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의 또 다른 중대 고비, '오일쇼크'

'이라크전'과 '중국쇼크'가 바닥을 친 줄 알았던 한국경제의 중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즉 생필품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석유가격이 급등하는 등, 한국은 또 다른 경제적 시련기를 맞이하고 있다. '제3차 오일쇼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국제유가가 연일 상승세를 타기 때문. 국내 기준유가 역할을 하는 중동산 두바이유는 연초 대비 무려 7.74달러 상승, 물가를 압박하며 서민경제의 주름살을 깊게 하고 기업의 채산성 악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28일에 이어 내국세와 석유수입부과금의 추가 인하를 검토중이나 가뜩이나 침체된 내수 경기가 얼어붙지 않을까 우려해 승용차 강제 10부제 등 강제적인 소비억제책에는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이라크전쟁으로 수급불안감이 극도에 달했던 지난해 두바이유 평균가격은 2002년보다 3달러 가량 오른 배럴당 26.79달러였다. 그러나 7일 기준 두바이유는 34.53달러로 걸프전 발발직전인 지난 90년 10월12일 34.58달러 이후 최고가를 기록했다. 작년 평균값보다는 28%, 2002년보다는 45% 높은 가격이다. 국내 하루 석유소비량이 228만배럴인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는 작년보다 매일 1천700만달러의 추가 비용을 물고 있는 셈. 험악해진 중동정세, '오일쇼크'로 직결 북해산 브렌트유와 미서부텍사스중질유(WTI)의 가격 상승폭은 더욱 두드러져 현재 브렌트유(36.97달러), WTI(39.40달러) 가격은 작년에 비해 8.27달러, 8.29달러에 달했다. WTI 선·현물 가격은 6일 39.57달러, 39.59달러로 40달러대에 육박하며 걸프전 발발직전인 지난 90년 10월11일 40.42달러, 41.02달러 이후 14년만의 신고가를 형성, 석유수입국들을 긴장케 했다. 최근의 유가 상승세를 부추기는 가장 큰 요인은 뭐니뭐니해도 최대 석유생산 지역인 중동의 정세 불안이다. 최근에는 테러가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터키 등으로 확산되고 있고 포로에 대한 미군의 학대사실이 알려진 뒤 중동분위기가 더욱 험악해지고 있어 향후 유가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또 세계경기의 회복을 계기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석유소비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휘발유 등 유제품의 재고가 예년보다 낮아진 점도 유가강세의 요인이다. 이로 인해 미국의 금리인상 가능성으로 한때 시장 이탈조짐을 보였던 국제 투기자금은 다시 매수세로 전환, 유가진정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예측기관들은 최근의 유가 수준이 이같은 점을 고려하더라도 지나치게 높은 것으로 보고 종전의 전망치를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등 일부 OPEC 회원국의 생산쿼터 유지노력 천명, 세계석유소비 2위국인 중국의 긴축정책에 따른 수요 증가세 진정 전망 등 안정요인이 시장에 좀처럼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점. 석유공사 관계자는 "시장 상황이 예상과 워낙 다르게 흘러가고 있어 지금은 어떤 전망도 내놓기 어렵다"면서 "중동정세가 쉽게 안정을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여 유가 하락은 당분간 없을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국제유가의 상승은 이미 국내 수출환경과 물가, 기업활동에 좋지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제유가가 연평균 1달러 상승하면 소비자물가 0.15%포인트 상승, 무역수지 7억5천만달러 감소, 경제성장률 0.10%포인트 하락을 불러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미 그 악영향은 위험수위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은행이 6일 발표한 `4월중 생산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의 생산자물가 지수(2000년=100)는 107.1로 3월의 106.6에 비해 0.5포인트가 올라 5년5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며 10개월째 상승세를 지속했다. 가뜩이나 내수 침체에 허덕이고 있는 기업 입장에서 볼때 원가상승분을 제품가격에 반영하지 못해 채산성 악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유가 움직임에 민감한 항공업계와 정유업계는 이미 비상경영체제를 연장하는 등 분주한 움직임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2월부터 가동한 비상경영체제를 6월 말까지 연장하는 한편 회사차원의 에너지 절감대책과 함께 경제속도·경제고도 운항, 최소 물품만 탑재 등 항공기 항공유 절감 운항방안을 마련, 시행에 들어갔다. 또 최소한의 고양력 부양장치를 사용토록 하는 동시에 지상 대기시에는 엔진가동을 줄이기로 했다. 대한항공도 항공유 구매에서 소비에 이르는 전과정에 대해 연료절감 방법을 개발, 적용키로 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정유업계는 국제유가가 계속 오를 경우 이를 국내 석유제품 가격에 반영한다는 입장이다. SK㈜ 관계자는 "정유사가 국제유가 인상에 따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는 없기 때문에 국제유가의 상승세가 지속되면 국내유가의 추가인상이 불가피하다"면서 "중장기적으로는 해외유전개발과 원유도입선 다변화 등을 통해 '오일쇼크'에 대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LG칼텍스정유도 최근의 유가파동은 수급의 문제가 아니라 가격의 문제이기 때문에 해외 지사망 등을 총동원, 국제 석유시장의 동향을 면밀히 파악해 최대한 싼 가격의 원유를 들여오는 방안을 강구중이다. 원유에서 생산되는 나프타를 기초원료로 사용하는 석유화학업계는 국제유가 상승세가 장기화될 경우 원가부담이 가중돼 원가상승분을 제품가격에 반영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면서 발을 구른다. LG화학은 5~6월 기초유분 물량은 이미 선물계약으로 확보해 놓았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이 없으나 고유가 사태가 3~4개월 이상 장기화될 경우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유화업계 관계자는 "만약 고유가 사태가 수개월 이상 장기화될 경우 공장가동률 축소까지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유가인하'를 추진키로 하긴 하지만... 한편 정유사들은 휘발유와 경유 등 주요 석유제품 가격을 또 올렸다. 7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SK㈜, LG칼텍스정유, 현대오일뱅크 등 주요 정유사들은 정부의 석유수입부과금 및 관세인하 조치에 따라 휘발유 등 석유제품가격을 ℓ당 12원씩 인하한 지 일주일도 안 돼 각 석유제품가격을 ℓ당 5~11원 올렸다. SK㈜는 지난 6일 0시를 기해 일선 주유소에 공급하는 휘발유 공장도가를 ℓ당 1천295원에서 1천300원으로 5원 올렸으며 경유는 ℓ당 837원에서 846원으로 9원 인상했다. 실내등유와 보일러등유는 ℓ당 5원씩 올렸다. LG정유는 지난 4일부터 휘발유는 ℓ당 11원, 실내등유와 보일러등유는 9원, 경유는 8원 올렸으며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6일부터 휘발유, 실내등유, 보일러등유는 각 5원, 경유는 10원 인상했다. 주요 정유사들의 공장도 석유제품가격 일제 인상에 따라 일선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각 석유제품의 소비자 가격도 비슷한 폭으로 동반상승, 서울지역 휘발유 소비자가의 경우 ℓ당 1천410원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SK㈜ 관계자는 "최근 국제유가가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는 등 상승세를 지속함에 따라 이를 국내유가에 반영, 각 석유제품가격을 인상하게 됐다"면서 "정유사가 자의적으로 가격을 올리거나 내릴 수 있는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인상에 따라 국내 최대 정유업체인 SK㈜의 경우 올해 들어 휘발유 가격은 ℓ당 27원이 올랐으며, 경유는 ℓ당 26원, 실내등유와 보일러등유는 32원 뛴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대해 정부는 고유가 대책의 일환으로 3단계 컨틴전시 프로그램을 적용, 유가 인하를 추진키로 했다. 정부 관계자는 "최근 국제유가가 정정 불안과 휘발유 수급 우려로 급등세를 보임에 따라 물가 및 서민경제 안정차원에서 휘발유와 경유, 등유, LPG 등에 붙는 특별소비세와 석유수입부과금을 인하할 방침"이라고 7일 밝혔다. 이 관계자는 "재정경제부, 산업자원부 등 관련부처간에 세율 인하폭을 놓고 논의중이며 국무회의 등을 거쳐 내주 중 이를 확정, 시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휘발유에 붙는 세금은 교통세 559원, 지방주행세 100.6원(교통세의 18%), 교육세 83.9원(교통세의 15%), 부가가치세 118.1원 등 860원으로 인하폭은 교통세의 10% 수준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와 함께 지난달 28일 ℓ당 14원에서 8원으로 낮췄던 석유수입 부과금을 4~6원으로 추가 인하, 주유소 평균 휘발유 판매가격을 1천360원 이하로 억제한다는 목표를 달성키로 했다. 교통세가 10% 인하되고 석유수입 부과금이 추가로 내리면 휘발유소비자 가격은 ℓ당 70~80원 떨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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