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계좌, 이병철→이건희…김용철 폭로에 삼성특검
이건희, 실명전환없이 차명계좌에서 돈만 빼가...
신세계‧CJ지분 차명계좌 포함…비자금 의혹 여전

[시사포커스 / 강기성 기자] 삼성 이건희 회장이 소유한 4조5000억원 규모의 차명계좌에 대한 각종 의혹이 제기되면서 재수사 분위기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국세청은 금융실명제 적용을 달리해 이건희 회장의 계좌의 대부분이 과세 대상이라고 해석했고 최근 이 회장의 차명계좌를 추가로 발견, 관리하고 있다고 국회 여당을 중심으로 결성된 ‘이건희 차명계좌 TF’에 알려왔다. 지난 8일 경찰은 서울국세청 조사 4국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계좌의 실제 주인을 파악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 경제개혁연대는 삼성그룹에 대해 1988년 9월 발생한 26.00%의 실권주를 포함한 전체 차명주식의 차명 시점과 경위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해당지분에 대해 납득할만한 처리방안을 제시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 뉴시스

이보다 선결돼야 할 근본적인 문제는 차명계좌가 삼성의 주장대로 ‘상속세’인지 아니면 다수가 주장하는 ‘비자금’인지의 여부다. 차명계좌의 과세에 그치지 않고 이건희 회장의 과거 횡령‧배임 혐의가 나온다면 2008년 삼성특검의 수사결과가 소급되고 삼성 비자금 의혹에 대한 재수사가 가능하다. 이건희 차명계좌 TF는 “2008년 조준웅 삼성 특검 결과가 ‘노골적인 삼성 봐주기’수사였다”라며 “의혹만 이어져왔던 삼성 비자금 논란에 마침표를 찍어야 하고, 국세청의 봐주기식 경제 적폐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차명계좌가 이병철 선대회장의 상속자금이 아닌 삼성의 승계 등을 의도한 비자금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되는 몇 가지 사실을 정리해봤다.
 
◆ 차명계좌, 이병철→이건희…김용철 변호사 폭로에도 특검수사 ‘미흡’
2007년 삼성 출신인 김용철 변호사가 우리은행 차명계좌에서 50억의 비자금을 관리했다고 폭로하면서 삼성 비자금 수사가 시작됐다. 2008년 구성된 삼성 특검은 차명계좌 4조5000억원은 이건희 회장이 이병철 선대회장으로부터 받은 상속금이라고 발표했다. 변수가 여럿 있었지만 특검은 자금의 성격까지 조사하진 않았다.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이 ‘전략기획실에서 권한을 가지고 이재용 시대를 열 것’, ‘계열사마다 비자금 액수를 할당’, ‘반도체‧타워펠리스 공사‧삼성중공업에서 분식회계’, ‘국회의원‧검찰‧언론‧전두환까지 로비’ 등의 내용을 아래에 지시했다”고 폭로했다.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의 차명주식은 이병철 선대회장의 구상에 따른 것이다. 박정희 정권이 투자재원을 조달하려 재벌을 압박했고 1972년 기업공개에 이어 대주주 30% 이내로 지분을 제한하도록 강제하자, 삼성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비상장 계열사에 임직원과 친인척은 물론 가공의 인물까지 차명으로 지분을 분산해 놓았다. 이병철 회장은 사망 시까지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주식을 단 한 주도 보유하지 않으면서 삼성 임직원 명의로 두 계열사의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했다. 차명계좌는 아들 이건희 회장에 상속세와 회사를 움직일 수 있는 경영실권을 넘겨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냈다. 그 덕에 이병철 선대회장의 사망(1987년)뒤 이건희 회장이 낸 상속세는 150억원에 불과했다.

이병철 회장이 사망한 뒤 이건희 회장은 1990년 초 사업을 준비해 1995년 자동차사업에 진출했다. 이내 사업은 실패했고, 곧 1999년 법정관리를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이 때 이건희 회장은 차명으로 물려받은 아버지 이병철 회장의 삼성생명 차명주식 400만주(2조8000억원 상당)을 꺼내 위기를 넘긴다. 한동안 잠잠하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으로 차명주식이 드러나면서 삼성비자금 사건이 터졌다. 삼성특검은 이건희 회장의 삼성생명 차명 지분이 모두 선대회장으로부터 1987년에 상속받은 것이라는 삼성 측 주장을 받아들이고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해 수사를 일단락시켰다. 수사결과에 따르면, 국세기본법 상 상속세 부과 제척기간(최장 15년)을 이미 초과하였기 때문에 해당 차명 지분에 대한 세금 부과는 불가능하다는 것. 또한 삼성생명의 경우 비상장회사이었기에, 증권거래법 상의 임원 및 주요주주 지분 변동 허위신고에 대한 법적 책임 또한 지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특검은 이건희 회장이 지닌 차명주식이 486명의 차명으로 1199개, 4조5000억원에 달한다는 사실만 확인했고, 출처 등은 수사하지 않았다. 특검은 이건희 회장에게 상속세를 납부토록하고 세금포탈죄로 기소했지만 배임횡령 혐의는 없었다. 특검 수사 결과 발표 이후 발맞춰 삼성은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주식을 이건희 회장 명의로 실명 전환했다고 발표했고 4조 5000억원 규모의 차명재산에 누락된 수천억원의 세금을 모두 내고, 남은 돈은 사회공헌에 쓰겠다고 약속했다.
 
▲ (왼쪽부터)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고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 뉴시스

◆ 이건희, 실명전환없이 계좌에서 돈만 빼가…금융실명법 위반
최근 박용진 의원은 이건희 회장이 금융실명법 위반에 따른 세금은 전혀내지 않고 실명화 절차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4조4000억원을 찾아간 사실을 밝혀냈다. 금융실명제가 실시되던 1993년 전후로 이자배당소득에 대한 차등과세를 적용해야 함에도 이건희 회장은 세금과 과징금 수천억원을 면제받은 것이다. 약속했던 사회공헌조차 거의 없었다. 곧 바로 비자금 의혹이 불거졌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감원에서 제출받은 차명계좌 현황 자료를 보면 위법 사실이 드러난 1021개 계좌 중에서 개설시기가 이병철 회장이 죽은 1987년 이전인 것은 1개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1988년 이후에 개설됐고, 2000년 이후에 개설된 계좌도 673개(66%)에 달한다. 이병철 선대회장 작고 이후 금융실명제까지 (1987년~1993년) 개설된 계좌는 20개뿐이다. 나머지는 실명제 이후 새로 개설된 계좌다. 특검의 판단대로 2008년 당시 계좌가 상속자금이라면 20개 계좌를 제외한 1000여개의 계좌는 출저가 묘연해 진다. 박용진 의원은 “이병철 회장이 1987년에 사망했는데 어떻게 이후 개설된 계좌를 모두 상속재산으로 단정할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이건희 회장이 총수직을 승계했던 1987년 삼성그룹의 연간 총매출이 13조5000억원에 불과했다는 점에 비춰보면 당시 상속금 4조5000억원이란 규모는 여러 상황을 감안해도 너무 크다. 상속 재산이 아니라 이 회장이 계열사 등 회사돈으로 조성한 비자금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또 하나의 이유다. 이와 관련해 개설된 계좌 중 이전 차명 임원이 퇴직하면서 계좌명을 바꿨다는 것이 삼성 측의 반론이다. 동시에 재차 특검이 상속계좌의 출처를 모두 들여다봤어야 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는 비자금과 관련해 봐주기 수사였다는 주장과 같은 선상에 있다. 이병철 선대회장 사망당시 삼성 친족회사인 신세계와 CJ가 삼성생명 차명계좌를 일부 소유하고 있었는데, 두 친족회사의 지분이 삼성 측 차명계좌로 이동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차명계좌 전부가 순전한 상속재산은 아니라는 기본적인 가정은 도출가능하다.

◆ 친족기업 신세계‧CJ 지분, 차명계좌에…삼성생명 상장 차익
2008년 4월 이학수 삼성 전 부회장은 차명계좌 중 조세 포탈에 해당되지 않는 2조2000억원에 이르는 삼성생명 지분은 사회에 환원될 자금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2010년 이건희 회장은 삼성생명 차명지분으로 삼성생명을 상장시키면서 4조원에 달하는 수익을 챙겼다.

경제개혁연대는 다음과 같이 삼성생명 내 차명계좌 지분변화를 분석해 특검 주장이 틀렸음을 반증했다. 삼성생명 유상증자 당시 최소 3.75%부터 많게는 26%까지는 임직원 명의 차명지분이 추가로 만들어졌다는 것. 곧 해당 지분은 출처는 상속재산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곧 삼성생명 상장차익을 얻기 위해 끌어온 친족기업 내지는 계열사 비자금이라는 주장이다.

삼성생명 상장과정은 다음과 같다. 이병철 선대회장이 사망한 이후인 1987년말 당시 삼성생명의 지분은 각각 신세계(29%)와 CJ(구 제일제당, 23%)가 52.00%. 주주명의가 확인되지 않은 나머지 지분은 48.00%였다. 다음해인 1988년 9월에 삼성생명은 유상증자(30억원에서 60억원으로 증자)를 실시했다. 유상증자과정에서 두 친족그룹은 각 절반씩 지분을 삼성에 실권한다.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1994년 1월 기준’ 신세계와 CJ의 삼성생명 지분은 각각 14.50%와 11.50%(총 26%)다. 여기에 삼성생명 지분 중 삼성 관련 실명지분은 22.25%(이건희 10.00%, 삼성문화재단 5.00%, 삼성에버랜드 2.25%, 이종기 전 삼성화재 사장 5.00%)였다. 2008년 삼성특검 결과 확인된 당시 임직원 명의의 차명지분은 51.75%였다. 특검은 차명계좌가 이동하기 시작한 시기가 1998년 이후라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1988년 유상증자 이후 신세계와 CJ가 실권한 지분 26%는 어디로 갔을까.

일단 유상증자 시점(1988년) ‘26%(신세계‧CJ)+22.25%(삼성 측)+51.25%(특검 차명)’이 삼성생명 지분 구성이다. 실권한 26%(신세계‧CJ)은 실명계좌 22.5%(이건희, 삼성문화재단, 에버랜드, 이종기 전 삼성화재 사장)에 3자 배정을 통해 인수됐거나 (이 경우 ‘26.00%-22.25%=3.75%’가 남는다) 혹은 26.00% 전체가 차명으로 임직원 차명계좌(51.25%)로 흡수됐거나 두 가지다. 즉. ‘실명계좌 인수 못해 남은 3.75%’~‘차명계좌로 간 26.00%’는 두 친족기업 실권 이후인 유상증자 시점에 만들어진 차명지분이 된다. 특검이 밝힌 상속자금 51.75% 중 3.75~26.00%는 ‘상속금이 아니다’라는 뜻이고, 삼성특검이 부실수사를 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 2008년 4월 이학수 삼성 전 부회장은 차명계좌 중 조세 포탈에 해당되지 않는 2조2000억원에 이르는 삼성생명 지분은 사회에 환원될 자금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2010년 이건희 회장은 삼성생명 차명지분으로 삼성생명을 상장시키면서 4조원에 달하는 수익을 챙겼다. ⓒ 뉴시스

한편, 1999년 삼성차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며 이건희 차명주식 3443만주는 2조4500억원에 채권단에 넘어갔다. 2010년에 삼성생명은 신주발행없이 상장했고, 당시 공모주는 1999년 채권단 주식과 삼성으로부터 계열분리된 신세계와 CJ의 지분이었다. 채권단 보유주식은 부채원금 2조4500억원을 넘어서는 3조8500억원을 확보한 뒤 상환됐다. 상장전후 이건희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 가치는 4조5671억원(20.76%)에서 8조8000억원으로 불어났다. 이건희 회장은 이병철 선대 회장이 남긴 차명주식을 통해 삼성생명을 상장하면서 4조2400억원에 달하는 수익을 가져갔다.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현 공정위원장), 과거 ‘삼성 비자금 의혹’ 제기
경제개혁연대는 특검 직후 논평을 통해 "생보사 상장 논의가 본격화되던 1988년, 즉 막대한 상장차익이 기대되던 시점에 실시된 삼성생명의 유상증자에서 당시 계열사 법인주주였던 신세계와 CJ(제일제당)이 실권하고 이건희 회장이 실명 혹은 차명을 통해 26.00%의 실권주를 인수한 것은 계열사와 그 주주들의 몫이 되어야할 상장차익을 그룹총수가 가로채기 위해 이루어진 거래로, 시효만 남아있다면 특경가법상 배임죄 적용 및 주주대표소송의 대상이 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김상조 공정위원장(당시 한성대 교수)은 당시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에스원, 제일기획 등 계열사의 상장직전에 법인주주를 대신해서 지분을 취득하고 상장 직후 매각해 수익을 취했 듯”,“이건희 회장이 신세계와 CJ등의 지분을 법인이 아닌 직원 또는 임직원 명의를 빌려 취득하고, 삼성생명 상장 직전에 차익을 취득할 목적이라면”이라며 “정확히 일치한다. 이는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용철 변호사도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는 상속금이 아니라 비자금”이라며 “미래전략실(당시 구조조정본부)의 지시로 각 계열사에서 자금을 빼돌려 운용한 것”이라고 다수의 증거를 바탕으로 주장한 바 있다. 김 변호사는 “삼성 계열사가 분식회계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폭로에도 특검은 수사없이 증거불충분 판결을 내렸고 삼성화재가 보험가입자들의 미지급보험금으로 비자금을 조성, 전략실에 전달했다는 제보를 단순 횡령사건으로 축소했다”고 삼성특검의 부실수사문제도 제기했다.
 
최근 국세청이 밝혀낸 추가 차명계좌가 존재한다는 발표를 하면서, 삼성 비자금 재조사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아울러 이건희 회장의 해외은닉재산 약 4500억원을 신고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삼성 비자금 수사가 확연한 변곡점을 맞고 있다. 경제개혁연대가 내놓은 삼성생명 지분관계만 보더라도 이건희 회장의 상속 시점 이 후 유상증자를 거쳐 남게 되는 신세계와 CJ의 26%지분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규정되지 못했다. 차명계좌 내 자금이 이맹희 전 회장이 주장했던 CJ측의 재산인지 혹은 계열사 비자금인지 혹은 여럿이 혼재해 있는지, '삼성비자금 의혹'은 진행형이다.
 
▲ 이건희 차명계좌와 비자금 관련성, 삼성생명 상장에 앞선 지분 변화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