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빼는 약’으로 둔갑한 신종마약

▲ 러미라와 S정
그동안 대용마약으로 알려지며 음성적인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러미나’ ‘S정’ 등 전문의약품들이 이제는 ‘살 빼는 약’으로 둔갑, 전국적으로 유통되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올 초 충남에서는 ‘러미나’와 ‘S정’을 살 빼는 약으로 속여 판매한 김모(52·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씨등 18명이 경찰에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전격 구속됐다. 또한 상습복용자 32명이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돼 무려 50여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특히 이들은 대부분 가정주부나 여대생 등 여성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다수가 심각한 중독 현상을 나타내고 있어 대도시뿐 아니라 지방까지 파고드는 신종마약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전국적으로 신종마약 ‘러미나’와 ‘S정’을 살 빼는 약으로 속여 판매한 판매조직이 경찰에 붙잡혔다. ‘러미나’는 만성기관지염, 폐결핵 등에 자주 처방되는 전문의약품이다. ‘S정’ 역시 타박상을 입은 환자들에게 처방되는 근육이완제.

‘러미나’ ‘S정’ 등 대용마약 불티

하지만 이 약들에는 미량의 환각성분이 포함돼 있고 다량 복용했을 경우 히로뽕 등과 비슷한 환각 효과를 가져온다. 이에 히로뽕 등 고가의 마약을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이 찾아오던 것이 바로 ‘러미나’와 ‘S정’ 등 대용마약이었고 결국 지난 2000년 이 약들 역시 ‘마약’으로 규정돼 판매자나 사용자는 법적 처벌을 받고 있다.

당초 이들 마약들은 서울 모 재래시장 뒷골목에서 주로 거래돼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전국적으로 이들 마약을 판매해 온 김모(52·동대문구 장안동)씨가 붙잡힌 이후에도 재래시장 뒷골목에선 마치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여전히 ‘러미나’와 ‘S정’을 판매하는 사람들과 사려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특히 이 약들을 찾는 사람들은 성별과 빈부를 뛰어넘은 상태다. 지난해까지 시장골목에서 러미나를 팔았다는 최모(39·경기 부천)씨는 “(러미나를 찾는 사람들은)다양하다. 아마 대학생부터 직장인은 물론 ‘이 사람은 약을 살 사람이 아니다’싶을 정도로 깨끗한 사람, 예쁜 여대생은 물론 에쿠스 같은 고급 대형차를 타고 오는 사람들도 있다”고 전한다. 최씨는 또 “판매상들은 대부분 시장 근처 쪽방에 대량의 러미나와 S정을 숨겨두고 있다. 하룻밤에 러미나 2통(2천개)을 팔아본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쉽게 접할 수 있는 마약성분이 함유된 약들이 일반인들에게 쉽게 거래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약들은 중독성이 히로뽕 못지않게 강해 쉽게 끊을 수 없다고 최씨는 지적했다. 즉 나이 많은 성인남녀들이 사회적 지위와 체면을 던져두고 재래시장 뒷골목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도 바로 이 중독성 때문이다. 서울에 있는 마약퇴치운동본부에서 두 달째 생활하고 있는 노모(38·경기 전곡)씨는 15년 동안 러미나를 복용해 온 중독자. 그는 ‘약을 끊기 위해’ 3번씩이나 자비를 들여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결국 마약퇴치운동본부를 찾았다. 노씨는 “병원치료도 전혀 효과가 없다. 단지 갇혀있기 때문에 (러미나를) 못하는 것뿐이지 나오면 또 찾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15년의 중독생활이 노씨에게 남긴 건 피폐해진 삶뿐이었다.

현재 국내에 러미나, S정 등 이른바 신종마약 중독자는 약 30여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또한 중독자 수는 날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 이처럼 중독자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저렴한 가격과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 러미라
하지만 이들 신종마약은 일반마약과 똑같은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또한 중독 될 경우 뇌세포까지 파괴시킬 정도로 인체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다고.

김창윤 서울 아산병원 정신과 과장은 “러미나 과량 복용시에는 작용 기준면에서 환각제와 거의 유사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러미나를 장기복용 할 경우 뇌세포가 파괴돼서 기억력 감퇴, 의욕감퇴, 무기력증 등에 빠질 수 있고 심할 경우 정신분열증과 유사한 증상을 일으킬 수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처럼 치명적인 신종 마약들은 음성적으로 너무 쉽게 거래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신년벽두 이 약들을 ‘살 빼는 약’으로 둔갑, 전국적으로 판매해온 일당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러미나’와 ‘S정’을 살 빼는 약으로 속여 판매한 김모씨 등 18명이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무더기로 경찰에 붙잡힌 것이다. 또한 상습복용자 32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무려 50여명이 무더기로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또 김씨로부터 러미나 51만5천정과 진통제인 염산날부핀 등 총 1억1천만원 상당의 향정신성 의약품을 압수했다고 밝혔다.

살 빼려다 중독돼

김씨는 지난 97년부터 러미나 등을 판매해 온 전문 판매상. 그는 지난 2000년 러미나가 신종마약으로 규정되면서 당국의 단속이 심해지자 이를 ‘살 빼는 약’으로 둔갑시켜 수도권은 물론 대전, 목포 등 전국적으로 판매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번에 경찰에 붙잡힌 복용자들은 대부분이 가정주부, 여대생들이었다. 이전에 주로 유흥업소 종사자들이 복용하던 이들 마약이 이제 계층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살포된 것이었다.

김씨로부터 러미나를 구입, 복용해 온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대학생 백모(23·여·경기 수원기)씨는 “아는 언니가 ‘살 빠지는 약’이라고 해서 복용했는데 살이 빠지기는커녕 입맛도 없어지고 예고 없이 구토를 하는 등 부작용이 심했다”며 “말로만 듣던 마약인 줄 알았다면 복용할 생각조차 안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백씨의 경우는 나은 편이었다. 경기도 안양에 살고 있다는 이모(34·주부)씨는 이미 상습복용자로 전락한 처지. 이씨는 평소 남편으로부터 ‘뚱뚱하다’는 말과 함께 잠자리를 하지 않는 등 수모를 겪어왔다. 그러던 중 ‘살 빼는 약’이라는 말에 현혹돼 러미나를 복용해오다가 상습중독자 수준까지 이르고 만 것. 결국 경찰에 붙잡힌 그녀는 “남편과도 이혼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고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일부 복용자들은 ‘살 빼는 약’인줄 알고 복용했다 효과가 없어 약을 끊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씨처럼 먹다가 중독된 경우도 많았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들은 평균 1회에 적게는 20정, 많게는 50정씩을 복용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밖에 그동안 김씨로부터 꾸준히 약을 사서 복용한 장기복용자들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4년째 러미나를 복용해왔다는 한모(38·남·일용직)씨는 경찰에서 “(러미나를)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몸 컨디션이 한결 낫다”며 “이제는 약을 먹지 않고서는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라고 털어놓았다. 이번에 김씨와 함께 구속된 18명은 이처럼 2~3년이 넘게 환각작용을 목적으로 러미나를 복용해 온 장기복용자들이다. 이들은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돼있는 상태에서 구토, 오한 등 심한 금단현상을 나타내는 등 심각한 중독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마약을 ‘살 빼는 약’으로 속여 전국적으로 판매해 온 김씨는 판매과정서 자신의 신분과 주소를 감추기 위해 전화번호를 바꿔가며 주문을 받는 등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전화나 전언으로 약을 주문받고 이를 자신이 직접 배달하거나 택배를 이용하기도 했다. 또한 처음 거래하는 사람들에게는 고속버스나 시외버스 등을 이용, 수하물로 발송하는 등 용의주도하게 마약을 판매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경찰이 무려 2개월 간에 걸친 집중 수사 끝에 간신히 김씨의 소재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수사에 애를 먹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의 끈질긴 추격 끝에 김씨와 또 다른 판매책 오모(48·서울 남대문구 동자동)씨가 붙잡혔고 전국적인 대규모 유통망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신종마약 중독성 강해

충남 보령경찰서 김대석 형사계장은 “김씨로부터 ‘러미나’를 공급받아온 사람들이 수백명에 이르는 등 이들 신종마약이 지방의 주부와 대학생 사이에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었다”라며 “마약을 ‘살 빼는 약’이라고 속여 팔아왔기에 ‘선의의 피의자’가 많이 발생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이들 신종 마약은 중독성이 강한 만큼 피해자가 양산되는 경우가 많다. ‘살 빼는 약’이라고 무턱대고 구입해서 복용하기보다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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