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훈련 재개·남북철도 이견부터 5·24 조치 해제 논란에 이르기까지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좌)과 문재인 대통령(우)이 대화하고 있는 모습. ⓒ청와대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좌)과 문재인 대통령(우)이 대화하고 있는 모습. ⓒ청와대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그간 북한 비핵화 문제에 있어 상호 긴밀하게 조율해 온 것으로 알려졌던 한미관계가 실상은 그 이면에서 균열을 내왔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이 수차례 先 비핵화, 後 보상 원칙을 천명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가 이에 대한 보조를 맞추지 않은 채 무리하게 남북관계 개선 및 교류사업 재개에만 속도를 올리면서 오히려 한국이 전방위적 대북 제재에 구멍을 만드려는 게 아니냐는 미 측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美의 ‘속도조절’ 당부에도 文 정부 ‘일방통행’ 모양새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에도 다시 막혔던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3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물꼬를 트면서 다시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가능성도 열리게 됐지만 이 과정에 이르기까지 그간 수차례 한미 사이에 엇박자가 나오면서 양국 간 소통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일각의 지적이 있어왔다.

일례로 싱가포르에서의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한을 안심시키기 위해 일시 중단했던 한미연합훈련을 놓고도 지난 8월 28일(현지시간)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한반도에는 항상 진행 중인 훈련이 있다. 현재로서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더는 중단할 계획이 없다”고 천명했으나 하루 뒤인 29일 우리 국방부는 금시초문이라는 듯 “한미 간에 논의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심지어 당시 청와대 역시 김의겸 대변인이 춘추관 정례 브리핑에서 ‘사전 논의가 없었는데 그런 말이 나온 것은 한미공조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자 “아니다”라고 반박했을 뿐 발언이 나오게 된 이유와 배경에 대해선 이렇다 할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이 뿐 아니라 4·27 판문점 선언 이행 차원에서 정부는 동해선 및 경의선 등 끊어졌던 남북 간 철도를 연결하고자 남북 철도 공동점검 사업을 추진하려 했으나 8월 말 유엔사령부에서 자신들이 관할하는 비무장지대를 통과하기에 추가 설명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어 제동을 걸었던 적도 있었는데, 이 역시 사실상 유엔사를 지휘하는 미국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것이란 해석이 나왔었다.

이런 불신은 북한을 바라보는 한미 간 시각차 때문에 빚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철도연결과 마찬가지로 판문점 선언을 통해 남북 간 합의됐던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재개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는 개소 준비를 위해 북측으로 반입되는 각종 설비는 유엔 제재와 무관하다는 입장을 견지해 유엔 안보리에 제재 예외 신청조차 하지 않고 추진했으나 미 측은 “남북관계 발전은 비핵화 진전과 함께 가야 한다”며 경고해 결국 연락사무소도 당초 목표와 달리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직전에야 열리게 된 바 있다.

한미 간 파열음은 비단 이에 그치지 않았는데, 2차 남북정상회담 결과 발표된 남북 군사합의서를 놓고도 사전 조율이 없었다는 미 측의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 지명자는 남북 군사합의서에 나온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 축소 사안과 관련해 미 상원 군사위원회 인준청문회에서 질문 받게 되자 “DMZ 내 모든 활동은 유엔사령부 관할”이라며 “그들(남북)이 대화를 계속 하더라도 모든 관련사항은 유엔사령부에 의해 중개·판단·감독·집행돼야 한다”고 입장을 내놨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는 9월 평양 남북공동선언을 실질적 종전선언이라고 평한 청와대 측을 겨냥한 듯 “남북 간 평화협정은 두 나라 사이의 직접적 합의로, 그것은 유엔 안보리 결의안 84호에 따라 1953년 이뤄진 정전협정을 없애진 못할 것”이라며 “두 나라가 하는 것은 정전협정과 직접적 연관성이 없다”고 남북 합의사안의 의의를 평가 절하했다.

하지만 이런 목소리에 대해 지난 28일 국방부의 최현수 대변인은 “GP 철수 등을 포함한 모든 군사 분야 합의서 체결에 관해서 유엔사와 그간 긴밀히 협의를 해왔다”며 전날 저녁 한미 국방장관이 전화로 논의했고 최근 정경두 국방장관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를 방문한 자리에서 유엔사 부사령관도 남북 간 군사 합의 내용을 적극 지지한다고 말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정작 유엔사 부사령관인 웨인 에어 캐나다 중장도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의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북한이 왜 그렇게 열심히 종전선언을 추진하는지 의문을 품어야 한다. 종전선언은 한반도에 미군이 주둔하는 것을 문제 삼는 ‘위험한 비탈길’(발을 들이면 돌아오기 어려운 길)이 될 것”이라며 “낙관론자들은 그 사람(김정은)이 북한 내부용으로 종전선언을 필요로 한다고 말하지만, 비관론자들은 그것을 동맹을 갈라놓으려는 또 다른 술책이라고 말한다”고 북한에 대해 회의적 시각을 드러냈다.

◆ 강경화 ‘5·24조치 해제 검토’ 발언에 앙금 폭발한 美

10일 오전 서울 도렴동 외교청사에서 열린 2018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 김경수 기자
10일 오전 서울 도렴동 외교청사에서 열린 2018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 김경수 기자

이렇듯 계속해서 한미 간 이견이 나오던 이유는 지난 10일 일본 언론인 니혼게이자신문의 보도를 통해서야 분명하게 확인됐는데,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말 강경화 외교부장관과의 통화에서 평양 남북정상회담 결과인 남북 군사 분야 합의문과 관련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고 강하게 힐난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비록 남북 간 합의 내용이지만 주한미군 역시 적용대상으로 포함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는데, 그 중 군사분계선(MDL) 일대를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함으로써 미군 정찰자산도 무력화시킨 데 대해 강력한 불만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정부가 핵심사안인 이 부분에 대해선 불과 남북 군사합의 이틀 전에야 미국에 알려 주한미군 측과 52차례에 걸쳐 긴밀히 협의해왔다는 우리 국방부 발표를 무색케 만들었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강 장관은 10일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폼페이오 장관이 남북군사합의서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느냐’고 묻는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의 질의에 “맞다”고 시인하면서도 “군사합의서 관련 통화는 정상회담 이전이었고 회담 이후 통화에선 폼페이오 장관이 제가 설명한 부분에 대해 듣고 문 대통령의 노력과 결과에 고맙다는 얘기가 있었다”고 부연했다.

다만 일본 언론의 보도가 나왔을 당시 외교부는 공식 논평을 통해 “정부는 남북군사회담 등 군사분야 합의서 체결을 위한 모든 과정에서 미측과 긴밀히 협의해 왔다”며 “폼페이오 장관이 힐난, 격분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해 강 장관 발언과 엇박자를 냈다.

한미 양국 간 균열이 극명하게 확인된 그 절정은 이날 국감장에서 강 장관이 번복했던 5·24조치 해제 관련 발언이었는데, 강 장관은 ‘5·24 조치 해제 용의가 있느냐’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질문에 “관계 부처와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가 엄청난 후폭풍을 맞았다.

특히 금강산 관광이 (국제사회의) 제재 위반인지, 관광객이 물건을 사는 건 제재 위반인지를 묻는 이 대표의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변하면서 이런 발언을 해 금강산 관광 재개를 염두에 둔 ‘떠보기’ 아니냐는 의혹까지 불거졌는데, 사안의 심각성 때문인지 강 장관은 야권의 거센 항의를 받자 “기록은 관계부처‘와’로 돼 있지만 관계부처‘가’가 제 뜻”이라며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고 추가 답변에서 범정부 차원의 검토가 없다고 분명히 말씀드렸다”고 한 발 물러섰다.

그럼에도 논란은 쉬이 진화되지 않고 오히려 미국으로까지 불이 옮겨 붙었는데, 지난 10일(현지시간) 백악관 기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강 장관의 ‘5·24조치 해제 검토’ 발언과 관련해 질문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자칫 ‘주권 침해’ 논란이 일 수 있는 표현임에도 “그들은 우리의 승인 없이는 그걸 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못을 박았다.

사실 5·24조치는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우리 정부에서 독자적으로 내놓은 대북제재 조치였기에 실질적으로 미국이 해제를 막을 권한은 없지만 굳이 이렇게 나온 것은 아직 북한 비핵화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견 북측에 제재 완화의 신호탄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줄 수 있는데다 궁극적으로 북한에 자금이 흘러들어갈 여지를 남겨 유엔 제재에도 사실상 구멍이 뚫리게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 ‘제재’ 옥죄는 美와 상반된 정부 태도 겨냥 野 비판 이어져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2일 오전 국감대책회의에서 정부여당의 경솔한 대북 관련 발언을 비판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2일 오전 국감대책회의에서 정부여당의 경솔한 대북 관련 발언을 비판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이미 대북제재에 대한 한미 간 입장차는 여러 면에서 그 간극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데, 지난 10일 강 장관은 800만 달러규모의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 진행 여부에 대한 이석현 민주당 의원의 질문이 나오자 유엔사무총장과 문 대통령 간 면담 당시 발언을 들어 “북한이든, 수요가 있는 나라에 대해 유엔이 인도지원을 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라고 얘기했다”며 “집행을 준비하고 있지만 여러 여건을 고려해 결정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입장을 내놨다.

반면 11일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최근 몇 주간 최소 5개 구호단체 활동가들이 북한을 방문하기 위해 신청한 특별승인 여권 발급조차 폼페이오 장관의 지시로 거절하는 등 인도주의적 지원을 목적으로 한 구호단체 방북도 불허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동아일보와 자유한국당 김선동 의원이 확인한 자료에 따르면 미 재무부는 남북 정상의 평양공동선언 발표 직후인 지난달 국내 은행들을 접촉해 북한 관련 사업을 문의하는 등 대북제재 이행 상황을 집중 파악하면서 유엔과 미국의 제재 사항을 은행들에 설명하는 회의까지 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대북제재를 놓고 상호 불신의 골이 깊어지며 곳곳에서 한미관계에 적신호가 감지되는 모양새인데, 정치권 역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 들어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12일 국감대책회의에서 “트럼프의 ‘승인’이란 표현은 외교적 결례지만 대북제재에 관한 국제사회의 공감대 없이 일방적으로 해제하려는 정부가 자초한 측면도 더 크다”며 “이 정권이 대북문제를 얼마나 가볍게 바라보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정부에 직격탄을 날렸다.

여기에 바른미래당에서도 같은 날 손학규 대표가 “우리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한반도 문제이니 여유를 갖고 천천히 가시기 바란다”고 당부했으며 같은 당 정병국 의원도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5·24 조치 해제 시점은 유엔 제재를 푸는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야 된다”고 속도조절을 주문했다.

아예 외통위 소속 박주선 의원은 “(미국이) 이것은 도대체 한국이 한미동맹 국가인지, 남북동맹 국가인지 알 수가 없다. 미국 정책에 정면 배치가 된다. 이렇게 하면서 굉장히 한국에 대한 불신 내지는 불만을 표출하면서 경고를 보낸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성격이나 그동안의 말씀을 함부로 한 것을 보면 그런 자초지화는 우리한테 책임이 먼저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야권의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 논란을 촉발시킨 외교부에선 11일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에 대해 논평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말을 아낀 데 반해 청와대는 같은 날 “모든 사안은 한미 간 공감과 협의가 있는 가운데 진행하겠다는 뜻으로 ‘한미 간 긴밀하게 협의하고 있다’란 의미”라고 아전인수식으로 강변했는데, 당장 오는 15일 남북은 평양선언 이행을 논의할 고위급 회담을 개최하기로 하고 남북 철도 공동조사도 이달 내 실시키로 결정해 다시 미국과 갈등을 빚게 되는 것 아닌지 적잖은 우려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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