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드라큐라인가? 아니면 새로운 시대를 이끄는 주역이 될 것인가?

최근 ‘아침형’인간이 화제가 되고 있다. 오후 11시경 자고 오전 5시경 일어나는 사람들이다. 부지런함은 최고의 미덕이다.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을 것을 찾는다’ 는 속담 그대로다. 아침형 인간 중에 성공한 사람도 많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많은 사람들이 아침형 인간으로의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밤은 유별나다. 웬만한 대도시는 여전히 네온사인으로 휘황찬란하며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거리는 심야와 새벽에 활동하는 사람들로 인해 24시간 동안 깨어 있다. 낮과 밤의 구분이 모호할 정도다. 이공계 명문 KAIST학생 ‘저녁형 인간’이 많다 지난 5월 25일 이공계 명문인 KAIST 신문에 따르면 최근 학부생 149명과 대학원생 82명을 대상으로 생활패턴을 조사한 결과 학부생의 51.7%, 대학원생의 48.8%가 오전 1시30분∼오전 3시에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학부생의 17.4%, 대학원생의 9.8%는 ‘새벽형 인간’이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오전 3∼5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기상시간은 학부생의 경우 오전 중 고른 분포였으며 대학원생은 오전 7시45분∼오전 9시 45분이 43.7%로 가장 많았다. 이런 생활패턴으로 KAIST 학생들은 주로 저녁에 집중력을 발휘해 공부나 실험을 한다는 것. KAIST 학생들은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고, 학교 측은 학생들의 이런 생활패턴에 맞춰 실험실과 도서관 등 대부분 시설을 24시간 개방하며 구내식당 가운데 분식코너는 오전 1시 반까지 운영한다. 캠퍼스는 밤새 불야성 이라는 것이다. 24시간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대한민국 24시간 동안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24시간 논스톱 사회'가 대한민국에 보편화된 것은 최근이다. 편의점-PC방-찜질방-사우나 등 24시간 영업을 하는 곳이 IMF외환 위기를 극복한 이후 우후죽순처럼 생긴 것이 이를 설명해주고 있다. 이제는 웬만한 동네에 편의점과 PC방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다. 이뿐만이 아니다. 할인점-식당-영화관-세탁소 등 그동안 철저하게 제한된 시간에만 영업하던 곳도 24시간 영업으로 속속 전환하고 있다. 케이블TV 방송 채널 대부분은 24시간 동안 방영한다. 24시간 운영하는 현금 입, 출금기도 거리에 수두룩하다. 물론 이것이 서울에 국한된 현상만은 아니다. 서울, 대구, 부산, 광주, 인천, 경기 등 전국 대도시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24시간 논스톱 사회'가 보편화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한 수요가 있고, 또 수요에 대한 공급이 있기 때문이다. 즉, 밤사이 각종 경제활동을 하는 소위 올빼미족이 크게 늘면서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최근에는 경기 불황으로 주춤하지만 심야에 서울 종로, 강남역, 압구정동, 동대문, 대학로, 신촌 등에 가보면 완전히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이곳 젊은이들은 밤에 친구들과 만나 밤새 PC방과 극장에서 게임이나 심야영화를 즐기며 실컷 놀고, 새벽 첫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심야 즐기고 새벽 귀가하는 젊은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음주-유흥 중심으로 흐르던 심야 경제활동이 최근 들어서는 각 분야에서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24시간 논스톱 사회'의 서막을 알린 것은 편의점이다. 포장마차가 '24시간 논스톱 사회'의 디딤돌이 되기는 했으나 음주에 국한된 태생적인 한계로 주연으로 올라서지는 못했다. 대학가와 번화가를 중심으로 생겨난 24시간 편의점은 밤에 경제활동을 하는 올빼미족을 한 자리에 불러 모으는 계기가 됐다. 24시간 편의점이 처음 생겼을 때만 해도 대부분 사람은 그 효율성을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지금은 편리성에 감탄하며 오히려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밤과 새벽에 컵라면을 먹는 장면은 이제 아주 흔해졌다. 이러한 24시간 논스톱 사회가 가장 보편화한 곳은 서울이다. 미국 뉴욕, 일본 도쿄 등도 보편화했지만 서울이 유독 심한 편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특이한 밤의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982년 전까지만 해도 밤 12시 이후에는 통행이 금지됐다. 밤은 깨어 있어서는 안 되었다. 이는 새마을운동 등을 통해 초고속 성장을 목표로 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낮에 생산력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40대 중반 이상은 술을 마시고 통행금지에 걸리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쓰던 추억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TV드라마에 자주 나오던 장면이기도 하다. 통행금지가 해제된 이후 금지와 규제의 대상이었던 밤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급격히 변화됐음은 물론이다. 더욱이 억압에 대한 반작용으로 포장마차 등 심야 문화가 더욱 번성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불을 지른 것이 기술의 발전이다. 인터넷 등 정보통신의 발달은 각기 다른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전 세계를 하나의 '지구촌'으로 묶었다. 특히 전 세계를 동시간대로 연결해주는 인터넷은 '시간 파괴 문화'를 급속히 확산시키고 있다. 한국의 인터넷 인프라가 세계 최고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실제 심야에 인터넷을 통해 국내 증시의 '바로미터' 역할을 하는 미국 뉴욕 증시를 체크하는 올빼미족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뉴욕 증시의 개장시간은 우리 시간으로 밤 11시에서 다음날 아침 6시까지. 잠을 설쳐가며 이들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밤에 잠이 오지 않는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채팅-미팅을 하거나 바둑을 두는 것은 이제 일상이 돼버렸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다양한 전문직종 생겨나 또 IMF 외환 위기, 벤처 열풍 등으로 직업 사회에 큰 변화가 있었던 것도 '24시간 논스톱 사회'를 보편화시키는 데 큰 몫을 했다. IMF는 수많은 실업자를 낳았고, 이에 따라 청년실업자의 수가 급증했다. 과거에는 2교대나 3교대로 근무하는 일부 특수 직종에 국한됐지만 고정된 출-퇴근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다양한 전문직종(프리랜서)이 생겨난 것도 이때부터다. 또 벤처기업은 젊은 패기를 앞세워 출-퇴근도 없는, 회사가 곧 집이고 휴식처이며 일터인 사무실 문화를 조성했다. 프리랜서는 밤에 작업을 하다 출출해진 배를 채우러 거리로 나왔고, 벤처 직원은 일을 하다가 야식을 시켜먹거나 새벽 쇼핑을 즐겼다. 이밖에도 맞벌이부부의 증가를 꼽을 수 있다. 이들은 낮에는 직장 근무로 시간을 낼 수 없기에 밤을 활용해 쇼핑 등을 했다. 할인점이 24시간 영업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저녁 7~8시에는 대부분의 상점이 어김없이 문을 닫는 영국도 최근 맞벌이부부가 늘면서 24시간 할인점이 번성할 정도다. '24시간 논스톱 사회'가 한국-미국-일본-영국 등 일부 국가가 아닌 전 세계에 보편화할 것이란 예측도 나오고 있다. [24시간 사회]의 저자인 영국의 레온 크라이츠먼은 이 책에서 "24시간 깨어서 움직이는 사회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자 미래"라고 주장했다. 그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해야 하는 경직된 시간의 시대는 가고,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탄력적 시간의 시대가 시작됐다면서 그러한 변화가 더 많은 자유와 풍요를 가져다줄 것으로 낙관했다. 이러한 '24시간 논스톱 사회'의 키워드는 '시간'의 자유로운 '편집'이다. '24시간 논스톱 사회'는 단순히 쇼핑몰이나 편의점이 밤늦도록 영업하는 것만 가리키지 않는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는 "낮과 밤, 일과 휴식의 구분은 우리 인간에게 자연스런 이분법 가운데 하나"라며 "이 신성한 이분법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24시간 논스톱 사회'가 우리나라에서 이제 보편화했다"고 말했다. 이는 "우리의 삶을 제약했던 '시간'이라는 구조물이 붕괴됨을 뜻하는 것"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인간은 기술의 발달로 공간의 제약을 벗어난 데 이어 이제 시간마저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바로 그 선두에 있다. 저녁형 인간은 건강에 해롭다? 많은 의학자와 과학자는 "밤에 활동하는 올빼미족은 생체리듬에 역행한다"고 잘라 말하고 있다. 사람의 몸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자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인류가 야행성이 아닌 주행성 동물이라는 진화적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의 몸속에는 24시간을 기준으로 삼는 생체시계가 작동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아침에 저절로 눈을 뜨고 밤이 되면 잠을 자는 자신의 자연스러운 생활패턴을 찾아 규칙적으로 지키는 것이 어떤 보약보다 값지다고 이들 의학자-과학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실제로 올빼미족의 경우 잠을 촉진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에 이상이 생겨 생체리듬에 혼란을 초래, 피로감을 가중시킬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 돼 있다. 휴일에 늦잠을 자는 '몰아자기' 습관이 오히려 피로감을 가중시키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생체리듬이 깨지면 이러한 면역체계의 균형과 조화가 교란되면서 면역력이 크게 저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급격한 생활리듬의 변화가 식후 혈액 내의 포도당과 지질 농도를 과도하게 상승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교대 근무를 하면서 낮 근무에서 밤 근무로 옮기는 일이 잦은 직장인에게서 심장혈관 질병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란 분석이다. 아침형 인간은 이로울까? 전문가들은 아침형 인간도 적어도 의학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몸에 충분한 빛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인위적으로 잠을 깨웠기 때문이다. 오전 5시경. 밖은 어둡다.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침실의 조명을 켠다. 이때 몸은 어떤 상태일까. 억지로 일어나 빛을 받았기 때문에 멜라토닌의 분비가 갑자기 뚝 떨어진다. 그러나 생체시계가 준비를 하기도 전에 잠에서 깨는 바람에 몸을 가동할 만큼 충분한 빛은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따라서 코르티솔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아 몸이 묵직하다. 대사가 아직 원활하지 못해 체온도 뚝 떨어진 그대로다. 다시 말해 의식은 깨어 있지만 몸은 수면상태 그대로다. 이때 무리하게 운동을 하면 잠자고 있는 육체를 혹사하는 꼴이 된다. 특히 밤이 긴 겨울철에 오전 5시 이전에 일어나는 것은 몸에 무리가 될 수밖에 없다. 최소한 빛이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오전 6시 이후 기상이 좋다. 사람에 따라 수면패턴 달라야 똑같은 수면시간이라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종달새형과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올빼미형 중 어느 족이 건강할까? ‘아침형 인간’의 애찬론자들은 종달새형을 옹호한다. 현대 사회는 종달새형에게 유리한 측면이 많다. 그러나 의학적으로 장, 단점이 각각 다르다. 중요한 업무처리가 오후에 몰려있고 퇴근 시간이 늦은 사람이라며 올빼미형이 보다 자연스럽다. 이 경우 코티솔 등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가 밤늦게까지 유지되므로 일찍 잠자리에 들어도 잠이 오지 않는다. 일몰 이후 밝은 인공조명 아래 장시간 책상에서 작업하는 정신근로자도 저녁형 수면습관이 좋다. 저녁을 많이 먹는 사람이나 마른 사람도 조금 늦게 자는 것이 신진대사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한다. 창의성이 중요한 경제 가치로 떠오른 현대 사회에서 큰 의미를 가질 수도 공포영화를 보면 드라큐라들의 엽기적 일상생활이 나온다. 이들은 동틀 무렵이면 관속에 들어가 시체처럼 지내다가 해가 지면 나와서 활동을 시작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야행성’ 이른바 ‘저녁형’ 인간들의 생활주기가 이들 드라큐라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류가 불을 발명하고, 전기까지 발명 한 이래로 문명은 인간의 야간생활 시간을 지속적으로 늘려 왔다. 이런 도움으로 야간에 주로 활동을 하는 것이 체질에 맞는 인간들이 자신에 맞는 생활주기를 찾아내게 된 셈이다. 드라큐라들은 이성적 사회질서와 대비되는 지극히 원시적 본능과 파괴적 속성을 지닌 것으로 그려진다. ‘저녁형’ 인간들도 이와 비슷한 특징이 있다. 이들은 고독을 즐기며 혼자 노는데 익숙하고, 일상을 벗어난 보다 강도 높은 쾌락을 추구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저녁형’ 인간들의 세계는 이성과 초자아라는 정신세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끊임없이 거부하고 탈주하려는 인간형에 가깝다. 이러한 성향은 창의성이 중요한 경제 가치로 떠오른 현대사회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