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보이’ 평에도 ‘연동형 비례제·개헌’ 적극 나서…당 통합 문제가 고민

손학규 바른미래당 신임 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손학규 바른미래당 신임 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지방선거 참패 이후 비대위 체제로 운영되던 바른미래당의 새 사령탑으로 손학규 상임고문이 선출됐다.

손 신임 대표는 취임 일성에서 당내 통합 문제는 물론 개헌과 선거제 개혁 필요성까지 역설하며 정치개혁부터 시동 걸 의지를 드러냈는데, 사실상 ‘올드보이’로 평가되던 그가 오히려 기성 정치권에 변화를 일으키려는 움직임에 발 벗고 나서면서 벌써부터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7공화국 건설 천명한 孫, ‘정치개혁’ 바람에 불 붙여

손 대표는 지난 2일 당선 직후 신임 대표 수락 연설에서 크게 두 가지 화두를 제시했는데, 하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이고 다른 하나는 승자독식 양당제의 폐해로 이를 위해 사실상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특히 그가 당면과제로 꼽은 당 통합과 제 정파의 통합, 국민 통합 등 ‘3개의 통합’ 중 정파 통합과 국민통합의 해결방법으로 결국 유럽식의 합의제 민주주의, 즉 ‘독일식 연합정치’ 도입을 통한 정치개혁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를 이뤄나가는 과정에서 자신이 몸소 선봉에 서겠다고 공언했다.

비단 정치개혁과 관련해선 손 대표 뿐 아니라 근래 계속되는 문 대통령의 지지율 추락에 힘입어 자유한국당에서 김무성 의원이 제왕적 대통령제를 고쳐야 한다며 공화주의를, 민주평화당에선 정동영 대표가 승자독식 구조의 기존 선거제도를 개혁하자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각각 내세우고 있어 야권을 중심으로 이런 논의가 활성화될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다 손 대표가 현 여야 거대 양당에 한때 소속된 바 있던 다선의 원로 정치인이란 점에서 더불어민주당과 한국당 양측 모두에 큰 반감 없는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점도 정치개혁이 이전과 달리 빠르게 추진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이미 손 대표는 ‘얼마만큼 정치를 새롭게 할 의지를 갖고 있느냐가 올드보이냐, 골드보이냐의 차이’라고 자신이 공언했던 대로 골드보이가 되고자 이미 발 빠르게 움직이는 모양새인데, 그는 3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당장 7공화국을 여는 게 안 된다고 했을 때 그걸 열어가기 위한 선거구제 개편이 먼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같은 날 취임인사차 문희상 국회의장을 예방한 자리에서도 “촛불혁명을 제대로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개헌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고 그를 통해 국회가 중심이 되는 정치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의장께서 앞으로 개헌을 잘 주도하시고, 개헌 이전에 선거법 개정을 통해 국회가 정치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그 길을 열어달라”고 공개적으로 협조를 요청했다.

다만 이렇게 정치권에 협조를 호소하면서도 ‘한 자리 수 지지율’에 허덕이는 당 상황을 의식한 딜레마도 엿보였는데, 다른 당과의 차별성과 선명성을 강조하기 위해선지 손 대표는 신임 대표 수락연설에서 민주당과 한국당을 겨냥해 ‘큰 곰 두 마리’, ‘두 수구적 거대양당’이라고 맹비난하며 “개혁적 보수와 미래형 진보가 결합한 바른미래당이 중도개혁의 통합세력으로 정치개혁의 중심에, 선봉에 우뚝 서겠다”고 천명했다.

흥미로운 점은 두 정당을 이렇게 비판하고 ‘다당제’, ‘협치의 제도화’를 주장하던 그가 일견 다당제와 배치될 수도 있는 ‘정계개편’에 대해선 호의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건데, 손 대표는 전당대회 전 치러진 지난달 23일 당권주자 토론회에서 “다음 총선에 이기는 정당을 만들기 위해 바른미래당 내부를 정돈하고 그것을 기초로 합리적 진보와 개혁보수를 통합하는 정계개편을 해나갈 것”이라고 밝힌 데 이어 2일 당 대표 당선 기자회견에서도 “야권 정계개편은 앞으로 이뤄질 일”이라고 분명하게 확언했다.

◆ 각 정당들, 孫의 정치개혁 호소에 환영 속 ‘저울질’ 시작

이처럼 이중적인 듯한 모습을 보여선지 일단 원내정당들 역시 자당에 유리한 대로 해석해 손 대표의 취임에 환영인사를 보냈는데, 이재정 민주당 대변인은 2일 논평에서 ‘협치’ 부분을 들어 “상생과 협치는 한국 정치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가장 큰 열망”이라며 “새 지도부가 믿음직한 야당, 신뢰감 주는 정치 동반자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러브콜을 보냈다.

반면 한국당에선 같은 날 윤영석 수석대변인이 논평을 통해 “야당에게는 현 정부와 집권여당을 견제하고 국정 운영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만들 책임이 있다”며 “정부와 집권여당의 독주를 막고 견제하는 제대로 된 야당으로 함께 협력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고 ‘견제’란 야당 역할에 좀 더 방점을 둔 모습을 보였다.

바른미래당 소속이면서도 평화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주현 의원의 모습. 사진 / 오훈 기자
바른미래당 소속이면서도 평화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주현 의원의 모습. 사진 / 오훈 기자

또 의석수 부족으로 원내교섭단체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민주평화당에선 바른미래당의 새 지도부 구성을 계기로 2일 박주현 수석대변인 논평을 통해 “손 대표가 바른미래당의 새로운 시작으로서 평화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비례 의원 3인(박주현, 장정숙, 이상돈)의 당적 정리를 결단해줄 것으로 기대한다”며 사실상 의원 3명의 출당을 협조 전제로 내걸었다.

이런 가운데 소수정당으로서 기존의 ‘승자독식 선거제’ 개혁 필요성을 역설해온 정의당에서도 같은 날 선거제 개혁을 강조한 손 대표의 당선소감문을 들어 “다당제가 현실화된 지금 손 대표의 풍부한 경험과 연륜을 통해 바른미래당이 정치의 미래를 바르게 만드는 한 축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민심을 그대로 담는 선거제 개혁이라면 언제나 환영”이라고 호평을 보냈다.

손 대표도 3일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최근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된 민주당의 이해찬 신임 대표, 평화당의 정동영 신임 대표 등 지난 2007년 민주신당에서 자신과 대선후보로 경쟁했던 ‘올드보이’들이 각 당 지도부에 재입성한 걸 들면서 “변화를 주동해 나가는데 안정된 리더십의 경험과 또 연륜으로 지혜를 갖고 안정되게 이끌어 달라고 하는 국민적 요구 아닌가”라며 “(이 대표, 정 대표 등과) 잘 통하겠죠”라고 내심 협치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렇지만 그가 뒤이어 “협치라고 하는 것은 당 대표들 간의 이야기가 아니고 대통령의 결심 사항”이라며 “당장 소득 주도 성장 갖고 여야 간에 또 국민들 간에 논란이 많지 않나? 그런데 대통령은 ‘소득 주도 성장 잘못된 게 없다’ 그러고 나가고 있어 그런 상태에선 협치가 안 되는 것”이라고 청와대 측엔 견제구를 던졌다.

아울러 손 대표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한 목소리를 내는 평화당이 비례대표 3인방의 출당을 요청해오는 데 대해서도 2일 “저희는 출당을 한다든지 그런 건 전혀 생각하는 바 없다”고 단호히 일축했고, 안민석 의원 등을 비롯한 민주당 일각에서 의심하고 있는 바른미래당과 한국당의 통합·합당과 같은 정계개편에 대해서도 “지금은 생각할 수 없고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이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 바른미래당 분열 여전…당내 반발, 孫 리더십에 변수

바른미래당 2기 지도부 하에서 열린 첫 최고위원회의의 모습. 사진 / 오훈 기자
바른미래당 2기 지도부 하에서 열린 첫 최고위원회의의 모습. 사진 / 오훈 기자

한편으로 협조를 촉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바른미래당의 독자성을 강화하는 듯한 이런 손 대표의 모습은 사실 당내조차 구 국민의당계와 바른정당계로 갈라져 제대로 통일되지 못한 데 대한 고민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는데, 실제로 그는 2일 “당내 통합은 무엇보다도 최선결 과제”라고 솔직하게 시인한 바 있다.

자신의 뜻대로 이끌기에는 당 내부가 여전히 반분돼 있어 추진력이 부족하다는 것인데, 당장 지도부 구성 면면을 봐도 하태경·이준석·권은희 최고위원이 모두 바른정당 출신이고 손 대표 자신과 전국청년위원장인 김수민 최고위원만 국민의당 출신인데다 막상 전당대회 표결 결과마저 30%선도 못 넘는 27.02%의 득표율을 얻는 데 그치고 2위인 하 최고위원과의 격차도 고작 4% 포인트 정도에 불과해 비록 당선은 됐지만 소위 ‘손학규 대세론’이란 표현은 무색해졌다.

여기에 당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에 유승민 전 대표는 물론 이혜훈, 지상욱 의원 등 유승민계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이 모두 불참한 부분도 안철수계와 유승민계로 갈라진 당내 상황을 보여주는 듯 했는데, 이와 관련해 손 대표는 3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지 의원은 요즘 당 활동을 삼가고 있는 편이고 이혜훈 의원은 어제 시모 상이 있어서 마산에 내려가서 못 왔다”며 “이 의원은 저를 적극 지지하고 있었다”고 적극 해명에 나섰다.

한 발 더 나아가 손 대표는 한때 일었던 ‘안심 논란’ 때문인지 “유승민 의원이나 안철수 의원이 합당의 주역인데 갈등의 소지가 남아있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저를 당 대표로 뽑은 것은 안철수 쪽이나 유승민 쪽이나 다 같이 적극 지지를 했는데 ‘양 세력을 화학적으로 결합하는데 당신이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연륜을 동원해 달라’ 이런 뜻으로 생각한다”며 계파 논란을 진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당 노선을 놓고 지도부 내 파열음이 일어나는 양상인데, 바른정당 출신인 이준석 최고위원은 3일 오전 MBC라디오 ‘이범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손 대표의 ‘선거제도 개편’ 주장을 꼬집어 “대한민국 역사상 몇 십 년 동안 잘 이뤄지지 않았는데 그걸 목표로 당을 운영하다 보면 중요한 과제를 놓칠 수 있다. 거대양당의 종속변수가 될 수 있다”며 “당 내실을 키우는데 집중해야 되지 않느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뿐 아니라 이 최고위원은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선 안철수 전 대표까지 겨냥 “(독일로) 공부하러 가셨는데 이제 좀 보내드려야 한다. 그 분 얘기는 안 하는 게 당의 새 출발에 좋을 것”이라고 밝혔는데, 현재 바른정당 출신이 다수인 상황에서 손 대표가 과연 초반부터 흔들리는 당권을 다잡고 정치개혁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인지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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