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시 한국군 자동개입, 원전 수주위해 올인, 임종석-칼둔 ‘전략적 동반자’ 확인

▲ 이명박 정부의 국방부장관을 지냈던 김태영 전 장관이 UAE의 유사시 한국군이 자동개입하는 비밀군사협약을 시인했다. 이로써 지난해 12월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의 UAE 특사파견 이후 한 달 가까이 여야 간 공방으로 번져왔던 논란이 마무리되는 상황이다. ⓒ청와대
[시사포커스 / 오종호 기자] 이명박 정부의 국방부장관을 지냈던 김태영 전 장관이 UAE의 유사시 한국군이 자동개입하는 비밀군사협약을 시인했다. 이로써 지난해 12월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의 UAE 특사파견 이후 한 달 가까이 여야 간 공방으로 번져왔던 논란이 마무리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당시의 협약 내용을 보면 국제법적으로나 국내법적으로 이행이 불가능한 사항이 많아 현 정부에게 상당히 부담을 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부로서는 이러한 사안이 공개되고 쟁점화되는 것 자체가 문제해결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어서, 향후 정치권의 대응 또한 국익 우선의 고려가 있어야할 것이다.
 
 
◆김태영 전 국방 “UAE의 유사시 한국군 자동 개입...비밀군사협정 맺어”
김태영 전 장관은 9일자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UAE와 비밀로 군사협정을 맺은 이유에 대해 “섣불리 국회로 가져가기보단 내가 책임지고 (비공개) 협약으로 하자고 했다”며 협약 내용 중 UAE의 유사시 한국군이 자동 개입한다는 조항에 대해 “그렇게 약속했다”면서도 “실제론 국회의 비준이 없으면 군사개입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당시 원전수주 상황에 대해 “한국이 UAE에 ‘올인(all-in)’한다는 걸 보여줬다. UAE가 원전 사업만 넘겨준다면 모든 걸 한국 수준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설득했다”면서 당시 정부의 분위기를 전했다.
 
김 전 장관은 “UAE는 돈이 많고 땅도 넓지만 인구가 600만 명 정도밖에 안 돼 안보에 대한 불안감으로 외국 군대를 자국에 주둔시키고 싶어 했고, UAE에 군사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 한국군이 UAE에 와 주는 거였고 평소엔 UAE군의 훈련을 돕거나 무기를 관리하는 역할 등을 요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회 비준이 필요한 UAE 유사시 한국군 자동개입 조항에 대해서는 “제일 큰 문제는 국회에 가져갔다가 문제가 생기면 그동안 공들인 게 다 무너지는 거다. 그래서 내가 책임을 지고 (국회 비준이 필요 없는) 협약으로 하자고 했다”며 “실제 문제가 일어나면 그때 국회 비준을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UAE와 우애·신뢰를 쌓기 위해 비공개로 추진한 것뿐”이라고 답했다.

그는 주한미군이 뒤늦게 알고 화를 냈다는 의혹에 대해 “당시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과 매주 조찬을 했는데 그런 소릴 들은 적 없다”고 부인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갑자기 UAE와의 관계에 마찰음이 생긴 이유에 대해서는 “아마 적폐청산한다며 과거 문서를 검토하다가 비공개 군사협약을 오해한 거 같다. 꼼꼼히 따져봤다면 안 해도 될 행동을 UAE에서 한 것 같다”면서 “(송 장관이) UAE에 가서 약속을 바꾸자고 하자 UAE 왕실이 자존심이 상해 모든 관계를 끊겠다고 하지 않았나 싶다”고 추측했다.
 
그는 향후 UAE와의 관계에 대해 “지금은 UAE와 관계가 깨지지 않는 게 중요하다. 지금 청와대와 정부가 수습을 나름대로 하고 있다”며 “UAE 왕세제의 측근인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아부다비 행정청장이 방한한 뒤 경우에 따라선 UAE와 더 파격적인 협약을 맺어야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혀 손해 보는 건 없다”고 전망했다.
 
당시 주무장관이었던 김 전 장관이 직접 UAE 유사시 한국군의 자동개입 조항 등이 있는 비밀군사협약을 체결한 사실을 시인함으로서 그간의 의혹과 논란이 대부분 밝혀지게 됐다.
▲ 이명박 정부의 국방부장관을 지냈던 김태영 전 장관이 당시 원전수주 상황에 대해 “한국이 UAE에 ‘올인(all-in)’한다는 걸 보여줬다. UAE가 원전 사업만 넘겨준다면 모든 걸 한국 수준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설득했다”면서 당시 정부의 분위기를 전했다. 사진 / 시사포커스 DB
◆김종대 “군대를 흥정대상으로 국회와 국민, 상대국 기망...법적 처리해야”
이와 관련한 정치권의 논란에서 나름의 정보력과 분석력으로 비밀군사협약에 대한 의혹을 제기해 온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협약의 문제점 등에 대해 지적했다.
 
김 의원은 9일 논평에서 ▲국민이 모르는 사이에 중동 수니파 국가와 사실상 동맹, 형제국이 되었다는 점 ▲UAE에 파견된 우리 특전사 병력은 유사시 중동분쟁에 자동개입 인계철선(Trip Wire)이 되어 이제 UAE 동의 없이는 철군이 어려워졌다는 점 ▲헌정 최초로 제3국과 동맹을 체결함으로써 향후 한미관계에 중요한 걸림돌이 된다는 점 등 3가지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장기적 안목에서 그 여파를 가늠하기조차 어렵다”고 분석했다.
 
김 의원은 “국회에 보고 및 동의도 구하지 않고 유사시 우리 군의 자동개입을 약속한 협정을 체결하고 철저히 비밀에 붙였다는 것은 명백히 반헌법적, 반민주적 행태”라고 지적하면서 “최근 UAE가 펄쩍 뛰었다면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한 김태영 전 장관과 MB 때문인 것. 원전 수주라는 눈앞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군대를 흥정대상으로 해 국회와 국민, 상대국을 기망한 죄는 현직이라고 하면 탄핵감”이라고 이 전 대통령을 지목했다.
 
그는 “중동 국가, 혹은 종파(수니파, 시아파) 중 어느 한편을 일방적으로 지지, 지원하는 군사적 지원과 외교는 바람직하지 않다. 김 전 장관의 증언대로 자동군사개입 등 부적절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면, 현 정부는 해당 조항을 삭제하거나 전면 수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사안의 진상을 밝히는 것과 함께 바람직한 대 중동 외교·안보·경제 정책 정립에 입각한 종합 대책을 수립할 것을 촉구한다”고 요청했다.
 
하지만 국제관계와는 별개로 관계자에 대한 법적 처리와 정치적인 해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우리와 우방국 관계에 있는 UAE 등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국익은 지켜야 한다”면서 “그런데 헌법을 위반했거나 국내법을 위반한 부분에 대한 법적처리 절차는 마무리 되어야 한다. 이것은 UAE와는 관계가 없는 우리 내정이다. 이 사태에 대한 법적인, 정치적인 판단은 이후에 계속되어야 한다. 정부가 사태수습측면에서라도 이 부분은 정확하게 해주셔야 한다. 그냥 묻고 넘어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그런 점에서 최근에 국정조사를 주장하다가 철회한 자유한국당의 입장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국정조사가 어렵다면 국방위, 외통위, 운영위 세 개 상임위부터라도 당장 열자”면서 “진상규명은 어떤 식으로든 앞으로 국회나 정부 차원에서 후속논의를 해서 이 문제에 대한 법적인 마무리를 짓고 그 다음에 UAE와의 관계는 국익차원에서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헌법을 위반했거나 국내법을 위반한 부분에 대한 법적처리 절차는 마무리 되어야 한다. 이것은 UAE와는 관계가 없는 우리 내정이다. 이 사태에 대한 법적인, 정치적인 판단은 이후에 계속되어야 한다. 정부가 사태수습측면에서라도 이 부분은 정확하게 해주셔야 한다. 그냥 묻고 넘어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사진 / 시사포커스 DB
◆원혜영 “이명박, 국민 속여” 유승민 “문재인 정부와 자유한국당의 담합 의심”
김종대 의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자유한국당에 대한 석고대죄를 요구하기도 했다.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책임소재를 분명히 해야한다며 사태해결이 원만하게 이루어질지 우려를 나타냈다.
 
김종대 의원은 “MB 본인이 어떠한 이면합의나 이면계약이 없었다고 했는데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서 실제 비밀양해각서가 존재했고 그 내용이 아랍의 특정국가와 형제국, 즉 동맹국에 준하는 수준의 협약내용 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면 사실상 국민을 기만한 것이다. 전직 대통령이 더 이상 사태를 호도하거나 기만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또 “거기에 부화뇌동한 과거 여당인 자유한국당은 이제 국민에 대한 사과와 반성이 있어야 한다. 그 다음에 정치공세를 해라”라면서 “이제 진실이 드러났으니 태도를 보여라. 사실상 동맹조약이 존재했다는 것이 진실이고 부인할 수 없다면 자유한국당의 입장을 밝혀야 한다. 응답하셔야 한다. 정치공세의 문제가 아니다. 정당의 기본 원칙의 문제”라고 촉구했다.
 
원혜영 의원은 9일 페이스북에 “이명박 전 대통령은 원전수출과 관련한 이면계약은 없다고 국민을 속였다”면서 “사태의 본질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하자 김태영 전 국방장관이 이명박 정부를 대표해서 총대를 메기로 한 모양”이라고 지적했다.
 
원 의원은 “정부 업적을 선전할 요량으로 국민과 국회를 속인 사람들이 이제 와서 한다는 말이 ‘당시에는’ 그게 국익과 부합했다. 문재인 정부가 괜히 문제를 들춘 것”이라며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이럴 수는 없다. 발언시기도 매우 불량하다. 현재 UAE 왕세제의 최측근인 칼둔 행정청장이 우리나라를 방문 중이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한편 국정조사를 가장 먼저 주장했던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는 “문재인 정부가 절차적 정당성과 헌법 상의 문제를 이유로 만약 8년 전의 비밀군사협정에 대해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이제 와서는 왜 스스로 문제를 덮겠다는 것인지, UAE 칼둔 행정청장이 문재인 대통령과 이 정부로부터 어떤 새로운 약속을 받기 위해서 한국에 온 것인지 모든 게 의문투성이”라고 지적했다.
 
유 대표는 “이 사건에 대해 지금 문재인 정부와 자유한국당은 서로의 약점을 덮기 위해서 비밀스럽게 담합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 문제에 대해 국정조사를 요구했던 저와 바른정당의 입장은 여전히 유효하며 칼둔 행정청장이 방한을 마치고 나면 문재인 대통령과 이 정부는 국민 앞에 밝혀주시기를 기대한다”고 요구했다.
 
 
▲ 청와대는 칼둔 청장의 방한을 계기로 임 실장의 지난달 UAE 방문을 둘러싼 각종 의혹들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 같다. 칼둔 청장은 최근 한국 언론의 의혹 제기 등에 대해 유감 표명을 하면서도 “안 좋은 도전들을 서로 극복하고 화합해 가는 게 ‘결혼 생활’ 아니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임종석-칼둔 회동 “한국과 UAE가 얼마나 중요한 친구인지 생각해보는 계기”
마침 9일 오후에는 방한 중인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행정청장과 임종석 비서실장이 만났다.
 
회동 후 임 실장은 “이번 만남을 계기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전면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발전시켜나가자는 합의를 했다”면서 “지난 한달 간 우리 언론에 참 많은 보도가 있었는데 저는 무엇보다도 이번 계기에 한국과 UAE가 얼마나 서로 중요한 친구인지를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칼둔 청장은 “우리는 많은 영역 그리고 많은 분야를 관장하는 매우 특별한 관계를 갖고 있고 그와 같은 관계는 정부·민간·공공 영역의 모든 부분을 관장한다”며 “UAE 국민들과 한국의 국민들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고 매우 강력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러한 관계의 역량은 UAE 정부와 한국 정부 간의 관계에 드러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청와대는 칼둔 청장의 방한을 계기로 임 실장의 지난달 UAE 방문을 둘러싼 각종 의혹들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 같다. 칼둔 청장은 최근 한국 언론의 의혹 제기 등에 대해 유감 표명을 하면서도 “안 좋은 도전들을 서로 극복하고 화합해 가는 게 ‘결혼 생활’ 아니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단 김태영 전 장관의 비밀협약 시인으로 UAE와 관련된 의혹들은 대부분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가 비밀협약을 파기하고 UAE와의 관계를 더욱 강화할 수 있을지는 앞으로 남은 외교적 과제다. 이와 별도로 이명박 정부에서 협약과 관련한 당사자들의 실정법 위반 여부는 밝혀지고, 적법한 처리가 있어야할 것이다. 동시에 한 달 가까이 정쟁화하면서 공방을 벌여온 정치권 역시 정치적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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