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요로 다져진 가창력, 전통가요에 접목시킨 가수 유림

요즘 트로트를 사랑하는 팬들로부터 흔히 듣게되는 말 중 하나는 "우리 전통가요가 서양 팝송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는 게 아니냐"는 것. 즉 이른바 '세미(semi) 트로트'라 불리는 장르가 전통 가요 특유의 '된장 냄새 풍기는' 분위기에서 탈피, 이 장르에 세련스러움을 도입하여 젊은층의 관심을 많이 받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대신 한국인 고유의 정서 구축 및 유지에는 미흡하다는 게 중평. 여기 지금 새로운 기대주로 떠오른 가수 유림(裕林)의 음악 세계는 '전통' 대 '세미'로 양분되고만 트로트계에 일종의 '대안'을 제시한다. 즉 노래 자체는 젊은이의 감각에 잘 맞는 경쾌한 세미 트로트이지만, 유림을 가창을 자세히 들어보면 한국인만이 표출할 수 있는 절절한 '감성'이 두드러지는 것. 유림의 이력을 알게되면 이는 '당연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즉 유림은 경기민요 무형문화재 57호 이춘희 선생에게 사사받으며 오랜 기간 '민요'를 통해 가창을 단련해 왔다. 또한 대중가수로 본격 데뷔하기 전 일본 등 해외 각지에서 활발한 공연활동을 펼치기도 해, 트로트 싱어에게는 무척 희귀한 덕목인 '국제적인 감각'도 충분히 갖추었다. 3월 말 발표된 유림의 첫 음반 "털어버려 / 바람타는 여자"는 21세기 한국 전통가요의 나가야 할 길을 명징하게 제시함과 동시에, 든든한 '세대교체'를 예감케 한다. 중견 작곡가 오해균의 음악 혼이 유림의 풍부한 감수성을 통해 유려하게 펼쳐지는 이 음반의 주요 레퍼토리는 세 곡. '털어버려'는 경쾌한 트로트 리듬을 표방하는 노래로, 나직하고 건조하게 시작하다가 점차 고조되는 유림의 표현력이 일품이다. 노래가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달을 때에도 감정에 치우치지 않은 절제된 보이스를 구사하는 유림의 장악력이 무척 인상적. '바람타는 여자' 역시 경쾌하고 가벼운 트로트 곡. '털어버려'에 비해 창법이 좀더 애교스러운 것으로 보아, 사랑을 갈구하는 여인의 마음이 적극적으로 드러나 있는 듯 싶다. 고음역에서도 불안감 없이 탄탄하게 지속되는 유림의 다소 허스키한 목소리가 매력을 더한다. 구성진 기타와 신서사이저가 리드하는 인트로가 절묘한 '내 사랑은 그대 뿐'은, 가냘픈 여심을 능란한 표현력으로 소화하는 유림의 역량이 최고조로 드러나는 노래. 민요로부터 강력한 영향을 받은 유림 진득한 창법이 절정부에서 살짝 살짝 드러나 듣는 이의 애간장을 녹인다. 엄격한 훈련이 요구되는 민요로 단련된 튼실한 가창력으로 무장한 유림의 음악세계는, 매너리즘에 빠진 트로트계에 새로운 활력소이자 청량제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화유산인 전통민요와 전통가요, 이 두 '전통'을 시대감각에 맞는 세련된 어프로치로 소화하는 유림은, 분명 한국 대중가요에 모처럼 등장한 귀중한 존재임이 분명하다. 내년 초 중국 진출을 계획하고 있는 유림이, 진정한 세계적 '한류 스타'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이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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