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혁신 및 인재영입 강조…‘서민중심 경제’ 내용 놓고 파열음

▲ 류석춘 혁신위원장을 비롯한 당 혁신위원회는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혁신의 당위성, 목표, 철학 등을 담은 혁신선언문을 발표했다. ⓒ자유한국당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자유한국당 혁신위원회가 그간 한 차례 발표를 연기하기도 하면서 심혈을 기울여오던 혁신안을 2일 발표해 그 내용에 이목을 집중시켰다.
 
무엇보다 신보수주의를 내세운 이번 혁신안에서 기존의 여러 보수가치 외에 ‘서민중심경제’란 표현이 포함되어 있어 눈길을 끌었는데, 내부적으로 완전히 조율이 된 채 발표된 게 아니었는지 이 용어에 반발해 일부 혁신위원이 돌연 사퇴하기도 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다만 당초 가장 관심을 모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나 당적 문제 등과 관련된 내용은 의외로 이번 혁신안에 전혀 포함되지 않아 향후 이 부분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있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혁신안, ‘인적혁신’·‘서민중심경제’ 포함된 의미는?

 
이번 한국당의 혁신안에서의 핵심 키워드는 ‘자유한국당 신보수주의’인데, 이날 발표에선 크게 4가지로 분류해 ‘긍정적 역사관’, ‘대의제 민주주의 실현’, ‘서민중심경제 지향’, ‘글로벌 대한민국 지향’이란 주요 가치를 담고 있는 당의 새 이념으로 설명했다.
 
특히 이옥남 혁신위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의 일문일답 과정에서 신보수주의에 대해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보편적 복지를 추구했는데 그것과는 다르다. 자유시장경제를 전제로 하면서도 소외된 계층이나 서민경제 활성화 포함하는 것”이라며 ‘강경한 외교정책’과 ‘법인세 인하·복지 축소’를 기조로 한 미국의 신보수주의와는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는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부자 증세에 대해 여론이 긍정적 반응을 보이는 현실을 일부 의식한 부분도 없지 않은 것으로 풀이되는데, 보수진영에선 일견 논란이 될 수도 있는 ‘서민중심경제’라는 표현을 선언문에 포함시킨 점 역시 이런 분위기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선지 이 대변인은 이날 이 표현을 포함시키게 된 이유와 관련해 “서민중심주의라든지 단어가 주는 느낌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그런 부분엔 이견이 있었다”면서도 “보수란 건 시장경제를 중심으로 하지 않나. 시장경제란 부분을 생각할 때 뒤처진 부분, 사회적 약자나 소수에 대한 배려까지 포함하고 서민경제 활성화 이런 것도 포함하는 게 낫겠다는 것에 크게 대립이나 이견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뿐 아니라 ‘대대적인 인적 혁신’이란 단어 역시 한국당 초기 진행됐던 ‘친박 청산’을 재개하려는 상징적 표현 아니냐는 시각에서 이목이 쏠렸는데, 사안의 민감성 때문인지 이 대변인은 “한국당이 보수정당으로 위기를 맞은 여러 원인 중엔 기존의 가치 지향 중심 정당이 아니라 권력추구나 이익 추구를 중심으로 한 소위 정치인 위주로 정당을 운영한 이유도 있다”며 “인적 혁신 통해 새 인재를 영입하고 자유민주주의가치와 이념을 실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려한다”고만 강조했다.
 
심지어 그는 인적 혁신이 추가 징계나 당적 정리 등을 의미하느냐는 기자들의 보다 직설적인 질문에도 “차후 논의될 수 있으나 현재로선 그런 구체적 부분에 있어선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며 “큰 그림으로 보자면 인적 혁신이라든지 이념·조직·정책적인 부분에 있어서 구체적인 각론에 들어가면 그 부분이 자연스럽게 나올 것”이라고 끝까지 확답을 피했다.

◆ 혁신안, ‘보수 통합’ 명분 세우려는 포석에 불과?
 
이런 면에서 이날 포함시킨 ‘인적 혁신’이나 ‘서민중심경제’란 키워드는 그저 또 다른 보수정당인 바른정당과의 보수통합을 이루고자 그간의 입장차를 어느 정도 조정한 ‘구색 맞추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도 일부 나오고 있다.
 
실제로 바른정당과 가장 큰 시각차를 보였던 박 전 대통령 탄핵 부분에 대해 이 대변인이 “탄핵에 관한 헌법적 절차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면서도 “탄핵의 정당성이나 헌법적인 결과를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고는 혁신위의 인적 혁신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정작 인적 혁신과는 선을 그은 점 역시 이런 분석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또 이날 선언문에서 ‘철저한 혁신을 통해 분열된 보수우파 세력을 통합하고 자유민주 진영의 단합된 지지를 얻어 정권을 재창출’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천명한 부분이나 실현 목표로 삼은 3가지 대명제 중 하나로 ‘통합’을 꼽은 점도 다분히 바른정당을 염두에 둔 내용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 때문에 기자회견에서도 이 대변인에게 보수통합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는데, 전날 ‘우리 국민들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우파진영 통합을 자연스레 해줄 것’이라고 한 홍준표 한국당 대표의 주장을 꼬집어 질의하자 “혁신에 성공하면 그런 문제가 자연스레 해결되지 않나”라며 당 대표의 생각과 별개로 혁신이란 과제에 집중할 예정“이라고 즉답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이 대변인은 “현재로선 혁신위 차원에서 인위적 통합 같은 건 결정된 바 없다”며 “인위적인 통합을 한다기 보다 (한국당이) 혁신이란 과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면 바른정당이나 보수세력의 통합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로 본다”고 거듭 역설했다.
 
하지만 이런 낙관적 전망과 달리 바른정당에선 당장 같은 날 이종철 대변인의 구두논평을 통해 “그간의 실망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고 혁신안을 살펴봤지만 다시금 실망했다”며 “누가 봐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그 과정을 총체적으로 부정하는 의미”라고 혹평을 내놨다.
 
이종철 대변인은 혁신안에서 ‘국민주권주의 원리가 대의제 민주주의를 통해 실현돼야 한다고 믿는다’는 내용을 들어 “결국 지난 시기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있었던 광장의 행동과 국민 여론을 부정하는 내용”이라며 “광장 민주주의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것이지 대립적인 것이 아닌데 이러면서 어떻게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가치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겠냐”고 일침을 가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이혜훈 대표는 같은 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한국당으로 되돌아간 의원들 중에 다시 영입할 만한 의사가 있는 분들도 있고 접촉하는 분들도 계시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사석에서 얘기들이 오고 가는 분들은 있지만 99%인 상태에선 누구를 모셔오겠다 공개적으로 하긴 어렵고 100%가 되면 그때 발표하겠다”며 도리어 통합은커녕 탈당파 한국당 의원에 대한 영입 추진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 혁신위 내부조차 이견 드러나…혁신안 실효성 불투명
 
▲ 지난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열린 혁신위원회 첫 회의에 유동열 위원이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이렇듯 바른정당이 확실히 각을 세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보수’를 기치로 걸고 있는 이 보수정당과의 통합을 위해 한국당은 최소한 외견상으로 혁신안을 내세워 방향타 조정에 들어간 모양새인데, 이 과정에서도 혁신위원들 사이에서조차 견해차를 드러내며 불협화음이 일어났다.
 
앞서 한국당 혁신위는 지난달 28일 오전 중으로 선언문을 발표하려 했으나 ‘위원들 간 입장이 정리되지 않아 취소됐다’며 잠정 연기한 바 있는데, 선언문에 ‘서민중심경제’ 문구를 포함시키고자 당시엔 최해범 혁신위원이 “선언문 초안에 시장 경제나 법치주의만 너무 강조돼 서민 중심 경제정책 의지가 없다”고 지적하자 다른 위원이 당 정체성이 좌클릭하는 것 아니냐고 즉각 반대를 표하면서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견해차가 좁혀지지 못한 채 최종안이 정리된 것인지 이미 한 차례 연기한 끝에 이날 혁신안이 발표됐음에도 유동열 혁신위원이 ‘서민중심경제를 지향한다’는 내용에 반발해 “헌법과 자유한국당 강령당헌의 기본적 가치가 부정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문을 내고 혁신위원직에서 전격 사퇴했다.
 
이에 혁신위 측은 곧바로 성명서를 통해 “선언문의 ‘서민중심경제’에서 ‘중심’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었다고 하여 혁신위원회의 활동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에 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유 의원의 일방적 사퇴에 유감”이라고 입장을 내놨다.
 
고심 끝에 혁신안을 내놓기는 했지만 첫 출발부터 내부적으로 파열음이 일어났음을 노출시키게 된 셈인데, ‘서민중심경제’란 표현을 포함시키자고 주장한 최 혁신위원이 혁신위 내 유일한 진보인사였다는 점에서 향후 사안에 따라 다른 보수 성향 혁신위원들까지 최 위원과 충돌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친박 청산’ 여부와 관련해서도 최 위원이 지난달 3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진박으로 분류된 사람들에 대한 인적 쇄신 필요성을 표명했던 것과 달리 이날 이옥남 혁신위 대변인은 이 문제에 대해 여전히 “현재로선 그런 구체적 부분에 있어선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며 유보적 입장을 내놓고 있어 이번 혁신안에 포함된 내용이 앞으로 실현될지에 대해서조차 아직 예단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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