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완역본 발간

1960년대 여성해방운동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던 미국 시인 실비아 플라스(1932~1963)의 일기가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이른바 '고백파 시인'의 간판스타이자 미국의 대표적 여성 시인인 실비아 플라스는 보스턴 대학교의 생물학 교수이자 땅벌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였던 아버지 오토 플라스의 딸로 태어났다. 실비아 플라스의 시 세계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한 것은 그녀의 나이 여덟 살 때 목격한 아버지의 죽음에 의한 충격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비아 플라스는 아버지가 죽은 이듬해인 아홉 살 때 첫 번째 자살 시도를 벌인다. 대학 시절 다방면으로 뛰어난 재능을 보인 실비아 플라스는 장학금을 받고, 영국으로 건너가 케임브리지 대학 재학 중에 알게 된 시인 테드 휴즈(1930~1998)와 결혼한다. 테드 휴즈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계관시인까지 지냈던 인물. 둘 사이에 두 자녀를 두었으나, 테드 휴즈의 외도로 인해 이들의 관계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실비아 플라스는 남편의 외도와 별거, 우울증과 생활고 등으로 시달리다 결국 서른 한 살이 된 1962년, 자신의 집 가스 오븐에 머리를 박고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자살 시도 세 번째 만의 성공이었다. 실비아 플라스의 충격적인 죽음은 1960년대 초반 태동하던 페미니즘의 시류를 타고 여성해방운동의 상징적 사건으로 부각됐다. 그녀는 테드 휴즈의 외도로 상징되는 남성의 폭압성에 희생당한 순교자로서 신화화된 것. 이후 남편 테드 휴즈는 이미 여성성의 상징이 된 실비아 플라스의 살인자라는 오명을 평생 낙인처럼 달고 다녀야 했다. 강연이나 시 낭독회 때마다 시위대를 팬클럽처럼 달고 다녔고, 실비아 플라스의 묘비명에 새겨진 남편의 성(姓) '휴즈'는 실비아의 추종자들에 의해 계속 지워졌다. 실비아 플라스와 테드 휴즈의 불같은 사랑과 비극적 파국에 관한 이야기는 '멜로 드라마'의 극적 요소까지 두루 갖춰 사후에도 끊임없이 대중들의 관심거리가 됐다. 테드 휴즈가 사망하자 영국 BBC는 2003년 미국 자본과 손잡고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를 영화(기네스 펠트로 주연의 <실비아>)로 만들기도 했다. 이번에 국내 번역된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는 남편 테드 휴즈가 프랜시스 맥컬로와 공동 편집해 1986년 출간한 책. 두 사람은 일기 원본의 3분의 2 가량을 생략한 뒤 책으로 출판했다가 비난을 받기도 했다. 실비아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테드 휴즈가 관련 부분의 일기를 파기하고 일부 지문을 삭제했기 때문. 그러나 2000년 완판본이 발간됐을 때 기대와는 달리 대단히 새로운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 책은 실비아가 대학 입학을 앞둔 1950년부터 1962년까지 일기를 담고 있다. 일기에는 '여성해방운동의 순교자'로 부각됐던 사후의 신비화된 모습이라든지 멜로 드라마의 극적인 주인공이 아니라 다소 평범한 일상이 기록돼 있다. 일기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창백한 희생자'의 모습보다는 냉철하고 잔혹할 만큼 정직하며, 때로 매우 이기적일 뿐만 아니라 남편이나 세상과의 소통에 실패해 악에 받힌 외로운 인간의 초상을 보여준다. 잡지에 보낸 시가 반송되지 않을까 걱정하며 하루종일 유리창에 매달려 우체부를 기다리는 모습이라든지, 눈을 맞으며 걸어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행복을 느끼는 모습 등 신화가 아닌 인간 실비아의 모습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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