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일방 통행식 협조 요청에 ‘뿔난’ 野…‘판문점 선언 비준’도 악영향 받을 듯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국무회의에서 국회을 향해 평양회담에 동행해달라고 호소했다.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국무회의에서 국회을 향해 평양회담에 동행해달라고 호소했다. ⓒ청와대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정치권이 남북정상회담 동행 사안과 판문점 선언 비준 동의안 처리 문제를 놓고 여전히 여야 간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무엇보다 청와대가 제대로 된 협의 없이 ‘일방통행’한다는 인상을 받은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에서 크게 반발하며 응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속 타는 청와대는 급기야 정무수석까지 국회로 보내 설득에 나섰지만 방북은 사실상 물 건너 간 모양새이고, 판문점 선언은 정상회담 이후로 연기했다지만 이 역시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 靑 비서실장에 정무수석까지 나섰지만 ‘결례’ 논란 왜?

지난 10일 오후 청와대에선 돌연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문희상 국회의장을 비롯한 의장단과 강석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이상 9명을 특별히 국회 정당 대표로 초청하고자 한다”며 3차 남북정상회담에 원내 주요인사들도 동행해 줄 것을 요청했다.

특히 임 실장은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나서는 정상회담에 입법부가 ‘따라가는’ 모습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을 의식한 듯 “이분들을 별도로 국회정당 특별대표단으로 구성하는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며 야당 인사가 포함되는 데 대해서도 “우리가 알아서 구성하기로 한 것이라 저희 권한에 속해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은 전혀 사전조율 없던 제안이었던지 당장 야권을 중심으로 당혹감을 넘어 불쾌하다는 반응까지 쏟아지면서 판문점 선언이란 정쟁의 불씨를 잠시 연기하며 안정되는 듯했던 정국이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제1야당인 한국당에선 김성태 원내대표가 같은 날 “불과 6일을 남겨두고 현재 남북 정상회담에 각 정당 대표도 같이 참여하라, 이게 말이 되는 얘긴가”라며 “정쟁을 유발하지 않기로 큰 틀의 뜻을 모으지 않았나. 국회의장, 각 당 대표를 이렇게 끌어넣는 건 상당히 정략적”이라고 비판한 데 이어 한국당 차원에서도 신보라 원내대변인 논평을 통해 “회담 동행에 신경 쓰기보다 북핵 폐기를 위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실질적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낼지 더 고민해주기 바란다”면서 “한국당은 이번 동행 요청을 사양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직접 참석 대상자로 지목된 김병준 비대위원장 역시 같은 날 입장문을 통해 “협상과 대화의 주체는 단순할수록 좋다. 행정부가 실질적 비핵화를 추진할 수 있는 약속을 해오길 바란다”며 완곡하게 거절 의사를 표한 데 이어 11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자리에서도 “평양 동행은 설득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가 제대로 하면 된다”고 거듭 입장을 밝혔다.

다만 김 위원장은 “순서가 바뀌었으면 오히려 모양도 더 좋을 뻔했다. 먼저 야당에 얘기한 뒤 발표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며 일부 아쉬움을 드러내 청와대의 요청 방식에 따라 제안을 수용할 수도 있었다는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이 뿐 아니라 이 자리에 함께 한 김 원내대표도 “회담을 앞두고 이렇게 초청했다는 것은 서로 결례”라며 “청와대가 국회와 각 정당을 정상회담의 곁가지로 끌어넣는 모습은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11일 의원총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11일 의원총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바른미래당 역시 사전 언질도 없이 공개석상을 통해 갑자기 요청해온 데 대한 점을 문제 삼았는데 손학규 대표는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저는 분명히 안 간다는 입장을 전달했고 그 중간에 청와대나 어디로부터도 정당 대표 수행, 또는 동행에 대한 의견이나 제의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비서실장이 일방적으로 기자회견을 했다”며 “이건 기본적인 예의가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심지어 그간 정부의 대북정책에 협조할 뜻을 피력해온 하태경 바른래당 의원 역시 이날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와 “이렇게 청와대가 협치하면 안 된다. 청와대가 같이 가고 싶은 게 진심이 아닌 것 같다”며 “적어도 저한테 당 대표를 설득할 수 있는 명분이라도 좀 주면 내가 욕을 먹더라도 설득을 좀 하는데 이번에 너무 성의 없이 했다”고 청와대를 탓했다.

◆ 靑 ‘일방통행’은 野 압박하려는 정략적 의도?

한 발 더 나아가 이날 의총에 참석한 김동철 의원은 청와대의 제안에 대해 “비열한 정치공작”이라며 “‘평화냐 대결이냐’, ‘국민여러분 보십시오, 바른미래당은 평양에도 같이 가지 않고 판문점 선언에도 반대하는 걸 보니 평화세력이 아닌 것 같다’ 그런 걸 보여주려 하는 게 아니냐”라고 질타했다.

즉, 보수야당에서 어차피 거절할 것을 청와대가 이미 알면서도 ‘정략적 차원’에서 사전조율 없이 공개 제안하는 형태를 택했다는 것인데, 손 대표는 11일 한병도 정무수석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도 “야당에 자리를 만들어줬는데 거부했다는 말만 나는 효과를 바란 것 아니냐”며 이런 의심을 거두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한 수석은 “이런 일을 앞두고 여야 간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생각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고, 야당을 압박하는 것은 생각 자체를 할 수 없는 것”이라며 적극 부인했고, 집권여당인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아예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무례하고 정략적이라고 거부했는데,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주장”이라며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를 위한 초당적 협력은커녕 오로지 정략적으로 반대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역공을 펼쳤다.

또 ‘결례’ 논란에 휩싸인 임 실장은 같은 날 페이스북을 통해 “국회에서 놀란 사실 중 하나는 조정·타협을 통해 나눌 건 나누고 합할 건 합해내는 중진들의 능력인데, 언제부턴가 우리 정치에서 그런 중진 정치가 사라지고 이젠 좀처럼 힘을 합하는 장면을 보기가 어렵다”며 “우연인지 몰라도 주요 정당 대표들은 원로급 중진들로, 이분들의 복귀 목표가 권토중래가 아니라 희망의 근거를 보여주는 것이었으면 한다”고 러브콜을 보내 청와대의 강온 전략을 보여줬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선 이번 사안과 관련해선 청와대 측 책임이 크다는 시각이 중론인데, 임 실장의 공개 제안을 받은 문희상 국회의장조차 원래 민주당 소속이었음에도 “입법부 수장으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며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고, 한국당·바른미래당 소속의 부의장들도 한 목소리로 거부하자 공식 제의를 받은 지 불과 1시간여 만에 “동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빠르게 입장을 정리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홍영표 원내대표가 1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홍영표 원내대표가 1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끝내 국회의장단마저 불참하게 된 데 당황한 민주당의 홍 원내대표는 “야당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국회 부의장들이 안 간다고 하는데 혼자만 가기 어려워 최종적으로 그런 결정을 했다고 생각 든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으나 평양회담에 동행키로 결정한 이정미 정의당 대표까지 이날 의총에서 “국회의장단과 제 정당 대표의 동행 방북이 초유의 일인 만큼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이번 제안 과정에서 충분한 사전조율이 필요했다”고 꼬집었다.

비단 정의당 뿐 아니라 마찬가지로 평양회담 동행 결정을 내린 평화당 내에서도 박지원 의원의 경우 “세계 어느 나라가 대통령과 국회의장이 함께 외국을 방문한 사례가 있나. 방북이란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이건 아니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렇듯 청와대에 대한 국회의 시선이 싸늘해지자 결국 문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게 됐는데, 문 대통령은 11일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이처럼 중차대한 민족사적 대의 앞에서 제발 당리당략을 거둬 주기 바란다”며 “북미 대화의 교착도 풀기 위해선 강력한 국제적 지지와 함께 국내에서도 초당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국회 차원에서도 이번 정상회담을 국회 회담의 단초를 여는 좋은 기회로 삼아주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 ‘평양회담 동행’ 충돌로 판문점 비준 처리 역시 ‘안개 속’

이에 그치지 않고 문 대통령은 내친 김에 이날 국무회의에서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 동의안을 의결해 국회로 넘겼는데, 판문점 선언 내용상 남북 협력 사업 등 중대한 재정적 부담이 될 수 있는 사안이 있다 보니 대통령 비준 절차 뿐 아니라 국회가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미 ‘방북 공개 제안’ 때문에 청와대와 정치권의 관계가 꼬일 대로 꼬여버린 상황이라 설령 3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논의하기로 일단 연기되었더라도 판문점 선언이 최종적으로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건데, 이 사안을 놓고도 한국당과 바른미래당과의 충돌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보니 정쟁은 한층 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당은 차치하고 벌써부터 바른미래당만 해도 11일 의총 결과 반대 의견이 압도적이었는데, 지상욱 의원은 “유엔 안보리 제재 상태에서 예산에 대해 우리가 비준해주면 안보리 제재를 위반하는 게 되고, 그러면 국제 공조에서 우리가 탈퇴하게 돼 다가올 후폭풍을 염려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으며 이언주 의원도 “비준해주게 되면 국제사회에 잘못된 이미지, 시그널을 줄 수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같은 날 ‘평양 방문’에 대해서도 갈 수 있는 인사들만이라도 함께 가겠다고 김의겸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밝힌 청와대 태도에 비추어 판문점 선언 역시 야권과의 협치보다는 ‘일방통행’ 방식으로 압박하려 들 가능성이 적지 않아 또 다시 민생문제는 뒷전인 채 정치권 공방만 깊어지는 것 아닌지 걱정하는 시선이 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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