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 경호’ 사안에 文 대통령까지 나서면서 논란 다시 불붙어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부인인 이희호 여사(사진)의 경호 관할 기관을 놓고 정치권에서 신경전이 벌어지던 끝에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까지 가세하면서 이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부인인 이희호 여사(사진)의 경호 관할 기관을 놓고 정치권에서 신경전이 벌어지던 끝에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까지 가세하면서 이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최근 난데없이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부인인 이희호 여사의 경호 문제를 놓고 정치권에서 뜨거운 논쟁이 일고 있어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처음 문제를 제기한 건 자유한국당의 김진태 의원으로, 현행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이 여사에 대한 경호 기간은 이미 만료됐음에도 불구하고 왜 경찰이 아니라 청와대 경호처가 계속 경호를 맡고 있는지 지적했다.

이 같은 지적에 청와대 경호처는 이 여사에 대한 경호 업무를 경찰로 넘기겠다고 해명했으나 돌연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이전처럼 청와대 경호처가 이 여사 경호를 계속하도록 지시함에 따라 이 사안은 이제 정치적 이슈로 비화되는 모양새다.

◆ 대통령 경호법 개정안, 한국당 반대로 논란 끝에 처리 무산

지난달 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선 대통령 경호법 개정을 놓고 때 아닌 ‘황후경호’ 논란이 일어났는데, 법사위의 한국당 간사인 김진태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청와대 경호처가 법에 근거도 없이 이희호 여사를 황후경호하고 있는 것이 들통났다”며 “금년 2월까지만 경호처 경호를 받아야 하는데 현재까지도 경호처가 보호해주고 있다. 그러다 문제가 될 것 같으니 기간을 5년 연장해달란 법안을 들고 왔다”고 청와대 측을 비판했다.

물론 김 의원의 비판처럼 이 여사의 경호 기간은 지난 2월24일에 만료되긴 했는데, 실상을 살펴보면 이보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10월 현행보다 5년 늘려 최장 20년(퇴임후 10년, 추가 10년)간 대통령 경호처가 전직 대통령과 배우자를 경호할 수 있다는 내용의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이미 국회에 제출했었고 단지 그동안 국회에서 지지부진하던 끝에 경호시한을 넘긴 지난달 22일 겨우 운영위에서 처리되면서 29일에야 법사위에 상정된 것이어서 무작정 청와대 경호처를 질타하기는 애매한 면이 없지 않다.

그렇지만 김 의원은 “퇴임 후 15년이나 경호처 경호를 받았고 이제부터 경찰이 인계받아 경호해주는데 그걸 마다하고 계속 경호처 경호만 받게 해달라는 것”이라며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경찰 경호를 받고 있는데 이 여사만 경호처 경호를 받아야 하나. 대통령 경호처장은 이 여사에 대한 경호를 중단하고 경찰에 넘기고, 불법경호에 대한 직권남용 책임을 지라”고 단호히 처리 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김 의원은 지난 2일 “이 여사에 대한 경호를 당장 중단하고 경찰에 이관할 것을 요구한다. 만약 불응 시 직권남용으로 형사고발하겠다”며 “4일 24시까지 이 여사에 대한 경호를 중단하고 그 결과를 알려주기 바란다”고 청와대 경호처를 한층 더 압박하고 나섰다.

사태가 이렇게 흐르자 이 문제는 점점 정치적 사안으로 비화되는 조짐이 일었는데, 지난 3일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우상호 의원까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이런 주장을 하려면 먼저 경호 받을 자격도 없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경호도 중단하라고 했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에 따른 보복성 발언인 듯한데 참 야박한 주장”이라며 “이 여사를 향해 못된 흠집을 잡았다. 전직 대통령 영부인에 대해 예의를 지키라”고 김 의원에 맞불을 놨다.

여기에 같은 날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인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 역시 3일 MBC라디오 ‘양지열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경호를 연장하는 문제가 국회에서 논의된 게 상당히 오래됐다. 그런데 계속 야당 측에서 미뤄왔기 때문에 지금 통과 안 되고 있었던 것”이라며 “자기들이 일부러 시한을 넘기게 해놓고 왜 경호를 계속하느냐고 시비하는 건 맞지 않다”고 한국당 측 주장에 항변했다.

실제로 이 사안은 이번에 처음 불거진 게 아니라 그간 국회에서 수차례 다뤄졌었는데, 당초 대통령 경호처의 전직 대통령 경호기간이 최장 7년이던 부분을 고 김 전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인 박지원 의원이 10년으로 늘린 데 이어 2013년엔 5년 범위에서 추가 연장 가능하도록 개정하는 법안까지 발의함에 따라 당시 국회 문턱을 넘긴 했지만 한동안 ‘이희호 경호법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심지어 이 문제는 지난 2015년 7월에도 똑같은 논란이 벌어진 바 있는데, 이때는 박 의원이 아예 ‘전직 대통령과 배우자가 평생 대통령 경호실의 경호를 받게 한다’는 내용의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다가 이번처럼 운영위원회 문턱은 넘었지만 당시에도 김진태 의원이 “특정 1인을 위한 입법은 곤란하다”며 제동 걸어 10개월 넘는 신경전 끝에 결국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 손발 안 맞는 청와대? 반나절 만에 입장 번복

이런 가운데 정작 이번 법사위 회의에 출석해 ‘특정 개인이 아니라 현재부터 미래까지 모든 전직 대통령과 그 배우자들이 혜택을 받게 된다’고 한국당에 반박하던 청와대 경호처는 여당 측 지원사격에도 불구하고 김 의원의 최후통첩에 적잖은 부담을 느꼈는지 ‘4월 2일부로 경찰에 이 여사 경호업무에 대한 인수인계를 시작했고 한 달 내에 이관을 마치겠다’면서 사실상 꼬리를 내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 같은 답신을 받았다고 5일 밝힌 김 의원은 “만시지탄이나 그나마 다행”이라면서도 “실제로 이관할 때까지 지켜볼 것이다. 두 달이나 불법 경호한 책임은 훗날 다시 묻게 될 것”이라고 긴장수위를 유지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5일 오후 춘추관 브리핑에서 이희호 여사의 경호를 청와대 경호처에서 맡는 사안과 관련해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받아봐야 한다며 문 대통령은 일단 기존대로 이 여사에 대한 경호처 경호를 유지할 방침이라 전했다. ⓒ청와대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5일 오후 춘추관 브리핑에서 이희호 여사의 경호를 청와대 경호처에서 맡는 사안과 관련해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받아봐야 한다며 문 대통령은 일단 기존대로 이 여사에 대한 경호처 경호를 유지할 방침이라 전했다. ⓒ청와대

하지만 이대로 매듭지어지는 듯 했던 상황은 갑자기 문 대통령이 가세하면서 급반전됐는데,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5일 오후 춘추관 브리핑에서 대통령 경호법 개정안 처리와 관련 “(문 대통령이) 국회 법사위에서 심의·의결되지 않아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한 것에 대해 심대한 유감을 표했다”며 이 여사에 대한 청와대 경호처의 경호를 그대로 유지하라 지시했다고 전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해당 지시 근거로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제4조 제1항 6호에 있는 ‘그밖에 처장이 경호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국내외 요인에게도 청와대가 경호를 맡을 수 있다’는 조항(2013년 3월 신설)을 들면서 “법 개정의 진행 상황과 이 여사의 신변 안전이 갖는 중대한 의미를 감안하면 청와대 경호처는 국회 법 개정이 이뤄지기 전까지 동 조항에 따라 이 여사를 경호할 수 있다고 본다”고 역설할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반나절 만에 완전 뒤바뀐 결과가 청와대로부터 다시 나온 데 따른 후폭풍을 의식했는지 문 대통령은 “경호처는 동 조항의 의미에 대해 해석 논란이 있다면, 법제처에 정식으로 문의해 유권해석을 받길 바란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실상 이관 중단 지시를 내린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에 놀란 경호처도 설령 법제처 결과가 부정적으로 나올지라도 국회에서 개정법이 처리될 때까지는 이 여사 경호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으로 급선회했다.

이렇듯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뀌자 김 의원부터 즉각 이날 오후 입장문을 통해 “법제처에 유권해석 받는다고 저러는데 안쓰러울 뿐이다. 만에 하나 법제처에서 대통령 의중에 맞춘 ‘코드해석’을 한다면 좌시하지 않겠다”며 “그런 상황이 오면 법원에 대통령 경호처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하겠다. 나중에 망신당하지 말고 순순히 받아들이는 게 좋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 ‘경호 논란’, 법적 차원 넘어 진영 간 정쟁으로 비화

그동안 꾸준히 이 여사 경호 관련 문제를 제기해온 김진태 의원은 문 대통령의 반응에 반발하면서 강력 대응할 것임을 경고하고 나섰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그동안 꾸준히 이 여사 경호 관련 문제를 제기해온 김진태 의원은 문 대통령의 반응에 반발하면서 강력 대응할 것임을 경고하고 나섰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비단 김 의원 뿐 아니라 한국당에서도 곧바로 정태옥 대변인 논평을 통해 “경호처장이 국내외 요인(要人)을 경호할 수 있다는 조항을 임의로 해석해서 이희호 여사 경호를 무한히 늘리겠다는 발상”이라며 “법제처 유권해석으로 법을 우회하는 것은 명백한 탈법이고 위법이다. 이를 계속 강행한다면 대통령의 권한남용에 해당한다. 추후 국고 낭비에 따른 환수대상이 될 것”이이라고 청와대를 압박했다.

그러자 같은 날 여당인 민주당에서도 김현 대변인이 오후 서면브리핑을 통해 “법안은 김진태 한국당 의원의 반대 등으로 심의 의결되지 못하고,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해 오늘날과 같은 이 여사 경호 논란이 발생했다. 법사위의 체계 자구 심사 권한을 넘는 월권행위가 벌어진 것”이라며 “국회 운영위 여야 합의를 준수해 서둘러 법안을 처리하는데 이제라도 협조해야 한다. 전직 대통령 경호문제까지 정쟁에 끌어들이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역공을 펼쳤다.

이처럼 확전 양상을 띠면서 하루 뒤인 6일엔 대변인 수준이 아니라 당 지도부 인사들까지 직접 포문을 열었는데,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현재 김영삼 대통령 미망인인 손명순 여사의 경호는 경찰이 하고 있다. 손 여사는 경호는 대통령 경호처가 필요치 않아서 경찰이 하는 것이냐”며 “대통령 말 한 마디에 이 여사 경호를 유지한다면 문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을 자처하는 것”이라고 날선 비판을 가했다.

이 뿐 아니라 바른미래당마저 같은 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김중로 최고위원이 “15년 지난 영부인에게 또 다른 특혜를 준다면 이게 우리나라 현 정치의 현주소인가”라며 “민주주의 국가는 법치가 중요하고 기준이 있다. 그대로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청와대 압박에 뛰어들었다.

반면 호남 출신 의원들이 중심인 민주평화당에선 이날 최경환 대변인 논평을 통해 “이 여사는 김대중 대통령과 더불어 한국 민주주의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문 대통령이 경호를 계속하라고 지시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청와대 측에 힘을 실어줘 정치권은 이 문제를 놓고도 일견 범보수 대 범진보 구도로 대치하는 형국이 됐다.

이 같은 기류 속에 청와대 또한 꿋꿋이 공방을 이어갔는데, 6일 손명순 여사 사례와 비교한 한국당 측 지적에 청와대 관계자는 “손 여사 경우는 경호 임기가 끝날 때의 시점에 당시 정부가 이 같은 (경호 연장 관련) 유권해석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지 않아 자동으로 정리됐고, 이번엔 현 정부가 마침 (관련법) 시한이 만료돼 처음으로 유권해석 검토에 들어간 것”이라고 반박하면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아 적어도 법제처의 유권해석이 나오기 전까진 논란이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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