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정족수 미달로 ‘표결 불성립’…與野, 상호 책임 공방만 격화

[시사포커스 유용준 기자] 정세균 국회의장이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개정안 표결이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개헌안의 투표 불성립을 선언하고 있다.
[시사포커스 유용준 기자] 정세균 국회의장이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개정안 표결이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개헌안의 투표 불성립을 선언하고 있다.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26일 발의한 대통령 개헌안이 24일 본회의에서 의결정족수 미달로 ‘표결 불성립’돼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국회로 넘어온 지 60일 만에 사실상 폐기됐다.

앞서 1980년 전두환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하에 간선제 5공화국 헌법 개정안을 발의한 이후 38년 만에 발의한 대통령 개헌안이었던 만큼 통과될 수 있을지 여부에 일찌감치 많은 관심이 집중됐지만 국회 개헌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이 밀어붙이듯 먼저 개헌안을 만들어 국회에 공을 넘겼다면서 야권이 격렬하게 반발해왔기에 어차피 부결될 게 유력하다는 시각도 그간 상존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사실상 대통령 개헌안이 자당의 개헌안이라며 야권에 협조를 촉구해왔는데, 이에 야권 내에서 줄곧 여당에 협조적이던 정의당마저 돌아설 정도로 냉랭한 기류가 흐르면서 대통령 개헌안만이 유일 안건으로 상정된 24일 국회 본회의에는 의결정족수인 재적 의원 3분의 2(192명)에 한참 못 미치는 114명(민주당 112명, 민중당 김종훈, 무소속 손금주)만 참석하는데 그쳤다.

이렇게 대통령 개헌안이 개표조차 하지 못하고 폐기 수순을 밟게 되자 정부여당과 야권은 이 같은 결과를 놓고 서로 비방전을 이어갔는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심각한 대치 국면 속에 국회 내 개헌 논의조차 이대로 사장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 어린 시선이 늘어가고 있다.

◆ 野, 대통령 개헌안 철회 요구에도 강행된 국회 본회의

본회의가 열리기 하루 전인 지난 23일 오전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야3당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 논의와 별도로 제출된 대통령 개헌안이 국회애서 통과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대통령 개헌안이 철회되지 않으면 본회의장에 입장하지 않겠다고 예고했다.

이들은 “대통령 개헌안이 표결 불성립, 부결된다면 단지 대통령의 개헌안 좌초가 아니라 개헌 논의 자체가 좌초될 것”이라며 “대통령이 개헌안을 철회하면 초당적 합의를 통해 대한민국의 총의를 모아 개헌을 해낼 수 있다”고 호소했다.

이 중 평화당은 같은 날 오후 최경환 대변인 논평을 통해서도 “야당이 합리적 대안을 내놨음에도 민주당은 아무런 협상이나 노력도 시도하지 않았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개헌세력 대 반 개헌세력 구도로 만들기 위해 정략도구로 쓰고 있는 것”이라며 “더 이상 개헌을 정략적 도구로 이용하려는 의도를 포기하고 본회의 표결 시도를 중단하라”고 여당에 촉구했다.

여기에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역시 같은 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한 김성태 원내대표가 “대통령 개헌안을 본회의에 부의하지 않고 스스로 마무리 짓는 정치적 결단을 내리는 것이 차후 국민 개헌안에 대한 원활한 논의와 개헌의 실질적 완성에 바람직하고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입장을 내놓은 데 이어 같은 날 오후엔 의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통해 본회의 불참 방침을 밝히면서 “문재인 관제개헌안 표결 불발 책임을 야당에게 떠넘기기 위한 꼼수 본회의 일정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정세균 국회의장과 민주당에게 있다”고 엄중 경고했다.

하지만 오히려 민주당의 홍영표 원내대표는 24일 본회의 전 가졌던 정책조정회의에서 “대통령 발의는 촛불정신과 대선공약을 지키기 위한 결단”이라며 “이견이 있다면 본회의에 들어와서 토론하고 가부 또는 기권으로 의사를 표명하면 된다”고 응수했다.

무엇보다 홍 원내대표는 야4당의 불참 결정에도 굳이 본회의를 강행하는 이유와 관련해 ‘국회는 헌법개정안이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의결하여야 하며, 국회의 의결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고 규정한 헌법 130조를 들어 “본회의에 대통령 개헌안을 상정하고 의결절차를 하는 것은 헌법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야권의 불참은 위헌이라고 압박하고 나섰다.

[시사포커스 유용준 기자] 이낙연 국무총리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개정안을 심의하기 위해 열린 본회의에 자유한국당 등 야당 의원들의 의석이 비어있는 가운데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시사포커스 유용준 기자] 이낙연 국무총리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개정안을 심의하기 위해 열린 본회의에 자유한국당 등 야당 의원들의 의석이 비어있는 가운데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정 의장도 사흘 전 공고했던 대로 24일 오전 10시에 야권의 참석 여부와 관계없이 대통령 개헌안 관련 국회 본회의를 열었는데, 정부를 대표해 이 자리에 참석한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날 문 대통령을 대신해 읽은 제안 설명에서 “국회는 특위를 구성해 헌법개정을 논의해왔지만 안타깝게도 진척을 이루지 못했다. 국회 개헌 논의만 기다리다가는 6월 지방선거 동시 개헌국민투표라는 여야 공통의 공약을 이행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며 “국민께 드렸던 약속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이날 대통령 개헌안 상정을 정당화했다.

◆ 대통령 개헌안 폐기되면서 ‘개헌’ 공은 다시 국회로

그렇지만 이런 호소가 무색하게 이날 본회의에는 당초 불참 선언했던 야4당은 물론 민주당에서조차 소속의원 118명 중 6명이나 투표에 참여하지 않아 싱겁게도 ‘투표 불성립’이 선언됐는데, 대통령 개헌안 처리가 무산된 이 같은 결과에 정 의장은 “6월 안에 여야가 최대한 지혜를 모아 국회 단일안을 발의해 달라. 더 이상 미룰 명분도 시간도 없다”며 국회 개헌안에 마지막 기대를 거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한국당의 김성태 원내대표도 지난 23일 “개헌은 현재진행형이다. 정부 개헌안이 철회되더라도 국민 개헌을 위한 논의는 살아 움직일 것”이라며 “헌정특위 활동시한으로 잡은 다음 달 30일까지 교섭단체 간 합의된 국민 개헌안을 만들고 헌법적 절차에 따라 개헌을 완수해 나가겠다”고 공언한 만큼 이날 본회의에서 대통령 개헌안 처리가 무산됐다고 해서 국회의 개헌 논의가 중단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통령 개헌안은 사실상 다시 거론되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되는데, 국회 사무처는 이번 개헌안이 표결 과정을 통해 부결된 게 아니므로 20대 국회가 끝날 때까지는 계류된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지만 헌법상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 의결해야 한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이미 재상정은 불가능하기에 사실상 폐기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회에 넘겼던 대통령 개헌안이 의사정족수 미달로 유명무실화되어 버리자 가장 격노한 곳은 이를 발의했었던 청와대였는데, 김의겸 대변인은 이날 오후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야당 의원들이 위헌상태의 국민투표법을 논의조차 하지 않은 데 이어 개헌안 표결이란 헌법적 절차마저 참여하지 않은 것은 헌법이 부과한 의무를 저버린 것”이라며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직무유기”라고 야권을 강하게 질타했다.

그러면서 김 대변인은 “개헌을 위한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앞으로 새로운 개헌 동력을 만들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향후 개헌 추진 가능성에 대해서도 회의적 시각을 내비쳤다.

흥미롭게도 자유한국당 소속인 김재경 국회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 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이런 청와대의 반응을 꿰뚫어 본 듯한 입장을 먼저 내놨는데, 김 위원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제 청와대와 여당은 개헌 논의는 끝났다고 할 것이다. 대통령안을 무시한 야당과 국회가 개헌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느냐고 선전전을 펼칠 것”이라며 “개헌 여론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았는데 아쉽다. 대통령안의 원맨쇼로 개헌 무대의 조명등이 꺼져가는 느낌”이라고 주장했다.

◆ 예상된 ‘표결 불성립’, 남은 건 여야 간 책임 공방 뿐?

[시사포커스 유용준 기자] 이정미 정의당 대표를 비롯한 노회찬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개정안을 심의하기 위해 열린 본회의에 참석한 뒤 표결이 시작되자 본회의장을 나가고 있다.
[시사포커스 유용준 기자] 이정미 정의당 대표를 비롯한 노회찬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개정안을 심의하기 위해 열린 본회의에 참석한 뒤 표결이 시작되자 본회의장을 나가고 있다.

이른바 대통령 개헌안 표결 불발 문제에 청와대까지 언성을 높이면서 정치권은 책임 공방이라는 후폭풍에 다시금 휩싸였는데, 우선 여당인 민주당에선 추미애 대표부터 “헌법상 대통령은 분명한 발의권을 갖고 있고 국회가 그동안 그냥 허송세월 보내지 않았나”라며 “그런 야당들이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두 큰 책임이 있는 것이다. 헌법을 부정한 것”이라고 야권에 일침을 가했다.

당 차원에서도 오전에 박경미 민주당 원내대변인이 “헌법기관 자체인 국회의원이 헌법을 준수하지 않는 자기모순은 어떤 방식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국민의 60% 이상이 대통령 개헌안에 대해 찬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헌법 개정할 수 있는 호기를 놓쳐버리고 만 것은 전적으로 야당 책임”이라고 날을 세운 데 이어 오후엔 같은 당 김현 대변인이 “야당은 지방선거 유뷸리에 매달려 개헌논의를 지지부진하게 하더니 당리당략에 따라 표결에 불참함으로써 다수야당의 오만을 보여줬다”며 “국민은 야당 행태를 준엄하게 심판할 것”이라고 몰아붙였다.

이 같은 여당의 ‘야당 책임’ 공세에 맞서 야권도 즉각 반격에 나섰는데, 한국당의 신보라 원내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대통령 개헌안이 표결처리쇼로 마무리됐다. 대통령 개헌안을 철회해 달라는 야4당의 호소는 정부여당의 독선과 아집에 무시당했다”며 “야4당과의 협치를 포기한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또 바른미래당의 김삼화 원내대변인도 같은 날 구두 논평을 통해 “통과되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개헌안을 표결에 붙였는데 이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개헌 찬반 프레임을 유도하려는 여당의 몽니”라며 “여당은 개헌의 결실보다 정략에 몰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상호 책임 공방에 매몰되기보다 개헌 논의를 재개해야 한다는 데 방점을 둔 목소리도 일부 흘러나와 이목을 끌기도 했는데, 최석 정의당 대변인의 경우 “대통령 개헌안은 ‘표결 불성립’으로 사실상 부결로 마무리됐지만,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뒤에서 팔짱만 끼고 지켜만 보고 있던 한국당과 민주당을 한 발 나오게 만들었다”며 “최대한 이른 시일 내 국회는 (개헌) 단일안을 만들어 개헌 성사에 힘을 합쳐야 한다”고 논평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바람과 별개로 이번 본회의 강행에 따라 여야 간 긴장수위는 한층 높아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개헌은 차치하고 당장 국회 후반기 새 의장단 선출부터 오는 28일로 예정된 민생법안 처리까지도 난항을 겪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과연 대치 국면을 풀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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