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길 "김정일만 원한다면 만날 것이다"

4.15 총선을 통해 제3당으로 발돋움한 후에 민주노동당과 권영길 대표에 대한 정치권을 비롯하여 언론사 관공서 등의 대우와 위상이 달라져 눈길을 끌고 있다. 민노당의 위상 변화를 가장 한눈에 알 수 있는 곳은 기자실로 총선 전에는 한산하기만 하던 기자실이 총선 뒤에는 연일 민노당의 활동을 취재하기 위해 모여든 기자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다. 총선 후 첫 대표단 회의가 열린 지난 19일 오후 회의장인 대표실에도 30여명의 기자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지난 16일 권영길 대표의 기자회견 때는 기자들의 질문이 끝도 없이 쏟아져 권 대표가 "예전에는 질문자가 없어서 '짜고 치는 고스톱' 처럼 질문을 시켜야 했는데 질문자를 제한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위상이 달라졌음을 실감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같은날 오전에는 4.19 묘소 참배에 나선 민노당 지도부 일행을 위해 묘소 관리사무소에서 따로 행사 진행을 맡아 눈길을 끌었다. 이런 위상 변화를 반영하듯 19일 대표단 회의에서도 참석자들의 발언에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노회찬 사무총장은 김종필(JP) 자민련 총재의 정계은퇴 선언에 대한 소감을 묻자 "JP가 못 이룬 꿈을 민노당이 반드시 이루도록 하겠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지만 이면에는 이번 총선 성과에 바탕을 둔 자신감이 깔려있는 듯 했다. 권 대표는 이날 회의에서 교섭단체 구성요건 완화 논란과 관련, "민노당은 절대 교섭단체에 목매달지 않는다"면서도 "진보정당이 처음 국회에 진출했으면 그 목소리가 수용되는 것이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것임에도 기존 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민노당과 같은 정당이 필요하다고 하는 국민의 뜻을 읽지 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지난 21일에는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정부고위관료로서 민주노동당을 방문했다. 민노당의 경제정책이 정부의 정책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만큼 경제정책을 놓고 양측간 설전도 예상됐지만 이날 방문은 전반적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뤄졌다. 그러나 20여분간 진행된 이날 만남에서 일부 참석자들은 이 부총리에게 가끔 '뼈있는 말'들을 던졌고 그 때마다 양측 사이에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관측되기도 했다. 이 부총리가 먼저 민노당의 경제정책들을 감안한 듯 "하나씩 풀면 되겠지만 한꺼번에 다하려고 하면 아무래도 논쟁이 될 것"이라고 말하자 권영길 대표는 "핵심적인 몇 개는 들어줄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라며 받아쳤다. 이에 이 부총리는 결국 "잘하자는 이야기"라고 말끝을 흐렸다. 가볍게 진행되던 양측의 대화는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인 단병호 당선자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는 문제를 꺼내면서부터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단 당선자는 작심한 듯 "재경부에서 정규직 전환문제에 부정적 반응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항의한 뒤 "파견근로제와 관련한 정부 개정법안은 정부 스스로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이 부총리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는 현재 논의중이며 노동관계 입법은 노동장관이 책임지고 논의를 다시 할 것"이라며 넘어갔다. 이어 이 부총리는 권 대표에게 "원내 진출을 했으니 노사정이 함께 대화하는 게 중요하다"며 민주노총에 노사정위 참여를 권유해 줄 것을 부탁했지만 권 대표는 "민노총이 결정할 문제"라며 "노사정위가 지금까지 경제계 입장을 대변하는 성격이 강했던 만큼 노동자들이 노사정위를 믿을 수 있도록 정부가 노력을 해 달라"고 역으로 이 부총리에게 주문을 했다. 이에 이 부총리는 "여기저기서 정부를 믿게 해 달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있다"며 "정부가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민노당을 찾은 정부고위직으로논 과거 지은희 여성부 장관 이후 이 부총리가 두 번째다. 또 지난 20일에는 권 대표가 자신의 지역구인 경남 창원을 찾았는데 과거와는 크게 달라진 위상을 실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 대표는 이날 하루 경남 수부도시로 도내 주요 관공서 대부분이 밀집한 자신의 지역구에서 총선 당선사례를 겸한 해당지역 기관장과 인사를 나누는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이날 권 대표는 오전 창원시청을 방문한데 이어 도청, 경남지방경찰청, 경찰서, 창원지검, 창원지법 등 순으로 주요 기관을 잇따라 방문하면서 해당 기관으로부터 깍듯한 환대를 받으며 시종 유쾌한 환담을 나눴다. 하지만 권 대표는 평소 '선거전과 선거 후가 똑같다'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각 기관의 직원들에게 먼저 일일이 악수를 청하고 민원인들에게 인사하는 등 선거운동 당시의 모습 그대로 였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권 대표는 이날 한 기관을 방문한 뒤 "선거 출마후보 때와는 또 다르게 기관을 방문하고 난 뒤에 나름대로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했고 책임감도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 권 대표는 이날 선거운동 당시 탔던 소형 카스타 승합차를 운전하는 수행원 등단 2명과 함께 그동안 쉽게 찾지 못했거나 왠지 낯설게만 느껴진 기관들을 돌며 당선자로서 바쁜 지역구 활동을 벌였다. 특히, 권 대표는 지난 23일에 외신기자클럽 초청 회견을 갖고 "방북이 이뤄져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다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남북간의 건설적 관계수립을 위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북한을 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날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권 대표는 이날 외신기자클럽 초청 회견에서 "방북이 이뤄지면 만날 수 있는 모든 사람과의 만남이 이뤄질 것이며 김정일 위원장과 만남도 포함될 수 있을 것"이라며 "김정일의 의사가 더 중요하지만 만남이 이뤄지리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방북의사를 여러 차례 공식적,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었지만 한국정부에 의해 수용되지 않았다"면서 "방북을 허용하지 않아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만큼 방북요구가 받아들여질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권 대표는 이어 "북한의 조선사회민주당과 교류 중"이라고 소개하고 "조선사회민주당을 통해 북측 정당과 관계구축이 이뤄질 수 있다고 보고 교류를 더욱 긴밀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민노당의 진보성에 대한 일부의 '우려'를 반영하듯 국내정치문제보다는 대북.대미정책에 대한 질문이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특히 민노당의 이념과 색깔, 대외 정책 및 노동 정책의 과격성 여부를 묻는 질문이 계속됐다. 권 대표는 이런 분위기에 대해 회견 말미에 "2010년대 집권 계획에 대해서는 아무도 물어보지 않는다"라고 농담조로 서운함을 내비치기도 했지만 쏟아지는 질문에 피해가지 않고 비교적 '당당히' 설명하는 모습이었다. 용산기지 이전비용의 한국 부담과 관련, 권 대표는 "기지 이전은 주한미군의 주둔을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주둔비용 부담은 물론 타 지역 이전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 "용산기지 이전에 대한 한미합의 내용은 재논의되어야 하고 현재의 위치에서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철도와 전력산업의 민영화에 대해 "지금까지 국민은 철도나 전력 등 기간산업의 사기업화가 경제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일방적인 정부의 선전에만 빠져있었고 반대 목소리에 대해 귀 기울일 기회를 갖지 못했다"면서 "(소수당의 한계 극복을 위해) 열린우리당의 지지를 이끌어 내고 국회 내 동조세력들을 찾아내 주요산업의 사기업화 반대, 노동시장 유연화 반대, 분배를 위한 성장 등을 국회를 통해 이뤄낼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권 대표는 통일문제와 관련, 정치.경제적 교류확대와 민주국가연합을 거쳐 양 체제를 인정하는 연방체제를 지나 민족이 통합돼야 한다는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고 "북한체제는 북한주민의 입장에서도 바라봐야 하며 남북간 완전한 평화체제가 구축되는 시각 위에서 양쪽 체제와 제반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총선 기간 모 월간지에서 '권 대표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령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 데 대해서는 "그 보도에 대해서는 이미 국민이 심판을 했다고 보고 있고 그와 같은 구시대적 색깔론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을 국민이 질타해주셨기 때문에 국민의 현명한 판단에 대해 감사 드린다"고 말해 별도로 대응하지 않을 방침임을 밝혔다. 진보정당의 개념에 대해서는 "진보가 무엇인가는 구체적으로 정책으로 구분하고 판단할 수 밖에 없다"면서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금융의 사기업화, 일방적 구조조정 등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지 찬성하는지, 시장경제 지상주의인가 반대적 입장인가로 진보정당의 판단기준을 삼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권 대표는 지난 23일 북한의 룡천역 폭발사고와 관련해 애도의 뜻 표하고 정부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을 촉구했다. 이날 권 대표는 "보도내용이 사실이라면 두말할 필요없이 철도복구지원과 식량지원이 시급히 필요하며 민노당 차원에서도 내용이 파악되는 대로 민간차원에서의 지원이 이뤄지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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