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평양선언 비준’ 속도전, 野 반발 격화시켜…판문점선언 국회 비준엔 역효과?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제45회 국무회의 중 평양공동선언과 남북군사합의를 비준 처리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제45회 국무회의 중 평양공동선언과 남북군사합의를 비준 처리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3일 국무회의에서 9월 평양공동선언과 남북 군사합의 발효를 위한 비준안을 심의·의결 직후 전격 재가했는데, 통상 국무회의 의결 뒤 재가까지 2~3일 소요되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빠르게 처리됐다고 할 수 있는 만큼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인 판문점선언 비준 동의안 처리에도 영향을 미칠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조치는 비록 공동선언이 채택된 지 한 달여 만에 이뤄진 것이기는 하나 북미 간 비핵화 협상도 장기 국면으로 넘어가는 양상을 띠는 와중에 단행됐다는 점에서 남북관계 진전과 비핵화 달성을 상호 추동해 나가려는 문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됐다고 볼 수 있는데, 판문점선언의 후속적 성격을 지니고 있음에도 국회 동의 없이 처리했다는 부분은 벌써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 文, 한 달 넘게 놔뒀던 ‘평양선언 비준’ 갑자기 왜?

미국이 실질적 비핵화 이전까진 제재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하면서 2차 북미 정상회담도 중간선거 이후에서 아예 내년으로 미루는 ‘장기전’ 기조로 들어가고 북한 역시 연내 종전선언은 물론 부분적 제재 해제까지 물 건너가자 최근엔 미국이 제안한 빈 실무회담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지난 달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이 무색하게 북미 협상 국면은 다시금 교착 상태로 접어든 모양새다.

급기야 우회로를 통해 풀어보고자 문 대통령이 유럽 순방까지 나섰으나 기존의 CVID 방침만 재확인한 채 돌아와야 했고, 순방 기간 동안 유럽 정상들을 설득하기 위해 강조한 비핵화 촉진 차원의 ‘순차적 제재 완화’ 주장은 오히려 한미관계에 균열을 일으키는 게 아니냐는 의심만 불러 일으켰다.

이런 상황에서 귀국 직후 문 대통령이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을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후속 합의인 평양공동선언과 남북 군사합의를 직접 비준 처리한 것은 당초 청와대가 계획한 남북관계 타임 테이블이 대내외로 꼬여버린 데 따른 궁여지책으로 풀이되고 있다.

사실 남북관계발전법상 국회 동의 없이 비준된 남북 합의는 대통령 결정에 따라 얼마든지 효력 정지가 가능한 만큼 정권이 교체될 경우 뒤집힐 가능성이 있어 ‘불가역적 남북 합의’를 강조해왔던 문 대통령의 당초 입장과도 배치되는 점이 없지 않으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연내 서울 방문도 약속했던 판국에 더 이상 지연시킬 수 없다는 절박함이 우선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판문점선언에서의 합의 내용도 일부 담고 있는 평양공동선언과 국가안보 관련된 남북 군사 합의를 아직 판문점 선언 비준 동의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음에도 먼저 처리했다는 절차적 문제가 먼저 지적받고 있는데, 청와대에선 평양공동선언은 판문점선언의 이행 성격이 큰데다 이미 국회 비준 동의 절차를 밟고 있어 별도로 국회 동의가 요구되지 않으며 군사합의서 역시 재정적 부담이나 입법이 필요한 조약이 아니어서 국회 동의가 없어도 된다는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근거로 반박하고 있다.

◆ 비준 처리, ‘위헌 논쟁’으로 확산…한국당, 법적 대응 천명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4일 오후 국회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문 대통령이 평양공동선언, 남북 군사합의를 재가한 데 대해 비판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4일 오후 국회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문 대통령이 평양공동선언, 남북 군사합의를 재가한 데 대해 비판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에선 군사 분야 합의서로 인한 훈련 변경 등에 따라 비용이 발생할 수 있고 포사격 기동훈련 금지 등 국가 안보에도 영향이 불가피한 만큼 남북 군사 합의문 역시 국회 비준이 필요하고 이와 함께 평양공동선언도 판문점선언의 부속합의서이기에 청와대가 직접 비준 처리해선 안 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데, 우선 내세우는 근거로는 상호원조 또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과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등의 체결·비준에 대해 국회가 동의권을 가진다는 헌법 60조 1항을 들고 있다.

특히 자유한국당의 김성태 원내대표는 24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헌법 60조 1항에 명시된 사안을 대통령 독단에 의해서 결정할 수 있는 국정운영이 대단히 위험하다.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서 문 대통령의 초헌법적이고 독단적인 결정에 대해 강력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다”며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포함한 권한쟁의심판 청구까지 야권 공조를 통해 실천해 나갈 것”이라고 초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김 원내대표는 같은 날 오후 가진 긴급 기자간담회에선 “청와대가 명백하게 헌법을 위반하는 것도 모자라 헌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헌법에 명시된 것도 선별적으로 발췌적용하려는 작태”라며 “DJ(김대중) 정부때 햇볕정책에 따라 2000년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이 채택된 이후부터 2004년 사이 체결된 경제협력 관련 남북 간 4개 합의서는 국민 재산과 권리, 의무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아 국회 동의절차를 밟는 등 조약에 준하는 방식으로 추진됐다”고 과거 사례까지 상기시켰다.

그러자 청와대에선 같은 날 김의겸 대변인이 “헌법 60조는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조약의 요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조약이라 하는 것은 문서에 의한 ‘국가’ 간의 합의를 뜻하지만 헌법과 법률체계에서 북한은 국가가 아니다”라며 “북한과 맺은 어떤 합의와 약속은 조약이 아니고, 헌법이 적용될 수 없다. 야당의 주장은 근본적인 법리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한 발 더 나아가 김 대변인은 “헌재와 대법원은 그 이전에 체결된 남북합의서에 대해서도 ‘명백하게 헌법 적용대상이 아니다’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번 남북군사합의서 비준에 위헌이라고 말하는 것은 헌재의 결정과 대법원 판례에 명백히 위반되는 것”이라며 “이것을 위헌이라 주장한다면 북한을 엄연한 국가로 인정하는 것으로 헌법 제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것을 위반하게 되기 때문에 그 주장 자체가 오히려 더 위헌”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또 그는 남북한 관계에 대해선 “지난 2005년 제정된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 3조1항을 보면 남한과 북한의 관계는 국가 간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며 “조약이 아닌 '남북합의서'라는 용어를 쓰고 있음을 유의해 달라”라고 거듭 당부했다.

◆ 여야, 판문점선언 처리 놓고도 논쟁 가속…국회 비준 난망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평양공동선언과 남북군사합의에 대한 문 대통령의 조치에 대해 자가당착적 모순이란 반응을 내놓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평양공동선언과 남북군사합의에 대한 문 대통령의 조치에 대해 자가당착적 모순이란 반응을 내놓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이렇듯 청와대와 제1야당 사이에 때 아닌 법리 공방까지 벌어진 가운데 바른미래당에선 아예 판문점선언도 국회가 아니라 대통령이 직접 비준하라고 촉구하고 있는데, 손학규 대표는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판문점선언의 후속조치라 볼 수 있는 평양선언, 군사합의서를 문 대통령이 직접 비준한 것은 바른미래당 주장을 일면 받아들인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정부는 (국회의) 비준동의가 필요하다면 끝까지 설득하던지, 아니면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을) 철회하고 독자적으로 비준하는 떳떳함을 보이던지 했어야 한다.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은 여전히 계류 중인데 그 합의서를 먼저 비준하는 것은 순서가 잘못된 일”이라며 “추상적인 판문점선언은 국회 동의가 필요하고, 그보다 더 구체적인 평양선언은 국회 동의가 불필요하다는 주장은 스스로 모순”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 뿐 아니라 손 대표는 “6·15, 10·4 (공동선언) 모두 (국회) 비준동의를 안 거쳤다”며 “문 대통령은 국회에 제출한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을 철회하고 대통령이 직접 비준해야 한다. 더 이상의 국론분열을 막아줘야 한다”고 재차 호소했다.

반면 야당임에도 대북 관련해 범여권 성향인 민주평화당에선 24일 박지원 의원이 CPBC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김혜영입니다’와의 인터뷰를 통해 “오히려 (문 대통령이) 이렇게 특단의 조치를 해서 평양공동선언을 먼저 비준함으로써 판문점선언이 모법인데, 그 비준 동의를 현실화시킬 수 있다”며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한반도 평화는 물론 비핵화의 기회를 상실하기 때문”이라고 상반된 주장을 펼쳤다.

여기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역시 같은 날 박경미 원내대변인의 국회 브리핑에서 “야당의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에 대한 태도는 강 건너 불구경 그 자체였다. 한국당 등은 한반도 평화를 바라는 정부여당의 간절함을 이용해 원내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협상카드처럼 활용해왔다”며 문 대통령의 이번 결정을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정당화했다.

도리어 박 대변인은 “국회에 동의를 요청한 판문점선언은 마땅히 선행됐어야 할 과정”이라며 “여러 차례 원내 협상을 거친 합의문이 나왔지만 야당의 합의 불이행으로 매번 휴지조각이 됐다. 지금이라도 하루 빨리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비준을 위한 국회 동의 절차에 적극 협조해주기 바란다”고 야권에 요구했다.

이는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에 모두 명시됐던 남북 간 서해 및 동해선 철도와 도로 착공식을 올해 안에 실시하기로 약속했던 데다 이 중 철도연결 착공식은 당장 이르면 내달 말로 예정되어 있고 김정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방문도 합의됐던 만큼 일정이 상당히 촉박하기 때문인데, 그래서 이번에 문 대통령이 무리하다시피 후속 합의를 직접 비준 처리한 것도 현재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는 일환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야권이 공공기관 채용비리 의혹으로 모처럼 공조를 이루며 정부여당을 압박하는 시점에 또 다른 정치적 쟁점을 스스로 제공했다는 점에서 그간 기대했던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은커녕 한층 극심한 대치 정국만 고착화시킬 가능성이 높아 일각에선 지지율 하락 중인 문 대통령이 조급해진 나머지 치명적 오판을 한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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