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무감사 여파 감안해 일괄사퇴案 택했으나 ‘용두사미’ 결과 우려도

김병준 한국당 비대위원장의 모습. 사진 / 오훈 기자
김병준 한국당 비대위원장의 모습. 사진 / 오훈 기자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인적청산엔 조심스러워 하며 가치 기준 정립에만 무게를 두어오던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가 마침내 별러오던 칼을 꺼내들 모양새다.

사실 전당대회가 내년 초로 예정된 만큼 그간 미루고 미뤄온 끝에 이제야 ‘올 것이 온 셈’이긴 해도 이미 일각에선 관련 조치를 취하고 있는 비대위에 크게 반발하고 있어 겨우 ‘과도기적’ 성격인 지도부가 과연 이를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속도 우선해 ‘일괄사퇴’案 강행…‘의견 수렴 미흡’은 문제

당초 이르면 내달부터 전국 253개 당협에 대한 당무감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던 한국당 비대위는 지난 17일 황윤원 중앙대 교수를 당무감사위원장에 임명하는 등 그동안 예고했던 대로 전국 당협위원장들에 대한 심사에 들어갈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비대위는 20일 돌연 당무감사를 백지화하고 내달 1일부로 231곳의 당협위원장을 일괄 사퇴시키기로 했다며 방침을 바꿨는데, 당무감사를 강행할 경우 그 결과에 따라 홍준표 전 대표 재임 당시와 같은 내홍이 곧바로 재발할 가능성도 없지 않은데다 공고 뒤 60일 이후부터 실시할 수 있는 당무감사에 비해 신속하게 조직을 정비할 수 있어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런 조치는 관련 당사자들의 의견 수렴을 거치지 않은 채 사실상 톱다운으로 진행된 것이다 보니 당장 내부 반발이 일어났는데, 평소에도 비대위 측에 날선 비판을 가해온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20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런 비민주적이고 무지막지한 폭거는 제가 당에 입당한 25년 동안 듣도 보도 못한 일”이라며 “한국당에서 가장 먼저 쫓겨나야 마땅한 사람은 김병준 비대위원장”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김 전 지사는 “지금 제1야당으로서 반 김정은, 반 문재인 투쟁에 전념해야 할 때인데 한국당 당협위원장을 내부에서 무조건 전원 학살하는 만행은 그 자체가 가장 악질적인 이적행위”라며 “노무현 청와대 정책실장을 역임했던 김 위원장이 한국당 비대위원장이 되고 나서 한국당은 제1야당, 대안 야당이 아니라, 노무현 2중대 이미지만 풍기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뿐 아니라 같은 날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에서도 이 같은 ‘의견수렴 미흡’ 문제를 놓고 일부 논쟁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심재철 의원은 의총 직후 기자들과 만나 “미리 설명을 해주고 양해해달라고 하면 몰라도 비대위의 가치좌표 정립이 중요하고, 인적쇄신은 별 일이 아니라고 하셨던 분이 (당협위원장 일괄사퇴는) 본인 말과도 안 맞고 대체 무슨 일인지 의문”이라며 “사람들이 쉽게 수긍이 안 되니까 (의원) 5~6명이 오늘 발언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박덕흠 한국당 비대위원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박덕흠 한국당 비대위원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심지어 지도부 내 박덕흠 비대위원조차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 김 위원장이 ‘일괄사퇴’ 근거로 꼽은 지방조직운영규정 28조를 꼬집어 “시·도당 위원장 의견 청취 후 비대위에서 당협위원장을 사퇴시킬 수 있다는데, 이 규정의 취지는 문제가 있는 당협위원장을 사퇴시킬 수 있다는 의미”라며 “당헌·당규를 보니 당협위원장 일괄사퇴 규정이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 김병준號 ‘특정 계파 청산’ 시선 경계…조강특위 과반, 외부인사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괄사퇴’안을 밀어붙이겠다는 김 위원장의 의지는 확고했는데, 그는 20일 오전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반대나 미온적인 분들이 없을 수 없겠지만 당이 비상사태이기에 선당후사의 정신에서 이해해주시리라 이해한다”며 “(당무) 감사 후에 다시 조직강화특별위원회(조강특위)를 구성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보다 조강특위를 거쳐 우선 재임명 절차를 빠르게 밟고 당이 안정되도록 할 것”이라고 입장을 내놨다.

특히 김 위원장은 인적청산이란 시각을 의식한 듯 “특정인이나 특정 계파를 지목해 처리하는 것이 아니다. 매년 하는 당무감사와 거의 같은 성격”이라며 “그동안 비전과 가치를 설정하는 작업 등 당내 혁신을 하면서 ‘인적쇄신을 하겠다’고 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래도 논란이 끊이지 않자 그는 같은 날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단순히 인적쇄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당협 운영의 새로운 관행과 질서를 만들어 간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새로운 정치와 정당을 만들기 위한 고민과 고통으로 이해해 달라. 매년 당협을 제대로 평가하게 되면 더 높은 긴장 속에서 당협을 운영하는 관행이 생기고, 그간 매년 비판받아왔던 당의 뿌리 깊은 웰빙 체질도 개선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거듭 설명했다.

문제는 결국 교체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될지가 관건인데, 74명을 교체한 홍준표 체제 하 당무감사 당시 현역은 4명에 그쳤음에도 내홍이 일어났던 점에 비추어 우선 반발이 클 현역 의원들은 이번엔 거의 건드리지 않은 채 원외 인사들 정도나 교체하고, 어차피 내년 초에 바로 차기 지도부를 선출한다는 점도 고려해 대규모 교체에 이르진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현재 253명의 당협위원장 중 현역 의원 90여명을 제외하면 원외는 160여명으로, 어느 지역이 주요 표적이 될지 벌써부터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데 “당협위원장 임기제(1년)를 철저하게 적용하겠다”고 밝혀왔던 김 위원장 발언을 감안했을 때 현재로선 PK(부산·울산·경남)지역이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앞서 대선에서도 사상 최초로 진보 후보인 문재인 대통령이 이 지역에서 승리했을 뿐 아니라 6·13지방선거에서도 대거 참패했기 때문인데,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홍 전 대표는 대표직에서 물러났지만 홍 전 대표에게 공천권을 받았던 당시 당협위원장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어 상대적으로 교체 명분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대규모 교체나 별 혁신적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결과라면 여론의 관심과 지지를 끌어오기 어렵다는 딜레마도 있어 비대위가 상징적 의미의 인적청산이라도 단행하지 않겠느냐는 견해 역시 없지 않은데, 현재 교체 기준을 세우는 조강특위의 위원장을 비박계인 김용태 사무총장이 맡고 있기에 사실상 친박계를 겨냥하지 않겠느냐는 의심 어린 시선이 나오고 있다.

김용태 한국당 사무총장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 / 오훈 기자
김용태 한국당 사무총장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 / 오훈 기자

물론 김 총장은 이런 시각도 염두에 뒀는지 21일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조강특위를 7인 이내로 선임하고 당연직인 전략부총장, 조직부총장 외에 4명을 ‘공정과 변화’에 부합할 수 있는 외부인사로 모실 것”이라며 “특히 외부인사는 국민이 기대하는 변화와 혁신을 담보할 수 있는 인사로 선임하겠다”고 밝혀 일찌감치 공정성 논란을 일축했다.

◆ 당협위원장, 청년·여성 비율 높여 ‘당 쇄신’ 부각 전망

또 김 총장에 따르면 향후 조강특위의 당협위원장 교체작업은 당 사무처 당직자 40명 내외로 구성될 현지 실태조사단이 1차 실태조사를 진행해 각 지역의 당협위원장 교체 여부를 분류하게 되고, 교체가 필요한 곳은 정밀실사를 진행한 뒤 새 당협위원장 공모절차에 착수하는 두 단계로 실시될 예정이다.

아울러 김 총장은 “최종단계로 우리의 모든 변화의 의지와 내용을 담은 당헌당규 개정안을 12월 말까지 만들겠다”며 “개정안은 전당대회 준비위원회에 전달하고 당내 구성원과 논의해 2월로 예정된 전당대회에서 통과시키고 새로운 리더십이 선출되는 전당대회를 추진하겠다”고 덧붙여 올해 안으로 조직혁신 작업을 마무리 짓겠다는 뜻을 확실히 못 박았다.

그러면서도 가장 핵심인 심사 기준에 대해선 대체로 말을 아꼈는데, 이미 김 위원장이 “새로운 가치를 세우는 과정에 얼마나 동참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밝힌 데 이어 “강도는 좀 강할 수 있다는 정도로 이해해 달라”고 언급해온 데 미뤄 볼 때 예년 기준과는 어느 정도 차별화되지 않겠느냐는 분석이 적지 않다.

실제로 이런 차원에서 공천시스템 개혁 소위는 청년과 여성의 비율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해온 것으로 알려졌는데, 김 위원장도 20일 당 청년특별위원회 ‘+청년바람 포럼’에 참석해 “당의 의사결정에는 전혀 관여도 못하고 젊은이들을 그렇게 대접하는 법이 어디 있는지 여러분들이 그렇게 얘기하지 않나”라며 “젊은이들이 제대로 자기 의견을 개진하고 실제 젊은 정치인들이 나올 수 있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야 되겠다”고 청년층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을 한 바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실무를 담당한 김 총장도 21일 기자간담회에서 “그동안 여성과 청년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가산점 이야기도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약속이 안 지켜진 게 사실”이라며 “한국당은 보수정당 최초로 조직국장에 여성을 임명했다. 당협위원장 교체 과정에서 두려움 없이 여성과 청년들이 응모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만들 것”이라고 천명함으로써 청년·여성이 ‘당의 변화’을 어필할 주요 요소에 포함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불과 몇 달 뒤인 내년 2월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될 새 지도부의 성향에 따라 당내가 또 다시 재편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소위 조강특위의 이번 당협위원장 심사는 결국 변화를 보여주지 못하고 ‘용두사미’에 그치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없지 않아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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