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성남 칼럼니스트
혼인동맹 희생자 조정의 어머니 첩 이희

첩 이희李姬(?~?)도 3남을 두었다. 1남 조승曹乘(?~?)과 2남 미후郿侯 조정曹整(?-218년) 3남 조경曹京(?~?) 이다. 이중 1남과 3남은 일찍 죽었다.

1남 곡성상공자 조승은 231년 태화(2대 조예) 5년에 요절했다. 봉국과 시호를 추증했지만 후사가 없었다.
2남 미대공자 조정은 당숙부 낭중 조소의 뒤를 이었다. 217년 건안 22년 미후로 봉해졌다. 이듬해 세상을 떠났는데 아들이 없었다.

221년 황초(2대 조비) 2년에 작위를 추증하고 시호를 대공이라고 했다. 팽성왕 조거의 아들 조범을 조정의 후사로 받아들였다.
222년 황초 3년 평씨후로 봉해졌다. 이듬해는 성무로 바뀌어 봉해졌다. 229년 태화 3년에 작위를 공으로 승진시켰다. 235년 청룡 3년에 세상을 떠났고 시호를 도공이라고 했다 후사가 없었다.

236년 청룡 4년 명제 조예가 조서를 내려 조범의 동생 동안향공 조천을 미공으로 삼아 조정의 뒤를 잇도록 했다. 정원, 경원 연간에 계속 그의 식읍이 증가하여 이전 것과 합쳐 총 1800호가 되었다.

조정은 203년 10월 원담의 딸을 부인으로 맞기도 했다. 혼인동맹 이었다. 업전투鄴戰鬪는 조조가 원상의 근거지인 업을 공격해 함락시킨 전투다. 원담의 항복을 받은 조조는 원담을 구원하기 위해 재차 기주로 진군하였다. 조조의 출병 소식을 접한 원상은 급히 평원의 포위를 풀고 업으로 귀환해 조조와 대치하였다.

이때 원담과 조조는 원담의 딸이 조조의 스무번째 아들인 조정과 결혼하였다.
3남 영상공자 조경은 요절했다. 231년 태화 5년 봉국과 시호를 추증했는데 후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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