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대선정국 ‘대권후보-재계인사’ 연대설 실체

▲ 김혁규 열린우리당 의원
정·재계가 심상치 않다. 거센 정계개편 급류에 시달리고 있는 정계와 내년 사업시나리오 구성이 한창인 재계의 ‘필연적인 짝짓기’의 계절이 온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기업하기 힘든 한해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는 재계가 서서히 불온한 기류에 휩쓸리며 대기업 CEO들의 대대적인 인사이동 과정에서 좌초된 이들이 내년에 있을 ‘대선’에 대거 합류하리라는 소문이 심심찮게 정·재계 안팎으로 세어 나오고 있다.

사실 노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이 여기저기서 발생하고 있는 시점에서 호사가들의 뒷담화가 뜬소문으로 끝날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이는 우리나라 역사가 입증해주고 있다.

이를 흔히들 ‘정경유착’이라고 부른다.

‘정경유착’은 바다 건너 일본에서 왔다.

1960년대 말 일본언론이 ‘한·일 정경유착’이라고 했다. 그 뜻은 ‘일본 업계가 일본 정치계를 동원해서 한국 정치계와 교섭, 한국 정부로부터 이권을 따낸다’는 뜻이었다.

이처럼 바다를 건너 온 ‘정경유착’은 국내 정·재계를 기반으로 서서히 한국형으로 탈바꿈 하더니 이내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렸다.

‘정경유착’ 알고 보니 수입품

60년대 당시 국내 기업은 국제 신용도는 물론이거니와 어느 하나 내세울 수 것 없을 정도로 빈약하다 못해 빈곤했다. 따라서 자본이 부족했음은 불 보듯 뻔한 일. 결국 정부의 보증을 등에 업고 외국자금을 끌어다 써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인들은 소위 잘 나가는 정치인들과 관계를 맺게 됐고 정치인들로서도 선거에 필요한 자금이 필요했음으로 밑지는 장사는 절대 아니었던 것. 이것이 현재의 ‘정치비자금’으로 자리 잡게 된 셈이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서면서 故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정경유착’의 연결고리가 일시 단절되었다.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 ‘부실기업 정리반’을 설치, 조선공사·인천제철·아세아자동차·한국철강·천우사 및 대성목재 등 당시로서는 대기업체 내지는 중견기업 30여 개를 몰수 조치했다.

‘염라대왕’이라는 평까지 들으며 수행된 이 조치로 ‘기업은 망해도 기업가는 망하지 않는다’라는 기업풍조에 일대 철퇴를 내려졌다.

▲ 이명박 전 서울시장
‘정경유착’이란 단어가 꼬리를 감출 무렵인 1980년대 숨겨져 있던 거대한 공룡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김영삼 정부는 전·노 전직 두 대통령과 김 대통령 자신의 아들, 여야 중진 국회의원, 은행장, 전직 장관, 재벌기업 총수들을 비리사건으로 재판에 회부하는 대 파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들에 대해 법원은 유죄 판결을 내렸다. 대통령과 그의 친인척, 고위 정부관리, 여야 정치계, 금융계, 경제계 모두가 ‘정경유착’에 주역으로 등장했다.

이때 ‘정경유착’은 60년대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띠었다. 60년대가 그래도 민주주의의 필요악으로 존재했다면 80년대는 민주주의의 ‘악의 축’이란 점에서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거슬러 올라가 지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사건이 터지자 재계는 국민들 앞에 사죄하면서 앞으로 어떤 경우나 명분을 막론하고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맹세했다.

그러나 지난 1997년 김현철 비자금으로 소용돌이가 치자 재계는 기업윤리헌장까지 제정하면서 불법 정치자금의 근절과 개별 기업이 관련되었을 때는 재명 조치를 단행하겠다고 했으나 또다시 유야무야되기도 했다.

또한 재계의 ‘줄서기’는 매번 선거철이면 어김없이 세어 나왔고 사실로 드러남에 따라 국민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지방선거서 극명하게 드러나

여의도에도 서서히 차기 대선을 앞두고 대권주자들과 재계인의 연대설이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정가 한 관계자는 “노 대통령의 임기가 막바지로 접어든 시점에서 대선을 대비해 정치인들은 유능한 재계인사와 관계를 맺으려 하고 있다”면서 “5·31 지방선거에서도 나타났듯이 재계인들이 선거를 통해 정치계로 입문하거나 아니면 조력자로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이들 재계인들이 정치입문이나 조력자로 나선다는 게 잘못된 게 아니라 정치인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다는 게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5·31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정치인과 재계인사들의 ‘짝짓기’는 극명하게 드러났다. 글로벌스탠더드 확산으로 들어온 CEO라는 단어는 5·31 선거의 새로운 슬로건·캠페인·인물을 찾는 정치권에 신선한 재료가 됐다. 현대그룹 출신으로 샐러리맨 성공신화의 주인공에서 서울시장으로, 다시 차기 대권주자로 부상한 이명박 서울시장이 대표적이다.

정치권에서 CEO 영입은 여야를 막론하고 공을 들였다. 진대제 후보에 이어 삼성그룹 출신으로는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이 제주도지사 선거에 출마, 고배를 마셨다.

낙선 이후에도 그는 지사가 아니어도 제주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고 고건 전 총리의 미래와 경제 창립발기인으로 참여, 정치와 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밖에도 안상수 인천시장은 동양증권 종합조정실 전 사장이었다. 그는 1996년 15대 총선에서 기업인 영입 사례로 정치에 발을 들였다.

또 이재복 진해시장은 금화개발 대표였었고, 정종득 목포시장은 벽산건설 부회장 출신이다.

기존 정치권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업인 출신으로는 한나라당의 김태환 의원, 이상득 의원, 열린우리당의 이계안 의원, 김혁규 최고위원 등이 대표적이다.

▲ 안상수 인천시장
김태환 의원은 아시아나항공 사장, 금호피앤비 사장을 지내다 2004년 17대 국회의원선거에 경북 구미에서 출마, 당선된 초선의원이다. 이명박 서울시장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은 1961년 코오롱 공채 1기로 입사하여 사장에 올랐고 13대부터 내리 5선을 지내다 이번 국회부의장 출마를 앞두고 있다.

현대자동차 사장, 현대캐피탈 회장 출신의 열린우리당 이계안 의원은 서울시장 후보경선에 출마했으나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에 밀렸다. 하지만 최근 재야파의 수장인 김근태 당의장의 비서실장으로 전격 기용되어 여당의 경제정책 기조변화에 ‘키메이커’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CEO 도지사의 길을 연 경남도지사 출신의 김혁규 전 열린우리당 최고위원은 경남 합천군청 서기보로 공직에 입문, 내무부에서 근무하다 단돈 200달러를 들고 도미(渡美), 가방무역회사를 창업해 성공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뉴욕 한인경제인협회장, 한인회 이사장으로 활동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연을 맺고 정치에 입문했다.

뛰어들지 않되 밀어줄 사람은 확실히 자신이 직접 참여하지 않는 방법 중 하나가 자신의 이념·성향과 부합된 인물에게 지지를 보내는 방식이 있다.

정당에 가입하거나 국회의원의 후원회장을 맡는 등이 그것이다. 지난 대통령선거를 전후하여 생긴 ‘노사모·박사모·창사모’ 등이 그 예다.

특히 요즘은 여당의 총선 패배 이후 내년 대선을 앞두고 강력한 대권주자로 떠오른 고건 전 총리측에 기업인들이 몰리고 있다. 고 전 총리를 돕는 모임으로 알려진 미래와 경제포럼이 그것이다. 지난 1월 출범한 포럼에는 136명의 발기인이 참여했는데 그 중 경제계에서 30여 명이 넘는 인사가 참여했다.

재계도 정치철새에 동참(?)

2007년 대선까지 앞으로 1년 3개월, 찬바람이 몰아치는 여의도 정가에 날아든 재계 철새들의 향후 행보에 세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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