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미래 ‘빅딜’ 제안에 거대 양당 거부…신경전 속 조건부로 접점 모색

문희상 국회의장의 주재로 3당 원내대표 회동이 29일 국회 본청 국회의장실에서 열렸으나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팽팽히 맞서면서 끝내 양측이 어떤 합의도 이루지 못했다. 사진 / 오훈 기자
문희상 국회의장의 주재로 3당 원내대표 회동이 29일 국회 본청 국회의장실에서 열렸으나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팽팽히 맞서면서 끝내 양측이 어떤 합의도 이루지 못했다. 사진 / 오훈 기자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여야가 사법농단 특별재판부 설치와 공공기관 고용세습 채용비리 문제를 놓고 격돌하면서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가운데 팽팽한 대치 정국을 풀기 위한 ‘빅딜’을 제안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특별재판부 설치-고용세습 국조 ‘빅딜’, 사실상 거부돼

국감이 사실상 종료 수순을 밟으면서 정치권은 다시 각기 주요 쟁점으로 꼽은 사안을 들고 상대 진영을 압박에 나섰는데 먼저 더불어민주당에선 양승태 사법농단 사건을 들어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과 함께 특별재판부 설치에 나설 것을 한 목소리로 자유한국당에 촉구하고 있고, 반대로 한국당에선 국감 기간 동안 밝혀낸 공공기관 고용세습 채용비리 문제에 대한 국정조사를 바른미래당, 평화당, 정의당과 연대해 여당인 민주당에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여당과 제1야당이 서로 다른 사안을 내세워 대치 상태를 이어가면서 정국 경색만 계속되자 양 사안 모두 찬성 의사를 표했던 바른미래당에선 지난 25일 양당이 서로 요구하는 사안을 모두 수용하는 형태의 ‘빅딜’을 제안했는데, 일단 한국당에선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29일 비대위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애시당초 특별재판부는 국회에서 정치적 딜(거래)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위헌적 요소가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고용세습 의혹을 덮으려는 정치공세”라고 역설했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는 앞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선 “야당이 반대했음에도 대법원장 임명을 강행하고 지금 와서 사법부 전체를 불신하고 공정한 재판이 어려워 특별재판부가 필요하다 하면 일의 선후가 김명수 대법원장부터 사퇴시키고 얘기하기라도 해야 국민들이 납득할 것”이라며 “특별재판부가 필요하다면 대법원장부터 하루빨리 사퇴시키라”고 역공을 펼쳤다.

이에 그치지 않고 김 원내대표는 한국당이 현행법상 회피 제도가 있어 1, 2심 재판 판사를 국회가 정하는 건 재판 체계를 허무는 일이란 입장을 내놓은 데 맞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현행법상 공정한 재판을 확보하기 위해 법원, 법관, 검사, 피고인, 변호인 등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이하 형사소송법상 제척, 기피, 회피지만 단 이 제도는 거의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반박한 점도 꼬집어 “조 수석은 제발 좀 나서지 말라”고 응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당을 비롯해 일부 야당까지 한국당에 태도 변화를 호소했는데,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29일 최고위 회의에서 “특별재판부 설치가 위헌이란 한국당 주장은 정치공세에 불과하다”며 “한국당이 반대하는 것은 사법농단 세력을 비호하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당장 오늘이라도 법사위를 열어 특별재판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홍 원내대표는 한국당이 요구하는 채용비리 국정조사에 대해선 “감사원 감사가 끝나서 필요하다면 실시하도록 하겠다”고 일부 수용 가능성을 내비쳤고, 평화당에서도 장병완 원내대표가 같은 날 최고위 회의에서 “국정조사와 사법농단 특별재판부 설치에 실패하면 거대양당은 기득권 보호정당임을 자인하는 격이 될 것”이라며 “오늘로써 국감이 마무리되는데 여야는 국정조사와 특별재판부 구성 절차에 돌입해야 한다”고 사실상 ‘빅딜’에 응할 것을 요구했다.

결국 문희상 국회의장까지 29일 여야 3당 원내대표 간 정례회동을 통해 이 문제들에 대한 중재에 나섰는데, 문 의장은 “여당은 여당다워야 한다. 야당을 욕하면 안 된다”고 한 데 이어 “야당은 야당다워야 한다. 다만 중요한 건 비판을 위한 비판을 계속하면 국민이 싫증난다”고 각각 양보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무색하게 끝내 서로 간의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기존 이견만 재확인하는데 그쳤는데, 국감을 마치자마자 바로 예산 국회로 접어들기 때문에 이미 충돌이 예고된 만큼 여야 모두 기선제압을 위해 이번 서전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 ‘특별재판부 설치’ 여론 우세…野 반대만 지속하기엔 부담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양승태 사법농단 사태에 대한 특별재판부 설치에 찬성하는 의견이 그렇지 않은 답변보다 더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양승태 사법농단 사태에 대한 특별재판부 설치에 찬성하는 의견이 그렇지 않은 답변보다 더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

그렇지만 한국당도 특별재판부 설치를 마냥 반대만 하기엔 상황이 녹록치만은 않은데,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복심이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해 법원이 지난 27일 당초 예상을 깨고 영장을 발부해 사법권 남용수사 이후 처음 구속이 이뤄진데다 검찰이 임 전 차장의 직계상급자였던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도 조만간 소환할 방침이어서 만약 이들이 입을 열게 될 경우 특별재판부 설치에 반대하는 현재 기조를 이어가기 부담스러워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지난 26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2명을 대상으로 특별재판부 도입 여부에 대해 조사한 결과(95% 신뢰수준 ±4.4%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에서도 ‘사법부를 신뢰하기 어려우므로 공정한 재판을 위해 찬성한다’는 응답이 61.9%로, 반대한다는 응답보다 37.3%포인트나 높게 나왔다는 점 역시 한국당이 설치 반대를 견지하기엔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박지원 평화당 의원도 29일 YTN라디오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과의 인터뷰에서 ‘한국당이 반대할 경우 국회 차원에서 특별재판부 설치가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자 “불가능하다”면서도 “국민이 지지한다고 하면 한국당도 국민 뜻을 저버릴 수는 없지 않나. 지금은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국민 여론에 따라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래선지 공공기관 고용세습 채용비리 국정조사에 대해 감사원 조사를 전제조건으로 내건 민주당처럼 한국당 역시 김명수 대법원장의 사퇴를 조건으로 내거는 한편 실제 이 사안을 다룰 법사위에선 한층 수위를 낮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국회 법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여상규 한국당 의원은 29일 MBC라디오 ‘심인보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선입견 있는 주체가 그 사건 재판부 구성에 관여해선 안 된다”면서도 “특별재판부도 하게 되면 관련 근거법을 만들어야 될 텐데 그런 법안이 됐건 어째건 우리 법사위에서 결정하는 그런 단계가 되면 충분히 법사위원들끼리 협의를 해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 뿐 아니라 여 의원은 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민주당에서 제안한 안 중 국민참여재판에 대해서도 “국민참여재판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이 사건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걸 알 수 있지 않나”라며 일부 긍정적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 바른미래 일부 및 법원행정처 등 행보는 또 다른 변수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29일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 출석한 모습. 사진 / 오훈 기자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29일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 출석한 모습. 사진 / 오훈 기자

이런 기류는 법원행정처에서도 감지되고 있는데, 사법농단 의혹 조사단장을 맡기도 했던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조사 당시에는 죄가 되는지 여부는 불문하고 사법부로서 부끄러운 일을 했고 크게 비난받을 일을 했다고 평가했다”며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 특별재판부 논의는 일단 공감할 점이 있다”고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안 처장은 “그렇지만 (특별재판부는) 전례 없는 일이고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재판받을 권리에 대한 여러 의견도 제시되고 있기에 면밀하게 검토돼야 한다. 예규에 따라 하는 것이 일단 사법부가 취할 태도 아닌가”라며 “관련자가 있는 6개 재판부를 제외하면 7개가 남는다. 특별재판부 구성에 대해선 공식 의견을 밝힐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여전히 특별재판부 설치 문제에 신중한 입장을 드러냈다.

또 특별재판부 설치에 동조했던 바른미래당 내부에서도 지도부 결정에 반하는 목소리가 일부 나와 이들의 움직임도 주목되는데, 지상욱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양승태 사법농단 사건에 영장기각률이 높다는 이유로 국회가 판사를 선전한다는 특별재판부 설치가 4당 합의로 결정됐다는 소식에 충격을 금할 길이 없다”며 “독단적 결정으로 바른미래당이 스스로 민주정당이 아님을 선언한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김관영 원내대표에게 경고했다.

여기에 같은 당 이언주 의원까지 29일 CPBC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김혜영입니다’에 출연해 “어떻게 국회가, 그리고 시민단체가 재판부를 구성할 생각을 하나?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삼권분립과 사법부 독립의 원칙을 위반했다”며 “이런 중차대한 문제를 의총을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합의한 것에 대해 저희 당의 몇몇 의원들이 (지도부에)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안 그래도 그간 판문점 선언 비준 동의 문제를 비롯해 각종 현안에 대한 당 입장을 내놓는 과정에서 당내 보수 성향 의원들의 반발이 일어났던 바에 비추어 이번 사안이 자칫 분당 사태로 비화될 것을 염려했는지 김 원내대표는 “제가 8월 1일부터 특별재판부 구성을 주장해왔다. 그 두 분이 마치 새롭게 있는 일처럼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동안 사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당 지도부 결정과 관계없이 향후 이탈표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현재 민주당이 한국당의 반대를 우회해 국회법상 ‘신속처리안건’으로 특별재판부 설치 사안을 본회의에 올리려 해도 국회의장 또는 상임위원장이 무기명 투표에 부쳐 재적 의원의 60%(180명) 이상이 찬성해야 되다 보니 한국당 의원 112명을 뺀 187명 중 바른미래당에서 이탈표가 생기면 국회통과를 장담할 수 없게 되기에 결국 여야 모두 일방처리는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합의점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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