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국회 찾아 협조 요청해도 ‘별무소득’…野 반발에 정국 파행 전망

▲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청와대에서 국회 상임위원장, 예결위원장 및 간사단 초청 오찬을 가지며 추경안 처리 협조를 당부하고 있다. ⓒ청와대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격식을 깬 문재인 대통령의 사상 첫 ‘일자리 추경’ 시정연설조차 야권의 마음을 돌리는 데에는 끝내 실패한 모양새다.
 
도리어 야3당은 추경 뿐 아니라 인사문제에 대해서까지 똘똘 뭉쳐 대정부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어 한시가 급한 정부여당의 고민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미 대통령이 보고서 채택을 재요청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와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 채택 시한도 전날부로 지난 데다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에 대한 청문보고서 채택도 어려워 보이는 가운데 야권은 추가로 내정된 다른 공직 후보들에게까지 벌써부터 각을 세우고 있어 정부의 기대와 달리 조속한 시일 내에 이 문제가 해결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때문인지 문 대통령은 결국 13일 오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임명을 전격 강행했는데 이로 인해 추경안 처리 등 다른 주요사안들까지 야권의 반발에 직면해 좌초되는 것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 3야 공조체제 구축 움직임…속내는 ‘동상이몽’?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2일 국회를 직접 방문해 추경안 처리를 야권에 호소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일 추경안 심사 합의로 보도됐던 국회의장-원내대표 회동 결과마저 무색하게 하루만인 13일 야3당이 한 목소리로 합의했다는 발표는 회동 내용과 다르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현재 자유한국당, 이용호 국민의당, 이종구 바른정당 정책위의장 등 3명이 가진 이날 조찬 회동에서 이용호 의장은 “어제 3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추경이 국가재정법상 미흡하다는데 유감을 가진 것을 전제로 어떻게 논의를 진전시킬 것인가 잠시 언급한 것”이라며 “한국당을 빼고 추경 심사를 하기로 합의했다는 발표는 내용과 거리가 있다. 민주당 쪽에서 마치 한국당을 빼고 합의한 것처럼 발표된 건 오해”라고 설명했다.
 
뒤이어 이종구 의장 역시 “한국당을 빼고 3당이 합의한 사실이 없다”며 “추경과 관련 야 3당이 공동 대응하자는데 합의하고자 한다”고 밝혀 불과 하루 만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만 고립된 형세로 뒤바뀌었다.
 
다만 추경안 심사나 청문보고서 채택 문제에 있어선 당마다 일부 온도차를 드러내기도 했는데, 13일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과의 인터뷰에서 추경 심사나 통과에 반대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건 아니다”라고 답했던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같은 날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로부터 이와 관련해 ‘환영한다’는 반응이 나오자 “어제부터 왜 자꾸 민주당은 오보를 내는지 모르겠다”며 다시금 추경 심사 등에 협조하지 않을 것이란 뉘앙스를 풍겼다.
 
이에 그치지 않고 전날에 이어 이날 역시 문 대통령과 일절 응대하지 않겠다는 듯 청와대에서 열리는 국회 예결특위·상임위원장단 오찬 간담회에도 “장관 임명을 강행하는 수순을 밟으려고 하는 명분쌓기”라며 불응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정부여당에 가장 강경하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것은 물론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 강행에도 긴급 브리핑까지 열어 격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한 발 더 나아가 정 원내대표는 같은 날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선 “더불어민주당이 진정으로 한국당에 협력을 구하려면 불과 수개월 전까지도 그렇게 반대만 하던 행태에 대해 먼저 사과하고 규제프리존특별법 등 경제활성화 법안을 먼저 통과시켜야 한다”고 응수했다.
 
이 뿐 아니라 그는 인사 청문 보고서 채택 문제와 관련해서도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것은 정부여당의 오만과 독선 때문”이라며 “문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여당이 진정한 협치와 소통을 말하고 국회의 정상적 운영을 바란다면 제1야당이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 대승적 결단이 있어야 한다”며 거듭 강경화·김이수·김상조 후보자에 대한 지명철회를 촉구했다.
 
이렇듯 제1야당이 단호하게 강경 기조를 고수하고 있는 가운데 캐스팅 보트로 주목받고 있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동향엔 세간의 이목이 이전보다 더 쏠리고 있는데, 이날 추경안 관련해 한국당과 공조하기로 한 두 정당 내에서도 세부적으로는 여전히 이견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먼저 또 다른 보수정당인 바른정당에선 김세연 사무총장이 정부여당에 초강경 대응을 하며 강경야당 경향을 보이는 한국당을 향해 “과거 명분 없는 장외투쟁이나 국회 일정 전면 보이콧 등 구태를 보이던 정당은 민심에 차가운 외면을 받았다”며 견제구를 던지는 모습을 보여 해당 발언이 나온 원내대책회의에 앞서 발표됐었던 야3당 공조 약속 역시 사실상 동상이몽 아니었냐는 해석이 나왔다.
 
특히 인사 문제와 관련해선 심지어 당내에서조차 의견이 통일되지 못했다는 인상을 줬는데, 당권주자인 이혜훈 의원이 이날 SBS라디오 ‘박진호의 시사전망대’와의 인터뷰에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에 대해 “적절치 못한 여러 문제가 있지만 종합적으로 볼 때 공정거래위원장으로서 갖춰야 할 만한 역량을 갖춘 게 아니냐는 게 좀 다수설”이라고 밝혔고, 같은 당 당권주자인 하태경 의원도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김이수 후보자 빼고는 다 협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반면 당 차원에선 같은 날 조영희 바른정당 대변인 논평을 통해 “청와대가 추천한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갖가지 의혹이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롭게 드러나고 있다”며 후보자들의 자진사퇴와 지명철회를 촉구해 듣는 이들로 하여금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국민의당 역시 표면적으로 대정부여당 공세를 본격화하며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모습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상반된 주장이 나오고 있어 바른정당과 비슷한 실정인데, 당장 국민의당에서 부적격 판정을 내린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를 놓고도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일례로 주승용 전 국민의당 원내대표의 경우 강 후보자에 대한 청문보고서 채택 시한 하루를 앞두고 13일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일단 일정한 기준에 미달되면 능력이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배제 원칙이 적용돼야 된다. 강 후보자는 5개 배제 원칙 중 3개 정도가 해당되고 있다”며 “이건 사과하고 양해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배수진을 쳤다.
 
이와 달리 같은 당 정동영 의원은 이날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와 개인 소견임을 전제하면서도 “강 후보자만한 사람을 찾기 어렵다”고 주장했고, 박지원 전 대표 역시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께서 임명을 강행한다면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의 본회의 인준 표결이 부결로 유도될 것”이라면서도 “개인적으로 강경화 후보의 임명을 찬성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 문재인, ‘김상조 임명’ 정면돌파 선택…협치 파기 선언?
 
▲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청와대에서 브리핑을 갖고 있다. ⓒ뉴시스

이처럼 야권이 대내외 이견 차에도 불구하고 정부여당의 요청에 응할 가능성은 난망해지자 청와대 측은 13일 오후 윤영찬 홍보수석을 통해 “김상조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경과 보고서를 어제까지 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국회에서 논의되지 않고 기약 없이 시간만 지나고 있다”며 김 후보자를 임명하겠다고 전격 승부수를 던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추경안 심사에 대해선 전날 시정연설에 이어 이날도 각 당 상임위원장과의 오찬을 통해 하반기에 예산이 집행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협조를 촉구하면서도 인사 문제에 있어선 결국 강행돌파 하겠다는 카드를 동시에 꺼내들자 예상대로 야권이 크게 반발함에 따라 이제 정국 파행은 불가피해졌다.
 
또 청와대는 아예 속전속결로 못을 박겠다는 듯 김 위원장 임명 의사를 공표한 지 30분 만에 임명장 수여식까지 가져 현재 국회에서 청문보고서 채택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강경화 외교부장관 등 다른 내각 인사들에 대해서도 임명 강행이 유력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런 기습적인 발표에 한국당은 물론이거니와 그동안 김 위원장에 대해선 노골적인 반대 의사를 보이지 않았던 국민의당과 바른정당까지도 일제히 청와대를 성토하고 나섰는데,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는 즉각 국회에서 긴급브리핑을 열고 “협치 포기 선언이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유감스러움을 넘어 도저히 좌시할 수 없는 폭거”라며 문 대통령을 맹렬히 질타했다.
 
또 바른정당에서도 곧바로 오신환 대변인의 구두 논평을 통해 “소통과 협치를 하겠다는 문재인 정부가 불통과 독재로 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라며 “대통령의 브레이크 없는 오만한 질주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으며 향후 국회 일정과 관련해서도 상응하는 논의를 취할 것”이라고 청와대의 일방적 임명에 강력하게 경고했다.
 
이들에 비해 국민의당은 김수민 원내대변인이 이날 “국회가 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았는데 문재인 정부가 임명을 강행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유감”이라면서도 “청문보고서 채택 없는 공직후보자 임명 강행은 이번이 마지막이 돼야 한다”고 일견 수용하려는 듯한 논평을 내놔 예상보다 낮은 수위로 대응했다지만 국민의당에서 부적격 결정을 내린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보고서 채택 시한이 14일까지인 만큼 이 역시 청와대에서 강행할 경우엔 정부여당과 완전히 돌아설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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