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파정치 종식 신호탄? 결선 없이 과반 득표로 나경원 당선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제4회의장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및 정책위원회의장 선출을 위한 의원총회에서 신임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으로 선출된 나경원·정용기 의원이 꽃다발을 들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제4회의장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및 정책위원회의장 선출을 위한 의원총회에서 신임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으로 선출된 나경원·정용기 의원이 꽃다발을 들고 있다.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일찍이 계파 대리전으로 비쳐졌던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경선이 11일 나경원 원내대표의 당선으로 마무리되면서 당의 주도권을 누가 잡는지 보다 우선 당 안정 쪽에 더 방점을 둔 결과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중도 후보임을 자처해온 나 의원의 원내대표 당선으로 당내 갈등수위가 이전보다 한층 낮아질 수 있을 것인지, 반대로 복당파의 패배에 자신감을 얻은 친박이 내년 전당대회를 염두에 두고 본격 재기를 시도하면서 내홍이 도리어 격화될 것인지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나경원 당선, ‘경제’보다 ‘중도후보’ 전략 먹혔나

이번 한국당 원내대표 선거는 비박계 복당파에선 강석호 의원의 양보에 따른 사실상 후보 단일화 과정까지 거쳐 나온 김학용 의원과 원내대표 선거에 3번째 도전장을 낸 나경원 의원의 2파전으로 이뤄졌다.

당초 친박·잔류파인 유기준, 유재중 의원과 비박·복당파인 김영우 의원도 도전 의사를 밝혔지만 유 의원은 지난 4일 스스로 출마를 포기했고 유기준, 김영우 의원 역시 경선 레이스를 완주하다는 굳은 의지에도 불구하고 러닝메이트인 정책위의장 후보를 구하는 데 난항을 겪으면서 ‘유기준 원내대표-김영우 정책위의장’ 형태의 막판 단일화를 모색했으나 후보 등록 마감일인 9일까지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자연스럽게 불출마하게 되었다.

이로써 완전히 잔류파 대 복당파의 계파 대결식 선거로 흐르게 되었는데, 비록 확실한 복당파인 김학용 의원과 달리 나 의원은 친박보다는 비박계에 더 가깝지만 탄핵 찬성에도 불구하고 탈당은 하지 않고 당에 남았던 잔류파였다는 점에서 범친박계로부터 복당파의 맞수로 지지를 받아 왔다.

그러다 보니 두 후보의 러닝메이트 역시 이런 구도를 반영한 모양새였는데, 초기 복당파 측 유력 후보였던 강석호 의원이 강성 친박인 이장우 의원을 정책위의장 후보로 삼으려다가 큰 반발을 받았던 점을 의식한 듯 김학용 의원은 잔류파임에도 계파색이 옅으면서 초선 비례대표 출신의 경제 전문가인 김종석 의원을 러닝메이트로 내세우며 ‘경제’ 측면을 강조한 반면 자신이 중도개혁 후보임을 역설해온 나 의원은 친박계로 분류되는 재선의 충청권 출신 정용기 의원을 정책위의장 후보로 꼽아 자신이 비박으로 비쳐져온 이미지를 어느 정도 상쇄시켰다.

투표 전 진행된 나경원 의원과 김학용 의원의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경선 정견발표 모습. 사진 / 오훈 기자
투표 전 진행된 나경원 의원과 김학용 의원의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경선 정견발표 모습. 사진 / 오훈 기자

사실 선수에서든 인지도 면에서든 나 의원이 김 의원보다 모두 앞서는 만큼 이미 김 의원에겐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던 셈이고 복당파의 지지란 배경이 없었다면 나서기도 쉽지 않을 거란 평도 없지 않았는데, 그래선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한국당 원내대표 선출 의원총회에선 103표 중 68표로 과반 득표한 나 의원이 35표를 얻은 김 의원을 제치고 결선 없이 당선됐다.

무려 3차례 도전한 끝에 보수정당 최초의 여성 원내대표란 타이틀을 쥐게 된 나 의원은 스스로 비박 위주인 복당파와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잔류파란 공통점 하나로 범친박계의 지지를 받으면서 ‘중도개혁 후보’를 표방하는 한편 러닝메이트로는 지역·계파 등을 두루 고려한 끝에 충청권 친박 인사를 택한 전략도 ‘계파색’ 옅은 정책위의장 후보를 내세웠던 김 의원에 비해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특히 장기간 보수진영이 맥을 못 춰온 이유로 계파 내홍이 꼽혀왔던 만큼 경제를 강조한 김 의원보다는 당 통합 쪽을 역설한 나 의원에게 비박계 일부도 표를 주게 된 것으로 보이는데, 일찍이 복당파는 김 의원을 밀어줬던 바에 비추어 비박계 잔류파가 범친박과 함께 나 의원을 지지함에 따라 이 같은 결과가 나오게 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 한국당 계파 계보, 친박-비박에서 잔류파-복당파로 재편?

결국 당내 비박 복당파 만으론 선거 결과를 좌우하기 어려웠다는 반증이기도 한데, 나 원내대표가 그간 보수통합을 외쳐온 데다 지난 4일 MBC라디오 ‘심인보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선 안철수 전 의원부터 조원진 의원까지 연대 또는 통합의 범위에 들어간다고도 했던 만큼 이번 선거 결과를 계기로 비박 복당파가 향후 바른미래당 등과의 정계개편을 시도하는 등 ‘세 불리기’에 나서려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면 이번 선거에서 나 의원 당선에 공헌한 비박 잔류파는 물론 친박계까지 당내 목소리가 한층 커지게 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비박이 잔류파와 복당파로 분열된 데 반해 친박계는 이런 상황을 바탕으로 다시 재기를 시도하면서 내년 전당대회를 통한 당권 장악까지 노리려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오는 15일 발표될 당무감사에선 현역의원 10명 이상을 당협위원장에서 떨어뜨릴 것으로 알려졌는데, 당협위원장직을 잃으면 총선 공천도 어렵다는 뜻이다 보니 그간 궁지에 몰려 탈당 가능성까지 거론했던 친박계도 이번 선거로 자신감을 회복한 상황에서 자칫 특정 계파에 치우친 듯한 결과가 나올 경우 내홍도 불사할 게 분명해 이 역시 다시 당을 크게 뒤흔들 뇌관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처럼 계파 충돌이 불가피한 사안이 줄줄이 예고되면서 “분열이 아니라 통합을 선택했다”는 이날 나 의원의 당선 일성은 일견 공허하게 비쳐지기도 하는데, 이번 선거 결과에서 보듯 비박도 잔류파와 복당파로 나뉘어지면서 당내 구도는 더욱 봉합하기 복잡해진 만큼 나 의원의 ‘통합’ 리더십이 이 속에서 제대로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그나마 한동안 흘러나왔던 친박신당설은 친박계가 원한대로 마무리된 이번 선거 이후 잠시 물밑으로 가라앉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지난 11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내년에 형 집행 정지 등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풀려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박 전 대통령과 소통도 시도하며 친박계 의원 3~4명이 최악의 경우 대구·경북(TK)지역을 기반으로 한 ‘친박신당’을 창당을 검토하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으나 이번 원내대표 선거에서 비박 복당파가 패배함에 따라 일단 탈당보단 관망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아졌다.

더구나 한국당 지지율이 점점 회복되고 있고, 바른미래당 등 그간 탈당한 이들이 세운 정당들이 현재 한 자리 수 지지율을 벗어나지 못할 만큼 부진하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 양당제 회귀면 모를까 다당제를 고착화하는 정계개편은 차기 총선을 앞두고 일어나기 어려울 거란 지적도 없지 않은데다 동 보도에서 밝혔듯 친박 핵심인 최경환 의원이 “친박 신당이 만들어지는 일이 생겨선 안 된다”고 당부했던 발언도 있어 설령 친박계에 불리한 당무감사 결과가 나오더라도 내년 전당대회 때까지 갈지언정 즉각적인 신당 창당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무엇보다 복당파 수장 격인 김무성 의원이 이미 불출마를 선언했고 홍준표 전 대표도 여러 견제로 쉽지 않아 친박계가 당권 도전에 나설 만한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인데, 당권을 쥐게 될 경우 이번 당무감사 결과에 아랑곳 않고 총선 전에 다시 당협위원장 교체에 나설 수도 있어 내년 전당대회가 친박계에겐 판을 뒤집을 ‘조커’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 나경원 리더십, ‘계파 문제 극복’부터 시험대 올라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제4회의장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및 정책위원회의장 선출을 위한 의원총회에서 나경원 신임 원내대표가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제4회의장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및 정책위원회의장 선출을 위한 의원총회에서 나경원 신임 원내대표가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추세로 가게 되면 나 원내대표의 의도와 달리 내분만 격화될 수 있기에 당내 구도를 맞추기 위해서라도 임기 중 보수통합 행보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증명하듯 나 의원은 이날 오후 원내대표 당선 직후 가진 국회 본관 기자회견에서 “바른미래당 의원들 중 몇 분 의원들이 원내대표 선거 이전에 입당하길 희망한 것으로 안다. 원하는 의원들과 함께 하는 것으로 (바른미래당과 통합) 시작할 수 있다”며 “우리 당 가치를 함께 할 수 있으면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되는 게 아니라 모든 문을 열어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른미래당 의원들을 받아들인다는 건 복당파 규모를 늘린다는 점에서 실상 친박계의 반감을 살 수 있는 부분이나 자신의 당선에 공헌한 여부와 관계없이 나 의원이 추진할 뜻을 분명히 함에 따라 보수대통합의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인지 정치권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일단 통합대상으로 언급된 바른미래당에선 이날 김수민 원내대변인 논평을 통해 “한국당 새 원내대표 선출을 축하하고 새롭게 거듭나기를 기대한다”고 나 원내대표에 축하의 뜻을 전했지만 “한국당이 누구의 편에 서있는지 정체성을 빨리 찾길 바란다. 이른바 친박·비박의 계파정치에 연연한 구태의 모습과도 결별하고, 민생을 위한 바른 정치의 동반자의 모습으로 나타나길 바란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또 한동안 한국당 내홍으로 인한 반사효과를 누려왔던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도 나 의원 당선이 정국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나 의원이 이날 당선 소감을 통해 “여당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과감히 협상해서 도와줄 것은 도와주고 절대 안 되는 것, 반대하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며 “(무조건) 반대하는 정당이 아니라 대안 정당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고 밝혔던 만큼 시급한 현안 처리에 있어 ‘협치의 파트너’가 되어달라는 반응을 내놨다.

전임 원내대표가 투쟁 중심의 비박 복당파 출신이었던 데 반해 여당에 협조 가능성을 열어둔 비박 잔류파 출신이란 상반된 성향의 원내대표 출현이 차기 총선(임기 1년이나 의총 추인 받을 경우 21대 총선까지 유지)에 이르기까지 정치권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 것인지 벌써부터 세간의 이목이 나 신임 원내대표의 행보에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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