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비서실 출신이 한국 경제 주름잡는 것으로 나타나

지금은 구조조정본부로 명칭이 바뀐 삼성그룹 비서실이 최근 들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이유는 삼성그룹 비서실 출신들이 잇따라 주요 기업들의 CEO로 발탁되고 있기 때문. 대표적인 경우가 최근 우리금융지주회사 회장이 된 황영기 전 삼성증권 사장과 SK텔레콤 대표이사가 된 김신배 사장이다. 황 회장은 지난 89년부터 94년까지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 재무팀 이사로 이건희 회장을 최측근에서 보필했던 인물. 이후 삼성전자, 삼성생명 임원을 거쳐 2001년 삼성증권 사장에 이르기까지 승승장구했으며, 차기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으로까지 거론될 정도였다. 또한 최태원, 손길승 회장과 함께 동반사임한 표문수 SK텔레콤 사장 후임으로 새 대표이사가 된 김 사장은 지난 78년 삼성그룹에 입사해 90년 삼성그룹 비서실 국제팀 차장을 지냈던 인물이다. 이후 95년 SK텔레콤의 전신인 한국이동통신으로 옮겨와 수도권 지사장, 전략기획 부문장 등을 역임하고 신세기통신 합병, KT와의 지분교환을 주도하는 등 경영전략을 총괄해 왔다. 이밖에도 재계의 대변인 역할을 맡고 있는 현명관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도 삼성그룹 비서실장으로 이건희 회장을 최측근에서 보좌했었던 인물이다. 또 디지털 방송 관련업체인 알티캐스트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지승림 사장은 삼성그룹 비서실 기획팀장(부사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지 사장은 '삼성의 제갈공명'으로 불릴 정도로 소문난 기획통이었는데, 삼성그룹의 자동차 사업 진출을 주도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후 지 사장은 자동차 사업이 실패하면서 2000년 사표를 내고 현 알티캐스트 사장에 취임했다. 한편 삼성그룹 비서실 출신들은 삼성그룹 내부에서도 승승장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삼성그룹 계열사 CEO 가운데 비서실 출신을 보면, 김순택 삼성SDI 사장, 김인 삼성SDS 사장, 유석렬 삼성카드 사장, 박근희 삼성카드 사장 등이 있다. 이중 유석렬 사장은 최근에 삼성그룹 최고 수뇌부인 구조조정위원회 멤버로 선임되기도 했다. 이처럼 삼성그룹 비서실은 그동안 삼성 인맥의 두 주류였던 제일모직 경리과와 삼성전자 엔지니어링 출신에 이어 새로운 인재풀로 부상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들은 "삼성 비서실 출신 인사들이 각광받고 있는 것은 경영능력 등을 삼성에서 이미 검증받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한 관계자는 "삼성 비서실에 발탁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실력과 함께 엄격한 도덕성, 효율적인 조직관리 및 업무능력 등 혹독한 다면평가를 거친다"며, "비서실 출신을 CEO로 선임하면 삼성 효과도 누릴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 되고 있다"말했다. 한편 최근 금융계에서는 삼성그룹 출신 최고경영자와 임원들을 영입 경쟁이 나타나고 있다. 한 금융계 관계자는 "일부 금융회사들은 아예 헤드헌팅 업체에 삼성 출신 임원만 뽑아달라고 주문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금융권에서 삼성그룹 출신으로 CEO가 된 사람은 황영기 우리금융지주회사 회장과 박해춘 LG카드 사장. 박 사장은 삼성화재 상무 출신으로 서울보증보험 사장을 거쳐 최근 LG카드 사장으로 선임됐다. 동부화재도 최근 경영총괄 사장으로 김순환 삼성화재 부사장을, 부사장에는 손재권 삼성화재 상무보를 각각 선임했다. 또한 현재 금융권 CEO로 활약하고 있는 삼성그룹 출신으로는 홍성일 한국투자증권 사장, 대한생명 신은철 사장, 박종인 한국전자금융 사장, 이주훈 외환은행 신용카드사업본부장 직무대행(전 외환카드 사장 직무대행) 등이 있다. 이 같은 금융권의 삼성그룹 출신 모셔가기는 임원급에서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우리금융지주회사는 황 회장이 삼성생명과 삼성증권에서 오랫동안 호흡을 맞췄던 주진형 씨를 상무로 영입, 전략 및 감사 등 핵심 업무를 맡겼다. 또한 박해춘 LG카드 사장은 최근 라이벌 회사인 삼성카드에서 부사장 등 임원 3명을 전격 영입했다. 삼성카드에서 할부금융을 담당했던 강홍규 상무는 부사장으로, 삼성카드 지점장을 지낸 전명철 씨와 이봉섭 씨는 각각 영업 담당 이사대우로 스카우트됐다. 이 때문에 LG카드 직원들 사이에서는 "이러다가 LG카드가 아니라 삼성카드가 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한편 헤드헌팅회사인 HR코리아가 기업 인사담당자 177명을 대상으로 최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경력자를 채용할 때 삼성 출신을 원한다'는 응답이 40%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HR코리아 관계자는 "기업들이 삼성 출신을 선호하는 이유는 삼성이 가진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며, "삼성이 가장 많은 비즈니스 분야에 진출해 있고, 삼성 출신이 각계각층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인맥을 활용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삼성의 인사 및 조직체계가 경쟁 시스템이기 때문에 여기서 살아남은 사람은 경쟁에서 살아남았다는 인상을 주는 점도 삼성을 선호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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