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와의 사이에서 곡양왕 조무 낳아

▲ 홍성남 칼럼니스트
오만하고 포악한 조무의 어머니 첩 조희

첩 조희趙姬(?~?)는 조조와의 사이에서 곡양왕曲陽王 조무曹茂(?~?)를 낳았다. 217년 건안 22년 악릉왕 조무는 만세정후에 봉해졌다. 이듬해 건안 23년에는 평여후에 봉해졌고, 222년 황초 3년에는 작위가 승진되어 승씨공으로 봉해졌다. 또 226년 황초 7년에는 중구공으로 고쳐 봉해졌다.

조무는 타고난 성품이 오만하고 포악했다. 어렸을 때 조조의 총애를 받지 못했다. 문제 때에 이르러서도 유독 혼자만 왕으로 봉해지지 않았다. 그러다 명제 조예가 등극하던 227년 태화 원년에 요성공으로 봉해지고, 같은 해 왕으로 봉해졌는데 조서가 이러했다.

“옛날에 상의 잔혹함은 극도에 이르렀지만, 위대한 순임금은 그를 유비에서 후로 봉하였고 가까이 한 왕조의 화남왕, 부릉왕은 모두 난신역자였지만, 어떤 때는 그 본인에게 봉국을 회복시켜 주고, 어떤 때는 아들에게 봉토를 하사했다.

우임금과 순임금은 상고시대에 건립했고, 한문제, 한명제, 한장제는 이전 시대에 이미 실행하였는데, 이것은 모두 친척을 가까이 하는 깊은 정이다. 요성공 조무는 어렸을 때 예교를 배우지 않았고 성장해서는 착한 도를 추구하지 않았다.

선제는 고대에 제후를 봉할 경우에는 모두 현인을 임명하려고 했기 때문에 주 왕조 희성 중에도 후로 봉하지 못한 자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조무 혼자만 왕으로 봉하지 않은 것이다. 태황태후는 여러 차례 이것을 말하려고 했었다.

조무가 최근에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며 뜻을 세워 착한 일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들었다. 군자는 다른 사람의 전진을 칭찬하고 지난날의 허물은 헐뜯지 않는다. 지금 조무를 요성왕으로 봉하여 태황태후의 자손에 관한 걱정을 위로하리라.”

232년 태화 6년에 조예는 조무의 요성공을 곡양왕으로 고쳐서 봉했다. 242년 정시 3년에 동평영왕이 세상을 떠났다. 조무는 애통해 했다. 하지만 소리 내어 울면서 애도 의식을 거행하지 않고 거처의 출입을 지난날과 마찬가지로 했다. 담당 관리가 그의 봉지를 몰수하도록 상주했다. 소제 조방은 조서를 내려 한 현 500호를 몰수하기로 했다.

244년 정시 5년 악릉공으로 봉하였다. 조무가 거두어들인 조세는 적었다. 그런데 자식들의 수가 많아 조서를 내려 몰수당했던 식읍을 회복시켜 주었다. 그와 동시에 식읍 700호를 더 주었다. 가평, 정원, 경원 연간 끊임없이 식읍을 증가시켜 이전 것과 합쳐 총 5000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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