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노무현 대통령후보는 23일 대북 햇볕정책에 대해 ‘시행과정에서 몇 가지 문제가 있고, 한계에 봉착한 것 같다’며 ‘북한에서도 그렇고, 특히 남한에서 지지를 잃고 있어 이 명칭을 계속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노 후보는 이날 당사에서 가진 일본 주요언론사 논설위원들과의 면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대화와 개방유도, 신뢰, 전쟁은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 핵심이고 이에 동의한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정책추진과정에서 국민적 동의를 충분히 얻지 못하고 실행함으로써 많은 장애를 받게 됐고, 특히 6.15 정상회담을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지 않느냐고 의심받는 것도 문제’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대통령이 되면 이런 점을 시정해 새로운 정책을 펴나갈 생각’이라며 ‘국민의 정부 정책을 유지하되 추진과정에서 야당에 정보를 제공, 동의를 얻은 후 국민적 합의수준을 높임으로써 대북정책을 계속 추진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 후보가 햇볕정책의 추진과정을 비판한 것은 이례적인 것으로, 8.8 재보선과 대선 전략의 일환인 `DJ 차별화’를 정책면에서 부각시켜나가기 위한 전략으로 받아들여져 앞으로 정책 차별화 행보가 주목된다. 특히 서해교전에 대해 노 후보는 ‘최근 (남북간) 대화가 잘 이뤄지지 않는 것은 상황의 변화도 있지만 북한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 국제적 외교적 의례 수준을 벗어난 행동, 특히 서해교전도 장애라고 본다’고 북측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그는 ‘그동안 한국정부는 북한의 예외적, 벗어나는 행동, 도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해 관대하고 침묵해 왔으나 이제 국민정서는 더이상 가져가기 힘든 상황으로 왔다’며 ‘한국정부도 사과와 재발방지를 확실히 요구하고 대북관계 진행을 부분적으로 중단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나 ‘남북관계의 신뢰를 파괴하고, 기조를 파괴하는 행위 등 선을 넘어서는 안된다’며 ‘이것이 한나라당과 우리가 다른 점’이라고 덧붙였다. 이같은 요구는 한화갑 대표가 국회 대표연설에서 북한의 성실한 조치가 담보될 때까지 민간교류와 인도적 지원을 제외한 정부차원의 대북지원 중단을 촉구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노 후보의 유종필 공보특보는 ‘햇볕정책의 기조에 대한 노 후보의 지지입장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으며, 단지 현재 시행과정에서 몇 가지 문제를 지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면담에서 노 후보는 또 한일관계와 관련,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요구할 것이냐’는 질문에 ‘원칙적으로 계속해서 사과 요구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고 답했다. 노 후보, DJ와 정책차별화 노 후보는 김대중 대통령의 대표적인 정책인 `햇볕정책’ 추진과정의 문제점과 그에 따른 `한계 봉착’을 지적하고 나선 것은 정책을 통한 `DJ 차별화’를 본격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노 후보는 물론 `햇볕정책’의 대북화해협력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것을 전제했으나, 추진과정에서 국민적 동의를 확보하지 않음으로써 현 시점에서 현실적으로 ‘국민정서상 더 이상 가져가기 힘든 상황이 왔다’고 진단하고 `햇볕정책’ 용어의 용도폐기 의사도 밝혔다. 또 구체적으로 대상을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대북관계의 `부분적 중단’ 필요성도 거론함으로써 현 정부의 정책기조에서 `일탈’의 뜻을 분명히 했다. 이날 노 후보의 언급은 특히 대선 전초전인 8.8 재보선에 공식 돌입한 것과 때맞춰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노무현 = DJ 양자’ 등식을 깨기 위해 앞으로 취할 일련의 조치를 예고한 것으로도 보인다. 한화갑 대표가 지난 19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서해교전 대응책과 관련, ‘북한의 성실한 조치가 담보될 때까지 민간교류와 인도적 지원을 제외한 정부차원의 대북지원은 재고돼야 한다’고 촉구한 것과 맥을 같이 하고 있어 당 지도부와 사전교감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해석된다. 노 후보는 이미 지난 1일 서해교전 후 열린 통일부와의 당정협의에서 국민정서를 들어 대북정책 재검토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어 향후 정책을 통한 DJ와의 차별화를 더욱 분명히 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그동안 노 후보는 `DJ 차별화’와 관련, 김 대통령과 아들 문제 등에 대한 비판을 주문하는 데 대해선 ‘욕한다고 국민이 (차별성을) 인정하느냐’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면서 다른 방식의 차별화 방침을 시사해왔으나 이날 발언을 계기로 다양한 분야의 정책에서 차별화를 계속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노 후보는 내달중 자신의 비전을 담은 정책자료집에 현 정부의 주요 정책과 차별화하는 대목을 많이 포함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노 후보는 그러나 자신의 이날 언급이 햇볕정책 자체를 반대하는 것으로 비쳐질 것을 우려, 유종필 공보특보를 통해 ‘햇볕정책 기조에 대한 지지 입장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으며 현재 시행과정에서 몇가지 문제를 지적한 것’이라고 말하고 `대북관계 진행의 부분적인 중단’에 대해선 ‘금강산 관광사업이나 민간교류 등 특정 부분을 지칭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한편 노 후보는 이날 경기 광명 남궁진 후보의 선거운동 지원유세를 할 예정이었으나 광명지역에 비가 많이 와 유세효과가 작다는 이유로 일정을 취소했다. 이에 박선숙 청와대 대변인은 노 후보의 햇볕정책 한계론에 대해 ‘햇볕정책은 국민의 대다수가 동의하고 있으며, 한반도 주변 4강을 비롯해 전 세계가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햇볕정책 이외에는 길이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햇볕정책은 남북화해와 협력,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것’이라며 이같이 지적했다. 다른 고위관계자는 ‘국민의 정부는 6.15 남북정상회담을 정략적으로 이용한 적이 없다’면서 ‘노 후보가 아마도 잘 모르고 한 얘기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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