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임횡령·성추행 등 각종 사건 영향 이사직 내려놓아
최근에는 정부 규제 압박에 총수일가 사퇴 이어져

대표이사 또는 등기이사에 물러난 총수 일가. 좌측부터 현대건설에서 물러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일본롯데홀딩스에서 물러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전인장 삼양식품 회장,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사진 / 시사포커스 DB]
대표이사 또는 등기이사에 물러난 총수 일가. 좌측부터 현대건설에서 물러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일본롯데홀딩스에서 물러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전인장 삼양식품 회장,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사진 / 시사포커스 DB]

[시사포커스 / 김용철 기자] 최근 들어 대기업 총수 일가 경영인들이 여러 이유를 들어 보직에서 물러나는 등 줄 사퇴가 이어지고 있다. 성추행 등 각종사고, 배임횡령, 갑질, 일감몰아주기 등 논란으로 인해 등기이사 또는 대표이사에 물러나는 게 다반사였다면 최근 들어선 정부 압박에 못 이겨 사퇴하는 총수도 등장하고 있다. 일각에선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꼼수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대기업 총수 일가 경영인들의 등기이사 또는 대표이사 직을 내려놓고 있다. 보직을 내려놓는 이유도 제각각이다. 성추행, 배임횡령 등 각종 사건으로 인해 보직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해 내려놓은 경우가 가장 많다.

◆배임횡령·성추행 등 각종 사건으로 이사직 사퇴

2세 경영을 이끌고 전인장 삼양식품 회장은 최근 일감몰아주기 의혹과 수백억대 횡령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전 회장은 대표이사직을 내려놨다. 검찰이 전 회장을 비롯한 오너일가를 일감몰아주기 혐의로 수사가 좁혀오자 부담을 느낀데 따른 조치라는 게 안팎의 시각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일본롯데홀딩스 대표이사직을 내려놨다. 한일롯데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일본롯데홀딩스 대표이사직에 자진 사퇴한 것은 일본에서 기업 관례상 실형이 선고되고 법정구속 되면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는 게 관행이기 때문이다. 다만 국내 기업의 대표이사 및 등기이직은 그대로 유지했다. 아직 대법원에서 최종 형이 확정되지 않은 만큼 사내이사를 유지하고 있다.

거슬러 올라가 작년에는 성추행 파문으로 대표 자리에서 떠난 사례도 빈번했다. 성추행 파문에 휩싸인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결국 그룹 회장직과 계열사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바 있다. 당시 김준기 회장은 입장발표를 통해 “최근 제가 관련된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해 사과드린다.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하다”며 “제 개인의 문제로 인해 회사에 짐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 오늘 그룹 회장직과 계열회사의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여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았던 최호식 호식이두마리치킨 회장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정부 규제 압박에 현대차·네이버 등 오너가 등기이사 사퇴

이처럼 각종 사건으로 인해 오너 일가가 대표이사 및 등기이사에 물러난 게 다반사였다면 최근 들어선 정부의 규제 압박으로 대표이사 또는 등기이사직을 내려놓은 경우도 발생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최근 주총에서 현대건설 등기이사직을 내려놓았다.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이 자동차 부문에 주력하기 위해 등기이사직을 내려놨다고 밝혔지만 정부의 지배구조 개선 압박과 다스의 검찰 수사 과정에서 현대차그룹이 거론된 게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현 네이버글로벌투자책임자·GIO·사진)도 네이버 등기이사직을 사임했다. 1999년 네이버 전신인 NHN이 설립된 후 19년 만에 일이다. 이와 관련 네이버는 “산업의 패러다임이 빠르게 전환되고 있는 글로벌 시장 상황에서 이 창업자가 GIO로서 직무에 더욱 전념할 필요가 높다고 판단했다”며 “이사회가 열릴 때마다 매번 참석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에 이뤄진 결정”이라고 말했다. IT업계서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네이버 총수 지정이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김홍국 하림그룹회장 역시 지난달 27일자로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았다. 지난해 5월 자산 규모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집단) 기준인 10조5000억원을 기록하면서 첫 지정돼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 일각에선 김 회장의 대표이사 사퇴가 김 회장 일가의 일감몰아주기 등으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현장조사만 무려 7번을 받았다. 공정위는 김 회장이 6년 전 장남인 김준영씨에게 비상장 계열사 올품의 지분을 물려주는 과정에서 편법 증여와 일감 몰아주기 등 문제가 있었는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SPC 허영인 회장의 장남인 허진수 부사장과 차남 허희수 부사장이 등기이사직에서 사퇴한다. SPC는 지난해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불법파견 논란에 일감 몰아주기 의혹으로 홍역을 치렀다. 이처럼 총수 일가가 대표이사 또는 등기이사 사퇴한 것을 두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와 함께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경영 간섭을 그대로 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재계 한 관계자는 “그동안 총수일가의 등기이사 또는 대표이사 사퇴는 검찰 수사 등 범죄혐의가 드러나면서 이뤄지고 있다면 지난해부터 일감몰아주기 등 정부의 재벌개혁 기조가 갈수록 강해지면 총수 일가의 등기이사직을 내려놓은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며 “총수 일가가 책임경영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 마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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