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중형차 구매가 점점 줄어드는 까닭은

경제가 하강곡선을 그리면 '중산층'의 피해가 가장 크다는 이론. 자동차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고 있다. 저렴한 경차와 호화로운 고급승용차는 잘 팔리는 반면, 준중형차 판매전선에는 찬바람이 흩날리고 있다. 이제는 없어서는 안될 생활 필수품이 돼 버린 자동차이지만 여전히 선뜻 구입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수많은 국산차와 수입차 모델과 요모조모 따져보고 시승도 해보고 결정하게 된다. 이러한 자동차 구입 결정 과정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경제 상황. 즉 경기 호황기에는 중형차가 잘 팔리고 경기가 침체기에는 아무래도 경차나 소형차가 많이 팔리게 된다. 기아차 '모닝', 경차 시장 팽창에 기폭제 역할 그런데 최근 소비자들의 자동차 구매 양상은 이와는 조금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경기 침체로 경차와 소형차의 판매가 늘고 있긴 하지만, 반대로 대형차와 외제차 등 값비싼 자동차의 판매도 증가하고 있는 것. 그 대신 대중적인 인기를 끌던 준중형 차량 구매가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전체 승용차 시장에서 경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말 7.9%에서 올해 3월말에는 10.6%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 달 말에는 13%대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 경기 침체에 따른 경차구입 현상을 반영했다. 이 같은 현상은 올해 기아차의 '비스토'가 단종됐다는 점을 감안할 때 놀라운 약진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GM대우차의 '마티즈'가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는 데다, 지난 2월 중순 출시된 기아차의 '모닝'(1000cc급)이 경차 시장 팽창에 기폭제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했다. 한 관계자는 "모닝의 판매대수는 2월 216대, 3월 2806대, 4월 2470대로 기대 이상"이라며 "당초 유럽시장 수출용으로 내놓았으나 국내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대형차 시장의 경우, 경기불황에도 불구하고 판매호조로 전체 승용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말 17.3%에서 올해 들어 20% 이상으로 높아졌다. 이는 주로 현대차의 '싼타페', '투싼'과 기아차의 '쏘렌토' 등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판매가 급증한 데 따른 것이다. 실제로 지난 달 SUV의 판매대수는 2만6935대로 전체 승용차량의 34.7%를 차지했다. SUV의 시장점유율은 지난 1998년 6.6%에 불과했으나 2001년 17.6%, 2001년 17.7%, 2002년 24.3%, 2003년 28.7% 등으로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준중형차의 인기가 식어가고 있다" 특히 올해 3월 컴팩트 SUV인 '투싼'이 판매돌풍을 일으키며 판매증가에 탄력을 주고 있다. 여기에 쌍용차가 지난 11일 출시한 다목적 차량(MPV) '로디우스'가 시판 첫날 계약고가 5926대에 달하는 등 대박이 예감되고 있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판매되는 SUV는 대부분 디젤(경유) 차량으로 차량 가격이 차종별로 2000만~4000만원대로 다소 높지만, 유지비용이 적게 드는 데다 강력한 힘, 세련된 디자인 등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경차와 대형차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것과 반대로, 준중형차의 비중은 올해 들어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준중형차가 전체 승용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해말 32.2%에서 올해 3월 말에는 26.6%로 크게 낮아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올해 들어 자동차 구매 패턴이 아예 저렴하거나, 이왕 사려면 좋은 것을 사겠다는 쪽으로 급선회하고 있다"며 "이런 현상으로 인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준중형차의 인기가 식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한 "불황이 장기화되고 중간층이 옅어지면서 서민들은 아예 차를 안 사거나 경차·소형차를 사는 반면 상류층은 별로 타격을 받고 있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는 "경차는 올해부터 도입된 경차 혜택과 유가 상승에 따른 유지비 장점이 부각되고 있고, 대형차는 특소세 인하효과가 크고 고소득층의 수요가 유지돼 상대적인 호조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외제차 업체들은 소비자들의 자동차 구입이 양극화되고 있는 것을 판매확대의 호기로 삼고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각 업체는 잇달아 3000만~5000만원대의 중형 차량을 출시하는 한편 마케팅 초점을 종전 부유층 중심에서 중대형 구매 가능층으로 확대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수입차협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5000만~70000만원대의 외제차 3월 말까지 2079대가 판매돼 지난해 같은 기간의 1375대에 비해 51.2%나 증가했다. 또 3000만~4000만원대 외제차도 479대가 팔려 지난해 같은 기간의 421대에 비해 13.8% 증가했다. 외제차 업계 관계자는 "향후 3000만~5000만원대 시장을 놓고 국내업체는 물론 외제차간에 치열한 시장다툼이 벌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여기엔 최근 한국진출을 선언한 혼다와 닛산 등이 포함되어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한 양상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혼다코리아는 5월 10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후쿠이 다케오 본사 사장(CEO)이 참석한 가운데 간판급 세단인 '어코드' 발표 및 사업설명회를 가졌다. 혼다코리아는 특히 386세대를 타깃으로 삼아 가격을 3390만~3890만원으로 책정하고 현대차 그랜저XG 및 기아차 오피러스 등과 직접 맞붙겠다는 전략. 또한 한국닛산은 내년 중순부터 G35 스포츠 세단 및 스포츠 쿠페, 고급 세단인 Q45, 지난 뉴욕국제모터쇼에서 컨셉카가 처음 공개된 M35 및 M45 세단 등 5개의 인피니티 모델을 우선 선보일 예정이다. 또 내년에 추가로 프리미엄 크로스오버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인 FX35와 FX45도 출시할 계획이다. 도요타가 2001년1월 렉서스를 판매하기 시작한 지 3년 6개월만에 1만대 판매라는 수입차 업계 최단 기록 달성을 앞두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본차의 파괴력은 적지 않을 전망이다. 이렇게 자동차 업체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다른 업체의 차와 비교시승을 통해 품질 우수성을 홍보하려는 공격적인 마케팅이 부상하고 있기도 하다. 5월 13일 수입차 업체인 재규어코리아는 유럽 수입차를 상대로 '120시간(5일) 비교시승 이벤트'를 실시한다고 밝혔고, 현대차도 강남과 분당지역의 VIP 고객을 대상으로 혼다의 중대형 차량인 어코드와 그랜저XG의 비교시승을 실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경제난으로 극도로 침체된 내수시장에서 업체간 경쟁이 가열되면 공격적 마케팅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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