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의 제로원 디자인센터에서 ‘정치 전시회’ 하나가 열리고 있어 화제다.


‘정치 디자인, 디자인의 정치’전은 첨단 산업디자인의 산물인 매끈한 자동차나 전자제품을 보여주는 전시도 아니고 아기자기한 문방구나 인테리어 디자인 상품을 보여주는 전시도 아니다. 미술비평가, 사진작가 등 미술관련자들이 모여 일상생활 속의 디자인이 만들어내는 정치적인 메시지를 보여주고 반대로 디자인을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던져보려는 의도로 꾸민 현대미술 전시다.


일반인들은 잘 가지 않는 국가기관의 내부를 사진으로 찍는 고현주의 작업이 눈에 띈다. 대검찰청 회의실, 대법원 대법정, 국회의사당 로비 등 위풍당당하게 찍힌 사진을 통해 정치권력의 무게감을 느낄 수 있다.


그래픽 디자이너 김영철은 ‘영원한 노스탤지어’ 라는 포스터 연작을 통해 여러 정치세력의 마음의 고향이 어디인지를 단순하고 강렬하게 시각화했다. 미군정 관계자들과 함께 선 이승만,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 내외, 김대중 전 대통령 내외, 고문으로 숨진 고(故) 박종철 씨 장례식 사진 위에 ‘영원한 노스탤지어’라는 글을 휘갈겨 썼다.


북한의 집체극이나 대형 카드섹션을 찍은 노순택의 사진은 화면 안에 자리 잡은 군중이 거대한 무늬 디자인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화가 박정연은 여러 나라의 상징인 국기를 약간 바꿔 그려놓고 그 효과를 진지하게 묻는다.


디자이너 권혁수는 사회 속에서 주체성 있는 디자이너로 살아갈 수 있는지, 공공디자인전문가 최범은 한국의 국가이미지를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결과를 자료로 제시한다. 국문학자이자 문화비평가인 천정환은 ‘빨갱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증오와 공포의 이미지를 갖게 됐는지를 연구한 사료를 보여주고, 조습은 정치적 격변기의 상황을 패러디한 사진을 내놓는다.


한편 전시에 맞춰 272쪽짜리 도록 ‘정치디자인, 디자인의 정치’(청어람)도 단행본 형태로 출간됐다. 이 같은 전시는 오는 21일까지 계속된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