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언급했으나 핵시설 폐기엔 조건 걸어…野 반응도 제각각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한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9월 평양공동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한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9월 평양공동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평양에서 진행된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연내 서울 방문 등 ‘깜짝 뉴스’가 쏟아진 가운데 이번 회담을 통해 발표된 사항들이 향후 어떤 파장을 미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핵심 의제인 ‘비핵화’, 공동선언서 김정은이 육성 거론

이번 회담은 앞서 4·27판문점 선언에서도 나왔던 문 대통령의 ‘가을 방북’ 약속을 지키는 차원도 있지만 지난 8월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이 전격 취소된 이후 막혀 있던 북미협상 국면을 풀기 위한 중재의 자리도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김 위원장이 비핵화 조치에 분명히 나설지 관심이 집중돼 왔다.

특히 이번 회담 결과에는 판문점 선언이나 싱가포르에서의 북미 정상회담보다는 한 발 더 나아간 비핵화 의사가 담겨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좀 더 구체적인 표현이 나와야 했는데, 이미 판문점 선언에서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는 선언적 성격의 내용이 있었고 북미정상회담에서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김정은의 확고하고 흔들림 없는 약속을 재확인했다’는 포괄적 차원의 결과만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북한은 ‘종전선언’을, 미국은 ‘확실한 검증’을 서로 요구하며 평행선만 달렸는데 그래선지 트럼프 정권에 호의적이지 않던 미 언론에서조차 결국 과거와 같은 ‘시간 끌기’ 전략 아니냐는 회의적 시각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북한 정권수립 70주년인 9·9절에 러시아 대표단을 이끌고 평양을 찾았던 발렌티나 마트비옌코 러시아 상원의장도 문 대통령의 방북 일주일 전인 지난 10일(현지시간) 귀국 뒤 “북한 지도자는 상호 존중하는 대화와 상호적 행보에 응할 준비가 돼 있으며 상응하는 반응이 없는 어떤 일방적 행보도 취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자신은 이해했다”면서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제재 완화와 같은 화답적이고 단계적이며 동시적 행보를 기다리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해 북한이 선제적 비핵화 조치에 나서길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았다.

이런 기류 속에 미국 역시 문 대통령의 방북 직전인 17일 북한에 대한 제재를 의제로 유엔 안보리를 긴급 소집해 제재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며 러시아와 중국을 맹비난했는데, 이는 남북 회담을 앞둔 시점에 비핵화 조치를 분명히 밝히도록 북한을 거듭 압박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 같은 과정 속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인 만큼 핵 리스트 제출이나 분명한 비핵화 완결시점 표명을 비롯한 구체적인 부분이 나올 것인지 여부가 주요 관건이었는데,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19일 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남과 북은 처음으로 비핵화 방안도 합의했다”며 “북측은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발사대를 유관국의 전문가들의 참여 하에 영구적으로 폐쇄하기로 했고 또 미국의 상응 조치에 따라 영변 핵시설의 영구 폐기와 같은 추가적 조치도 취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김 위원장 역시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 나가기로 확약했다”며 본인 육성을 통해 비핵화 표현을 분명하게 거론했는데, 다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저마다 해석 여지가 다를 수 있는 단어들이 포함되어 있어 분명한 비핵화가 이뤄질 수 있을지 회의적인 목소리도 당장 쏟아졌다.

◆ ‘참관’과 ‘상응조치’, 비핵화 여부 가늠 할 주요 변수

이 중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참관’과 ‘미국의 상응조치’로, 이번 9월 평양공동선언문에서 나온 구체적 조치인 동창리 엔진시험장·미사일 발사대 폐쇄는 유관국의 전문가 참관 하에 우선 영구 폐쇄한다고 나왔는데 전문가의 참여란 부분은 이전보다 진전된 부분이지만 전문가들의 북한의 미사일 기술 수준을 확인·검증하는 자리가 되기보다 ‘참관’이기에 앞서 풍계리 핵실험장 때처럼 폐쇄 절차를 멀리서 바라보는 형태에 그칠 것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보다 더 문제 되는 대목은 ‘미국이 6.12 북미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이란 전제조건을 달았다는 건데, 싱가포르 북미회담을 통해 나온 6·12 북미공동성명에서도 CVID 중 ‘완전한 비핵화’는 언급됐지만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이란 부분은 포함되지 않은 채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한다는 내용만 있어 비핵화 검증이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는 만큼 이 성명을 북한이 다시 강조한 데에서 비핵화라는 염불보다 체제보장이란 잿밥에 관심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다만 북측이 미국에 이행을 촉구한 6·12 북미공동성명엔 대북 제재를 완화·해제한다는 명시적 표현이 없다는 점에서 미국도 이번 평양공동선언에 대한 북측의 분명한 설명이 나오기 전까진 대북제재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런 점에 비추어 이번 선언문에 나온 ‘북미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른 상응조치’란 건 대북 제재 해제라기보다 판문점 선언에서 천명한 ‘연내 종전선언’을 요구한 것이라 해석되고 있다.

정의용 안보실장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시사포커스DB
정의용 안보실장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시사포커스DB

이미 19일 남북정상의 기자회견 직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상응조치’가 무엇인지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종전선언을 포함한 여러 가지 방안들이 검토될 수 있다”며 일단 ‘종전선언’도 포함시켜놨다는 점 역시 이런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이렇게 되면 비록 영변 핵시설 폐쇄 가능성을 열어놓긴 했어도 이전처럼 체제보장 조치를 먼저 하라던 북측의 기존 주장에서 나아간 건 없기에 선제적 핵 검증을 요구해온 미국의 생각과는 간극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의식했는지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확정적’ 표현을 사용한 반응을 트위터를 통해 내놓으면서 압박수위를 높였는데, “김 위원장이 최종 협상에 따라 핵 사찰을 허용하고 국제 전문가들이 보는 앞에서 시험장과 발사대를 영구히 해체하기로 합의했다”며 평양공동선언문에서 조건부로 언급된 영변 핵 시설 폐기를 일방적으로 ‘핵 사찰’이라고 해석했다.

무엇보다 핵 개발 관련 내용을 신고하고 살펴본다는 점에서 핵 사찰은 단순한 ‘핵 시설 폐기’란 표현보다는 기술력 확인이란 부분이 부각되는데, 김 위원장이 이런 점은 일언반구 거론하지 않았음에도 굳이 사찰이라고 명시함으로써 이번 회담 결과를 미국에 설명할 우리 측으로서도 상당히 난처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뿐 아니라 북측이 이미 보유 중인 핵무기들에 대해선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 역시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기존 핵무기들은 북측이 스스로 공개하지 않는 이상 정확히 알 방도가 없고 현재 비핵화 조치로 내놓은 ‘발사장·실험장·시설 폐기’ 등의 핵·미사일 개발 역량 폐기는 향후 국면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재건하면 되기 때문이다.

◆ 야권도 ‘평양공동선언’ 결과 놓고 평가 엇갈려

이처럼 해석이 분분한 선언문이 나오다 보니 야권에서도 저마다 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는 실정인데 당장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에선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날 오후 긴급 의원총회에 참석해 “김 위원장이 육성과 문서로 비핵화를 약속한 점은 일단 변화된 부분”이라면서도 “그러나 기본적으로 미국의 상응조치를 요구하는 이런 부분을 보면 오히려 1차, 2차의 선언보다도 후퇴했다”고 지적했다.

뒤이어 같은 당 김성태 원내대표도 “핵물질, 핵탄두, 핵시설 리스트에 대한 신고는 일언반구도 없이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 폐기로 비핵화 시늉만 하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문재인 대통령은 그대로 고수했다”며 “비핵화 협상의 당사국인 미국이 종전선언의 조건으로 요구해온 핵 신고 제출에 대한 약속은 다 빠지고, 북한의 핵 신고 과정을 핵시설, 보유 핵무기, 핵물질로 단계적으로 쪼개 각 과정에서 미국의 보상체계를 명시하는 단계적 비핵화 방안, 그동안 북한이 고수해온 살라미 협상전술을 그대로 받아들인 공동선언”이라고 질타했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가 19일 발언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가 19일 발언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한 발 더 나아가 김 원내대표는 이번 회담에서 남북이 서명한 군사 분야 합의까지 꼬집어 “비핵화에 대한 아무런 실효적인 조치 없이 군사적 긴장완화를 명분으로 사실상 무장해제를 섣불리 받아들이고 있다는데 대해서 깊은 우려와 유감을 넘어 개탄하고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며“군사분계선 상공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고 정찰자산의 임무를 봉쇄하는 것은 북은 여전히 핵을 손에 쥐고 있는 마당에 우리만 눈을 감으라는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비단 한국당 외에 바른미래당에서도 같은 날 손학규 대표가 브리핑을 갖고 “비핵화에 대한 아무런 구체적인 진전이 없고 비핵화와 관계 없이 남북관계에 속도를 내겠다는 합의”라며 “이러한 합의가 과연 국제사회의 동의 아래 제대로 진전될 수 있을지 걱정된다. 대단히 실망스러웠다”고 혹평을 쏟아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손 대표는 개성공단 재가동 등을 예로 들어 “비핵화 진전과 대북 제재의 완화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 현실인데 비핵화 교착과 무관하게 남북 관계의 속도를 내겠다는 것은 향후 한미 공조에 어려움을 주고 국내적으로도 여야, 진보/보수의 초당적 협력을 불가능하게 할 것”이라며 “금년이 가기 전에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에 온다고 하니까, 비핵화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인 방안을 가져오길 바란다”고 일침을 가했다.

반면 민주평화당에선 최경환 최고위원이 “한반도 비핵화 관련 동창리 엔진 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영구적으로 폐기하기로 하고 북측이 영변 핵시설의 폐기 용의를 밝힌 것은 의미 있는 성과”라며 “오늘의 합의로 북미 대화의 지렛대, 징검다리를 놨고 6.12일 싱가포르 북미회담이후 교착상태에 있던 북미대화를 재개할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 냈다”고 회담 결과를 극찬해 완전한 대조를 이뤘다.

한편 청와대는 이날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는 영변 핵시설 폐기 의지를 밝힘으로써 북한 핵 불능화의 실천적 단계로 돌입했으며, 군사적 긴장 완화에서는 실질적 불가침의 제도화 방안을 제시했다”며 “영변 핵 시설의 불능화는 앞으로 신규 핵물질 생산하고 무기를 개발하는 근원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지라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윤 수석은 현재 보유한 핵 폐기 관련 얘기가 없었다는 지적엔 “현재 핵에 대한 부분은 앞으로 북미 대화의 진척에 따라 달려있다”며 “대화를 하다보면 단계적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다소 낙관적인 답변만 내놓는 데 그쳐 이번 회담으로 북미 대화가 재개돼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인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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