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양심적 거부는 종교적 자유 아닌 양심의 자유” - ‘영호와의 증인’3명에게, 법원 “대체복무제 마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양심적 병역 거부자 3명에 대해 법원이 그 동안의 판례를 깨고 처음으로 무죄를 선고해 파장이 예상된다. 법원, 양심적 병역 거부 첫 무죄 판결 서울남부지법 형사6단독 이정렬 판사는 지난 5월 21일 여호와의 증인 신자로서 병역을 거부한 혐의(병역법 위반)로 기소된 오모(22)씨에 대해 “병역법상 입영 또는 소집을 거부하는 행위가 오직 양심상의 결정에 따른 것으로서 양심의 자유라는 헌법적 보호 대상이 충분한 경우에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또한 역시 여호와의 증인 신자로서 병역을 기피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정모(23)씨와 예비군 소집 훈련을 거부한 황모(32)씨에 대해서도 각각 무죄를 선고했으나, 역시 같은 종교 신자인 조모(23)씨에 대해서는 "소명이 부족하다"며 법정 최고형인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재판부는 판결에서 “양심의 자유는 사물의 시시비비나 선악과 같은 윤리적 판단에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되는 내심적 자유는 물론, 이와 같은 윤리적 판단을 국가권력에 의해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제 받지 않는 자유 즉 윤리적 판단 사항에 관한 침묵의 자유까지 포괄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우리나라가 1990년 가입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국제인권규약 B) 제18조 2항에도 스스로 선택하는 신념을 가질 자유를 침해하게 될 어떠한 강제도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우리나라가 93년 이후 위원국으로 5번째 연임된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산하 인권위원회의에서도 계속적으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하면서 지난달 19일에는 이에 관한 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다"고 판결 배경을 설명했다. 법원, "헌법상 '양심의 자유' 보호 대상" 재판부는 “한해 600여명 안팎으로 추산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연간 징병인원30만여 명의 0.2%에 불과해 국가 방위력에 미치는 정도가 미미하고 국가를 위해 군인이 필요하다 해도 모든 국민이 군인이 될 필요는 없으며 대체복무제와 명확한 기준을 마련한다면 고의적 병역 기피자를 충분히 가려낼 수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어 “정당한 사유를 해석하기 위해 양심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 제19조만을 근거로 하였을 뿐 종교의 자유를 규정한 제20조 1항을 근거로 하지는 않는다”고 밝혀 특정 종교와 병역 거부를 연관지어 판단하지는 않았음을 밝혔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을 내리며 종교적 이유로 인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병역 거부자가 결심 과정과 이유에 대해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하며 병역 거부 전후의 사회 활동에 대해 충분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고 판단 기준을 분명히 했다. 서울남부지법은 지난 2002년 1월에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이모(21)씨가 “대체복무를 통한 양심 실현의 기회를 주지 않는 병역법 규정이 헌법에 위배 된다”는 신청을 받아들여 위헌심판 제청을 한 바 있다. '양심적 병역기피' 무죄선고 의미와 파장 - 국가보안법 존폐 논란에 영향 줄 듯 재판부는 판결에서 헌법상 양심의 자유에 대해 “신앙의 자유, 사상의 자유와 별개 조항으로 독립시킨 우리 헌법의 취지는 개인의 내심의 자유, 가치판단에는 간섭하지 않겠다는 원리의 명확한 확인”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는 민주주의의 정신적 기초가 되고 인간 내심의 영역에 국가 권력의 불가침으로 인류의 진보와 발전에 불가결한 것이 돼왔던 정신활동의 자유를 보다 완전히 보장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양심의 자유를 ‘양심 형성 및 결정의 자유, 양심을 지키는 자유, 양심 실현의 자유’로 보고, 양심상의 결정을 이유로 한 병역의무 거부는 양심을 지키는 자유와 양심 실현의 자유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어 지난달 19일 제60차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채택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결의안과 국제인권규약 B규약에 대해서도 무죄 판단의 근거로 받아들였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53개 이사국들은 유엔 인권위에서 캐나다와 영국 등을 포함한 34개국이 공동으로 제안한 이 결의안을 총의로 통과시켰다. 결의안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이 세계인권선언과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 규정하고 있는 사상, 양심, 종교의 자유에 대한 ‘정당한 권리 행사’임을 재확인하고 거부권의 인정과 대체복무제 마련을 각국에 거듭 촉구한 바 있다. 결의안을 공동으로 제안한 국가들에는 뼈아픈 내전의 상처를 입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아르메니아, 그루지야, 세르비아-몬테네그로 등이 다수 포함돼 있다. 재판부는 또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거나 소집에 불응한 경우만 처벌할 수 있도록 한 병역법에서 ‘정당한 사유’는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보다 더 폭넓은 개념으로, 병역 거부가 오직 양심상 결정에 따른 것이면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념적 자유’ 논쟁 불거질 듯 양심적 병역거부는 2000년 6백83명, 2001년 8백4명, 2002년 7백34명, 2003년 7백5명 등 매년 7백 명가량이 감옥행을 하고 있으며, 2004년 2월 현재 5백21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전국 교도소에 복역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과거 양심적 병역거부가 '여호와의 증인'들이 주를 이뤘던데 반해 최근에는 불교신자이자 평화운동가인 오태양씨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해 다른 종교단체로도 조심스럽게 확산되고 있으며, 최근 이라크전을 계기로 반전. 평화의 '정치적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까지 일어나고 있어, 법원이 이들에게 어떠한 판결을 내릴지도 관심사다. 여호와의 증인 창시자는 미국출생의 럿셀(Charles Taze Russell, 1852-1916)로 현재 미국 뉴욕에 본부인 워치타워를 두고 있다. 한국사회에는 1912년 홀리스터 선교사 부부가 내한하면서 전래됐다. 8.15광복 후 교단을 새롭게 정비해 1948년 정식 교단으로 창립됐고 현재 한국본부는 경기도 안성에 있다. 여호와의 증인에 따르면 신자는 9만2천여 명 가량 된다. '여호아의 증인'은 우상숭배를 거부한다는 뜻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 및 총을 들어야 하는 군 복무를 교리로 반대하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해왔다. 재판부는 특히 첨단 과학 무기와 장비가 주도하는 현대전 양상과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납세의 의무나 교육의 의무를 거부하거나 국가 존재 자체를 부인하지 않는 점 등에 비춰볼 때 안보를 이유로 양심적 병역 거부를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혀 국가보안법에 대한 논란에도 파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여호아의 증인 "양심과 인권 지킬 기회 제공한 전향적 판결" vs 병무청 “양심적 병역거부 계속 불인정” 사법부가 21일 종교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과 관련, 여호아의 증인은 “늦었지만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양심과 인권을 지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전향적 판결”이라며 환영했다. 여호아의 증인 뉴스서비스팀의 함길만(65)씨는 “이 판결을 계기로 다수는 소수의 양심을 존중하고 소수는 다수의 결정을 따르는 원만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자”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병역을 대체하는 대체복무법 제정에 힘쓰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병무청은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 대한 법원의 첫 무죄 선고에도 불구하고 병역거부권을 종전과 마찬가지로 계속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병무청은 21일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안보환경 속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한다면 병역의무 이행의 기본질서가 와해돼 국가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한다고 밝혔다. 병무청은 또 종교적 신념에 의한 대체복무를 인정할 경우 종교상 특혜시비가 있을 수 있는 만큼 병역의무의 형평성을 위해서라도 특정 종교인들에 대한 병역상 혜택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병무청은 종교를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양심’을 합법적인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할 소지가 크다며 ‘병역거부권 인정 및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반대해온 기존 입장을 앞으로도 고수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병무청은 이번 선고에 대한 검찰의 항고와 별도로 2002년 헌법재판소에 제청된 양심적 병역거부에 관한 헌재의 위헌법률심판 결과를 보고 필요한 조치를 강구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병무청 통계에 따르면 병역거부자는 2000년 1명에 불과했으나 2001년 379명, 2002년 825명, 2003년 561명, 2004년 3월 현재 73명 등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