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1980 굿바이! 모스크바”

러시아 서민층의 갈등과 이를 통해 인간의 보편적 고뇌를 탐색했던, 가장 사실주의적이면서도 그러나 인간에 대한 여유와 유머를 절대 잊지 않았던 위대한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홉. 그의 작품들은 아직까지도 숱한 논쟁의 대상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얼마 전 국내에서도 다시 한번 때아닌 '안톤 체홉' 열풍이 불기도 했었는데, 벌써 그의 서거로부터 100주년에 이르렀다 하니 그의 영향력과 그 작품의 생명력을 미뤄 짐작해 볼만 하다. 이번에 안톤 체홉 서거 100주년을 맞이해 국내 초연되는 연극 <1980 굿바이! 모스크바>는 과연 안톤 체홉이 일궈낸 러시아 현대극의 형식과 접근방식을 순수한 이어받고 있는 '적자'와도 같은 작품으로써, <멀리 날아가는 새들>, <구멍> 등의 작품을 통해 잘 알려진 러시아 희곡작가 알렉산드르 갈린의 1988년작이다. <1980 굿바이! 모스크바>의 무대는 1980년, 제 22회 모스크바 올림픽이 열리던 시절의 모스크바 근교. 당시 구소련 정부는 '미화 차원'에서 거리의 부랑자, 매춘부들을 모스크바 근교로 격리시켜 외국인의 시선에 노출되지 않도록 계획하였는데, 이런 위선적인 '정부계획'이 이 연극의 중심 소재가 된다. 어딘지 우리에게 와닿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 소재이다. 바로, 우리 역시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상계동 판자촌을 '미화 차원'에서 강제철거시켜 버리고, 올림픽 아파트촌 건설이란 명목을 동원해 송파 지역의 도시빈민들을 강제 이주시켰던 추악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어디 '5공 시절' 일 뿐인가. 불과 2년 전의 한일 월드컵 행사 때에도 노점상 철거 등의 말도 안 되는 정책을 펼쳤지 않은가. <1980 굿바이! 모스크바>는 바로 이런 폭압적이고 위선적인 정부시책에 고통받는 러시아 창녀들의 이야기를, 가능한한 러시아 전통 드라마 구조에 맞춰 재구성하고, 신선하고 도발적이며 톡톡 튀는 연출 대신 묵직한 극적 감동을, 새로운 시각보다는 강한 주제를 피력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피폐한 극적 현실에 눈뜨게 하는 에너제틱한 연극으로 되살아났다. 스타니슬랍스키 메소드 연기론에 입각한 리얼리스틱한 연기 패턴을 캐치프레이즈로 삼은 이 연극은, 우리가 즐겨 사용하는 우회적이고 우화적인 성격 대신 객관적인 묘사로써 사회현실을 표현하는 것이 어느 정도의 위력을 보여주는 지에 대해 알려주고 있기도 하다. (장소: 대학로 극장, 일시: 2004.04.01∼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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