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 “사법부 신뢰에 큰 상처 사과...합당한 후속조치 취하겠다”

▲ 판사들을 뒷조사한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조사한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가 ‘정당한 절차 없이 법관들 동향이나 성향 등을 광범위하게 수집한 문건이 있다’고 결과를 밝혔다. 사진 / 시사포커스 DB
[시사포커스 / 오종호 기자] 사법부 블랙리스트에 대한 추가진상조사 보고서로 정치권은 물론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사법부독립을 결정적으로 저해하는 내용이 다수 밝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블랙리스트’ 자체의 존재 여부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리스트는 없었다’는 자유한국당의 주장과 ‘사실상 리스트’라는 더불어민주당 등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사법부 블랙리스트’의 존재 여부에 대한 ‘있다? 없다?’ 논쟁은 여야 간 계속되고 있다.
 
 
◆대법원 추가조사위 결과발표
판사들을 뒷조사한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조사한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가 ‘정당한 절차 없이 법관들 동향이나 성향 등을 광범위하게 수집한 문건이 있다’고 결과를 밝혔다.
 
추가조사위는 22일 법원 내부 통신망인 코트넷에 “사법행정상 필요를 넘어 법관의 독립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관련 문서들을 공개했다.
 
하지만 문건들이 실제로 실행됐는지와 관여자 등은 조사대상 및 범위를 넘어선다며 ‘사법부 블랙리스트’의 존재 여부는 결론을 내지 않았다.
 
추가조사위는 조사 결과, 법원행정처가 기획조정실을 중심으로 다수의 법관들에 대한 동향과 여론을 구체적으로 파악한 정황이 많은 문건들에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문건은 ▲법관 언행 관련 각급 법원 주기적 점검 방안 ▲판사들의 비공개 커뮤니티인 포털사이트 다음 카페 ‘이판사판 야단법석’ 현황 보고 ▲상고법원 관련 내부 반대 동향 대응 방안 ▲특정 판사들의 내부 게시글 및 언론 투고 관련 동향과 대응 방안 등이다.
 
추가조사위는 “법원행정처는 그동안 사법 불신에 대한 대응, 사법행정 목적 달성 등을 이유로 공식·비공식적 방법을 모두 동원해 법원의 운영과 법관의 업무뿐만 아니라 그 외 영역에서도 광범위하게 정보수집을 해온 것으로 보인다”며 “인사상 불이익 조치 여부를 떠나 그 자체만으로 법관의 독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있다”고 밝혔다.
 
또 “인사나 감찰부서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권한을 넘어선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며 “내부 게시판, 익명 카페, SNS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법관들의 동향과 여론을 파악하고 익명카페 자진폐쇄 유도방안까지 검토한 것은 수단과 방법에서 합리적이라거나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리스트 없다’ 자유한국당
조사결과가 발표되자 자유한국당은 ‘사법부 리스트’는 존재하지 않았다며, 의혹제기와 조사과정 등에서 지나친 분열과 불신을 키웠다고 비판했다. 나아가 ‘대법원의 인민재판 미수 사건’이라고 이름붙이면서 김명수 대법원장의 사과를 요구했다.
 
윤재옥 한국당 원내수석부대표는 23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추가조사의 핵심은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는지 여부가 추가조사의 핵심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며 “그런데 발표내용을 보면 블랙리스트 없는 것으로 판명 났음에도 불구하고 블랙리스트란 말 자체가 전혀 일언반구도 언급이 없다”고 지적했다.
 
윤 원내수석은 “소위 부적절한 사법권 행사라면서 별건조사 몇 가지 사례만 공개를 했다”면서 “그런데 보도에 의하면 그 내용자체도 실체가 불분명한 내용들”이라며 별건수사의 위법성을 강조했다.
 
윤 원내수석은 “블랙리스트가 없으면 없다고 발표하면 될 텐데 별건 사례들을 공개함으로서 마치 법원 추가조사위원회가 아무 말 잔치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발표 내용이 없었다”며 “애초에 불법으로 판사들의 PC를 뒤진 것도 모자라 별건조사를 발표하고 이를 수사 운운하면서 논란을 확산시키는 게 법원 신뢰회복에 무슨 도움이 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한국당 간사인 김진태 의원은 “사법부 블랙리스트 결국 아무것도 없었다”며 “(당사자들) 동의 없이 (PC)까봤더니 아무것도 나온 게 없다. 그렇다면 대법원장이 사과해야하는 것 아닌가”라고 요구했다.
 
김 의원은 “부수적인 동향문건 이것은 좀 전 조사할 때도 이미 나왔던 것이다. 거기에 대해서 몇 사람이 이미 징계든 다 책임을 이미 지웠던 것이다. 지금 달라질게 하나도 없다”며 “법원이 정치의 전면에 나서서 촛불을 들고 인민재판 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사법부 치욕의 역사로 한줄 더 기록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함진규 정책위의장은 “판사블랙리스트건과 관련하여 그동안 1년간 큰 소란을 피웠지만 블랙리스트는 없는 것으로 판명이 났다”며 “대법원장은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국민사과와 선량한 판사들에 대한 사과를 할 것을 분명히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장제원 한국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블랙리스트 문제로 사법부를 법란수준으로까지 몰고 간 판사들은 국민들 앞에 엎드려 사죄하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블랙리스트는 없다는 것이 다시 한 번 명확하게 확인되었다”고 강조했다.
 
장 대변인은 “문건에 올라 있는 판사들이 불이익을 받았다는 증거는 찾아볼 수가 없었고, 오히려 혜택을 받은 판사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런 내용은 숨겨졌다”며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고 믿는 법원 내 특정 사조직의 과도한 피해망상증 때문에 사법부는 쑥대밭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장 대변인은 “블랙리스트 재조사는 진보 성향의 법관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강하게 제기했다”며 “이 연구회의 회장 출신인 김명수 대법원장의 책임 또한 매우 크다”고 대법원과 관계자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이게 리스트’ 민주·정의·국민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정의당과 국민의당은 ‘리스트’의 존재 여부보다 법관들에 대한 사실상의 ‘사찰’과 사법부 독립의 원칙이 훼손된 점의 중대성을 지적하면서 내용상 ‘리스트’라고 강조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23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사법부 블랙리스트 조사 결과에 대해 “기본권 최후의 보루인 대법원과 권력이 결탁해 대선개입 사건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친 행위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범죄행위”라며 “부패와 국정농단으로 점철된 지난 9년과 과감히 절연하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이 한 발자국도 전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백혜련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청와대의 반헌법적 사법질서 문란행위에 사법부의 최고 행정조직인 법원행정처 역시 이에 적극적으로 응했다는 사실은 참담하기만 하다”고 밝혔고, 강훈식 원내대변인은 “대법원이 판사들의 성향과 동향을 조사했다는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도 사실로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사법부 블랙리스트’가 없다는 자유한국당의 비판이 이어지자 민주당은 다음날인 24일에도 연이어 반박하고 나섰다.
 
김영진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은 24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법관 블랙리스트의 핵심적 증거인 법원행정처 차장의 컴퓨터는 비밀번호를 알 수 없어 확인조사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박근혜 청와대가 우병우 전 수석을 통해 재판에 관여한 것으로 밝혀졌다”며 ‘사법농단, 헌정농단’이라고 규정했다.
 
박홍근 원내수석부대표는 “박근혜 청와대가 관심을 갖는 재판의 진행상황과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판사들의 동향들을 법원행정처가 사찰한 사실은 참으로 충격적”이라며 “이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의 뒷조사를 꾸준히 진행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고, 판사들을 성향별로 분류하고 평판에 대해 색깔을 달리해 작성했다는 측면에서 대법원판 블랙리스트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정의당도 거들고 나섰다. 최석 대변인은 23일 브리핑에서 “법원행정처는 대법원에 비판적인 판사들의 동향을 파악하는 등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점이 드러났다”면서 “사법농단 사태에 대한 검찰 수사를 촉구하며, 특히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이뤄지는지 지켜보겠다”고 경고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24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사법행정위원회라는 주요 법적기구에 들어갈 판사들 후보들을 분류를 해 놨다고 이것도 일종의 리스트”라며 “고 보수, 중도, 강경 성향을 분류하고 색깔별로 구분한 것이 ‘블랙리스트’라고 지적했다.
 
국민의당 이행자 대변인도 23일 논평에서 “블랙리스트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한 발표가 없었다고 해도 판사들의 정치성향, 가치관 등을 정리한 리스트가 존재했다는 것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철저한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는 법원이 법관사찰 동향 문건을 작성했다면 용납 될 수 없는 사법농단”이라고 규정했다.
 
 
◆리스트의 본질은 '사찰'
법조계에서는 이 같은 판사 동향 문건을 블랙리스트로 볼 수 있을지를 두고 시각이 엇갈린다. 법원행정처가 ‘사찰’ 성격의 판사 뒷조사를 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이라는 입장이 있는 반면, 법원 내·외부 동향을 파악하는 업무 영역의 일환이며 인사 상 불이익을 받았다는 내용이 없어 블랙리스트로 볼 수 없다는 반대의 입장도 있다.
 
한편 서울중앙지검에는 전·현직 대법원장이 모두 고발된 상태다. 양승관 전 대법원장은 판사들을 뒷조사했다는 사법부 블랙리스트 작성·관리 혐의로, 김명수 현 대법원장은 당사자 동의 없이 법원행정처 컴퓨터를 강제 개봉한 혐의 등으로 각각 고발됐다.
 
이런 상황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은 24일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관련 추가조사 결과에 대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큰 상처를 준 것에 대해 마음 깊이 사과드린다”며 “합당한 후속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리스트’냐 아니냐는 논란에 대해 이정열 전 부장판사는 23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리스트라는 게 그야말로 엑셀 파일로, 표로 순번 매겨서, 그것만 리스트냐. 그건 아니다”라며 “중요한 것은 이런 리스트라는 것을 만들어서 리스트의 목적에 해당하는 ‘감시하겠다. 사찰하겠다. 불이익 주겠다. 그래서 특이한 사람 찍어내겠다’ 그런 목적으로 작성된 그런 작업이 있었느냐가 그게 블랙리스트의 핵심”이라고 구분했다.
 
‘리스트’라는 것은 결국 형식요건을 말할 뿐이다. 내용요건 혹은 본질은 리스트를 작성하기 위해 사찰과 분류 등을 했느냐와 이런 내용들이 추후 당사자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을 만큼의 영향을 미칠 의도가 있었느냐 일 것이다.
 
사법부 블랙리스트, ‘있다? 없다?’ 논쟁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사찰’여부이고 사법부 독립의 훼손 여부다. 이 논란은 더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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