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대통령, 한미 ‘비핵화 해법’ 이견차 보여…‘美 상응조치’ 간접적 요구
文 대통령, ‘왜’ 한미 이견에도 ‘대북제재 완화’ 고수하나…고민 많을 듯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12일 청와대에서 영국 BBC와 인터뷰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12일 청와대에서 영국 BBC와 인터뷰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시사포커스 / 박고은 기자] 한반도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고민이 그 어느 때보다 클 것으로 보인다.

그간 문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 진전을 이끄는 촉진제로서 대북제재 완화 필요성을 공론화해왔지만 미국은 대북제재 고삐를 바짝 죄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북쪽과 좀 더 긴밀히 소통하고 대화해 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알려졌다. 이는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끌어내기 위한 우리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당부한 것으로 보인다.

북미 어느 한쪽에게도 일방적인 양보를 요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지지부진한 비핵화 협상을 진전시키기 위한 중재안을 제시해야 하는 우리 정부 입장으로서는 꽤나 난감한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미국의 대북제재 유지 입장과는 미묘한 인식차를 보이면서 꺼져가는 북미 비핵화 협상 동력을 심폐소생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대북제재 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밀어붙이는 모습이다.

이에 문 대통령은 러시아와의 정상회담에서 일정 부분 대북제재 완화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양자 회담을 추진하는 등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다자 외교전에 착수한 것으로 분석된다.

양보 없는 美…文 대통령, ‘美 상응조치’ 간접적 요구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후 싱가포르 선텍 회의장 양자회담장에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후 싱가포르 선텍 회의장 양자회담장에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청와대.

미국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지난 15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담을 마친 직후 기자들에게 “최대 압박’을 유지할 것”이라며 “한국도 미국과의 긴밀한 협조와 유엔 결의에 따른 제재를 유지할 것이라는 확신을 받았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과 AP통신 등 다수의 외신에 따르면 펜스 부통령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싱가포르를 방문, 문 대통령과의 면담 이후 기자들을 만나 “우리는 앞선 정부들이 수십년 간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며 “북한의 약속 이후 제재가 완화되면 약속이 깨지는 상황이 반복돼 왔고 트럼프 대통령은 제재와 최대한의 압박 작전을 유지하려는 결의가 강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펜스 부통령은 문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북한이 더 많은 중요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북측의 선제적 비핵화 조치를 주문했다.

그는 “궁극적으로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이뤄야 하므로 계속 노력하겠다. 많은 발전이 있었지만 앞으로 할 일이 많이 남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북한을 대화로 이끌어내고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낸 것은 전적으로 강력한 한미동맹의 힘”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지도력과 결단력 덕분이라고 생각하면서 늘 감사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면서 감사를 표했다”고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사의를 표했다.

이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위해서 남북관계와, 또 북미관계가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한미 양국의 긴밀한 협력과 공조가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를 보면 문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의 미묘한 인식차가 보인다. 펜스 부통령이 대북제재 기조를 재확인,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주문하지만 문 대통령은 남북, 북미의 선순환적인 협력을 당부한 것이다. 즉 미국의 상응조치를 간접적으로 요구,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협상의 물꼬를 트게 하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다자외교 돌입하나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오후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청와대.

특히나 문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대북제재 완화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이같은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문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각) 싱가포르 선텍(Suntec) 컨벤션센터에서 한·러 정상회담을 갖고 대북제재 완화에 대해 논의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싱가포르 현지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러 정상회담 관련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은 평양 남북정상회담 결과 등 최근 한반도 정세를 설명하고 그동안 푸틴 대통령이 남북 관계 진전과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우리의 노력에 보내준 적극적인 지지와 관심에 감사를 표했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문 대통령과 우리 정부의 주도적인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그동안 큰 진전이 있었다”고 화답했다.

이어 “북한의 비핵화 조처에 진전이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조처가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북한이 좀 더 과감하게 비핵화 조처를 취할 수 있도록 러시아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 줄 것”을 당부했다.

또 푸틴 대통령은 문 대통령이 제시한 동아시아철도공동체 구상을 지지하며 러시아도 그 실현을 위해 적극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김 대변인은 ‘북한 비핵화를 앞당기기 위해 제재 완화가 필요하다는 데 양 정상이 공감했나’라고 질문하자 “그렇다. 북한의 상황과 분위기에 대해 두 분이 포괄적으로 이야기를 나눴다”고 강조했다.

오는 17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양자 회담도 예정돼 있는 등 북미 간 비핵화 협상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양국과의 공감대를 형성, 협조 요청을 통해 지지부진한 북미 비핵화 협상에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文 대통령, ‘왜’ 한미 이견에도 ‘대북제재 완화’ 고수하나

청와대를 걷는 문재인 대통령./ⓒ뉴시스.

미국이 연일 대북제재 유지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문 대통령이 대북제재 완화를 고집하는 데는 북한의 비핵화 이행 속도가 미국의 상응조치에 달렸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9월25일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 방문 중 폭스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미국이 속도 있는 상응 조치를 취해 준다면 북한의 비핵화 조치도 보다 속도를 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하면 할수록 미국 측에서는 북한이 핵을 내려놓더라도 북한의 체제를 보장해 줄 것이며, 북미관계를 새롭게 만들어 나갈 것이라는 믿음을 줘야 한다. 그 믿음을 북한에 줄 수 있다면 북한은 보다 빠르게 비핵화를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나 문 대통령은 지난달 15일 엠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영변 핵시설이 폐기될 경우 비핵화는 상당 부분 실질적 진전이 이뤄지는 만큼 북한이 비핵화를 계속하도록 국제사회의 격려 및 유인조치가 필요하다”고 대북제재 완화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는 북한에게 우리 정부가 북한의 비핵화 이행 노력에 대한 보상을 주도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인상을 부여, 남북관계 개선 무드를 유지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나아가 설득이 불가한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유도하기 위해 미국을 설득할 수 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미국이 이러한 상황을 불편해 할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행동 변화를 이끌기 위해 강경한 대북제재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가뜩이나 북중의 전략적 동맹 강화를 견제하고 있고 러시아와 중국의 대북제재 유지를 요구하고 있는 등 미국을 설득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 문 대통령의 고심이 깊어질 전망이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