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놀라서 귀를 의심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발언을 접하고서다. 장 실장은 지난 4일 더불어민주당과 가진 당정청협의회에서 한국 경제의 누적된 모순은 시장에서 만들어졌다. 경제를 시장에만 맡기라는 주장은 한국 경제를 더 큰 모순에 빠지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 놀란 것은 언론과 지식인계층 등의 반응이었다. 장 실장의 경제상황 인식에 대한 비판만 있었을 뿐, 시장경제를 악의 근원으로 보는 장 실장의 발언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심각성을 인식하는 글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경제에 대한 인식은 크게 개인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우파와 국가 주도를 강조하는 좌파로 나뉜다. 우파는 경제는 자유를 먹고 자란다.’는 믿음을 지니며, 좌파는 경제는 그냥 놔두면 문제 투성이다.’는 신념을 지키려고 한다. 대부분 진보학자라고 자신을 포장하는 좌파 경제학자들은 시장을 매우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신격화된 시장, 무한경쟁의 시장,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시장논리등의 표현을 쓴다. 좌파 경제학자들은 불평등이 크나큰 문제인데 이를 해결하려면 시장에 개입해야한다고 여긴다.

역사는 좌파 정치인이나 좌파 경제학자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은 지상천국을 건설하겠다던 여러 독재자의 휘황찬란한 말과 각종 정책에도 불구하고 붕괴의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중국은 마오쩌둥 밑에서 백성들이 갖은 고초를 겪다가 덩샤오핑이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난 후에야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중국은 시진핑의 집권 이후 시장경제를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2013년 당 공식문서에 시장이 자원배분의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표현을 넣었다.

시장경제의 핵심은 시장이다. 시장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들이 물건을 서로 사고팔기 위해 모이는 장소. 동서고금 어디에나 시장은 있었다. 조선시대 육의전이나 난전부터 지금의 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과 재래시장, 부산의 자갈치 시장 등이 있다. 지리산 1715미터 높이에 장터목도 있다.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바자르, 태국 방콕의 수상시장, 일본 도쿄의 참치경매시장 등 눈에 보이는 것부터 인터넷 시장까지 일일이 헤아리기 어렵다.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의사결정의 자유. 거래 참여자들은 자발적으로 행동한다. 흥정을 하면서 거래에 동의하거나 거부하는 것도 시장 참여자의 의사에 달려 있다. 거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정직이다. 시장에 사기꾼과 도둑 등도 있지만 돈에 관한 한 최선의 정책은 정직이다는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정직과 신용을 지킨 사람이 대체로 살아남는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과 서비스에는 가격이 붙는데 가격은 곧 정보를 뜻한다. 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같은 물건이라도 비싸면 품질이 좋은 물건으로, 싸면 품질이 떨어지는 물건으로 인식한다. 재래시장에 가 보면 야채나 생선 가격이 오전 오후 그리고 폐장 무렵에 계속 바뀌는 걸 보게 되는데, 이는 품질에 따라 가격이 시시로 변하기 때문이다. 시장은 대체로 가격을 통해 물건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이러한 가격에 반응하는 데 이를 자원배분의 과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시장의 사례로 노동시장을 생각해보자. 기업(고용주)과 근로자(피고용인)간에는 근로계약이 체결되는데, 여기서 정해지는 가격이 바로 임금이 된다. 임금이 너무 높으면(비싸면) 기업인이 고용을 하지 않고, 임금이 너무 낮으면 근로자가 일을 하지 않게 된다. 올해 최저임금이 16.4% 인상된 결과 일자리 감소, 실업률 상승이 나타난 것은 임금이라는 가격에 인위적으로 영향을 준 결과 노동시장의 질서가 무너지고 왜곡됐기 때문이다. 고용주는 덜 주고 근로자는 더 받으려고 하니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시장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인이나 기업을 퇴출시키는 역할도 한다. 예컨대 물건이나 서비스가 소비자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시장에서 외면받기 때문에 더 이상 살아남기 힘들어지는 셈이다.

시장시스템은 협력 시스템이기도 하다. 도매상과 소매상이 서로 거래하고, 촘촘히 네트워크를 형성할 때 이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시장의 본질은 경쟁이지만 그건 선의의 경쟁이자 궁극적으로 상호이익을 위한 협력의 성격이 강하다. 횟집 거리, 돼지갈비 거리, 떡볶이 거리 등을 생각해 보라.

어찌됐던 시장이 불공정과 불평등의 근원이라고 적대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외부세력이 시장에 손을 대면 어떻게 될까?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결과를 초래한다. 특히 시장의 질서를 잡는다면서 검찰 경찰 공무원 정치인 언론 등이 대대적으로 개입할 경우 시장질서가 흔들리게 된다. 완장을 찬 사람들은 대체로 시장에서 생존경쟁을 하는 사람들에 비해 그리 똑똑하지 않다. (정부가 부동산 강사나 건설업자, 강남 아줌마보다 주택시장을 더 잘 아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시장에 개입하는 세력도 사람인지라 시장에 개입하는 힘이 커질수록 부정부패가 많아진다. 역사적으로 정부의 힘이 센 나라, 특히 정부 주도의 계획경제를 한 사회주의에서 부정부패가 많았다.

시장은 완벽한 존재는 아니다. 시장시스템은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고 생활수준을 높일 수 있는 대체하기 힘든 불완전한 수단이다. 시장이 불완전하다고 해서 시장경제의 자율성을 해치는 나라는 반드시 시장으로부터 복수를 당했다. 역사적으로 정부주도의 사회주의 경제를 채택했던 나라들로 소련 중국 베트남 북한 쿠바 이외에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인도, 아프리카의 탄자니아 이디오피아 등이 있다. 그 가운데 잘사는 나라는 없다, 프레드릭 하이에크는 이와 관련 “(외부의) 사악한 자들이 끼칠 수 있는 해악을 최소화하는 시스템이 바로 시장경제다라는 말을 남겼다.

흔히 좌파 정치인이나 경제학자, 언론 등은 시장에 대한 부작용을 얘기하고 비판하는 데만 열을 올린다. 장하성 실장도 우리 경제의 누적된 모순을 시장이 만들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시장경제를 택한 대한민국의 1인당 소득이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택한 북한보다 20배 높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시장경제가 문제가 많다고 지적하면서 과연 그 대안은 갖고 있는가?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인 케인즈는 말했다. “경제번영은 정치 사회적인 분위기가 기업에 우호적인지 여부에 따라 좌우된다. (기업은 시장경제의 핵심이므로 시장경제에 우호적이어야 경제가 번영한다는 의미)”

시장경제가 완벽하지 않지만 외부의 간섭은 최소한의 원칙이 지켜져야 경제가 자라고 발전한다. 오늘날 이스라엘은 세계적인 창업국가이자 하이테크 나라로 불리는데 그 비결에 대해 언젠가 네탄야후 총리가 설명했다. “이거 절대 비밀인데 핵심은 (정부의) 불간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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