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된 파행 끝에 예산소위 재개됐지만 곳곳 암초…野 “시한 처리, 물리적으로 불가능”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의 모습. 사진 / 오훈 기자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의 모습. 사진 / 오훈 기자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놓고 일찌감치 대치해오던 여야가 야4당의 압박에 따른 더불어민주당의 공공기관 채용비리 의혹 국정조사 수용을 계기로 일견 정상화되는가 싶더니 예산심사에 돌입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금 파행을 빚으면서 올해도 결국 시간에 쫓겨 졸속 처리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 일단 오후 3시30분부터 예산소위가 속개되기는 했으나 여야 간 견해차가 크다 보니 합의 도출까지는 진통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쟁점 된 4조원의 세수결손…예산소위, 파행 사흘 만에 겨우 재개

470조 5천억원 규모의 내년도 정부 예산 중 4조원의 세수결손 이유로 사흘째 예산심사를 거부해오던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간신히 예산심사를 재개하기는 했으나 당장 시간이 촉박하기에 내달 2일인 법정시한 내 예산안 처리는 어려워지는 게 아닌지 세간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부가가치세 4%포인트 인하, 지방소비세 4%포인트 인상 등으로 2조 9000억원, 유류세 한시 인하로 1조 1000억원 등 총 4조원의 세입이 줄어들었지만 정부가 수정 예산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았다며 그간 야권은 격하게 반발해왔는데 지난 27일 간사 회동 때는 한국당 소속인 안상수 예결위원장과 기재부 차관까지 참석했으나 한국당 간사인 장제원 의원이 3분 만에 떠나는 등 한때 여야 간 대치는 극으로 치달았다.

물론 예산소위 파행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을 만큼 앞서 지난 9월4일 청와대 특수활동비 자료 제출이 부실하다는 이유로 파행을 빚었었고, 지난달 4일엔 기획재정부 업무추진비 자료 제출 부실로, 이달 9일엔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 불출석으로 재차 파행이 일어났으며 지난 23일과 26일엔 바로 이 ‘정부 예산안 4조원 세입 조정’을 이유로 다시 멈추는 등 심사과정 중 5차례나 발생했었지만 더 이상 끌 시간이 없다는 점에서 심각성은 한층 높아지고 있다.

소위 이 세수결손 사안에 대해 일단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선 세수결손이라기보다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재원의 재배분이라면서 세입 변동에 대한 대책만 따로 가져오긴 어렵다고 난색을 표하고 있는데, 이에 한국당의 김성태 원내대표는 지난 27일 예산소위 긴급회의에서 “옆집 쓸 돈이면 옆집 돈이지 어떻게 우리 집 돈이라 주장할 수 있나”라며 “아무리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고 하지만 일단 쓰고 보자는 심산으로 예산심사에 임해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한국당에선 기재부가 세수결손을 은폐하고자 예결특위 정책질의 마지막 날 밤늦게 졸속 보고한 것으로 보고 정부가 자체적인 세출 감액 방안을 내놓기 전엔 협조하기 어렵다는 입장이었는데, 정부가 이걸 알고도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해놓고 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애당초 국채 발행을 통해 4조원의 세수결손을 메우려던 속셈 아니었느냐고 의심하고 있다.

그래선지 김 원내대표는 28일 비대위 중진연석회의에서도 “예산안 통과의 법정시한 때문에 시간에 쫓겨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면 안 된다. 예산안에서 중요한 것은 법정시한이 아니라 나라 살림을 제대로 심사하는 것”이라며 시간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듯 배수진까지 쳤는데, 여당도 이런 태도에 질린 듯 강경 대응을 예고하면서 정국의 긴장수위는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 여야, 법정시한 앞두고도 ‘네 탓’ 공방에 매몰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실제로 민주당에선 야권이 예산 심사 보이콧에 들어가자마자 즉각 격앙된 반응을 쏟아냈는데 홍영표 원내대표는 27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우리 여당은 그간 예산과 법안심사를 정기국회 내에 처리하기 위해 많은 양보를 했다. 더 이상 양보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는 “세수결손 아닌 세수변동은 예결위 계수조정소위원회를 통해 여야가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문제”라며 “예산을 볼모로 다른 조건을 내건다는 것은 국회를 파행으로 몰고 가기 위한 것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이견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홍 원내대표가 지난 21일 서울교통공사 등 공공기관 채용비리 국정조사를 요구한 야권의 의견을 받아들인 덕에 한동안 개점휴업 상태였던 국회는 6일 만에 정상화됐었는데, 이번엔 세수결손 4조원을 이유로 야권이 예산심사를 잠정 중단한데다 한국당에선 27일 김성태 원내대표가 “탈원전 정책을 철회하면 조건 없이 문재인 대통령이 하고 싶은 국정운영이 뭐든 뒷받침하겠다”는 입장을 내놨고 바른미래당을 비롯한 3개의 군소야당도 선거법 개편을 의정 협조 조건으로 내걸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교섭단체 자격을 갖추고 있는 바른미래당은 민주평화당, 정의당과 함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하며 지난 주말에도 한 차례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의 결단이 없다면 내년도 예산안 심사가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은 데 이어 28일엔 3당 의원들과 당직자 등 100여명이 국회 로텐더홀에 모여 ‘연동형 비례대표제 결단 촉구를 위한 야3당 공동결의대회’까지 열고 여당에 대한 압박수위를 높였다.

급기야 대개 여당에 협조적이어서 범여권으로 분류되어왔던 민주평화당에서 장병완 원내대표가 28일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내년도 예산안 논의가 멈춘 원인은 정부여당이 제공했다”며 “여야정 상설 협의체 합의문엔 예산안 통과 외에 탄력근로제 확대와 선거제 개혁이 있다. 탄력근로제는 야당에 설명 없이 내년으로 미루고 선거제도 개편은 여당 대표가 나서서 부정하는 등 여당이 먼저 합의를 깨놓고 야당을 비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역공을 펼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더 내줄 떡이 없다’고 못을 박은 여당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28일 이해찬 민주당 대표까지 최고위원회에 나서서 “민생과 직결되는 부분을 갖고 예산 심사를 거부하는 것은 명분도, 실리도 없다”며 “아직 감액심사도 완료 못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예산심사가 기일 내 반드시 처리될 수 있도록 여야 간 충분히 협의해 달라”고 야권을 몰아붙였고 뒤이어 홍 원내대표도 “심사하는 내내 막말과 한 부모 예산처럼 민생과 관련된 예산을 삭감하고 관철이 안 되니 회의장 뛰쳐나가는 게 반복됐다”며 “밤 새워도 모자랄 판에 몽니부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홍 원내대표는 “전 야당이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11월30일이면 법적으로 예결위가 해산되게 돼 있고 그 이후는 예산 심사할 주체가 없어 깜깜이 밀실예산으로 들어가게 돼 있다”며 “이런 상황을 계획적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 야당”이라고 의혹도 제기했다.

다시 말해 예산심사 종료 시한인 오는 30일까지 여야가 예산안 문제를 매듭짓지 못하면 30일부터는 사실상 소소위로 넘어가게 되는데, 법적 근거 없이 예결위원장과 예결위 여야 간사, 기획재정부 책임자가 비공개로 진행하는 심사다 보니 국회 속기록도 남지 않아 자기 지역구를 위한 ‘쪽지 예산’ 등을 반영하는 밀실 야합이 이뤄질 가능성 역시 높기에 야권이 ‘깜깜이 심사’인 소소위 심사로 일단 넘긴 뒤 빅딜을 시도하려는 의도 아니냐는 것이다.

◆ 졸속 심사 우려 속 본회의 넘어가더라도 곳곳 변수 산재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야3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선거제 개편을 하자고 민주당과 한국당에 요구하고 있지만 거대양당이 미온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보니 이 사안을 예산안 처리와 연계시켜 압박하려 들 가능성도 흘러나오고 있다. 사진은 야3당 대표가 28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선거제 개편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연 모습. 사진 / 오훈 기자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야3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선거제 개편을 하자고 민주당과 한국당에 요구하고 있지만 거대양당이 미온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보니 이 사안을 예산안 처리와 연계시켜 압박하려 들 가능성도 흘러나오고 있다. 사진은 야3당 대표가 28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선거제 개편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연 모습. 사진 / 오훈 기자

더구나 법정시한인 내달 2일이 일요일이고 예산안을 처리하려는 본회의는 바로 다음날인 3일 예정돼 있어 주말도 없는 벼락치기 심사를 강행해야 하는 만큼 결국 졸속 심사가 불가피할 거란 비판도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데, 이를 의식할 수밖에 없었는지 한국당에서도 자당이 요구한 대책만 기재부가 가져온다면 소위와 소소위를 동시에 돌리는 식으로 심사 속도를 올리겠다는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당에선 법정시한 내 처리하기는 이미 어려워지지 않았느냐는 시각도 드러내고 있는데, 이를 확인시켜주듯 백승주 의원은 지난 27일 KBS라디오 ‘오태훈의 시사본부’와의 인터뷰에서 “12월 2일까지 국회가 예산을 통과시켜주도록 법적으로 되어 있지만 이게 통과 안 되었을 경우에 대비한 예산 운용에 대한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가 마련이 되어 있다”며 “지난해 예산을 기준으로 준예산을 운용하는 문제도 있고 하기 때문에 법정 시한을 지키는 게 중요하지만 지금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뿐 아니라 예산안이 법정시한 내에 처리된 것은 국회선진화법이 제정된 2014년뿐이고, 2015년부터는 3년 연속 법정시한을 넘겼기에 야권은 현재 보류되어 있는 일자리 예산·남북협력사업 기금·특수활동비 등 핵심 쟁점 사업 예산을 놓고 ‘현미경 심사’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만일 법정시한을 넘겨 정부 원안이 본회의에 부의된다 해도 여당인 민주당의 의석수가 129석에 불과해 단독으로 본회의 통과가 불가능하고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기존 범여권 정당들도 선거제 개편 문제로 현재 여당에 협조하는 데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어 국회 의결절차를 거친 수정안이 나오지 않는 이상 정부여당 측은 준예산 편성 외엔 아무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현재까지 야권이 심사를 통해 감액한 예산규모는 약 5천억 원 정도에 그치고 있어 그동안 감액심사에서 철벽 방어해온 여당을 압박하려는 차원에서라도 법정시한 내 처리하는 데 방점을 두기보다 쟁점 사업 예산을 따지고 들 가능성이 더 높다.

또 예산소위 이후 단계인 소소위를 가동하기에 앞서 세수 결손 대책을 보고받기로 약속받으면서 28일 오후에야 야권이 사흘간의 보이콧을 철회하고 예산심사에 다시 나서긴 했으나 장제원 한국당 의원이 28일 안상수 예결위원장이 주재한 회동 직후 기자들과 만나 “소소위 들어가기 전까지 정부 대책을 안 가져오면 끝장”이라고 강조한 데 비쳐 오는 30일 전까지 야권이 만족할 만한 보완책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 법정시한을 이틀 앞두고 심사는 다시 중단될 수도 있어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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