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논란, ‘상호 인정’선에서 표면상 매듭…안철수 거취·정계개편 여부 등은 남은 변수

바른미래당 소속 의원들은 지난 19일부터 20일까지 경기 양평 용문산 야영장에서 워크숍을 갖고 지방선거 참패 뒤 당의 진로에 대해 고민했다. ⓒ바른미래당
바른미래당 소속 의원들은 지난 19일부터 20일까지 경기 양평 용문산 야영장에서 워크숍을 갖고 지방선거 참패 뒤 당의 진로에 대해 고민했다. ⓒ바른미래당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6·13지방선거 이후 여느 야당과 마찬가지로 잠시 동안 ‘패배’ 후폭풍에 시달리던 바른미래당이 일단 표면상으로는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모양새다.

다만 선거 결과가 민주평화당에도 못 미칠 정도의 참담한 패배라 당을 존립시킬 수 있을 만한 비전이 보이지 않는 위기에 처하다보니 일단 단합을 우선해 몇몇 주요 사안들조차 적당히 절충하는 선에서 마무리지어버려 향후 다시 논란의 불씨가 될 여지를 남겨둔 채 일시 봉합만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선거 참패 뒤 앞길 모색하지만 낮은 지지율에 당 향방 ‘오리무중’

의원 수로는 100석이 넘는 거대 정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에 이어 원내 3당이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바른미래당은 6·13 지방선거 결과,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은 물론 국회의원 재보선까지 단 한 석도 건지지 못해 그간 제1야당을 대체하겠다던 목표는커녕 당의 존립마저 흔들릴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끝내 한국당과의 후보 단일화를 이루지 못한 채 끝까지 경쟁하며 당력을 쏟아 부었던 안철수 전 서울시장 후보조차 득표율이 20%선에도 못 미치며 한국당의 김문수 후보에 밀린 3위에 그친데다 ‘개혁보수’를 외치던 유승민 전 공동대표의 지역구가 있는 TK(대구·경북)에선 아예 19명의 광역·기초 비례의원 후보자 중 한 명도 당선되지 못하면서 원내 3당이란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존재감을 완전히 상실했다.

도리어 독자적으로는 원내교섭단체도 구성하지 못하는 민주평화당의 경우 여당의 강세 속에서도 5명의 기초단체장을 당선시켰으며 국회의원 6명 규모인 정의당 역시 17개 시·도 중 9곳에선 정당 득표율 3위, 광주와 전북에선 2위를 얻는 등 선전한 끝에 10명의 광역의원 비례대표 10명을 배출해 고작 4석만 챙긴 데 불과한 바른미래당을 더욱 설 곳 없게 만들었다.

여기에 선거 뒤 실시된 정당 지지율 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봐도, TBS의 의뢰를 받아 지난 18일부터 전국 유권자 1501명을 대상으로 사흘간 조사해 21일 발표한 리얼미터의 6월 3주차 주중집계(표본오차 95% 신뢰수준 ±2.5%P, 응답률 5.6%,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바른미래당은 겨우 5.2%를 기록해 정의당(7.9%)에도 밀리는 4위로 내려앉아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그대로 보여줬다.

심지어 또 다른 여론조사기관인 알앤써치가 데일리안의 의뢰로 지난 18~19일 전국 성인남녀 1078명에게 무선 RDD 자동응답 방식을 통해 실시한 6월3주차 정당 지지율 조사 결과(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0%P, 응답률 5.0%,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도 정의당은 한 주 전보다 상승한 6.5%에 달한 반면 바른미래당은 전주보다 1.5%P 하락한 6.2%에 그쳐 리얼미터 조사에서처럼 정당 지지율 3위를 정의당에 빼앗겼다.

이 같은 결과가 쏟아지다 보니 지방선거 역시 거대 정당에 밀려 패배하게 됐다는 손쉬운 변명조차 꺼낼 수도 없어졌고, 선거 도중 불거져 자중지란으로 비쳐졌던 공천 잡음이나 당 정체성 논란 등 결국 자당 내부 문제부터 원인 삼아 스스로 되돌아보게 됐다.

◆ 이념 프레임 벗고자 우선 ‘민생·개혁’ 방점…‘중도→진보’ 변경은 논란 여지

비록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성찰의 시간을 갖겠다며 공동대표직에서 물러난 유승민 전 대표가 자진사퇴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까지 ‘개혁보수’를 강조했을 만큼 이념적 정체성 문제는 바른미래당에 있어 중요한 사안이지만 한치 앞도 알 수 없게 된 당의 미래 때문인지 이를 통해 일어났던 당내 불협화음을 봉합하는 데 일단 서로가 머리를 맞댔다.

먼저 1박2일 동안 당 화합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워크숍을 가진 바른미래당은 그 결과를 20일 신용현 수석대변인의 국회 기자회견에서 ‘국회의원 워크숍 후 반성과 다짐-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공개하며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가 공존하는 새로운 정당”이라고 새로이 규정한 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창당 취지와 바른미래당의 통합정신을 살펴보고 새 정치의 비전과 내용을 만들고 실천하는데 당의 모든 역량을 모으겠다. 탈이념 민생정당과 미래지향적 개혁을 추구해나가겠다”고 천명했다.

[시사포커스 / 이광철 기자] 김동철 비대위원장은 유승민 전 공동대표의 ‘개혁보수’ 발언을 겨냥한 듯 “우리 당에 보수적인 정치인도 있고 진보적인 정치인도 있다. 바른정당 출신 하태경 의원 같은 경우 상당히 진보적”이라며 “당 전체가 개혁보수일 순 없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시사포커스 / 이광철 기자] 김동철 비대위원장은 유승민 전 공동대표의 ‘개혁보수’ 발언을 겨냥한 듯 “우리 당에 보수적인 정치인도 있고 진보적인 정치인도 있다. 바른정당 출신 하태경 의원 같은 경우 상당히 진보적”이라며 “당 전체가 개혁보수일 순 없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를 한층 분명히 하고자 김동철 비대위원장 역시 유 전 공동대표의 ‘개혁보수’ 발언을 겨냥한 듯 “우리 당에 보수적인 정치인도 있고 진보적인 정치인도 있다. 바른정당 출신 하태경 의원 같은 경우 상당히 진보적”이라며 “당 전체가 개혁보수일 순 없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에 그치지 않고 김 위원장은 “극단적 진보도, 극단적 보수도 아닌 이념적 지향점이 비슷한 정당이 당시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었기 때문에 통합을 서로 이야기한 것”이라며 “그런 사람들이 공존하는 정당이라는 것을 어느 한쪽에서 인정하기 싫다고 하더라도 당연히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거듭 역설해 당 정체성 사안을 마무리 지었다.

문제는 지난 1월 창당 선언문에 명시한 기존의 ‘합리적 중도와 개혁보수’보다 한층 ‘좌향좌’한 ‘합리적 진보와 개혁보수’로 어느 정도 선회했다는 점인데, 이 때문에 바른정당 출신인 이지현 비상대책위원은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합리적 진보’ 표현을 꼬집어 “합의하지 않았고 워낙 많은 이견들이 있어 함께 계속 논의하는 분위기였다”며 “비대위원과 의원 전원이 회람하고 의견을 내기로 했는데, 그런 절차적 민주주의 과정도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발표해 유감”이라고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위원장은 “당은 치열하게 토론해야 하지만 만장일치가 있을 수 없다. 공감했으면 공당으로서 입장이 나와야 하는 것”이라며 “중도개혁이란 식상한 표현 대신 국민에게 와 닿는 ‘민생 실용정당’을 추구하려 한다”고 당초 입장을 고수해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하지만 앞서 지난 18일 채이배 비대위원이 “이번 패배와 위기를 기회 삼아 중도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행동을 통해 새롭게 거듭날 것”이라고 발언했던 만큼 이념적 색채가 불분명한 중도보다는 진보진영 압승이란 6·13 지방선거 결과를 의식해 차라리 ‘진보’란 표현을 확실하게 포함시키는 방안을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공천 논란 촉발한 ‘5대5 원칙’도 폐기…계파 충돌은 수면 아래로?

한편 당 정체성 외에 또 다른 ‘뜨거운 감자’는 바로 서울 노원병과 송파을 국회의원 재보선 공천을 놓고 불거졌던 친안철수계와 친유승민계 사이의 갈등인데, 이 문제도 일단 워크숍에서 논의해 결과를 내놨다.

[시사포커스 / 오훈 기자] 신용현 바른미래당 수석대변인은 선거 패배 원인과 관련 “국민의당, 바른정당 통합 때부터 지킨 (인사·의사결정권을 각각 똑같이 나누는) ‘5대5’ 정신을 패착으로 봤다”며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결정이 늦어지는 것에 대한 반성이 있어 제대로 통합한 마당에 더 이상 이를 따지지 말자는 얘기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시사포커스 / 오훈 기자] 신용현 바른미래당 수석대변인은 선거 패배 원인과 관련 “국민의당, 바른정당 통합 때부터 지킨 (인사·의사결정권을 각각 똑같이 나누는) ‘5대5’ 정신을 패착으로 봤다”며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결정이 늦어지는 것에 대한 반성이 있어 제대로 통합한 마당에 더 이상 이를 따지지 말자는 얘기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20일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이를 전한 신 수석대변인은 선거 패배 원인과 관련 “국민의당, 바른정당 통합 때부터 지킨 (인사·의사결정권을 각각 똑같이 나누는) ‘5대5’ 정신을 패착으로 봤다”며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결정이 늦어지는 것에 대한 반성이 있어 제대로 통합한 마당에 더 이상 이를 따지지 말자는 얘기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시각과 마찬가지로 바른미래당 평당원 중심 모임인 정치미래연합(이하 정미연)에서도 21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지방선거의 패배는 특정 개인의 책임도 아니고 몇몇 사건들이 불러온 우연도 아니다”라며 “투명하고 공정한 공천 시스템과 우너칙을 정착시키지 못한 결과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유권자의 민심을 싸늘하게 돌아서게 만든 것”이라고 ‘공천 문제’를 꼬집었다.

무엇보다 이들은 “노원병과 송파을 사례가 많이 알려졌지만 사실 어느 곳을 특정할 필요도 없이 공천 잡음은 광범위한 현상이었다”고 주장하며 지역당원 투표로 공직선거 후보자 및 각 지역위원장을 선출하고 당비 납부 등 당원 자격기준 엄격 적용 및 유령당원·이중당원 정리 등을 당헌당규에 반영해달라고 비대위에 요구했다.

이처럼 공천 파동 역시 어느 정도 정리 수순에 접어든 듯 보이는데, 일각에선 당 정체성과 달리 의외로 공천 관련 사안은 한국당에 비해 별 다른 반발이 일어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사실상 바른미래당 통합 이전 양당 당수로서 양대 계파를 대표했던 안철수 전 후보와 유승민 전 대표가 모두 선거 패배로 자연히 입지가 크게 위축됐기 때문이란 해석도 내놓고 있다.

실제로 유 전 대표는 대표직을 내려놓은 이후엔 소속 국회의원이 모두 참석하기로 되어 있는 경기도 양평에서의 1박2일 워크숍에도 불참했으며 의원도 아니고 당직조차 갖고 있지 않은 안 전 후보의 경우 낙선한 뒤 당내 일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으로 갔다가 귀국예정일을 이틀이나 미룬 끝에 21일 조용히 돌아와 잠행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안 후보는 재기 모색은커녕 지난 19일 바른미래당의 1박2일 워크숍에 발제자로 나선 이종훈 시사평론가로부터 ‘정계은퇴 대상’으로까지 지목되며 미증유의 정치적 위기에 몰린 상황인데, 일단 신용현 수석대변인은 해당 발언에 대해 “외부 발제자가 그런 얘기를 했지만 주승용 의원이 외부 발제자가 안 전 후보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던 내용을 직접 반박하고 나섰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렇지만 당내에서 국민의당 시절 친안철수계 최고위원이었던 장진영 변호사가 안 전 후보 측을 비판하고 같은 당 이상돈 의원도 지난 2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안 전 후보의 정계은퇴를 “당연하다. 정치적 역량의 한계 같은 게 누적돼 이미 그런 수순에 들어가 있다”고 압박하고 있어 기존 당내 구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계 은퇴’에 안 전 후보가 과연 어떤 반응을 내놓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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