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빈손 순방’에 경제 사안·채용비리 등 겹쳐 지지율 하락…정책 기조 바꿀까

15일(현지시간) 파리 엘리제궁에서 진행된 문재인 대한민국 대통령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간 한-프랑스 정상회담의 모습. ⓒ청와대
15일(현지시간) 파리 엘리제궁에서 진행된 문재인 대한민국 대통령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간 한-프랑스 정상회담의 모습. ⓒ청와대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2차 북미 정상회담도 연내 성사되길 바랐던 우리 정부의 뜻과 달리 당초 미국 중간선거 이후에서 더 나아가 아예 내년 초 개최될 것으로 미뤄진 가운데 문 대통령은 7박9일 간 유럽을 찾아 설득에 나서는 우회로를 선택했다.

유엔 안보리에서 미국과 중·러(중국, 러시아)가 각각 북한의 비핵화와 대북제재 완화 주장을 놓고 첨예하게 대치하는 가운데 또 다른 상임이사국인 영국, 프랑스 측과 접촉하기 위해 방문한 것인 만큼 어떤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을 것인지 적잖은 이목이 쏠렸지만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따른 대북제재 완화 필요성을 호소한 문 대통령의 주장보단 완전한 비핵화인 CVID 쪽에 무게를 두는 결론이 나와 사실상 기대한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 엇박자만 확인된 7박9일의 文 유럽 순방

문 대통령이 국정감사가 진행 중인 지난 13일부터 7박9일 간 프랑스·이탈리아·교황청·벨기에·덴마크 등을 방문하는 유럽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으나 장기간의 해외 순방에 걸맞은 성과가 있었는지 여부에는 대체로 의문부호가 붙고 있다.

이는 내내 순탄치 않았던 이번 순방 내용을 봐도 확인할 수 있는데, 첫 방문국인 프랑스에서 가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의 공동기자회견에서부터 북핵 관련 입장을 놓고 양국 간 시각차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먼저 15일 오후 파리 엘리제궁에서 진행된 한국-프랑스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미국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 줄 경우 핵과 미사일 실험 중단과 생산시설의 폐기 뿐 아니라 현재 보유 중인 핵무기와 핵물질 모두를 폐기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며 “적어도 북한의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왔다는 판단이 선다면 UN 제재의 완화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더 촉진해야 하며 마크롱 대통령께서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이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정상회담 뒤 진행된 공동기자회견에서 “무엇보다 평양의 구체적인 약속, 비핵화와 미사일 계획을 폐지하기 위한 프로세스에 실질적으로 협력하고 있다는 어떤 의지를 보여주길 기다리고 있다. 그때까지는 UN 안보리 제재가 계속돼야 할 것”이라며 “완전하고 불가역적으로 검증 가능한 비핵화 프로세스가 시작되길 희망한다”고 다소 온도차 있는 발언을 내놨다.

이에 그치지 않고 마크롱 대통령은 뒤이은 국빈 만찬에서 “북한의 전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실현하기 위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저희에게 주어진 모든 역할을 수행할 준비가 돼 있다”며 “국제 평화와 안보의 문제로, 일관성과 한결 같은 자세, 결속을 필요로 한다”고 강조해 비핵화 촉진제로서 대북제재 완화 필요성을 역설했던 문 대통령과 달리 CVID까지 꺼내면서 확실한 비핵화에 더 방점을 뒀다.

엇박자가 감지된 듯한 이런 결과가 나온 데 대해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프랑스 입장에선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안에 쓰인 문구를 그대로 인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양국 공동성명에 CVID가 포함된 이유를 해명했다.

그러나 이틀 뒤 마크롱 대통령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가진 정상회담에서도 미국의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를 뒷받침해 나가며 이를 위해 안보리 결의의 완전한 이행을 견지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의견 일치를 한 데 비추어 한·프 정상회담에서의 CVID 역시 ‘부득이’하게 형식적 차원에서 거론했다기보다 마크롱 스스로 여기에 중점을 두고 있어 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비단 프랑스 뿐 아니라 이런 기조는 또 다른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영국에서도 재확인됐는데, 아셈(아시아유럽정상회의) 참석차 벨기에 방문 중 문 대통령은 10일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를 두 차례나 만나 “북한이 계속 비핵화 조치를 추진하도록 국제사회가 유엔 안보리를 중심으로 견인책에 대한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며 사실상 대북제재 완화에 협조해 줄 것을 촉구했으나 메이 총리는 북한도 CVID를 위한 좀 더 확실한 행동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입장만 견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윤영찬 청와대 수석은 이번 역시 “우리 대통령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란 전제를 갖고 계신 거고, 총리께선 어떤 지점에 대해 구체적 명시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역시 공감하신 게 아닌가”라며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놨고, 문 대통령도 19일 아셈정상회의의 리트릿 세션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는 전면적 실천과 이행 단계에 들어갔다. 여건이 조성되면 남북은 본격 경제협력을 추진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다만 이런 주장이 무색하게 아셈 정상회의에선 끝내 북한을 향해 CVID 이행은 물론 인권개선까지 요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의장성명을 채택하며 문 대통령의 목소리와는 차이를 보였는데, 이에 대해 청와대 측은 “CVID는 안보리 결정으로 유엔 결의안에 포함된 용어”라면서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일부 일본 언론에선 이번에 이례적으로 한·EU 공동성명 채택이 불발된 것도 CVID 때문이라 지적했는데, 여기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CVID라는 표현 때문이 아니라, 이란 핵협정과 우크라이나 사태 부분에서 EU가 미국과 러시아 입장에 반하는 내용을 삽입하자고 강력히 주장해서 무산된 것”이라며 “다른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에 이미 그 표현이 들어 있어 굳이 뺄 필요가 없다. 명백한 오보”라고 반박했지만 논란은 쉬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런 논란이 벌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CVID보다는 제재 완화, 남북 경협에 더 중심을 두고 있는 문 대통령의 태도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는데, 그는 유럽 순방 마지막 방문국인 덴마크를 찾아가서도 P4G 정상회의 기조연설에서 “북한에 경제성장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성장모델을 적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며 라스무센 덴마크 총리와의 회동에선 “비핵화 프로세스와 그에 대한 미국의 상응조치(제재 완화) 등의 타임 테이블을 만드는 것이 2차 북미정상회담의 주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文 행보에 외신도 우려…야권 혹평 역시 줄이어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22일 비대위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22일 비대위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이처럼 벌써 대북제재 완화에 관심을 보이는 문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선 외신들조차 우호적이지 않은 반응을 쏟아내고 있는데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은 19일 보도를 통해 문 대통령이 이번 주 유럽을 방문해 유럽 정상들에게 대북 제재 완화를 설득했지만 실패했고, 이는 대북 제재를 지속해야 한다는 미국과 불편함을 야기할 수 있다고 일침을 가했고 워싱턴포스트도 북한이 구체적 비핵화 조치를 하지 않는데도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끌어안으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뿐 아니라 영국 매체인 파이낸셜타임스마저 22일 “두 오랜 동맹(한·미)이 북한을 다루는 데 있어 결정적 다음 단계를 둘러싸고 조용하게 분열하면서 수개월 동안 서울과 워싱턴 간 외교적 다툼이 비공개로 진행됐다”며 “북한에 대한 한·미 간 차이가 70년 한·미 동맹을 위험에 빠트리고 있다”고 우려를 드러냈다.

마찬가지로 정치권에서도 보수야권을 중심으로 비판적 평가가 나왔는데, 자유한국당에선 21일 윤영석 대변인이 논평을 통해 “유럽 방문에서 문 대통령의 성급한 대북제재 완화 주장은 효과가 없었고 우리나라가 북한 입장을 대변해 대북제재 국제공조를 이완시키려고 시도한다는 인상만 심어줬다”고 혹평했으며 22일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비대위 회의에서 아예 “대통령으로 순방하고 북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지, 북한 에이전트로 남북문제를 보고 다루는지 알 수 없을 정도”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바른미래당에서도 21일 이종철 대변인이 논평에서 “북핵 문제는 국제공조를 통해 풀어가야 하는데 주요 순방국 정상들 인식은 문 대통령의 구상과 사뭇 달랐다. 유럽 순방 평가가 아전인수식이 되는 것은 곤란하다”고 꼬집은 데 이어 손학규 대표도 2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성과에 급급해 조급하게 나서서는 안 된다. 유럽 지도자들은 하나 같이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불가역적 비핵화를 선행조건으로 제시하고 아셈 공동성명이 CVID를 요구한다고 들으며 국제사회의 인식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을 것”이라고 쓴 소리를 했다.

물론 성과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니어서 교황이 방북 의사를 내비쳤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부분으로 꼽히지만 이 역시 VOA에 따르면 교황청이 18일 밤 기자회견에서 “교황의 방북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려하기 시작한다면, 먼저 방북 성사를 위한 조건을 검토해야 한다”고 신중한 자세를 취했던 만큼 당장 추진된다고 보긴 어려운 상황이다.

◆ 지지율 올리던 해외 순방, 이번엔 ‘백약이 무효’…이유는?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조사한 문재인 대통령의 10월 3주차 국정수행 지지율 집계 결과. ⓒ리얼미터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조사한 문재인 대통령의 10월 3주차 국정수행 지지율 집계 결과. ⓒ리얼미터

더구나 여론의 관심이 대북 문제보다는 민생과 더 가까운 사회·경제 현안에 집중되어 있다는 실정도 문 대통령이 힘을 받기 어렵게 만들고 있는데, 실제로 유럽 순방이 이어진 지난 15~19일 CBS의 의뢰로 전국 성인 2505명을 조사해 22일 발표한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10월 3주차 문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율(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P,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에 따르면 긍정평가는 60.4%에 그쳐 3주 연속 하락세를 면치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급기야 대북제재 완화를 놓고 정치권 공방이 이어진 17일엔 60%로 떨어졌으며 문 대통령이 교황청에서 진행된 한반도 평화 특별미사에 참석한 18일엔 한국당에서 제기한 서울교통공사의 채용비리·고용세습 의혹이 한층 확대되는 한편 카카오 카풀앱 서비스에 반발한 택시업계 종사자들의 장외집회까지 겹쳐 한때 50%대(58.6%)로 내려앉기도 했다.

조사기관인 리얼미터 역시 이런 결과에 대해 “서울교통공사의 ‘일자리세습’ 논란, 카카오의 카풀앱 서비스에 반발한 택시업계의 대규모 장외집회, 정부의 ‘최저임금·소득주도성장’ 경제정책에 대한 야당의 지속적인 국감 공세 등 각종 논란과 사회적 갈등이 확대된 데 따른 것”이라며 대북 관련 외교보다 사회·경제 현안이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야권 역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22일 “문 대통령의 외교적 활약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은 악화된 경제 때문”이라며 “이제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경제”라고 충고하는 등 이런 지적에 힘을 싣고 있는데, 이미 2차 북미정상회담이나 종전선언의 연내 추진이 무산된 판국에 청와대가 뒤늦게라도 이 같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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