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을 둘러싼 '구조조정'의 심상치 않은 기운

삼성의 비범함은 풍족한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앞날’을 내다보며 발빠른 움직임을 보인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시대를 앞서 나가는 행보’는 불가피한 희생을 일으킨다. 최근 본격화의 낌새를 보이는 ‘구조조정’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기업'으로 사상 최대의 실적을 날마다 경신하고 있는 삼성전자. 그러나 삼성전자가 최근 일부 직원을 정리해고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삼성전자가 정리해고를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진 부서는 시스템 가전사업부 소속의 세탁기 제조부문. "직원들의 생계대책을 마련해달라" 4월 30일 오후 5시 30분 경, 삼성전자 시스템 가전사업부 세탁기 제조 부문 직원 150여명은 수원시 원천동에 위치한 모 식당에서 '광주이전 및 정리해고 반대 비상대책위원회 발대식'을 했다. 4월 16일 삼성전자가 경영설명회를 통해 '세탁기 생산 부분의 사업장을 광주광역시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한 것과 관련하여 구성된 것. 삼성전자의 정리해고안은 퇴사 후 광주사업장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비대위는 회사측의 세탁기 부문 정리해고안에 대해 반발하며 협상안을 마련하는 등 공식 대응하기로 했다. 비대위는 지난달 28일 투표를 통해 12명의 비대위 위원을 선출했으며, 회사측과 협상을 갖기로 하고 직원들의 위임장을 받고 있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비대위는 5월 3일 '수원공장 이전에 따른 직원들의 생존권 대책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삼성 본사와 삼성전자에 우편으로 발송했으며, 또한 5월 5일에는 "수원공장 이전에 따른 직원들의 생계대책을 마련해달라"고 회사측에 요구했다. '이것은 그냥 정리해고를 하겠다는 것' 한편 4월 30일 비대위 발대식에 참석한 삼성전자 시스템 가전사업부 세탁기 제조부문 소속 제조, 부품검사, 조립, 샤프트, 출하검사, 글로벌운영, 자재개발, 조달구매 등 직원 150여명도 비대위 앞으로 위임장을 작성해 전달했다. 현재 세탁기 부문 직원은 190여명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대위는 "회사측이 갑자기 아무런 대안을 제시하지도 않으면서 법인체가 다른 광주사업장으로의 이전을 공식화하고 있다"면서 정리해고에 따른 보상 문제와 고용 승계에 대한 문제를 협상을 통해 풀어내겠다고 밝혔다. 김창국 비대위원장은 "회사측이 지난 16일 경영설명회를 하면서 세탁기 부문의 광주사업장 이전을 언급했다"며 하지만 "구체적인 대책은 없었고 퇴사 후 개별적으로 법인이 전혀 다른 사업체로 옮긴다는 것은 그냥 정리해고를 하겠다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김 위원장은 또 "회사는 모두 광주사업장으로 데려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법인체가 다르기 때문에 일단 퇴사를 해야 하고 사업장이 광주광역시이기 때문에 대부분 직원들은 그 곳으로 옮겨가기가 어려운 실정이다"라며, "아직 회사는 직원들에 대한 보상이나 대책 마련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회사측이 협상에 미온적이거나 광주사업장 이전을 강행할 경우 정당이나 시민단체들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이다"며, "개인적으로는 지난 24일부터 하루 1번씩 인사파트에서 그룹장을 통해 매일 해외 출장 명령을 지시하고 있어 어려움이 많다. 협상을 앞두고 중국, 태국 등으로 출장을 가라는데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비대위 발대식에는 삼성전자 시스템 가전사업부 상무보와 세탁기 부문 인사부장, 인사과장, 세탁기 제조팀장, 세탁기 그룹장 등 간부 5명 나와 직원들이 비대위 위원 12명이 모여 회의를 진행하고 있던 식당 안으로 출입하는 것을 막기도 했지만 물리적인 충돌은 없었다. 권역별 지방특화 전략이 '화근' 삼성전자는 이 같은 삼성전자 시스템 가전사업부 세탁기 제조부문에 대한 정리해고 방식으로 냉장고와 전자레인지 부문도 이미 정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 직원들에 따르면 지난 96년 경 냉장고 부문이 광주사업장으로 이전하면서 직원들이 대거 정리해고 됐다고 한다. 또 올해 초에는 전자레인지 부문에 대한 정리해고가 단행돼 120명의 직원들이 7000만원에서 1억원 가량씩을 받고 그만뒀다고 한다. 일부 직원들은 광주로 이전하기도 했으나 작업조건이 열악해 대부분 그만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삼성전자는 세탁기 부문에 이어 에어컨 부문에 대해서도 광주사업장으로 이전하면서 정리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이미 전자레인지도 없앴다. 국내에는 삼성전자 사업장도 없다. 광주 사업장은 법인체가 다르다. 그래서 회사는 나이 어린 직원들만 몇 명 광주로 보낸 것으로 안다"며, "고령자들이 많은 세탁기 부문은 거의 정리해고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처럼 삼성전자가 냉장고에 이어 전자레인지, 세탁기 부문을 정리하고 있는 것은 권역별 지방특화 전략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수원공장의 경우 3만여명의 직원들이 근무하는 대규모 공장이었으나 지난 96년부터 회사측이 가전사업부 이전을 추진하면서 현재 1만여명의 직원들만이 근무하고 있다. 비대위는 "삼성전자(주)가 냉장고 사업부를 지난 96년 광주시로 이전하고 전자레인지 사업부도 올 1월부터 해외이전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어, 세탁기와 에어컨 사업부의 이전도 추진하고 있어 직원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수원 삼성전자 인근 상인들도 "최근 삼성전자와 14개 협력업체의 광주광역시 이전이 확정되자 주변 상가들이 대부분 폐업위기에 처해있는데도 도와 수원시는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며 "지역경제 침체방지와 실업대책 차원에서 대기업 수도권 이전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삼성, "선택과 집중이란 목표 아래 진행되는 것" 이와 같은 말썽은 최근 들어 삼성전자가 추진하고 있는 '2010년 IT(정보기술) 제조 세계 TOP 3 초일류기업' 비전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즉 삼성전자는 경기도의 수원, 기흥, 화성과 충청도의 천안, 온양, 탕정, 그리고 영남의 구미, 호남의 광주를 8개 장기 발전 사업단지로 정했다. 수원은 디지털미디어 디지털어플라이언스 정보통신의 3대 연구소 기능과 지능화, 네트워크화, 로보트화 등 연구개발(R&D) 기능을 한층 강화해 세계 디지털 컨버전스 시장을 선도하는 첨단 R&D 메카로 키운다는 것. 삼성전자 관계자는 "지방사업장 특화 전략은 지역별 편차 해소는 물론 세계 초일류경쟁력 확보를 위한 선택과 집중이란 목표 아래 진행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우리들의 기본적인 입장은 광주사업장으로의 이전은 절대 할 수 없다는 것이다"라며, "우리는 지난해 휴가도 반납하고 일했다. 잔업에 특근까지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회사는 오히려 사업성과 경쟁력이 없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정리해고를 하려 하고 있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와 협상을 통해 보상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삼성그룹, 구조조정위원회 대폭 강화 한편, 최근 삼성그룹은 그룹 내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구조조정위원회 멤버를 기존 6명에서 11명으로 대폭 늘려 주목을 받고있다. 삼성그룹 구조조정위원회는 한 달에 한 두 차례 정도 회의를 갖고 신규사업 진출이나 대규모 투자 등에 대해 의견을 조율하는 명실상부한 최고 의사결정기구. 지금까지는 윤종용 삼성전자 총괄 부회장을 필두로 배정충 삼성생명 사장,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이상대 삼성물산 건설부문 사장,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 사장, 김인주 구조조정본부 사장 등 6명으로 구성돼 있었다. 이중 황창규 사장과 김인주 사장은 올해 초 정기임원인사에서 선임됐다. 구조조정위원회는 올해 초 7명으로 구성됐으나 황영기 전 삼성증권 사장이 우리금융지주회사 회장으로 옮기면서 6명으로 운영돼 왔다. 그런데 삼성그룹은 이번에 이수창 삼성화재 사장과 유석렬 삼성카드 사장, 이윤우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부회장, 최도석 삼성전자 경영지원총괄 사장, 김징완 삼성중공업 사장 등 5명을 새로 선임했다. 이처럼 구조조정위원회 멤버를 대폭 늘린 것에 대해 삼성그룹 관계자는 "구조조정위원회의 업종별 대표성을 강화한다는 의미에서 구조조정위원회 구성원을 대폭 늘렸다"고 설명했다. 재계에서는 삼성그룹 구조조정위원회 멤버가 2배 가량 늘어난 것을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삼성전자와 금융 부문 출신들이 대폭 늘었다는 점. 11명의 구조조정위원회 멤버 중에 삼성전자 소속이 윤종용 부회장, 이윤우 부회장, 황창규 사장, 최도석 사장 등 4명이나 되며, 금융 부문은 배정충 사장, 이수창 사장, 유석렬 사장 등 3명이다. 이는 최근 삼성전자의 위상을 반영함과 동시에 금융부문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춘 삼성의 경영방침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또 제조업(중공업) 출신인 김징완 사장의 보강도 눈에 띄는 대목. 이와 관련해 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이 전자와 금융을 중심으로 구조위원을 대폭 늘린 것은 향후 삼성의 지배구조와 관계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삼성에버랜드 지주회사 파문으로 삼성그룹은 근본적인 지배구조의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장기적으로 전자를 중심으로 한 제조업과 금융 중심의 지주회사로 갈 것에 대비한 포석일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과연 삼성그룹이 삼성전자와 금융 부문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위원회를 대폭 강화한 근본적인 이유를 둘러싸고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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