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화된 TV 히트 아이템의 여러 양상에 대해 철저 분석해보자

바야흐로 '크로스-미디엄'의 시대, 어느 한 매체에서 대중들에게 큰 호응을 얻으면, 그 '확보된 고정팬층'을 그대로 다른 매체로 옮겨 안정된 방향으로 새로운 작품을 기획해내는 '일석이조' 시스템이 일반화된 시대이다. 얼핏 얄팍한 상술처럼도 여겨지지만, 이런 '크로스-미디엄'이 예기치 못한 결과를 낳아 흥미를 돋궈주는 경우도 있으며, 매체가 달라지는 것만으로도 원본 아이템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와 관객들은 '한 가지 이야기'로부터 파생된 '두가지 생각'을 접하는, 남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된다. 영화의 경우, 그 시작점부터 '문학'과 '연극'의 영향을 크게 받아 크로스-미디엄이 일반화된 상황이지만, 비교적 늦둥이에 속하는 매체인 TV가 경쟁상대로 떠오른 뒤부터, 영화는 TV에서의 히트 아이템을 스크린으로 옮겨와 'TV 이상의 수익'을 거둬내는 짭잘한 장사를 절대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모종의 '전통'으로서 고스란히 이어오고 있다. 이번에는 이들, '영화화된 TV 아이템'의 세계를 자세히 살펴보고, 이들의 양상이 어떤 갈래로 나뉠 수 있는지, 그리고 '크로스-미디엄'은 결국 어떤 방향을 걸을 수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원작'이 곧 '진리'이다 - TV 시리즈 정신을 그대로 '수혈'받은 영화들 일반적으로 '원작의 카리스마'가 그닥 강하지 않고, '인물'이 이야기의 중심을 차지하는 아이템들에서 주로 발생하는 케이스이다. 대표적 예로는 앤드류 데이비스 감독의 대히트작 <도망자>(1993)를 들 수 있는데, 1963년부터 1967년까지 방영되어 커다란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동명 히트 TV 시리즈를 영화화한 <도망자>는 원작 자체가 '진범을 쫓으며 경찰의 수사망에 쫓기는 피의자와 그를 뒤쫓는 강직한 성품의 형사'라는 기본 인물과 상황 설정만 지니고 수십회를 '이 과정에서 여러 사람과 만나며 벌어진 에피소드'들로 이어나간 '로드 형식'이었기에, 원작의 '맛'을 다치지 않으면서 성공적으로 스크린에 이 두 주인공을 투영시킬 수 있었다. 이와 비슷한 예로는 1959년부터 1963년까지 방영된 히트 시리즈를 영화화한 브라이언 드 팔머 감독의 <언터쳐블>(1987)과 1962년부터 1969년까지 성공적으로 시리즈를 이어온 영국산 TV 시리즈의 영화화인 필립 노이스 감독의 <세인트>(1997) 등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원작 TV 시리즈'를 '리메이크'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들 영화들과 또다른 노선, 즉 '원작의 후속편'격으로 제작되는 영화들도 미국 밖에선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히트 TV 아이템'이 영화화되는 경우는 상당히 흔한 일에 속하는데, 여러 에피소드가 쏟아져 나오는 TV 시리즈에 '또 하나의 장편 에피소드'를 덧붙이는 식인 '애니메이션' 영화 - 가장 대표적으로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죽음'과 '재생' 편이 있다 - 와 함께, 'TV 시리즈가 종료된 시점'으로부터 바로 인물설정 없이 다음 이야기로 뛰어드는 '실사 영화'들도 다수 등장하고 있다. 원작 시리즈와 배우, 작가, 제작자가 모두 같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 이 계열의 가까운 예로는 <춤추는 대수사선>(1998)이나 <케이조쿠>(2000) 등을 들 수 있으며, 헐리우드에서 비슷한 컨셉을 지닌 케이스로는 '가장 성공적인 TV-영화간 크로스 미디엄'으로 꼽히는 <스타 트렉> 시리즈와 '아직 TV 시리즈가 끝나지 않은 시점'에 등장하여 화제를 불러 일으킨 (1998), 그리고 '원작의 미스테리를 해독해주는' 친절한 후속편이자 '의미없는 작품'이라는 혹평을 받은 <트윈 픽스>(1992) 등을 꼽을 수 있다. 여기에 덧붙일 수 있는 또다른 케이스로는 브라운관의 사고뭉치 'SNL' 패거리들의 영화를 들 수 있다. TV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인기 단락들을 하나씩 장편 길이로 늘려 극장으로 실어가고 있는 'SNL' 영화판들은 그 자체로 이미 '수준 이하'의 완성도가 '보장'되어 있어 별다른 분석이나 조망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상황이지만, 일정한 내러티브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은 '단락'형 개그쇼가 영화화될 수도 있다는 점, 그리고 때때로 <웨인스 월드>(1992)와 같은 대히트작을 내기도 한다는 점에서 분명 주목해야 할 '아이템'이긴 할 것이다. '시간의 시험'에서 낙방한 것들은 모두 우습다 - TV 시리즈의 냉소적 자기풍자 영화들 이런 경향은 바로 지금까지의 여러 '정의'들에 대해 강한 반발심을 나타냈던 1970년대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시기에 처음 이루어졌는데, 아직 TV 시리즈를 영화화한다는 발상은 나오지 않던 시기이지만 레이몬드 챈들러의 느와르 클래식을 철저하게 비꼰 로버트 알트만의 <기나긴 이별>(1975)을 그 '방향'의 시발점으로 꼽을 수 있다. 이후 코미디-아나키스트 집단인 ZAZ 사단의 <에어플레인>(1980)이 '오래된 영화적 클리셰'들을 무차별로 폭격하며 풍자하여 대성공을 거둔 이래, 원작에 대한 '자기풍자'로서의 리메이크는 하나의 인기있는 경향으로서 자리잡아 가기 시작했다. 그 시조격 영화인, 1951년부터 1959년까지 인기리에 방영되고, 이미 1954년 '원작의 후속타'격인 영화판 버전을 탄생시킨 바 있는 아이템의 두 번째 영화화 버전 <드라그넷>(1987)의 예를 들어보자. 1987년판 <드라그넷>은 원작 시리즈의 모든 요소를 조롱하고 있다. 엄격한 성품을 상징하는 프라이데이 형사의 기계적인 말투와 직선의 움직임은 이미 '괴짜'의 기본구성 요소가 되어있고, 사건의 정황을 말해주는 나레이션은 나레이션 자체가 구식이 되어버린 시대에 더없이 우스꽝스런 개그 아이템으로 전락해버린다. 이 경향은 '코미디와 호러가 혼성된' 시리즈로 인기를 모았던 <아담스 패밀리>의 영화판(1991년)과 낭만적 서부극인 <매버릭>의 영화판(1994)이 '자체구성요소의 패러디'라는 측면을 가미하면서 더욱 박차를 가해갔고, 1995년작 <브래디 번치>에서 그 노골적인 풍자성을 폭발시켜 버렸다. <브래디 번치>는 '지나칠 정도'로 노골적인 풍자 영화이다. 1969년부터 1974년까지 방영된 인기 가족극 <브래디 번치>는 그야말로 교훈적인 가족 우화들을 담아낸, 훈훈한 감동의 드라마였다. 그러나 이 주인공들 - 성격과 행동, 심지어 의상까지 모두 - 을 그대로 혼란스럽고 냉소적인 1990년대로 옮겨와, 이들이 얼마나 우스꽝스런 인물들인지, 그리고 이들의 사고방식이 얼마나 우직스러울 정도로 '원론적'인지, 더 나아가 왜 이들의 화장실엔 변기가 없는지 - 당시의 방송윤리강령은 변기와 같은 '혐오물체'의 브라운관 등장을 철저히 제한했다 - 에 대해 끊임없이 죠크를 내뱉고, 1970년대와 1990년대의 차이점 - 이들 가족은 '어린 아이들에겐 육류를 많이 먹여야 한다'고 믿는다 -을 계속해서 짚어가며, 단순히 오래된 TV 시리즈의 형성양식을 비꼬는 것이 아니라, 1970년대의 사회/문화적 분위기 자체를 비꼬고 있다. 이런 부류의 계보에서 최신작으로는 토드 필립스 감독의 <스타스키와 허치>를 들 수 있고, 비교적 흥행성적이 좋아 '원작의 파괴'야말로 '크로스-미디엄' 영화들의 '생존전략'이라는 분석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한편, 원작을 '미친 듯이' 공격하지 않고, 원작이 지닌 몇가지 기본구성 요소들을 액면 그대로 스크린으로 이입시키기만 해도 훌륭한 코미디가 탄생된다는 것을, 그리고 모종의 진한 노스탈지아까지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간파한 영화들도 존재한다. 제레마이어 체칙 감독의 <어벤져>(1998)는 1961년부터 1969년까지 방영된 영국산 스파이극 <전격 제로 작전>을 '그대로' 영화화한 케이스인데, 앞서 언급한 '원작의 정신'을 수혈받는 방식에서 현대화시켜야 할 부분을 제어시킨다는 간단한 컨셉만으로 '난장판 코미디'를 탄생시킨 첫 번째 경우 - 그리고 모든 '첫번째 경우'가 그러하듯 흥행에 처참하게 실패했다 - 로 남게 되었고, 동일 경향으로는 배리 소넨펠드의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1999),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실사버젼인 <스쿠비-두>(2002)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작품들은 아직까지 흥행면에서나 비평면에서 모두 불안정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어, 대담무쌍한 컨셉인 만치 '생존력'은 다소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TV는 TV, 영화는 영화 - 원작 TV 시리즈에는 관심도 없는 '영화판' 이런 경향의 가장 대표적 경우인 브라이언 드 팔머 감독의 <미션 임파서블>(1996)을 살펴보자. 1966년부터 1973년까지 초장수 히트 시리즈로 인기를 모으며 국내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던 <제5전선>의 영화버젼인 <미션 임파서블>에는, 다른 모든 요소를 차치하더라도, 원작의 '기본 설정'인 '팀원들 간의 협력 공작'이라는 요소가 아예 빠져있다. 오직 주인공 톰 크루즈가 펼치는 '원맨-액션'에 이야기의 중심을 두고 있으며, 주인공이 '스파이'라는 점을 제외하곤 원작과 아무런 공통점 - 물론, 주제가를 빼고 말이다 - 도 발견할 수 없다. <미션 임파서블>이 성공하자, 제작까지 겸한 톰 크루즈는 후속편에서 더욱 강화된 '원-맨 액션' 스타일을 펼쳐보여 전편을 능가하는 흥행 성적을 거둬냈고, 이런 현상은 스티븐 소머즈 감독의 <로스트 인 스페이스>(1998), 키스 고든 감독의 <노래하는 형사>(2003) 등의 영화에서 꾸준히 벌어지고 있다. 이들 영화들은 '영화의 기본 설정'조차도 어느 정도 - 때로는 완강히 - 무시하고서, 오직 원작 시리즈가 지닌 네임밸류만을 취한 경우로서, '크로스-미디엄'의 데카당스로까지 여겨지고 있는데, 원작이 지닌 상업적 기반만을 취하고 나머지 요소들은 완전히 폐기처분시킨다는 점에서 정확히 말하자면 '크로스-미디엄'이라 일컫기도 힘들 정도이다. 여기서 한술 더떠 1975년부터 1976년까지 방영되어 '단명한' 시리즈로 잘 알려진 에 이르면, 주인공들이 'S.W.A.T.' 팀이라는 점을 제외하곤 원작과 연관성을 거의 발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주인공들이 원작 시리즈의 '주제곡'을 술자리에서 부르는 팝컬쳐 언급까지 등장해, 원작의 팬들을 아연질색케 하고 있다. 한편, 한 제호 하의 단막극 형태의 연작 시리즈들은 오직 원작의 '방향성'과 '분위기'만을 캐치해내면 되기에 '원작의 파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은 경우에 속한다. 대표적 예로는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밀러, 조 단테, 존 랜디스 등 1980년대를 장식한 상업영화 거물들이 모여 1959년부터 1965년까지 방영된 로드 설링의 <환상특급>을 영화화한 <3차원의 세계>와 비슷한 컨셉으로서 1989년부터 1996년까지 장기방영된 호러 시리즈인 <납골당의 미스테리>를 영화화한 세편의 작품, <데몬 나이트>(1995), <피의 매춘숙>(1996), <리츄얼>(2001) 등의 작품들을 들 수 있으며, <3차원의 세계>가 원작 시리즈의 '상영시간'을 그대로 지켜 30분 분량의 단편 3편을 모은 옴니버스로 제작된 반면, <납골당의 미스테리> 영화판 세편은 이를 장편길이로 늘려 한편의 이야기로 구성했다는 점 정도를 차이점으로 볼 수 있다. 이들 '제호만을 이용한 작품군'은 경제논리의 극대화라는 비난을 한몸에 받아내고 있지만, 적어도 상업적으로는 그닥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둬내고 있어, 불행히도 이런 경향은 한동안 극장가를 꾸준히 강타할 것으로 보여진다. 이문원 기자 fletc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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