이 마련된 국회 본관 로텐더홀에서 손 대표와 이 대표를 만나 “대통령께서는 무엇보다 대표님들의 건강을 많이 걱정하고 있다”고 단식 중단을 촉구했다.

이어 “선거제 개혁과 관련해서는 비례성 강화를 통한 대표성 보완 문제를 오랫동안 대통령께서도 일관되게 지지하는 입장을 갖고 왔다”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시한 안에 대해 가장 중립적이고 객관적이라며 지지한다는 입장을 꾸준히 말씀해오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선거제 방안에 대해서는 대통령께서 관여하기 부적절하지만 국회가 합의한다면 그것을 지지할 의사가 있다는 점을 두 분 대표님께 잘 전해드리라고 하셨다”고 전했다

손 대표는 의원정수 확대 문제에 대해 “이것도 대통령께서 지지한다는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단식 못 푼다”고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임 실장은 “의원정수를 포함한 구체적인 방안은 국회가 합의를 도출해내면 지지하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의 이같은 지지 발언에 힘입어 여야 합의가 급물살을 탔다.

더불어민주당 홍영표·자유한국당 나경원·바른미래당 김관영·민주평화당 장병완·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는 지난 15일 국회 정론관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내년 1월 임시국회를 열어 선거제도 개혁 관련 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여야는 ▲비례대표 확대와 비례·지역구 의석비율 ▲의원정수 확대 ▲지역구 의원선출 방식 등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합의에 따르겠다고 밝혔다.

또 지역구 선거에서 아깝게 낙선한 후보를 비례대표로 당선될 수 있게 구제해주는 석패율제 등 지역구도 완화를 위한 제도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정개특위 활동시한 연장, 선거제도 개혁과 관련된 법안 개정과 동시에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 논의도 착수할 방침이다.

하지만 이번 여야 합의의 이행을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단계에 이르자 디테일 속에 숨어 있던 악마가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실제로 큰 틀에서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디테일에 있어 서로의 이해관계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세부사항을 놓고 틀어지는 경우가 왕왕있다.

이번 합의문만 보아도 ‘검토한다’는 정치적 수사로 머무르면서 불씨가 내연하고 있다. 여야 관계가 또 다시 살얼음판을 걷게 된 셈이다.

◆딴 소리 하는 민주·한국당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왼쪽),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운데),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오른쪽)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임시국회 관련 논의하기 위해 회동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왼쪽),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운데),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오른쪽)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임시국회 관련 논의하기 위해 회동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합의문이 발표된 지 얼마 안되서 민주당 뿐 아니라 한국당에서 부정적인 기류와 원점으로 되돌리려는 시도가 관측되고 있다.

국민 여론을 이유로 의원 정수 확대에 반대하던 민주당에서는 ‘국민 동의’를 들고 나왔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이 동의하는 선거제 개편안을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수를 배분하는 선거 제도이기에 의원정수 확대 여부가 핵심이다. 즉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현행 지역구 253석, 비례 47석보다 의석수를 늘려야 한다. 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은 100% 연동형 비례제를 주장하지만 민주당과 한국당은 국민 정서상 의원 수 확대는 부정적이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입장이다. 더욱이 지역구 의원 수가 많은 거대 양당 입장에서는 비례대표 의석수를 늘리고 지역구 의석은 줄일 수 밖에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나 연동형 비례대표제에는 찬성하면서도 국회의원의 세비 총액을 동결하는 것을 전제로 의원 정수를 확대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응답이 높았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20~22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대해 ‘좋다’고 답한 응답자가 42%로 집계됐다고 지난달 23일 밝혔다. ‘좋지 않다’는 응답은 29%에 그쳤다. 모름·응답거절 역시 29%였다.

하지만 의원 정수 확대 질문에 대해서는 ‘늘려선 안된다’는 응답이 57%에 달했다. 늘려도 된다는 의견은 34%다.(이번 조사는 전국 1001명을 대상으로 실시됐으며 응답률은 13%,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민주당이 다시 ‘국민 동의’를 들고 나온 것도 선거제도 개혁 반대에 살아있는 명분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같은당 박광온 최고위원도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선거제도 개편의 주체는 정당이 아니라 국민”이라며 “선거제도 개편의 기준은 정당의 이해가 아니라 국민의 선택”이어야 한다고 ‘국민 동의’를 부각시켰다.

그러면서 “국민들은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에 대해서는 대단히 동의하지 않는 상황이고, 또 하나는 비례대표를 대폭 확대했을 경우 각 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어떻게 선정하느냐 하는 그 과정에 대해서도 국민들은 많은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며 “국민의 뜻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절차가 정개특위 운영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선거제 개편과 권력구조(의원내각제) 개편을 위한 개헌 논의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한국당은 한 발 앞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대해 ‘합의’하지 않았다고 밥상을 엎는 모습을 보였다.

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선거구제 관련 합의문은 한국당이 적극적으로 열린 자세로 검토하겠다는 검토의 합의일 뿐”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나 원내대표는 “연동형 비례 도입과 관련해 의원정수 확대 여부에 대해서는 전혀 합의한 바 없다”고 말하면서 합의문에 나와 있듯 검토만 하는 수준에만 머무를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이에 대해 한 정계 관계자는 “합의문 자체가 구속력 가지고 있지 않겠지만 5당 원내대표가 긍정적 신호를 보내기 위해 합의한 것인데 그런 정치적 신의는 지켜야 하지 않느냐”며 “이렇게 되면 그 분하고 사인해도 아무 소용 없겠다”고 꼬집었다.

◆딴소리 차단하는 야당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여야 5당이 선거제도 개혁에 합의함에 따라 정의당 이정미 대표와 함께 단식을 중단하고 소감을 밝히고 있다.[사진 / 오훈 기자]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여야 5당이 선거제도 개혁에 합의함에 따라 정의당 이정미 대표와 함께 단식을 중단하고 소감을 밝히고 있다.[사진 / 오훈 기자]

야당은 민주당과 한국당의 딴소리를 차단하는데 나섰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벌써부터 민주당과 한국당 일부에서 합의문과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맹비난 했다.

손 대표는 “정치는 신의이다. 5당이 합의하고, 대통령이 지지한 그리고 저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단식하여 이루어낸 이 합의는 반드시 지켜져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연동형비례대표제를 합의한 것이 아니라 검토하겠다고 했다’는 등 의원정수에 대해서 여러 가지 논의가 있는 것은, 정정당당하지 못한 목소리”라며 “국회는 국민들에게 우리 국회가 신의의 정치를 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양당이 우려하는 의원정수와 관련해서도 “의원세비를 포함한 의원 관련 예산총액을 현재와 같은 액수로 동결하는 방안 등을 통해서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의당도 “민주당과 한국당이 우리당 이정미 대표가 단식을 끝낸 지 하루 만에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딴 말을 하고 나섰다”고 꼬집었다.

정호진 정의당 대변인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브리핑을 통해 “민주당의 정개특위 간사인 김종민 의원은 ‘12월 내 자체 개혁안을 만들자는 것은 졸속합의를 하자는 것’이라며 ‘3김 시대에나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고, 한국당의 정개특위 간사인 정유섭 의원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합의는 사실과 다르다’며, ‘우리 실정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김종민 간사의 졸속합의 운운은 선거제 개혁에 민주당은 의지가 없다는 말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며 “연동형 비례대표제 합의가 사실과 다르다는 정유섭 간사의 말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거대양당 정개특위 간사께 묻는다. 그래서 어떤 일이 있어도 연동형비례대표제로는 결론을 내지 않겠다는 건가”라며 “5당 원내대표의 합의문의 권위가 거대양당 정개특위 간사들에 의해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결국 거대양당이 정개특위를 무력화 시키겠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거대양당 말 바꾸기는 이정미 대표와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의 열흘 간 의 단식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얄팍한 꼼수”라며 “민주당과 한국당은 더 이상 딴 소리 늘어놓지 말아야 한다”고 양당을 압박했다.

합의문이 작성된지 불과 며칠도 지나지 않아서 이처럼 양당이 딴소리를 하면서 향후 협상 과정에서 내년 1월 임시국회를 열어 선거제도 개혁 관련 법안을 처리하기로 한 약속도 틀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야권 한 관계자는 “민주당과 한국당이 합의 전 했던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고 한국당은 아예 ‘없던 일’이라고 하고 또 ‘의원총회에서 총의를 모아봐야 한다’고 말하면서 합의문을 언제든지 휴지조각 낼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라며 “결국 두 야당 대표 단식을 중단시키기 위한 정치적 수사였던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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