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탄핵 '정치적 해결이냐, 법리적 해결이냐'

17대 총선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자 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철회하자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어 주목된다. 특히 헌재에서 진행중인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의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이는 헌재의 탄핵심판 결정 이전에 탄핵 문제를 16대 국회에서 정리, 정치적으로 해결하자며 우리당과 민노당이 여야 정당대표회담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관련 한나라당은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자'는 입장인 데다가 헌재 역시 총선 결과와는 무관하게 심판에 임할 것이라는 입장이어서 그 추이가 주목되고 있다. 한편, 이와 관련 헌재는 총선 결과와 무관하게 헌법과 법률에 따라 심리하겠다고 천명하고 있고 대통령과 국회측 대리인단도 총선 결과에 대한 미묘한 해석 차는 있지만 심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언급, 공히 법정에서 이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헌재 안팎에서는 헌재가 총선 결과를 일정 참고하지 않겠느냐는 시각도 제기되면서 탄핵심판 초기 정치권에서 논란이 됐던 탄핵소추 철회문제가 다시 제기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어 주목된다. 권영길 '여야 3당 대표회담 제안' 총선이 끝난 지난 16일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는 "17대국회가 개원하기 전에 대통령 탄핵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탄핵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여야 3당 대표회담을 제의했다. 권 대표는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17대 국회가 정쟁국회가 아닌 민생국회가 되기 위해서는 정쟁의 요소는 모두 털어버리고 새출발을 준비해야 한다"면서 "이번 선거결과는 정치권이 탄핵문제를 새롭게 정리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탄핵문제 해법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조속히 탄핵기각 결정을 내려야 한다"며 "그러나 헌재 판결전이라도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의 3당 대표회담을 통해 탄핵철회를 위한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탄핵 철회를 위해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에게 진지하고 엄숙하게 사죄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정동영 '16대 국회 털고 가야'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도 같은날 영등포 중앙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노 대통령의 입당 문제와 관련, "대통령 직위에 복귀하는 대로 입당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특히 "대한민국 국민은 노 대통령을 확실히 재신임했고, 우리당에 표를 준 것은 노 대통령을 지켜달라고 준 것"이라며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게 탄핵문제 해결을 위한 양자회담을 거듭 제안했다. 이에 앞서 정 의장은 선대위 상임위원회에서 탄핵문제와 관련, "탄핵은 16대 국회가 한 정치적 행위의 산물이자 법률이전에 정치적인 문제인 만큼 16대 국회가 결자해지 차원에서 털고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야당도 이같은 뜻에 동의할 것이며 (야당과) 논의해 일정을 정하겠다"고 덧붙였다. 고 건, '탄핵 조기 해소' 촉구 대통령 권한대행인 고 건 총리도 이날 탄핵정국의 조기 해소를 우회적으로 촉구하고 나섰다. 그는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민의 뜻은 총선을 통해 충분히 반영됐다"며 "지금의 비정상적인 상황은 조속히 마무리돼야 한다"고 강조, 탄핵국면이 조기에 종식돼야 한다는 뜻을 분명히했다. 고 대행이 여야 정치권에 대해서도 "선거 결과를 겸허히 국민의 심판으로 받아들여달라"며 "과거의 대립과 갈등의 정치가 종식되고, 상생과 통합, 협력의 새로운 정치가 탄생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한 것은 이런 저간의 사정을 두루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자칫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로 비쳐질 수 있음에도 이같은 입장을 표명한 것은 국내외 상황을 감안할 때 지금의 비정상적인 정치상황을 조기에 종식시키는 게 불가피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무엇보다 고 대행이 경제회복과 대외신인도 개선을 내세워 탄핵국면 조기 해소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국정운영의 대리자로서 한나라당의 입장도 가급적 존중해 여야대표회담을 이끌어내기 위한 포석이라는 게 중론이다. 결국 고 대행의 이날 담화는 정국이 여대야소 구도로 재편된 상황에서 여야 정치권에 나름의 `탄핵 해법'을 제시한 것으로 분석된다. 박근혜 '헌재 결과 지켜봐야' 원칙론 주장 하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야권은 "헌법재판소의 심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원칙론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일각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선 사과 후 탄핵안 철회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어 주목된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이와 관련 대통령 탄핵소추에 대한 정치적 해결 주장에 대해 "그 문제는 이미 헌재로 넘어간 일이기 때문에 헌재의 판단을 우리가 기다리고 존중해야 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총선 다음날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민주노동당 권 대표가 제의한 탄핵문제 해결을 위한 3당대표회담에 대해서는 "다른 문제로는 얼마든지 만날 수 있지만 탄핵과 관련해서는 국회가 사법부가 진행하는 일을 중간에 간섭하거나 돌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대신 박 대표는 "여야 대표가 같이 만나 협조하고 의논할 현안이 있으면 얼마든지 만나겠다. 회담이 아니라도 열린우리당 당사를 찾아가 만날 수 있다"며 "상생정치를 약속했으므로 그게 이뤄지지 않으면 민생챙기기나 생활정치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경제.민생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여야대표 회동에는 긍정적인 뜻을 피력했다. 박 대표는 특히 탄핵에 대한 정치적 해법에 대해 "그 문제는 더 이상 얘기하지 않는 게 좋지 않느냐는 생각이다"고 거듭 강조한 뒤 "열린우리당도 헌재 결정에 승복할지 여부를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시민단체의 탄핵철회 촛불집회 재개방침에 대해 박 대표는 "찬반시위가 이어지면 국민이 너무 불안해하고 나라가 편치 않다"며 "정치권과 정당은 너무 어려운 경제와 너무 힘들어하는 국민의 민생을 해결하는데 100% 힘을 쏟아야 한다"고 밝혔다. 같은당 박영선 대변인은 "정 의장은 양자회담에서 탄핵안과 경제 살리기 등 총선이후 상생의 정치를 위한 모든 방안이 폭넓게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며 "양자 회담이후 모든 정파가 참여하는 여야 정당회담을 개최하자는 것이 정 의장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윤여준 선대위 부본부장도 "헌재 결정을 기다리는 것이 옳다"면서 "`결자'는 대통령이며 기자회견이 탄핵안 가결의 큰 요인이 됐던 만큼 총선결과를 조건으로 야당이 해결하라고 압박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하면 야당도 물러설 명분이 생긴다"고 말해 `노 대통령의 선 사과 후 정치적 해법 모색' 검토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와 관련 민주당 박준영 선대본부장도 "법적 절차에 따라 탄핵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현 상황에서는 헌재의 판단을 지켜보는 것이 민주주의의 성숙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원칙적 입장을 피력했다. 노 대통령 변호인측 '헌재 총선 결과 존중해줘야' 이에 대해 청와대는 박 대표가 희망하고, 두 대표가 의견을 같이하면 노 대통령과의 2자 또는 3자회동도 추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대통령 대리인단은 이와는 별도로 지난 16일 전체회의를 열고 오는 20일 예정된 4차 공개변론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통령 대리인단은 이와 관련된 해외 탄핵 사례를 들어 대통령 탄핵은 폭동이 일어날 정도로 민심이 이반된 상태에서 이뤄진 것인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 대다수가 탄핵에 반대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탄핵의 부당성을 주장해 왔다. 문재인 간사대리인은 "변론일 전까지 헌재로부터 송부받은 법원 재판기록을 중점적으로 검토해 대통령과 측근비리 사건의 무관성을 밝혀낼 것"이라며 "전체회의를 통해 최도술씨 등 증인에 대한 반대신문 사항도 최종 정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총선 결과와 상관없이 끝까지 재판이 진행되는 경우를 놓고 변론 준비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탄핵심판과 총선이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헌재가 이번 총선 결과를 `반영'은 아니더라도 `존중'해 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국회 소추위원측은 측근비리 연루자들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되는 4차.5차 공개변론을 대비해 신문 전략을 구체화하고 신문요지서를 19일 헌재에 제출키로 했다. 소추위원측의 한 변호사는 "대선 전 측근비리 사실을 포함한 증인신문 사항과 세부적인 신문방식에 대해 논의 중"이라며 "4차 혹은 5차 공개변론 법정에서 검찰에서 보관중인 측근비리 내사자료, 대통령 경선과정의 수사기록 등에 대한 증거조사 신청을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회 소추위원측 실무간사인 김용균 한나라당 의원은 "헌재는 법리적 판단기관이어서 정치권의 변화가 심리 자체에 영향을 줄 순 없다"면서 탄핵소추 취하에 대해서도 "규정이 없다는 것은 취하가 불가능하다는 뜻 아니겠느냐"는 견해를 밝혔다. 헌법재판소 '정해진 절차대로 진행될 것' 한편,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맡은 헌법재판소는 이와 관련 17대 총선 결과와 관계없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심리를 진행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열린우리당의 총선 압승을 계기로 다시 주목받고 있는 `탄핵심판 철회' 가능성에 대해서는 헌재와 대통령 대리인단, 국회 소추위원측 모두 "정치권에서 이뤄질 사안인 만큼 당장의 재판 진행과 연결짓기는 무리"라는 입장을 보였다. 윤영철 헌재소장은 "총선 전이나 후나 재판은 정해진 절차대로 신속.정확하게 진행될 것"이라며 "`탄핵철회' 등 일부 정치권의 메시지를 재판에 반영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선회 주심재판관도 "탄핵 철회안은 미리 가정해서 재판에 반영할 일이 아니며 국회 의결로 성사되면 그때 가서 논의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전종익 헌재 공보담당 연구관은 "헌재는 헌법과 법률, 재판관의 양심에 따라 법리적 판단을 하는 기관"이라며 "총선 결과가 탄핵심리에 영향을 미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며 원칙론적 입장을 밝혔다. 실제 헌재는 그동안 탄핵심판을 총선 이슈로 몰고가는 정치권 움직임에 대해 일절 언급을 피하면서 무반응으로 일관하면서 총선 결과를 탄핵심판 결과로 연결지으려는 시각을 경계해 왔다. 그러나 법조계에선 헌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번 총선 결과를 간접적으로나마 심리과정에서 일정 참고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역대 총선과 달리 이번 총선은 선거를 한달여 앞두고 국회에서 가결된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소추가 유권자들의 선택을 좌우하는 최대 쟁점중 하나였던 만큼 헌재가 이번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의 향배를 완전히 무시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점. 특히 향후 심리 과정에서 탄핵소추 철회문제가 다시 제기될 가능성도 남아 있어 탄핵정국을 어떠한 방향으로 결론지어질 지에 정치권 안팎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탄핵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이 이번 총선을 통해 명확히 드러난 데다 17대 국회에서 다수당을 차지한 열린우리당이 그동안 16대 국회의 탄핵소추 철회를 강하게 요구해 왔다는 것이 이런 추측에 힘을 싣고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헌법에 탄핵소추 철회와 관련된 명확한 규정이 없는 데다 헌재는 소 취하가 이뤄진 사건에 대해 의견을 밝힌 사례도 있다는 점에서 취하 자체가 헌재 판단의 종료와 직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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