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결 시한’ 압박에 野 마지못해 논의 나섰지만 결과는 미지수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한병도(가운데) 청와대 정무수석과 김외숙 법제처장이 진정구(왼쪽) 국회 사무처 입법차장에게 '대통령 문재인' 명의의 대한민국 헌법 개정안을 제출하고 있다. ⓒ뉴시스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한병도(가운데) 청와대 정무수석과 김외숙 법제처장이 진정구(왼쪽) 국회 사무처 입법차장에게 '대통령 문재인' 명의의 대한민국 헌법 개정안을 제출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 발의 데드라인으로 못을 박은 26일 국회 개헌안을 마련하는 사안을 놓고 그동안 공전을 거듭하던 국회에서 마지못해 접점을 찾아가는 모양새다.

그간 야권에선 대통령 개헌안을 넘기며 국회를 압박하는 청와대의 태도에 진영을 막론하고 한 목소리로 성토해왔는데, 제왕적 대통령제 혁파를 우선한다는 취지에선 이를 절대 수용할 수 없는 반면 그렇다고 국회에서 처리를 거부할 경우 개헌 무산의 책임을 고스란히 야당이 지게 되는 딜레마에 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헌 투표 시점 등 세부 사항 관련해선 각 당의 입장차가 여전하다 보니 야권의 단일대오 형성에도 장애가 되고 있어 여태 각 당별로 자체 개헌안조차 확실하게 내놓지 못하고 있는데, 이번에 청와대가 대통령 개헌안을 선제적으로 내놓으면서 거세게 국회를 몰아붙이고 있는 만큼 국회 역시 더는 지체하지 못하고 자체 개헌안을 내놓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 대통령 개헌안 발의 강행에 야권 반응 제각각

앞서 예고해온 대로 26일 문 대통령은 UAE 순방 중 “개헌에 의해 제게 돌아오는 이익은 아무 것도 없으며 오히려 대통령의 권한을 국민과 지방과 국회에 내어놓을 뿐”이라며 “저는 이번 지방선거 때 동시투표로 개헌하겠다고 국민들과 약속했고 이를 지키기 위해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개헌발의권을 행사한다”고 대통령 개헌안을 발의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에 맞서 야권은 대통령 개헌안 발의 강행 움직임에 일찍이 격앙된 반응을 내놨는데,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확대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해 “대한민국 최대 변혁을 위한 사회주의식 헌법 개정을 오늘 발의한다. 문재인 정권은 좌파 정권의 안착을 위해 사회 체제 변혁을 시도하고 있다”며 “해방 이후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에 이어 (문 대통령이) 4번째 독재 대통령이 되는 날이 바로 오늘”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뒤이어 김성태 원내대표 역시 “홈쇼핑 광고하듯 개헌 TV 쇼를 벌인 청와대가 법제처 심사와 국무회의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문재인 관제 개헌안을 오늘 국회로 던진다”며 “반나절 심사하고 의결해 국회로 넘기는데 법률안은 고사하고 대통령령 하나를 바꿔도 이렇게 하지 않는 판에 이 정권이 개헌을 얼마나 우습게 여기는지 어처구니없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특히 김 원내대표는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서도 “문재인 관제 개헌에 대한 허상과 실상을 알려야 한다는 관점에서 앞으로 사회주의 개헌 저지 국민투쟁본부를 설치하는 부분을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했으며 같은 당 홍문표 사무총장은 아예 “특정 세력과 집권당을 위한 개헌이라면 300만 한국당 당원이 총궐기해 막아야 할 사명이 있다”며 총궐기 주장까지 펼쳤다.

이 뿐 아니라 원내 3당인 바른미래당에서도 같은 날 박주선 공동대표가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는 과정과 절차를 보면 제왕적 대통령”이라며 “국회에 공을 던지듯 개헌안을 던져놓고 너희가 공을 차든지 받든지 알아서 하라는 건 무책임한 겁박이자 제왕적 대통령제를 강화해 협치 구도를 깨는 모습”이라고 정부 행태를 맹비난했다.

다만 박 공동대표는 그저 비판만 한 게 아니라 “대통령이 저질러 놓은 개헌 불덩어리를 국회가 현명하고 지혜롭게 처리해야 할 시점인 만큼 여야 대표들이 함께 모여 개헌안 확정을 위한 로드맵을 제시하자”며 “야4당은 원내대표 회동을 통해 청와대 주도 개헌 불가, 분권형 개헌,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에 대한 합의를 이루자”고 야당 간 개헌 논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시사포커스 유용준 기자] 조배숙 민주평화당 대표가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시사포커스 유용준 기자] 조배숙 민주평화당 대표가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민주평화당 역시 비슷한 기조를 보였는데, 장정숙 대변인은 “개헌의 필요성은 공감하나 대통령이 국회 상황을 무시한 채 지금 같은 ‘밀어붙이기’식 개헌에 유감을 표명한다”며 “청와대가 개헌 추진방식에 대한 잘못된 사고를 바로 잡고, 대통령은 여야5당과 상의해 개헌안을 마련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이런 상황으로 오게 된 데 대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제1야당인 한국당에도 책임이 있다는 ‘양비론’을 꺼내들었는데, 조배숙 대표는 “청와대만 바라보면서 아무 역할도 못하는 민주당이나 개헌안을 내놓지 못하면서 횡포 부리는 한국당이나 도긴개긴”이라며 “개헌을 주도적으로 끌고 가야할 국회가 거대 양당 싸움으로 개헌안을 내놓지 못해 국민께 부끄럽다. 개헌기회를 날린다면 개헌안 발의를 강행하는 대통령이나 무능력한 여당, 대안 없이 반대만 하는 제1야당은 역사에 책임져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도 평화당에선 거대 양당이 이제는 적극 개헌 논의에 나설 것을 종용했는데, 박지원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어차피 대통령 개헌안은 국회를 통과 못한다. 한마디로 국회와 맞장을 뜨자는 것”이라며 “이제 집권여당 민주당과 제1야당 한국당이 책임 있게 나서야 한다. 국무총리 국회 추천을 수용해서 국회 내 모든 논의와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호소했다.

◆ 대통령 개헌안 ‘의결시한’에 쫓긴 野, ‘백기투항’?

이 같은 야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미 정부는 이날 오전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열어 상정 안건인 대통령 개헌안을 즉각 심의·의결했으며 대통령 역시 UAE 현지에서 전자결재로 이를 재가함에 따라 같은 날 오후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과 진성준 정무기획비서관, 김외숙 법제처장이 국회 입법차장실을 방문해 ‘대통령 문재인’ 명의의 대한민국 헌법 개정안을 접수하고 사실상의 개헌안 발의 절차를 마무리 지었다.

일단 대통령 개헌안이 이렇게 국회에 접수된 이상 현행 헌법 제130조 1항에 따라 60일 이내에 의결돼야 해 접수일인 이날 기준으로 5월 24일까지는 여야가 수용 여부를 본회의 투표로 결론 내야 하는 만큼 정치권에 남은 시간은 전보다 한층 촉박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예상했는지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앞서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개헌 열차는 6월 지방선거 동시투표를 위한 시기에 맞춰 속도를 낼 것이다. 5월24일로 의결시한이 정해졌다”며 “청와대는 5월초까지 국회 개헌안이 발의되면 대통령 개헌안을 철회한다고 한 만큼 국민투표를 대통령 개헌안으로 할지 국회안으로 할지는 국회 의지에 달려있다. 8인 협의체를 만들어 (개헌) 논의를 시작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야권을 압박했다.

여기에 정세균 국회의장마저 대통령 개헌안이 발의돼 국회로 송부된 것과 관련해 “한 달내로 국회가 단일안을 만들어 내는 조건이 충족된다면 국회의장으로서 국민과 대통령에게 시기에 대한 조정을 할 수 있다”며 “정부안이 국회에 왔고, 각 당이 방안을 만들었기 때문에 정치권에선 그 안을 어떻게든지 용광로에 녹여서 단일안을 만들면 될 일”이라고 절충안을 내놓자 등 돌렸던 야당도 결국 협상 테이블에 앉기로 했다.

사실상 청와대의 대통령 개헌안 발의를 통한 ‘의결 시한’ 압박이 효과를 낸 셈인데, 야권도 국회 자체 개헌안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 자체를 거부할 명분은 없고 대통령 개헌안 투표 결과 부결되면 그 후폭풍을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어느 정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 여야, 개헌 논의에는 합의했지만 유의미한 결과 나올지는 ‘불투명’

[시사포커스 유용준 기자] 정세균 국회의장과 여야 3당 원내대표가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장 접견실에서 열린 국회의장과 여야 3당 원내대표 회동에 참석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시사포커스 유용준 기자] 정세균 국회의장과 여야 3당 원내대표가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장 접견실에서 열린 국회의장과 여야 3당 원내대표 회동에 참석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에 따라 정 의장 주재로 가진 3당 원내대표 회동 직후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와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 김동철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세 교섭단체 대표들이 내일부터 개헌협상에 들어가기로 했다”고 강조한 데 이어 4월 임시국회일정과 4월로 임시국회 중 있을 문 대통령의 개헌 관련 국회 연설을 하는 방안에도 전격 합의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평화당과 정의당에 대해선 “(양당이) 공동교섭단체를 구성하면 바로 참여하면 된다. 필요한 경우 헌정특위 간사들도 참여하도록 하겠다”며 폭넓게 열어둘 방침임을 분명히 했고 권력구조 개편과 선거구제 개편, 권력기관 개혁, 개헌투표 시기 등 4가지 주요쟁점과 관련해선 헌정특위에서의 논의와 별개로 원내대표들끼리 협의를 시작했다고 민주당 측은 설명했다.

이처럼 그간의 긴장 국면이 돌연 급반전되면서 개헌 논의 결과에 대한 세간의 관심 역시 집중되기 시작했으나 향후 국회 차원의 협상이 순탄하게 전개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란 지적이 적지 않은데, 실제로 이날 3당 원내대표 회동 중엔 한때 고성이 오가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여당은 별도의 개헌안을 내놓기보다 대통령 개헌안을 적극 지지하고 있는 입장이고, 야권은 줄곧 민주당의 이 같은 태도를 비판하고 있어 본격적으로 논의에 들어간 뒤엔 간극을 좁히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를 보여주듯 당장 평화당만 해도 이날 대통령 4년 연임제를 골자로 한 ‘대통령 개헌안’과 달리 천정배 개헌특위 위원장이 총리추천제 구조의 개헌안을 내놓는 등 여당과 확연한 시각차를 드러낸 데다 선거구제 개편 쟁점에 있어서도 상호 충돌할 가능성이 높아 여러 정당이 논의에 참여한 가운데 불과 1달이란 기간에 단일안을 내놓기엔 상당한 진통이 불가피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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