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野, 국민투표법 처리 무산 ‘與 책임’ 주장…민주당 ‘개헌논의 중단’ 선언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야3당 개헌 공동입장 발표에서 민주평화당 김광수(왼쪽부터) 헌정특위 간사, 바른미래당 김관영 헌정특위 간사, 천정배 헌정특위 위원장, 바른미래당 김동철 원내대표,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 심상정 헌정특위 위원장이 손을 맞잡고 있다. ⓒ뉴시스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야3당 개헌 공동입장 발표에서 민주평화당 김광수(왼쪽부터) 헌정특위 간사, 바른미래당 김관영 헌정특위 간사, 천정배 헌정특위 위원장, 바른미래당 김동철 원내대표,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 심상정 헌정특위 위원장이 손을 맞잡고 있다. ⓒ뉴시스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여야가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으로 인한 정쟁에 휩싸인 끝에 국민투표법 처리 시한도 넘겨 사실상 6월 지방선거 동시 개헌 투표도 무산됨에 따라 국회 핵심 현안 중 하나였던 개헌 문제도 당분간 아예 물 건너가는 모양새다.

당초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을 앞세워 개헌 필요성을 강하게 역설해왔던 여당마저 ‘드루킹 특검’을 국회 정상화의 전제조건으로 내건 야당의 요구를 단호히 일축하고 도리어 개헌 논의 중단까지 선언해버려 이러다 정국 상황과 관계없이 지속되어온 관련 특위 활동조차 ‘올스톱’되는 게 아닌지 우려 어린 시선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 지방선거 동시 개헌 무산에 뿔난 靑·與, ‘야당 책임’ 한 목소리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시한 국민투표법 처리 시한인 23일 자정까지도 국회가 공전하던 끝에 6월 지방선거 동시 개헌투표 실시가 사실상 무산되자 문재인 대통령은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18회 국무회의에 참석한 가운데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모아 발의한 헌법 개정안을 단 한 번도 심의조차 하지 않은 채 국민투표 자체를 하지 못하게 했다”며 국회를 비판했다.

이는 형식상 정치권 전체를 비난하는 듯 보이지만 그간 여당은 자체 개헌안 없이 대통령 개헌안을 그대로 밀어붙여 왔었던 만큼 결국 이를 수용하지 않던 야권만을 겨냥한 발언인데, 이를 증명하듯 여당에서도 25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를 통해 “야당이 입으로는 개헌을 하지만 행동은 전혀 옮기지 않아 결국 골든타임을 놓쳐버리고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라며 야당 책임론에 힘을 보탰다.

[시사포커스 유용준 기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시사포커스 유용준 기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특히 추 대표는 국민투표법 처리 시한까지 넘기는 원인이 된 이른바 ‘드루킹 사건’까지 꼬집어 “야당이 키우려고 하는 드루킹 사건은 여기저기 정치 동냥을 했던 신종 선거 브로커들의 일탈행위에 불과하다”며 “야당은 정쟁에만 몰두해 해야 할 책무마저 걷어차 버렸다. 오로지 문재인 정부 발목잡기, ‘골 지르는’ 일만 하는 야당이 돼 버렸다”고 거듭 몰아붙였다.

이 뿐 아니라 야당 원내대표들과 개헌 등 국회 정상화를 위해 수차례 논의해왔던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아예 국민투표법이 처리되지 못한 책임이 야권에 있는 이유를 일일이 짚어가면서 각 당에 비난을 퍼부었는데, 이날 오전 의원총회에서 “바른미래당이 (드루킹 사건 관련) 특별수사본부를 도입하면 자기들은 수용하겠다고 했고 그 중재안을 저희가 수용했다. 그래서 어제 오후 합의되는 쪽으로 되는 것 아닌가 했는데 자유한국당이 이것도 걷어찼다”고 강조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우 원내대표는 “참 어이없는 것은 마지막 제안을 한 바른미래당 태도다. 한국당이 거부했으면 (한국당에) 문제제기를 해야 하는데 다시 민주당에 특검으로 가겠다고 했다”면서 “국민투표법을 통과시켜서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투표하자는 절박함이 있었기에 (민주당은) 바른미래당 중재안을 수용했던 것”이라고 격한 불만을 토로했다.

또 그는 “참정권을 박탈하고 민생을 외면한 한국당의 망동은 심판 받을 것”이라면서도 “평화당도 (그) 대열에 함께하는 것도 납득할 수 없다. 야당의 온갖 훼방으로 31년 만에 찾아온 개헌의 기회가 결국 물거품이 된 것 아닌가”라고 평화당에게까지 직격탄을 날렸다.

한 발 더 나아가 우 원내대표는 같은 날 국회에서 개헌 관련 기자간담회도 열었는데, 여기서 그는 “개헌을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동시투표를 할 수 없게 됐다. 그렇기 때문에 개헌을 지금 상태에서 진행시키기 어렵다”며 사실상 개헌 논의를 잠정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다만 그는 “(개헌을) 당장 할 수는 없고 하지 못했다는 것이지 개헌 중단이다, 개헌을 이제 안한다는 말은 아니다”라며 “한국당 태도가 변화되고 일정한 조건이 만들어지면, 국민투표법이 통과할 수 있는 조건이 되면 언제든지 개헌을 통과시킬 수 있도록 반드시 노력하겠다”고 부연했다.

이처럼 개헌 철회는 아니란 점을 분명히 한 것은 전날 청와대 측 입장을 의식한 것으로 비쳐지는데, 지난 24일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대통령 개헌안 철회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방선거와 동시 개헌투표는 물 건너갔지만 대통령이 발의한 날로부터 60일 안에 국회가 (의결) 투표를 해야 한다. 그때까지는 아직 유효한 것”이라고 선을 그은 데 이어 “설사 넘어가더라도 20대 국회 때까지는 (개헌안이) 남아있기 때문에 어떻게 할지는 지켜보면서 판단할 생각”이라고 어느 정도 여유를 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래선지 여당도 더 이상 촉박한 시간을 우선하지 않고 이전과 다소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는데, 우 원내대표는 기자회견 뒤 질의응답에서 ‘한국당이 연내 개헌안을 만들어 오면 투표에 붙일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앞으로는 시기의 문제는 아니다”라며 “개헌안이 국민의 뜻에 맞는 개헌안인가 아닌가, 개헌안 투표율이 50%를 넘길 수 있는가가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이라고 답변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헌정특위에 대해선 이전처럼 그대로 운영하겠다고 덧붙였는데, “헌정특위 과제는 헌법개정과 선거법 개정 2가지”라며 “선거법 개정 문제는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중단할 생각은 없다”고 설명했다.

◆ 야권, 지방선거 동시 개헌 무산에도 ‘與 책임’ 공세 강화

이렇듯 청와대와 여당이 야권 책임론을 바탕으로 십자포화를 퍼붓자 야권에선 거꾸로 여당 책임이라면서 맞대응에 나섰는데,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25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전날 개헌 무산에 유감을 표한 문 대통령을 겨냥 “청와대와 여당의 패키지 개헌 꼼수가 무산된 것 뿐 개헌은 결코 무산되지 않았다”며 “6·13이란 자신들만의 시간표를 짜놓고 개헌장사를 시도한 문 대통령의 개헌시험은 이제 막을 내렸다”고 응수했다.

여기에 김 원내대표는 “개헌은 국민 개헌으로 반드시 국회에서 완성하겠다”면서 “개헌으로 장난친 문 대통령과 민주당 일당들은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고 오히려 역공까지 펼쳤다.

[시사포커스 이광철 기자] 박주선 바른미래당 공동대표가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시사포커스 이광철 기자] 박주선 바른미래당 공동대표가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같은 날 바른미래당에서도 비슷한 발언이 터져 나왔는데, 박주선 공동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문 대통령에 “대통령 발의 개헌안 처리 자체가 불발된 것에 대해 국회의 책임, 정치권의 책임을 거론했는데 대통령이 이런 말씀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여당은 뭘 했으며 대통령은 전혀 책임이 없나”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박 대표는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할 당시 국회나 정치권에 대해 단 1초라도 상의를 하거나 개헌안 통과를 위해 협조를 요청하는 역할을 했느냐”라며 “본인은 약속을 하나도 안 지키면서 모든 책임은 정치권과 국회가 져야 된다는 시각과 관점에 울분을 토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적잖이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무엇보다 그는 대통령 개헌안에 대해서도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시정하고 고치는 내용이 아니라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고스란히 남겨놓은 채 폐해를 은근히 이용하려는 규정들도 없지 않아 있었다”며 “지방선거와 동시 국민투표가 이뤄질 수 없다는 게 확인된 이상 이 개헌안을 국회에 그대로 둬서 국회에 부담을 줘선 안 된다. 대통령께서 개헌안을 철회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비판적 입장을 내놨다.

◆ 야권 일각 “빨리 개헌 성사시켜야”…중재 역할 자처

그렇다고 해서 야권에서 이전처럼 무조건 여당에 대한 비판만 쏟아낸 것만은 아니었는데, 앞서 거론한 바른미래당은 물론 평화당과 정의당 등 야3당은 같은 날 오전 국회에서 민주당과 한국당이란 거대 양당에 개헌을 성사시켜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야3당 개헌연대는 거대 양당에 제시할 개헌 중재안을 이미 완성해 놨다. 6월 개헌이 어려워졌다 하더라도 지방선거 전에 개헌안을 합의하고 새로 일정을 잡아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방안을 정치권이 합의하면 된다”며 ”빠른 시일 내에 국회 주도의 개헌을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는 국민의 염원을 양당에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들은 민주당과 한국당이 국회를 정상화하고 당초 교섭단체 원내대표 간 합의됐던 ‘8인 개헌 협상회의’를 즉각 가동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는데, 그 중에서도 이날 ‘개헌 논의 중단’을 전격 선언한 여당을 겨냥 “개헌판을 닫으려는 그 어떤 정치세력도 반 개헌세력으로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엄중 경고했다.

하지만 이들이 주장한 대로 새로 지방선거 전 개헌안 합의가 이뤄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단언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일단 문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이후 국민 여론과 국회 상황을 감안해 입장을 내놓겠다고 한 대통령 개헌안 강행 여부가 최대 쟁점으로 꼽히고 있다.

대통령 개헌안은 현행 헌법 제130조에 따라 5월 24일까지 국회에서 의결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야권에서 모두 반감을 갖고 있어 사실상 통과하기 어려운 실정인데, 만일 정부여당이 남북정상회담에서 성과를 내 친정부적 여론이 크게 형성된다면 이를 바탕으로 대통령 개헌안도 밀어붙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정치적 부담이 있는 이러한 강행돌파가 과연 일어날 수 있을 것인지 벌써부터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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