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수순 밟기 위해 당의장 사퇴?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의장직을 내 놓을 것으로 시사해 총리행으로 진로를 굳힌 게 아닌가 하는 관측을 낳게 하고 있다. 이는 정 의장이 지난 23일 당헌.당규 개정 작업 등 당체제 정비 작업을 마친 뒤 전당대회를 소집할 계획이라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당 체제와 새로운 17대 국회상에 대한 밑그림을 마련한 다음에는 의장직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사퇴 얘기는 없었지만, "의장임기 2년을 다 채울 생각이 없다"는 말로 사실상 사퇴 의지를 우회적으로 밝혔다고 볼 수 있다. 이같이 정 의장이 의장직 사퇴를 시사한 속내는 대권행을 위한 수순 밟기 정도로 해석하고 있다. 정 의장이 행정경험을 쌓기 위해 국무총리직으로 갔다가 재.보선을 통해 원내로 진입한 다음 본격적인 대권 물밑 작업에 들어갈 것이라는 것이 정치권 안팎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정 의장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갖고 "한달 내에 정당개혁 내용 등 새정치실천위원회를 통해 당 체제 정비의 밑그림을 마치도록 돼 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또 의장직 사퇴 여부에 대해 "새로운 당헌.당규가 마련되면 이에 따를 것"이라고 말했고, 그의 측근은 "임시 전대에서 의장에 재출마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해 사실상 정 의장이 전대에서 의장직을 사퇴할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특히 정 의장은 "현 당헌.당규에 보장된 의장직 임기 2년을 채울 생각이 없다"면서 "새정치실천위원회에서 박차를 가해 성과물을 내도록 하겠다"고 말해 이 논의가 끝난 뒤 사퇴 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임을 거듭 시사했다. 당 체제 정비-전당대회 개최-새지도부 개편이 그가 생각하는 자신의 거취문제를 정리하는 복안인 셈이다. 그러나 정 의장의 사퇴 시기는 아직 불투명하다. 정 의장이 밝힌 `제4세대 정당모델 개발'을 위한 당 체제 정비작업이 얼마나 걸릴지가 최대 변수다. 정 의장은 그러나 전당대회 개최시기에 대해서는 "당 체제정비와 기간당원 확보를 여러 가지 할 일을 고려할 때 전당대회는 정기국회전일 수도 있고, 정기국회 후에 할 수도 있다"면서 "늦어지면 내년 1월에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김기만 선임부대변인이 전했다. 이에 따라 올 하반기 이후에 새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가 개최될 가능성이 높아졌고, 정 의장이 전대를 기점으로 한 의장직 사퇴를 시사함에 따라 총선에서 과반 여당이 된 열린우리당의 세력재편 움직임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정 의장의 사퇴 시기를 한달 이내로 말하고 있지만 전대 소집은 원 구성 이후 일정기간이 지나야 하기 때문에 7월 이후가 유력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가 사퇴할 경우에도 어떤 정치적 행보를 보일지 역시 미지수다. 그는 여러 차례 "마음을 비웠다"고 말해 왔지만 당내 일각에서는 정 의장이 대권수업의 일환으로 입각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총리 또는 통일부총리를 맡아야 한다는 구체적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반면 또다른 측근그룹에서는 그가 총선기간 시달렸던 `노풍'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정정도의 잠복기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하고 있다. 정 의장의 이 같은 행보는 정 의장이 자신의 향후 거취에 대한 의중을 어느 정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앞서 정 의장은 지난 20일 `상향식 정당'의 완성을 위한 정당법 개정 검토 의견을 피력했다. 정당법은 선거법 등과 함께 `정치관련법'으로 묶여져 법 개정이 이뤄진지 불과 1개월 여 밖에 되지 않은 상태다. 때문에 또 다시 법을 개정할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이 쏠린다. 정 의장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 법 조항을 손질해야 한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당시 정당법 개정의 핵심은 `돈 먹는 하마'로 불려왔던 지구당을 폐지하는 것이 골자였지만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보완책은 전혀 마련되지 못한 일종의 절름발이 법안이라는 것이 열린우리당 내의 인식이다. 정당정치를 표방하는 국가에서 당원 관리를 할 수 있는 가장 초보적 장치가 지구당이었는데 이를 폐지하면서 적절한 보완책은 마련치 않았다는 것이다. 정 의장은 "상향식 정당을 표방하고 있지만 그 하부토대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법의 미비점이 지적되고 있다"며 "원외 지구당 위원장이 없는 달라진 정치 환경 속에서 당원관리 등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당법 개정에는 난제도 많다. 일단 각 당의 이해가 일치하지 않는다. 진성당원을 상당수 확보하고 있는 민노당은 `지구당 폐지'에 반대했을 정도로 정당법 개정에 상당한 집착을 갖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진성당원 확보에 어려움이 예상되는 한나라당의 경우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현역의원들의 경우 연락사무소를 둘 수 있도록 돼 있어 상대적으로 기득권이 보장돼 있는 만큼 이들이 법 개정에 과연 적극성을 보일지도 관건이다. 특히 정 의장은 국무총리 입각설에 김혁규 대통령 경제특별보좌관과 나란히 오르내리고 있어 그의 거취에 시선이 더욱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총리 입각설에 노무현 대통령은 아무런 언급도 안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권파 왕당파 개혁파로 세력이 구분되는 당의 역학구도를 의식해서라도 이와 관련 노 대통령은 "어떠한 시사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게 측근들의 일관된 목소리다. 이와 관련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타 매체를 통해 "이번 총선에서 여권의 최대과제로 부각된 `지역주의 청산'이라는 측면에서 김 전지사(경제특보)가 앞서나가는 국면"이라며 "게다가 경남지사 시절 CEO(최고경영자)형 지도자로 각인될 정도로 풍부한 행정경험을 갖춘 것도 강점으로 작용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또 김 특보가 총선 전 한나라당을 탈당, 거센 반발을 샀던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그가 총리에 지명될 경우 한나라당측에서 강력한 태클을 걸 가능성이 있어 상생의 정치 구도와 배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우리당 주변에서는 결국 정동영 의장이 유력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적지 않다. 이같은 관측은 정 의장이 대권후보로 나설 것이라면 행정실무를 쌓기 위해 총리직을 맡는 것이 수순이라는 해석에서다. 아무튼 정 의장이 전당대회에서의 지도부 개편을 언급하고 나온 이상, 총선에서 과반 여당이 된 열린우리당의 세력재편 움직임은 가속화될 전망이다. 특히 원내대표 경선으로 인한 여권 내 복잡한 역학구도 변화 바람은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2기 구상과 맞물려 진동의 폭이 상당히 넓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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