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심리적 압박 속 극단적 선택…정치권도 충격 속 애도 줄이어

[시사포커스 / 오훈 기자]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사진)가 23일 오전 9시38분경 자신의 모친과 남동생이 거주하는 아파트 1층 현관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사진)가 23일 오전 9시38분경 자신의 모친과 남동생이 거주하는 아파트 1층 현관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달변가이자 해학적 유머도 겸비해 ‘진보의 아이콘’으로 꼽혀온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23일 ‘드루킹’ 김동원 씨 주도 단체인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혐의를 받던 끝에 향년 63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했다.

당장 정치권에선 예상치 못한 비보에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최초로 5당 원내대표들이 함께 한 3박 5일 간의 방미일정에서 귀국한 지 바로 하루 만에 이런 일이 벌어져 각 당 반응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하나같이 놀라는 모양새다.

◆ ‘극단적 선택’ 내린 노회찬, ‘금품 수수’ 심적 부담 컸나

17. 19. 20대 원내 입성하며 같은 당 심상정 의원과 함께 진보정당 출신 최초의 3선 의원이란 타이틀도 가진데다 최근 방송활동도 열성을 보였을 만큼 대중적 인지도도 높았던 노 원내대표는 그간 드루킹 수사에서 자신과 관련된 ‘불법 정치자금 수수’ 논란이 불거진 이후에도 줄곧 결백을 주장하며 모든 의정활동을 정상적으로 소화해 왔기에 끝내 이런 비극적 결정을 내린 그의 모습에 전혀 의외였다는 목소리가 상당하다.

앞서 지난해 대선 직전 경공모 관련 계좌에서 16개월 동안 약 8억원 가량의 자금 흐름을 포착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었는데, 이 중 5천만원대 불법 자금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받은 노 원내대표는 2016년 경기도 파주경찰서·의정부지검 고양지청의 수사 결과에선 무혐의 처분을 받았으나 드루킹 수사를 맡은 허익범 특별검사팀이 도모 변호사가 경찰 수사 단계에서 조작된 증거를 제출했던 걸 확인하고 재수사 결정을 내리며 국면이 반전됐다.

결국 원점부터 파고 들어간 특검 수사로 노 원내대표가 총선 전인 지난 2016년 3월 경공모 ‘아지트’인 파주 느릅나무 출판사를 찾은 자리에서 직접 2천만원을 받고 자기 부인의 운전기사를 통해서도 3천만원을 전달받았다는 진술까지 나오기에 이르렀는데, 과거 무혐의 처분을 받았던 때에 ‘5천만원을 경공모가 인출은 했으나 노 원내대표에 전달하진 못했다’는 결과를 완전 뒤집는 것이어서 지난 17일 특검은 도모 변호사를 긴급체포하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비록 ‘아보카’란 아이디로 경공모 활동을 해온 드루킹 핵심 측근이자 노 원내대표와 경기고 동창이기도 한 도모 변호사는 법원의 영장 기각으로 구속되지는 않게 됐지만 영장 재청구를 위한 특검의 보강 수사가 진행된 데다 추가로 노 원내대표가 ‘야인’ 시절 경공모 초청 강연에 참석한 뒤 강연료로 2천만원을 받았다는 진술도 특검이 확보하면서 노 원내대표는 더욱 궁지로 몰리게 됐다.

그럼에도 노 원내대표는 지난 20일(현지시각) 방미 중 워싱턴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드루킹을 자신에게 소개했다는 도 변호사와 관련해 “졸업한 지 30년 동안 교류가 없다가 연락이 와서 지난 10년간 4~5번 정도 만난 사이”라며 자신에게 정치자금을 전했다는 2016년에는 통화는 물론 만난 적도 없다고 부인했다.

특히 그는 “어떤 불법적인 정치자금도 받은 적이 없다”며 “(특검이) 조사한다고 하니 성실하고 당당하게 임해 진실을 밝히겠다”고 천명한 데 이어 2014년 경공모로부터 회당 2천만원의 강의료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강연료를 얼마 받았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국회의원이 아닐 때는 1년에 100~150회 정도 강연해 언제, 어디서 했는지 한참 생각해야 할 정도”라며 “나중에 문제 삼겠다”고 오히려 법적 대응 가능성까지 내비쳤을 만큼 자신감을 드러냈다.

[시사포커스 / 오훈 기자]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지난 19일 노회찬 원내대표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과 관련 “지금 언론에서 명백한 결과가 아니라 추측과 수사 과정이 그냥 막 흘러나오고 있다”며 “특검이 수사 결과를 빨리 밝혀 진실이 규명돼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시사포커스 / 오훈 기자]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지난 19일 노회찬 원내대표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과 관련 “지금 언론에서 명백한 결과가 아니라 추측과 수사 과정이 그냥 막 흘러나오고 있다”며 “특검이 수사 결과를 빨리 밝혀 진실이 규명돼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심지어 정의당에서도 지난 19일 이정미 대표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지금 언론에서 명백한 결과가 아니라 추측과 수사 과정이 그냥 막 흘러나오고 있다”며 “특검이 수사 결과를 빨리 밝혀 진실이 규명돼야 한다”고 본인보다 한층 더 나아간 자세까지 취했다.

아예 나경채 전 공동대표의 경우엔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드루킹이나 일부 사람들이 이번엔 노회찬을 지목하며 ‘도둑이야’ 호들갑 떤다. 계좌추적이든, 소환조사든, 뭐든 제대로 해보라”며 “소속 정당의 의원이 불법정치자금 의혹을 받았을 때 진보정당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그 태도가 다른 정당들과 어떻게 다른지 보여줄 좋은 기회 아닌가. 오히려 제대로 신속하게 수사하라고 떠들고 싶은 마음”이라고 주장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호언이 전부 무색하게 노 원내대표는 미국에서 귀국한 지 하루 뒤 자신의 모친과 남동생이 거주하는 서울 중구 신당동의 N아파트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는데, 해당 아파트 17~18층 사이에서 발견된 외투 속 그의 유서에 따르면 ‘드루킹 관련 금전을 받은 사실은 있으나 청탁과는 관련이 없다’고 쓰여 있어 끝까지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보인다.

◆ 노 의원과 訪美했던 與野 원내대표들 모두 침통한 분위기

이 같은 노 원내대표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불과 며칠 전까지 방미 외교일정을 함께 한 각 당 원내대표들은 물론 여야,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한 목소리로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홍영표 원내대표는 23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노 원내대표는 일하는 사람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온몸을 던져 일해 온 정치인”이라며 “지금까지 그 분의 정치 과정에서 그런 일이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했고 그렇기 때문에 너무 충격을 받아 사실 말씀을 드리고 싶지도 않다. 아까운 분을 잃게 됐다”고 애통해 했다.

특히 홍 원내대표는 “방미 일정 중에도 전혀 어떤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갖지 않았다”며 “언론인들이 기회가 있을 때 마다 노 원내대표에게 질문을 하고 본인이 해명을 하는 상황이었지만 (저희들은) 단 한 번도 그런 문제를 묻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한국노총 사무총장 출신인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도 이날 “미국 순방 중 첫째, 둘째 날은 말수도 별로 없었지만 도리어 그제 밤엔 옛날에 나와 홍 원내대표와 노동운동을 같이 했었기에 과거를 회고하면서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자정 가까이 자리를 함께 했다”며 “그 길이 마지막으로 내가 술을 대접한 거 같아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비통한 심정을 전했다.

그러면서 김 원내대표는 “이번에 제가 미국 가서 한미동맹의 튼튼한 기틀 속에서 북한이 비핵화로 가야한다고 말하며 미국의 의회지도자들의 각별한 인식을 부탁했다. 옛날 같았으면 (노 원내대표가) 반박도 하고 했을 텐데 기업을 걱정하는 부분에서도 옛날 같지 않았다”며 사전에 이상 징후가 있었음을 암시했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는 홍 원내대표의 설명에서처럼 “방미단이 3일간 19개의 일정을 소화하면서 단 한 번도 드루킹과 관련한 얘기를 서로 주고받은 적이 없다”며 “동료 원내대표들도 한 번도 얘기한 적 없고, 본인도 그와 관련해 해명의 목소리도 한 번 없었다”고 부연해 노 원내대표가 계속 혼자 고민해왔음을 분명히 했다.

이 부분에 있어선 방미 일정에 동행했던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도 같은 목소리를 냈는데, 그는 “우리가 토요일 1시 비행기를 타고 왔는데, 그 전날 금요일 저녁에 5명이 모여 맥주를 2시간 정도 했다. 미국에서 전혀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며 “심경이 어떻게 변화가 생겼는지는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다만 김 원내대표는 출국장과 현지에서 노 원내대표에게 드루킹 관련 질문이 나온 데 대해선 “그런 얘기를 받으니 불편해하셨다”며 “(특파원들이) ‘한국에서 후배들이 자꾸 물어봐 달라고 하니 예의가 아닌 것 같지만 물어볼 수밖에 없다’고 하니 노 원내대표가 ‘이 자리는 방미 성과를 이야기하는 자리인데 여러 명이 있는 데에서 얘기하는 건 아닌 것 같고 내가 별도로 얘기하겠다’고 해서, 20분 정도 노 원내대표만 따로 특파원들과 (간담회) 했다”고 부연했다.

또 그는 “지금 와서 보니 토요일 아침에 식사를 안 하신 것 같다”며 “무엇에 대해 압박을 (느꼈거나), 굉장히 정의를 부르짖으며 사신 분들이니까 그런 부분에서 굉장히 고민이 있지 않았겠나. 어제까지 같이 활동하고 했는데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 특검 盧 수사 ‘제동’ 불가피할 듯…정의당도 ‘패닉’

최석 정의당 대변인(사진)은 노 원내대표의 사망과 관련해 "여론몰이식으로 특검이 표적 수사한 결과"라며 허익범 특검 측 책임이란 입장을 내놨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최석 정의당 대변인(사진)은 노 원내대표의 사망과 관련해 "여론몰이식으로 특검이 표적 수사한 결과"라며 허익범 특검 측 책임이란 입장을 내놨다. ⓒ정의당

정치권은 물론 청와대까지 오늘 예정됐던 오전 일정을 일부 취소하는 등 예상 밖 비보에 충격적이란 반응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누구보다 당혹스러워 하는 건 소속정당인 정의당과 노 원내대표를 수사해 왔던 허익범 특검인데, 먼저 허 특검은 23일 오전 11시 30분 특검 사무실에서 검은 넥타이를 맨 채 긴급 브리핑을 열고 “개인적으로 정치인으로 존경해온 분”이라며 “오늘 보도를 접하고 굉장히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입장을 내놨다.

이날 허 특검은 수사 진행과 관련해선 “다음 기회에 말씀드리겠다”고 넘겼지만 일단 오후에 예정됐던 도모 변호사 소환 조사 계획도 취소한 만큼 향후 수사 방향을 어떻게 잡을지 고민 중인 것으로 보이고 있는데, 노 원내대표에 대한 압수수색이나 소환 통보조차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사태가 발생해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활동기간 동안 제대로 수사를 가속하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타격을 입은 건 특검 뿐 아니라 노 원내대표가 소속됐던 정의당도 마찬가지인데, 우선 이날 오후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서 브리핑을 가진 최석 대변인은 노 원내대표가 모두 자신의 허물이라면서 국민들이 당에 대한 지지는 계속 보내줄 것을 호소했다고 또 다른 유서 내용을 전했지만 그의 바람과는 별개로 모처럼 두자릿수를 기록한 당의 상승세에 악영향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래선지 최 대변인은 여론몰이식으로 특검이 표적 수사한 결과라며 즉각 허 특검 측을 강하게 비판했지만 이날 노 원내대표 스스로 4천만원을 수수했다고 유서를 통해 시인했다는 점이나 앞서 드루킹이 지난해 5월1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미리 경고한다. 지난 총선 심상정, 김종대 커넥션 그리고 노회찬까지 한방에 날려버리겠다”고 표명했던 사실이 회자되면서 의혹은 쉬이 가라앉지 않은 채 점점 더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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