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에 의뢰한 ‘보수위기 분석 보고서’ 결과 놓고 당내 ‘갑론을박’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31일 비대위-중진의원 연석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31일 비대위-중진의원 연석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곳곳에서 감지되는 경제 관련 적신호에 정부여당의 지지율 하락세가 계속되는 가운데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연일 정부 비판 기조를 이어가면서도 지지율이 20% 안팎만 넘나들며 뚜렷한 상승세를 타지 못하고 있어 날로 고민이 커져가고 있다.

이런 배경 속에 한국당이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와 사회발전연구소에 의뢰해 나온 ‘한국 보수정당의 위기와 재건’ 연구용역 보고서 내용이 지난 30일 공개되면서 한국당 기조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인지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 한국당 ‘지지율 정체’, 보수·적대적 대북관 탓?

최근 한국당의 정당 지지율을 보면 여전히 20%선 안팎을 오르내리며 정부여당의 부진에 따른 반사효과를 별 달리 보지 못하고 있는 형국인데, CBS의 의뢰를 받아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22일부터 26일까지 전국 성인 2505명에 조사해 29일 발표한 10월 4주차 정당 지지율(95% 신뢰수준±2.0%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에 따르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20대에서 14.3%포인트 폭락하는 등 4주째 약세가 이어지며 42%의 지지율을 얻는 데 그쳤음에도 오히려 한국당은 전주 대비 1.3%포인트 떨어진 19.5%를 기록했다.

민주당이 한 주 전보다 0.7%포인트 하락한 데 비추어 볼 때 이보다 더 떨어진 한국당의 하락폭은 의외라 할 수 있을 정도인데, 그간 극우 성향으로 비쳐져 온 태극기부대 포용 여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진 끝에 중도층을 중심으로 이탈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물론 쿠키뉴스의 의뢰로 여론조사업체 조원씨앤아이가 지난 27~29일 사흘간 전국 성인 1002명 상대로 조사한 정당 지지율 집계 결과(95% 신뢰수준±3.1%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에선 리얼미터 조사와는 반대로 민주당은 3주 전에 비해 0.7%포인트 하락한 40.6%를 기록했고, 한국당은 동기 대비 1.8%포인트 상승한 21.5%를 얻으면서 20%선을 상회하기도 했으나 한 주 단위로 비교한 지표가 아닌데다 이 역시 여전히 20% 내외의 ‘박스권’에 머무르면서 현재 처한 한계상황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런 부분은 30일 한국당 의총에서 발표된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와 사회발전연구소의 ‘한국보수정당의 위기와 재건’ 보고서에서도 지적받았는데, 연구진은 한국당이 유연한 대북안보 전략에 반대되는 강경한 노선만 고수해 보수 유권자들이 분열했으며 보수를 결집할 합리적 보수노선의 정책도 제시하지 못한 점이 패착으로 작용했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보고서에선 2012년 대선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표를 줬지만 지난해 대선에서는 홍준표 후보를 찍지 않은 ‘이탈자’들의 성향을 살펴본 결과, 한국당과 그 당의 대표 정치인들에 특별히 호감을 느끼지는 않지만 반대자처럼 반감을 느끼지도 않았고 경제사회적으로도 한국당 지지자들과 비슷했으나 외교안보 쟁점에선 오히려 한국당 반대자들에 더 가까워 외교안보는 중도, 경제사회는 보수 성향의 고전적 자유주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밝혀졌다.

◆ 탈권위주의·계파 양성화·집단지도체제 필요성 강조

이 때문에 이탈자들을 다시 끌어안으려면 일단 권위주의와 집단주의적인 속성을 버려야 하며 유연하고 실용적인 대북 정책 포용, 합리성과 효율성에 근거한 보수 노선의 경제정책 수립, 보수의 도덕적·윤리적 가치에 바탕을 둔 주요 사회 의제 설정 등이 우선 필요하다는 진단을 내놨는데 이와 더불어 교육·이민·난민 등의 새로운 쟁점에서 유권자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정책·공약도 개발할 것을 주문했다.

아울러 보고서는 과거 2016년 총선 공약에 대해서도 여성·청년·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책들이 여전히 빈약했으며 올해 민주당 압승으로 끝났던 지방선거 역시 전보다 사회복지 이슈가 전면에 배치되긴 했으나 ‘과거 보수당이 가졌던 입장에 비해 지나치게 진보적인 정책들을 쏟아내면서 진정성과 실행 의지에 대해 강한 의심을 불러일으켰다’고 설명하면서 한국당이 장기적으로 전통적인 유럽식 대중정당 모델보다 미국식 원내정당 모델로 가야 한다고 충고했다.

특히 소수의 진성 당원들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지지자들을 찾아가는 네트워크로써 정당을 생각하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조언하면서 미국의 현재 여당인 공화당을 예로 들어 자유지상주의부터 고전적 보수주의, 신보수주의, 자국우선주의 등 다양한 보수 성향 의원들이 함께 활동하며 분권적 의원들이 개별 이슈를 통해 유권자 블록을 조직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통일된 이념 정체성보다 다양성을 수용하고, 그간 고질적인 갈등 원인이 된 당내 계파 역시 일본 자민당처럼 제도화·양성화시켜 갈등을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며 지도부 형태도 중앙당 리더십 위주의 단일지도체제보다 분권적 의원 중심의 집단지도체제를 모델로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보수위기 분석 연구용역 보고서 결과 내용대로 정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진 / 오훈 기자
김성태 원내대표는 보수위기 분석 연구용역 보고서 결과 내용대로 정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진 / 오훈 기자

그래선지 이를 의식한 모습은 최근 태극기부대 포용을 주장한 전원책 한국당 조강특위 위원과 사실상 엇갈렸던 같은 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의 발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김 위원장은 지난 26일 CPBC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김혜영입니다’에 출연해 태극기부대 통합론과 관련 “통합을 정의하자면 이게 한 그릇에 전부 담자는 얘기가 아니다”라며 “한국당만의 힘으로는 (정부여당을) 제어할 수 없어서 우파든 보수든 네트워크를 통해 일종의 넓은 공동체를 형성해서 공동대응하고 인식을 공유하자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 같은 당 김성태 원내대표도 30일 연구용역발표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너무 남북 간에 경색되고, 과거의 안보관으로 남북관계를 바라봐선 안 된다는 좋은 충고도 중요하게 받겠다. 여성과 청년 이슈에 있어서도 젊은 마인드로 갈 것”이라며 “집단지도체제에 대한 방향성 제시, 원내정당을 대안으로 제시한 부분에 대해선 한국당이 현주소를 개선해나가는 관점에서 좋다고 본다. 한국당은 용역보고서 내용대로 정진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다만 이 같은 공언이 무색하게 한국당은 이번 보고서 결과와 상반된 본래의 기조를 아직 그대로 유지해 나가는 모양새인데, 실제로 김 원내대표는 연일 대북 안보 현안과 관련해 여당에 수위 높은 발언을 이어가며 냉전적 관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 보고서 결론에 친박 ‘불만 폭발’…내홍 재발되나

이런 엇박자가 나오는 건 당 일각에서 이번 조사 결과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한데, 정통 보수적 색채를 강화하기보다 중도층을 끌어들이려 하고 여성·청년층에 힘을 실어주며 집단지도체제 필요성을 주장하는 건 사실상 현 비대위의 선호를 의식한 결과 아니냐는 시선으로 대부분 친박계나 잔류파 측에서 적잖은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몇몇 중진 의원들은 아예 불편한 심기를 벌써부터 유감없이 표출하고 있는데, 친박계 홍문종 의원은 31일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박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확실하고 분명한 백서를 만들어야 한다. 이 문제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우리 당의 미래는 없다”고 일갈했다.

한 발 더 나아가 홍 의원은 노골적으로 복당파를 향해 “탄핵에 앞장서고 당에 침을 뱉으며 저주하고 나간 사람들이 한 마디 반성도 하지 않고 돌아왔다. 이들이 개선장군처럼 당을 좌지우지하면 당과 보수의 미래가 없다”고 직격탄을 날린 데 이어 급기야 당협위원장 심사 중인 조강특위에 대해서도 “누가 칼질하라는 특권 줬나”라고 견제구를 던졌다.

친박 중진인 정우택 한국당 의원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시사포커스DB
친박 중진인 정우택 한국당 의원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시사포커스DB

뒤이어 또 다른 친박계 정우택 의원도 당협위원장 교체작업을 겨냥한 듯 “지금 원외 당협위원장들 이야기 들어보면 갈팡질팡하고 있다. 대표체제가 바뀌면 그때마다 원외위원장을 흔들어대니 지역구 관리를 연속적으로 할 수 없고 하려해도 흔들면 힘이 빠진다”며 “전당대회를 통해 새 대표가 나올 때 구심점이 생길 수 있다. 비대위는 한시적 기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뿐 아니라 정 의원은 보수대통합에 대해서도 “집 나간 사람 데려오는 것을 보수대통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총선을 치르기 위한 숙제이기 때문에 차기 당 대표가 해야 할 숙제”란 입장을 내놨다.

심지어 신상진 의원까지 같은 날 페이스북에서 “현 정부의 잘못에 대해 당원과 국민과 함께 어깨 걸고 싸워나갈 일이 하나둘이 아닌데, 전국의 일선 사령관인 당협위원장 공석이 한 달째”라며 “허송세월하고 있는 비대위는 하루빨리 조기 전당대회 준비나 마치고 활동 종결할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 내년 전당대회를 겨냥해 한물 간 보수 인사들 영입을 하네마네 하며 상층부가 정치공학적 통밥들만 굴리고 있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고 지도부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반면 비박계 의원들은 내홍 재발을 우려해 직접적인 맞대응은 자제하면서도 이들과 달리 비대위에 긍정적 시선을 보내고 있는데, 일단 김 위원장은 탄핵 입장부터 정리하자고 촉구하는 친박계의 압박에 이날 “시점이 적절한 시점이냐. 토론이 당의 통합성에 악영향을 줘선 안 되고 오히려 당의 중심성을 강화하면서 그런 문제를 풀어나가는 게 맞지 않느냐”고 응수했다.

하지만 오는 12월 원내대표 경선이 예정되어 있고 당협위원장 교체와 차기 당 대표 선출도 내년 초로 다가온 만큼 갈수록 비대위에 대한 반대파의 반발은 표면화될 것으로 전망돼 한국당이 이번 보고서에 나온 대로 방향을 잡아나갈 수 있을 것인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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